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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2 – 나 불쌍한 아이 아니라고>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에는 입학 전 훈련시스템이 있다.

    조금이라도 스펙을 올리고 들어가서 초반을 편리하게 진행하라는 제작진의 배려가 아니다.

    준비를 안하면 입구컷마냥 입학도 못하고 튕겨나가니까 이 악물고 준비하라고 있는 시간이다.

     

    ‘초보 때는 굉장했었지.’

     

    훈련 하면 실전, 모험가 하면 성장.

    얼뜨기 플레이어들을 유혹하는 표어에 속아 퀘스트 가이드라인이라도 쫓는 것처럼 모험가길드에 가입하고는 숲과 동굴로 떠난 플레이어들.

    그중 90% 이상이 첫 미션에서 개박살이 나고 죽거나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왔지.

     

    ‘어떻게 파티원이 다섯인데 네놈이 서로 통수를 칠 수가 있지?’

     

    일정확률로 파티원이 배신(9.9%)하는 운빨망겜파티.

    기적의 확률에 걸려서 파티원 전원이 배신하는 이벤트 덕분에 넋이 나갔던 회차의 일이 추억처럼 새록새록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도 진짜 레전드 개노답 파티였던 그때에 비하면 훈련장 노가다는 정말 쾌적하다.

     

    “시설이 좋네요.”

    “주인님께서 준비해두신 시설입니다. 매년 입학시험 전이면 사람을 보내 관리하고 있습니다.”

    “매년이요?”

     

    집사가 귀찮게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꼭 살인청부 의뢰에서 괜한 목격자를 만들어서 보지 않아도 될 피를 하나 더 보게 되었다며 킬러들이 짓는 표정이다.

     

    “거울은 이쪽 방에 있습니다.”

     

    노골적인 화제돌리기지만 차라리 반갑다.

    직접 세팅했던 생김새와 다른 오크노디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나도 궁금했거든.

     

    “오.”

     

    훈련장 한 편에 세워진 전신거울.

    자세교정을 위해 놓인 거울 위로 금발 머리의 조그마한 소녀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싸커킥을 갈기면 한 방에 볼링 핀처럼 바닥을 구르게 생긴 말라깽이.

    손바닥을 들면 한 손으로 얼굴이 가려진다.

    어디 틱톡에 ㅇㅇ중 얼짱 하면 나오게 생긴 이쁘장한 모습이다.

    그래, 중학교.

    고등학교 말고.

    그 정도로 신체연령이 어려 보인다.

    이거 완전 애잖아.

     

    “후우.”

     

    고개를 들자 뭐 이런 불쌍한 녀석이 다 있냐는 얼굴로 집사가 내려다보고 있다.

     

    “살면서 거울을 보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군요.”

    “아닌데요? 완전 많이 봤는데요?”

    “그리 강한 척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반응은 아무리 봐도 자기가 어떻게 생긴 지 몰랐던 처음으로 거울을 본 사람의 반응이었습니다.”

     

    아니 십.

    그건 이 캐릭터로는 처음이니까 그렇지.

    억울한 오해를 해명하고 싶지만 집사는 들은 체도 안 하고 성큼성큼 앞장섰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을지는 대충 알겠습니다. 우선은 훈련 전에 식사부터 하죠.”

     

    사람을 무슨 불우이웃 취급하는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식사라는 말에 얌전히 입을 닫았다.

    이 게임에는 도감기능이 있다.

    온갖 아이템을 수집하면 도감컬렉션 효과로 능력치나 기능레벨, 레어아이템 획득확률 따위가 상승한다.

     

    ‘요리도감은 틈틈이 챙겨도 부족하지.’

     

    식탁에 앉아있기가 심심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넓직한 식탁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를 발견했다.

    입학까지는 시간이 금.

    온갖 운빨 억까에 당하지 않으려면 틈틈이 기능레벨을 올려둘 필요가 있다.

     

    [1분 이상 식탁 아래에 숨었습니다.]

    [숨기 경험치+1]

     

    식탁 아래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자 사람이 들어가도 남을 커다란 괘종시계가 보인다.

     

    [1분 이상 괘종시계의 문 안에 숨었습니다.]

    [숨기 경험치+1]

     

    숨기 경험치는 처음 숨는 장소에 1분 이상 숨을 때마다 경험치가 1씩 상승한다.

    확률이 미쳐 날뛰어서 잡몹이 나올 곳에서 미친 엘리트보스 몹들이 어슬렁거릴 때, 의지할 수 있는 기능은 이 숨기밖에 없다.

    이렇게 미리미리 올려두지 않으면 언제 억까를 당할지 모르는 게임이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다.

     

    [1분 이상 의자 밑에 숨었습니다.]

    [숨기 경험치+1]

    [1분 이상 커튼 뒤에 숨었습니다.]

    [숨기 경험치+1]

    [1분 이상 옷장 안에 숨었습니다.]

    [숨기 경험치+1]

     

    다음은 어디가 좋을까.

    빈 술통을 떠올리던 참에 끼익 하고 옷장 문이 열렸다.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잠깐 숨기 좋은 장소를…”

    “…….”

     

    시선이 따갑다.

    집사한테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 뒤늦게 깨달았다.

    침대에서는 누워서 못 잠들지, 거울은 난생 처음보지, 밥 해준다니까 옷장 속에 숨어있지.

     

    “나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식탁에나 앉으십시오.”

     

    존나 억울하네 진짜.

    개억까도 이런 억까가 없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의자에 앉으니 코를 간질거리는 비프스튜와 맛있게 생긴 바게트 빵이 보였다.

    아쉽게도 먹기만 해도 능력치가 오르는 희귀한 요리는 아니다.

    각기 다른 요리를 10개먹을 때마다 도감수집 보너스가 주어지는 일반등급 음식이다.

     

    와구와구

     

    빨리 먹나 늦게 먹나 수집되는 개수는 같다.

    대신 하나의 요리를 주어진 만큼 전부 먹어치워야 도감에 수집된다.

    그러니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하는 식사보다는 무조건 빨리 먹어치우는 편이 시간절약에 좋다.

     

    “식사를 굉장히 급하게 하시는군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제가 원래 조금 빨리 먹는 성격이에요.”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여기선 누구도 아가씨의 음식을 훔쳐 먹지 않습니다.”

    “정말요?”

     

    말만 그러고 한 입만 먹자고 해도 곤란하다.

    한 입이라도 내가 먹던 음식을 남이 뺏어먹으면 도감수집 판정에 실패한다고.

    경계심이 올라서 수프그릇을 안다시피 하며 흡입하니 집사의 시선이 더욱 따가워졌다.

     

    “식사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맛있었어요.”

    “그럼 내일도 같은 요리를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아. 그건 안 돼.

     

    “다른 요리는 먹어볼 수 없나요?”

    “……원하신다면야.”

     

    해냈다.

    이걸로 요리도감 몇 개를 날로 채울 수 있겠어.

    소리 없이 기뻐하는 내 모습에 집사가 불쌍하니까 봐준다, 하는 얼굴로 다 먹은 식기를 치웠다.

     

     

    * *

     

     

    훈련이 시작됐다.

     

    “기초체력 훈련입니다. 속도는 빠르지 않아도 괜찮으니 훈련장의 노란선 바깥을 달릴 수 있는 만큼 달려보십시오.”

     

    집사의 말이 끝난 뒤, 돌연 머리가 지끈거렸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잠깐 두통이 있었을 뿐이에요.”

     

    고통을 추스른 뒤에는 익숙한 이벤트 창이 눈앞에 떠오르고 있었다.

     

    <첫 훈련 이벤트>

    무지성하게 산과 들판, 동굴로 냅다 꼴아박는 초짜들과 달리 성실하게 단련하기로 결심한 당신.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첫 훈련의 성과는 이후의 훈련에 큰 도움이 됩니다.

    교관의 지시를 따라 훈련프로그램을 진행하십시오.

     

    떴다.

    부족한 운빨을 극복할 수 있는 훈련이벤트.

    부자에게만 허락된 성장의 기회.

     

    원래는 이 이벤트를 활용하기 위해선 아르바이트나 모험가 활동부터 시작해서 돈을 모아야했지.

    지금은?

    넘치는 것이 돈이다.

     

    잘그락

     

    주머니를 뒤져 1금화를 내밀자 집사가 물끄러미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뭐하십니까?”

    “훈련비요.”

    “저는 아가씨의 집사입니다. 사설훈련관의 훈련교관이 아니니 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오.”

    “금화는 집어넣고 얼른 뛰십시오.”

     

    히히, 돈 굳었다.

    뭔가 뒤에서 “대가 없는 호의를 받아본 적이 없으셨나보군…….”하는 중얼거림이 들린 것도 같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중얼거림이 아니다.

    상태창이 열리지 않는 리얼한 이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치를 알아낼 방법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오크노디의 몸은 비리비리하게 생긴 것치고는 의외로 체력이 있다.

    고인물 플레이어로서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재보자면 외형은 달라졌어도 내가 투자했던 능력치는 고스란히 물려받은 느낌이다.

     

    ‘아까워 죽겠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건장한 근육괴물이 발휘하는 근력과 여리여리한 소녀가 발휘하는 근력은 다르다.

    이왕 신체로 투자를 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몸이 큰 편이 나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초기능력치는 이미 근력이나 체력에 상당히 쏠렸다고 판단됐다.

     

    “그쯤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초체력은 보기와 달리 훌륭하시군요.”

    “제가 쫌 체력은 자신이 있어요. 쫓거나 쫓길 때 느리면 곤란하잖아요?”

     

    짐짓 자랑스레 이야기하는데 어째 시선은 아까보다 더 불쌍한 놈 보듯이 변한다.

    뭘 쫓고 뭐에 쫓긴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몬스터사냥과 소매치기 잡기 퀘스트를 염두에 둔 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트랙을 30바퀴 돌았습니다.]

    [한 달간 훈련장에서의 체력단련효율이 300% 상승합니다.]

     

    “다룰 줄 아는 무기를 골라보십시오.”

     

    체력 다음은 무기술.

    나는 주저하지 않고 검부터 집었다.

    슬쩍 눈치를 보자 집사는 이 햇병아리가 뭘 하나 보자 하는 얼굴로 서있다.

    그래서 활도 집었다.

    여전히 놀라는 기색은 없다.

    돌잔치에서 니 맘대로 잡아봐 하는 어른들은 뭘 잡아도 우효 우리 애가 물건 두 개를 골랐다고 하면서 잔뜩 신이 날 텐데.

    애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 무렵과는 비교 되도 너무 비교되는 리액션에 조금 실망했다.

    …마지막 무기로 완드까지 잡아도 그렇게 덤덤할 수 있을까?

     

    “그건 곤봉이 아닙니다.”

    “알아요. 완드잖아요.”

     

    집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마법장비를 아십니까?”

    “네.”

    “완드를 쥐어본 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죠.”

     

    설마 마법사의 장비를 집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눈치다.

    후후, 드디어 조금 반응이 보인다.

    내 재능에 깜짝 놀라기라도 한 걸까?

     

    “길거리에서 피를 뽑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의뢰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까?”

    “없는데요.”

    “솔직하게 말하십시오.”

    “진짜 없어요.”

     

    그런데 반응이 우효~ 스고이~ 하는 반응이 아니다.

    뭔가 매우 화가 나보인다.

     

    “아가씨. 저는 거짓말을 무척 싫어합니다.”

    “진짠데…….”

     

    말해놓고 보니 걸리는 구석은 있다.

    지난 번 플레이에서 초기자금이 부족해서 헌혈알바랑 생동성실험알바로 초기자금을 모으긴 했었지.

     

    “아. 예전에 했어요. 엄청 예전에.”

    “아무리 마법을 배우고 싶어도 그런 길거리 마법사의 마법을 배우는 건 위험합니다.”

    “마법 배운 거 아니거든요?”

    “그럼 완드사용법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그건…….”

     

    아카데미에서 배웠는데.

    이번 회차는 아직 입학도 안했네.

    대답이 늦어지자 집사의 표정이 더 험악해진다.

     

    “알겠습니다. 저는 잠시 외출을 하고 올 테니 자율훈련을 진행하고 계십시오.”

     

    오늘내로 누구 한 명 뚝배기를 깨고 돌아올 기세로 집사가 자리를 비웠다.

     

    “…….”

     

    길거리마법사야 미안해.

    아무래도 오늘이 너 제삿날인가봐.

    근데 너도 중독포션으로 나 한번 조진 적 있잖아.

    이걸로 쌤쌤으로 치자.

    알았지?

     

     

    * *

     

     

    [한 달간 검술훈련효율이 300% 상승합니다.]

    [한 달간 궁술훈련효율이 250% 상승합니다.]

    [한 달간 완드훈련효율이 200% 상승합니다.]

     

    “자율학습으로 성실하게 수련을 하고 계셨군요. 잘했습니다, 아가씨.”

     

    돌아온 집사의 표정은 평온했다.

    피비린내가 나는 건 모르는 척 해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축분은 조금 있지만 동시연재는 처음이기에…
    일단은 조금만 풀어보는 거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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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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