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

    제약을 정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이런 생각을 했다. 

    시각, 미각, 후각이 날아가고 말도 못 하고 시한부로 살라고 하면 콱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정상적으로 살 수야 있겠냐고. 미튜브도 못 보고, 맛있는 것도 못 먹고, 꽃내음도 못 맡고 사는데 그냥 편히 안락사당하는 쪽이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그래. 

    그건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다.

    게임 캐릭터가 이러니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먼지만 한 망상에 불과했다. 그리 시시덕거리면서 실제로 그렇게 될 거라고는 정말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됐다.

    나는 게임 속 세상에 들어왔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답할 말은 하나밖에 없다.

    그냥 알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 당연하게도 이곳은 게임 속 세상이라는 근거 없는… 하지만 확신하고 있는 기이한 기분.

    눈을 떴음에도 보이지 않는 시야. 뭔가 내 몸 같지 않고 힘이 안 들어가는 몸뚱이. 주변에서 쉴 새 없이 흘러 다니는 무형?의 무언가들. 

    그리고.

    ‘아아아아아악─!!’

    지금껏 경험해본 두통 따위와는 감히 비교되지 않는 끔찍한 고통. 

    머리를 열어다 쇳물을 붓는 듯한 작열감이 뇌를 잠식했다. 

    살아생전 몸뚱이가 건강했던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정말 동정받을 만큼 고달픈 삶은 아니었다. 

    이런 통증은 살면서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 까짓 놈이 참을 수준이 아니었다. 침대에서 튕겨 나가듯 몸부림치며 입이 자동으로 벌어져 비명이 터져 나왔다.

    ‘뭐, 야 이거…!’

    몸부림치는 내가 보인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가, 옆에 놓인 탁자가, 위치와 종류도 달라진 책상과 모니터가, 컴퓨터 본체의 내부가, 벽을 이루는시멘트 따위가…

    벽 내부의 철골과 전선이, 벽을 넘어 옆집의 모습이.

    깜빡거리는 신호등 불빛, 햇빛에 비치는 유리창, 살랑이는 가로수 풀잎, 도로를 걷는 사람들.

    사람들의 내부, 골격, 근육 다발, 장기, 혈관이 뻗어있는…

    ‘아악…!’

    나를 중심으로 동그란 구역에 대한 정보가 직접 뇌에 때려 박혔다.

    이런 감각 따위 모른다. 평생을 눈구멍으로 정보를 받아온 나는 이따위 것 단 한 번도 체험해 본 적 없다.

    무수히 많은 정보의 파도가 뇌를 두들길 때마다 송곳이 머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아아아악─!’

    나오지 않았다. 입이 벌어졌다. 분명 비명을 토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목이 콱 막히고, 통증이 더더욱 거세졌다. 

    ‘왜, 왜 이런 거지? 왜 이렇게 아픈 거야?’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생각을 끝없이 이어졌다. 

    답은 금방 예상됐다.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 구 형태의 무언가… 그 범위 내에 있는 모든 것이 파악되었다. 

    이건 능력으로 받은 공간지각이다.

    게임 내에서 확인한 공간지각에 대한 서술과 일치한다.

    압도적인 공간인지 능력을 보유한다는 설명.

    눈 두 짝 밖에 없는 인간의 입장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펼칠 구에서 모든 정보를 직빵으로 얻어내는 것은 터무니없는 매리트였다.

    특히나 백병전이 주로 이루어지는 전위에 있어선 더더욱.

    하지만 문제는 그 공간인지에서 얻어진 정보를 처리할 만큼 내 뇌가 우월하지 못했다는 점.

    간단히 말해 정보가 너무 많이 때려 박혀 뇌가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게다가 옅고 어딘가로 흐르고 흘러오는, 어디선가 뭉치고 다시 흩어지고를 반복하는, 분명히 존재하는 무형의 무언가.

    이건 마력이다. 처음 감지해보는 기운이자 정보다. 이것까지 공간지각 범위 안에 들어오면서 고통이 추가된다.

    근데 이런 정보처리는 처음인지라, 뇌가 정보를 컷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고통이 이어지는 개같은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

    ‘이, 이 시발…!!’

    이뿐만이 아니다.

    뇌가 긁히는 통증을 견딜 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저절로 입이 벌어져 비명이 터져 나와야 했지만, 내겐 「공간지각」과 「마력친화」라는 능력 말고도 다른 제약이 하나 있다.

    「침묵의 저주」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고작해야 상호작용 감소 따위의 간단하고 하찮은 설명이 고작인 제약인데.

    비명이 터지지 않는다. 비명 또한 결국 입으로 내뱉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침묵의 저주에 막혀 모든 ‘말’이 내뱉어지기 직전에 강제로 정지된다. 

    문제는 말이 곱게 멈추지 않는다. 

    목에 고통을 주어 ‘강제로’ 멈춘다.

    목을 칼로 후비는 것 같다. 

    시발 머리로도 모자라 목까지 후벼파지는 고통이 느껴진다.

    즉.

    공간지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

    과도한 정보로 뇌가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공간지각 초짜인 뇌는 정보를 거르는 방법을 몰라 고통이 지속된다.

    고통에 따라 비명이 터진다.

    「침묵의 저주」로 인해 목에 고통이 가해진다.

    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 꺽꺽 나오지도 않는 비명이 삼켜진다.

    ‘죽는다.’

    이러다간 진짜 쇼크사로 죽을 것 같다. 분명히 이 정도 고통이라면 진작 기절해야 정상인데, 이상하리만치 기절하지 않았다.

    어느새 난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죽는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도움을 청할 수가 없다. 시원하게 비명이라도 지른다면 어디선가 도움이 올지도 모르는데.

    휴대폰? 집 내부에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애당초 지금 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고작.

    ‘죽…는다.’

    안락사에 관한 논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살아있는 것이 고통일 수도 있다. 그래서 죽음을 바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상황이 그렇다. 기껏해야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정말 뇌가 바싹 익어버릴 것만 같다. 목에 가해지는 고통에 이젠 목이 너덜너덜해진 듯한 착각마저 든다.

    목 위로는 그냥 뜯겨 사라질 지경이다. 차라리 뜯겨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이대로 그냥 죽어버리면…

    ‘그건… 싫다.’

    죽고 싶을 만큼 아팠다. 근데 막상 죽고 싶진 않았다.

    이런 고통을 받으며 살 바에는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낫다가도, 정말 의식이 흐려진다 싶으니 죽고 싶지 않다는 모순적인 감정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이 남았다.

    아직 백 년의 반의반도 못살았다고.

    ‘생각하자.’

    목에 고통. 비명을 질러 「침묵의 저주」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비명을 지른 이유는 뇌가 타오르는 듯 고통스럽기 때문.

    뇌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공간지각의 정보가 과하리만치 많기 때문.

    ‘이거다.’

    공간지각이 문제다. 이 새끼만 어떻게 해결하면 연쇄의 시작점이 사라진다.

    공간지각을 어떻게 해야 한다. 범위를 극도로 줄이든, 아니면 정보를 흘려낸다.

    의식한다.

    공간지각이 줄어들기를, 사라지고 정보를 그냥 흘려보내기를.

    쓸데없는, 방구석 먼지 따위는 인식하지 않기를 바라자 순간 공간지각이 불안정하게 부르르 떨렸다.

    이내 완벽한 구 형태로 펼쳐진 공간지각이 엉기성기 구긴 종이처럼 이리저리 구겨지고 펴지기를 반복했다.

    구형이 아닌 삼각형, 사각형과 오각형. 뭐라 이름 붙이기 힘든 조형물 모양이 되었다가 다시 찌그러지고, 펴지고.

    세포 하나하나마저 읽히는 듯한 만상萬狀의 시야에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야로 바뀌었다가 마치 야간투시경을 쓴 듯한 시야까지. 

    ‘…! …! …!!’

    온갖 변화에 맞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정보량에 결국 의식이 툭 끊어졌다.

    * * *

    ‘그게 열흘 전이었지.’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섬뜩하기 짝이 없다.

    갑작스레 아무 죄도 없이 게임 속에 들어온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들어오자마자 죽을 뻔하다니.

    그런 식으로 죽었다면 절대 곱게 성불하지 못했으리라.

    어쨌든. 그렇게 기절한 뒤 깨어난 것은 꼬박 사흘을 퍼질러 기절한 후였다.

    오래된 알람 시계에 음성 알림이 없었다면 며칠이나 기절했는지도 몰랐을 거다.

    ‘후…’

    들끓는 속을 달래며 공간지각을 조율했다. 방안이 간신히 보일만한 범위. 대략 지름이 5m 남짓 될까.

    아득한 고통 탓에 기억이 희미해져 정확하진 않지만, 처음 개화됐을때가 100m 남짓의 크기였던걸 생각하면 거의 20분의 1로 줄어버렸다.

    아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들어오는 정보량을 최대한 줄이고자 하는 과정에서 크기부터 줄어든 것일 터.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인건비부터 깎는 거랑 비슷한 이치일까.

    문제는 원가절감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공간지각으로 느껴지는 세상을 확인했다.

    흑색 일색의 세상. 물체 따위는 오직 녹색의 표면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어디 매체에 나오는 군용레이더 비스름한 색 조합과 형태. 박쥐가 초음파로 세상을 인식한다던데, 이런 감각일까.

    범위 내 모든 정보를 게걸스레 흡수하던 처음의 공간지각에 비하면 과하리만치 체급이 줄어들었다.

    그때는 먼지 한 톨을 넘어 내 몸뚱이 속 근육의 결과 세포 정보? 같은 것도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냥 겉면 정도밖에 안 보인다. 

    심지어 이 상태로 고정되어 버려 변경도 안 된다.

    크기 정도야 어느 정도 늘리고 줄일 수 있다.

    근데 계속 공간지각을 느끼고 있자니 솔직히 노이로제 걸릴 것 같다.

    ‘시발…’

    처음… 아니지, 기절하고 나서 사흘 만에 깨어나서 얼마나 당황했는데. 

    깨어나자마자 배가 등가죽에 붙어 농담 안 하고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뇌가 터져 죽을뻔한 뒤, 배고파서, 수분 부족으로 또 죽을 뻔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 

    물 없이 생존이 3일이라는데… 자칫하면 진짜 미라가 될 뻔한 위기였다.

    이상한 소리겠지.

    여기가 어딘진 모르겠지만 설마 집 안에 섭취할 수 있는 식품 하나가 없겠는가.

    하물며 없더라도 그냥 밖에 나가서 사 오면 되는 거니까.

    문제는 시발 윤곽밖에 안 보여서 뭐가 뭔지 구별이 안 된다.

    등가죽에 붙을 지경인 배를 가지고 주변을 더듬더듬하며 기어 다니는 경험을 해야 했다고 

    진짜 늦었다간 아사(餓死)나 갈사(暍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쫒기면서 말이다.

    ‘PTSD 올 거 같아.’

    진짜 미쳐버릴 것 같다…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열흘 전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이었다면 충분히 머리가 깨진다고 발광하며 굴러다녔을 텐데.

    이런 쪽으로 내성이 생기다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

    한숨을 푹 내쉬며 탁자를 바라보… 아니, 감지했다.

    탁자 위에 놓여있는 택배 상자에는 종이 몇 장과 시계 비스름한 장치가 놓여있었다.

    당연히 눈먼 장님인 나는 택배가 보이지 않았다. 만약 배송인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정체도 몰랐을 터.

    〈시요람 특례입학 통지서〉

    시요람(始搖籃).

    작중 메인스토리 1부의 주 무대.

    태평양 한 가운데에 놓인 섬. 그 중앙에 자리한 성장의 탑을 중심으로 건립된 세계 최고의 초인육성기관.

    마법과 과학기술 따위가 조합된, 최첨단 기술을 겸비한 시설.

    각지에서 활동 중인, 혹은 은퇴한 세계구급 초인들을 교수로 두어 실시되는 질 높은 강의들까지.

    그 외에도 나열하자면 수도 없이 뱉어낼 수 있을 만큼 세계 최고로 소개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교육기관이 시요람이다.

    한해 입학 생도가 평균 600명 남짓.

    그중 9할은 정당한 시험을 통과해서, 1할은 외부의 유력세력과 시요람 내부 교수의 추천을 받아 입학한다.

    전자와 후자. 둘 다 해당하지 않는 입학 방법이 바로 ‘특례입학’이다.

    특례 입학생은 시험을 칠 필요도 없다. 등을 밀어주는 유력 세력도 필요 없다. 내부 교수의 추천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냥 몸뚱이만 오면 된다.

    ‘하아…’

    게임이라면, 그냥 플레이어가 무대에 입장하기 위한 장치 정도로 여겨질 방법인데… 여기가 현실이라 생각하면 쫌 암울하다.

    문제는 그 특별하디 특별한 특례로 입학할 대상인 나의 상태.

    공간지각으로 상시 지끈거리는 정신에 주둥이 좀 나불거렸다간 대가를 치르는 벙어리. 

    동시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장님이며 앞으로 10년이면 장수했단 소리 들을 시한부.

    미각, 후각 봉인은 덤이다.

    상태가 이 꼬락서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부하는 교육기관인 만큼 그 강의 수준도 세계 최고 수준일 터.

    들어가고 말고 이전에 내가 그 강의 난이도를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가야지.’

    악조건을 견뎌내고 끝내 성공할 자신감? 없다. 난 그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방안에서 미튜브 보고 맛있는 거 먹거나 음료수 홀짝이고, 배란다에서 화초 키우는 게 인생의 낙이었던 놈이다.

    내가 무슨 공간지각이니 팔방미인이니 마력친화니 받아봤자 결국 근본은 아싸찐따인터넷폐인이다.

    그래도 가야 한다.

    이 세상에 오기 전. 캐릭터 제약을 설정하면서 했던 생각.

    평생 미튜브도 보지 말고 음식 먹어봤자 맛도 못 느끼고, 냄새도 못 맡을 거면 뭐 하러 사냐고.

    그 생각은 여전하다. 그렇게 살 바엔 그냥 죽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는데?

    간단한 문제다.

    저런 삶은 살 바엔 그냥 죽는 게 낫다. 그렇다고 죽고 싶진 않다.

    그러니 예전처럼 살고 싶다.

    여기가 그냥 세상인가?

    게임 속 세상이지만… 마법 같은 이능이 실존하는 세상 아닌가.

    무언가 분명. 이 제약을 벗을 방법이 있을 것이다. 

    게임에서도 그랬다.

    제약 설명에 괜히 ‘반영구적’이라는 문구가 자주 들어간 게 아니다.

    스토리를 진행하며, 캐릭터가 성장해가며 분명 제약을 벗어던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러한 방법을 찾기 알맞은 장소이며, 방법을 찾기 위한 힘을 기르기 가장 좋은 장소가 바로 시요람이다.

    결심은 어젯밤에 끝냈다.

    나는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상자를 개봉했다.

    .

    .

    .

    ‘근데 어떻게 찾아가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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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아카데미 장애인 전형 생도가 되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created a game character.
Instead of taking several perks, I added restrictions.

▶Restriction (I): “Curse of Sensory Seal”
─Permanently seals a chosen sense.
─Choice: Sight, Taste, Smell

▶Restriction (II): “Curse of Short Life”
─You are born with a body doomed to a short life.

▶Restriction (III): “Curse of Silence”
─Speaking causes you pain.

When the next day came, I couldn’t se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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