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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헤를라인 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아카데미… 입학이요?”

       “흥미는 있나 보네?”

         

       당연하다.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려면 그 방법밖엔 마땅치 않으니까.

         

       제국의 신분제는 예전부터 무너져가고 있었다. 북쪽 마수와의 전쟁이 장기화된 탓이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상황에서 황제와 노예의 목숨은 점차 동등해졌다. 그걸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은 모두 죽었다.

         

       어느 새인가부터 제국은 전투마도사를 육성하는데 큰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마수를 막아낼 인재라면 얼마든지 우대해주겠다는 소리였다. 시대정신에 알맞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틸레트 마도 아카데미는 제국 최고의 전투마도사를 양성하는 학교였다.

         

       입학생은 입시에 합격하는 그날부터 모든 신분이 말소되고, 동시에 아카데미의 학생이자 한 명의 견습 마도사라는 명함을 달게 된다. 사실상 황족을 제외하면 모두가 평등한 곳이 이 아카데미였다.

         

       헤를라인 교수도 아카데미를 졸업함으로써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신분의 사슬을 벗어던졌다. 지금의 그녀는 황실을 보필하는 한 명의 백작이었다.

         

       솔직히 말해 구미가 당긴다. 안 당길 리가 없지.

         

       헤를라인의 말이 없었더라도 언젠간 입시에 지원했을 것이다. 다만, 적당한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었을 뿐.

         

       그래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왜 저에게 그런 말씀을…?”

         

       귀족의 말을 수용할 땐 항상 그 저의를 파악해야 한다. 헤를라인 교수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필이면 지금 건네는 이유가 뭘까. 그것도 이렇게 뜬금없이 찾아와서 말이다.

         

       내 물음에 헤를라인은 우회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야 넌 클라이스의 전속 조수잖아?”

       “네. 그렇죠.”

       “클라이스 걔는 들이는 대학원생마다 석 달 이내로 도망치게 하는 재주가 있었거든. 근데 널 노예시장에서 데려온 이후부턴 대학원생을 전혀 받지 않는 거 있지? 자기 도와줄 학생 없다고 맨날 징징대던 게 그 클라이스였는데.”

         

       이게 뭔 소리야. 그 하스펠트가 징징댔다고?

         

       “그래서 저번 술자리에서 물어봤지. 그랬더니 이제 다른 대학원생은 필요 없다고 하더라. 그 이상 들여봤자 쓸데없는 인건비만 나간대.”

       “술자리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렇다니까.”

         

       알겠다. 헤를라인 교수는 지금 날 떠보고 있다. 난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그녀의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걔가 그렇게까지 말했으면 칭찬이나 다름없어. 대놓고 표현을 못 할 뿐이지, 내심 너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거야.”

       “…혹시 그 술자리를 가졌던 게 1년 전쯤이셨나요?”

       “와, 맞아! 어떻게 알았어?”

         

       왜냐면 당신이 나에게 처음 접근했던 시기가 딱 그쯤이었거든.

         

       그때 만남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설마하니 이런 뒷얘기가 있었을 줄이야.

         

       “아무튼 그때부터 생각을 했지. 우리 에테르는 평생 노예로만 살기엔 아까운 인재라고.”

       “아….”

       “강요는 안 해. 하지만 만약 생각이 있는 거라면 아무 때나 날 찾아와. 그래, 가급적이면 한 달 이내면 좋겠다. 원서접수가 석 달 뒤거든!”

         

       헤를라인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내 한쪽 손을 붙들었다. 맞닿은 손바닥 사이에서 무언가 물컹한 감각이 느껴졌다.

         

       “어.”

       “짠! 내가 주는 선물. 오늘 밥 못 먹었지? 이걸로라도 요기하렴.”

         

       초콜릿이다.

         

       이 세상에선 더럽게 구하기 힘든 물건. 특히 노예에게는 사치품이나 다름없는 음식이었다.

         

       평민이 당분을 얻으려면 생과일을 먹거나 수분을 받은 꽃의 술을 핥아야 했다. 사탕수수도 있긴 한데, 그건 엘프들이 독점해서 초콜릿보다 구하기 어려웠다.

         

       음. 일단 한 번 거절해야 예의이긴 한데. 지금은 위가 쪼그라든 상태인지라 본능이 앞서 있었다.

         

       초콜릿을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보통 귀족이 어떤 제안을 한 뒤 사치품을 건네는 것에는 은유가 담겨있기 마련이었다. 마치 부패한 정치인이 품에서 하얀 편지봉투를 꺼내는 것처럼.

         

       초콜릿을 거절한다는 건 아카데미 입학에 관심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헤를라인처럼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는 귀족이라면 그리 생각하겠지. 그래도 여기서 눈칫밥 먹고 자란 게 있는데, 이 정도도 구분 못 할까.

         

       나는 초콜릿을 받아들었다. 물론 감사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고.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안녕!”

         

       골렘을 타고 돌아가는 헤를라인을 바라보며, 내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래.

         

       3년이면 슬슬 기지개를 켤 때도 됐지.

         

       **

         

       그건 그거고, 일단은 현생에 집중하기로 했다.

         

       학부생으로 입학하는 건 당장 생각하지 않아도 될 문제다. 섣불리 김칫국부터 들이켰다가 패망한 사람이 어디 한 둘이던가? 자고로 거사를 준비해야 할 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두고 움직여야 하는 법이었다.

         

       특히나 틸레트 아카데미는 그 명성만큼이나 경쟁률이 높은 학교. 쟁쟁한 경쟁 상대들을 제치고 한 번에 붙지 못한다면 그날로 하스펠트 교수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모든 건 치밀하게, 또한 위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TIP: 모든 마도를 익히기 전까진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 진행도]

         

       [화계마도 : 836/1048]

       [더 보기….]

         

       조금만 있으면 화계마도는 전부 배운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스펠트 교수 밑에서 굴렀던 덕분이었다.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1년 정도만 더 연구한다면 그녀와 동급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좋아.”

         

       책을 집어넣고는 당장의 목표인 마석을 얻기 위해 뒷산을 올랐다.

         

       틸레트 아카데미의 뒷산.

         

       뒷산이라고는 하지만 학교 본관과는 거리가 꽤 있는 장소다. 이곳엔 그냥 놔둬도 별다른 해가 없는 하급 마수들이 서식한다.

         

       모든 마수가 인류에게 치명적인 건 아니었다. 약한 놈들은 아카데미 재학생의 실습용으로 써먹기 딱이었다. 학교에서도 그 유용성을 알고 있는지, 무슨 야생동물 보호하는 것처럼 개체 수를 조절하고 있었고.

         

       약한 마수는 실습용으로만 쓰이는 게 아니다. 하급 마석을 수급하는데도 얘네의 공이 컸다.

         

       “우선 한 마리 발견.”

         

       산 중턱에 다다르자 마그넷 터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급 마수였다.

         

       나는 몸을 낮춘 채 수풀 사이로 천천히 이동했다.

         

       힙색을 열어 가져온 물품들을 살폈다. 예비용으로 챙긴 라이트 애로우 스크롤 두 장과, 마력초 몇 개비. 그리고 조금 복잡하게 생긴 스크롤이 하나.

         

       여기서 마지막 것을 꺼내 들었다.

         

       [작성용 스크롤 : 개인 스태프를 소환합니다.]

         

       사람은 도구를 써야 한다. 사냥을 할 때도 예외는 아니다. 맨손으로 저 단단한 걸 어떻게 잡아?

         

       스크롤을 펼친 채 마력초를 입에 머금었다. 알싸한 연초향이 순환계를 한 바퀴 돌자 스크롤에 빛이 일렁였다. 마전지가 은빛으로 타올랐다.

         

       이내 기다란 스태프 하나가 마전지를 뚫고 튀어나왔다. 2m가 조금 안 되는 길이였다.

         

       견습 마도사가 사용하는 평범한 목재 스태프는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철로 된 특제품이었다.

         

       요령만 있다면 마법 없이 이 스태프만으로 저 깡통을 쓰러뜨릴 수 있다. 난 마법 하나를 쓰는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그런 요령을 터득하는 쪽으로 저 녀석을 사냥하곤 했다.

         

       그 요령이 뭐냐.

         

       뭐긴 뭐야. 후드려 패는 거지.

         

       양손으로 스태프를 꼬나쥐었다. 스태프의 끝부분에는 네 개의 뾰족한 쇠침이 달려있었는데, 그중 두 개는 바깥쪽으로 뻗어 있었다. 두 침의 거리는 임의로 조절하는 게 가능했다.

         

       두 개의 침 중 아래쪽 것을 움직이면서 대상의 크기를 가늠한다. 이후 적당한 길이를 찾아 핀으로 고정했다.

         

       그리고 지금부턴.

         

       타타탁!

         

       때를 기다리다가, 마그넷 터틀이 등을 보이는 그 즉시 달려나갔다. 그대로 목 부분에 스태프를 내리친다.

         

       콱! 알맞은 길이로 피닝이 된 철제 스태프의 집게 사이로 녀석의 목이 들어갔다.

         

       “키이이익!”

         

       마그넷 터틀이 비명을 질러댔다. 의미 없는 반항이었다.

         

       우드득, 으득, 콰드득.

         

       “키이이익….”

         

       놈의 외피가 벗겨지자 수많은 에나멜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끊어져 가는 목덜미 안쪽에서 기름칠이 된 자철석이 몇 조각 떨어져나왔다.

         

       마그넷 터틀의 마석이다.

         

       급습은 성공했다. 마그넷 터틀은 반격조차 못하고 축 늘어졌다. 나는 녀석의 전원이 꺼진 걸 확인하고는 마석을 주머니에 담았다.

         

       마석 말고는 필요하지 않다. 물론 시장에 내다팔면 돈이 되겠지만, 이 무거운 걸 들고 저 아래까지 내려가고 싶진 않았다. 누가 발견하면 알아서 해체하겠지.

         

       그 뒤로 몇 마리를 더 잡았다. 한 마리당 마석을 50개씩 주니, 어림잡아 대여섯 마리를 잡으면 충분했다.

         

       꼬르륵.

         

       역시 운동은 칼로리 소모가 극심하다. 슬슬 초콜릿이나 까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음….”

         

       오랜만에 맛보는 당분이다. 할 수만 있다면 이걸 최대한으로 즐겨야겠지.

         

       마침 좋은 이론이 떠올랐다.

         

       경제학에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간단히 말해,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계속 소비하다 보면 상대적인 만족감이 떨어진다는 법칙이다.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당장 밥을 먹더라도 첫술과 마지막술에서 느껴지는 만족도가 다르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그래. 당분을 오래 맛보겠답시고 이만한 초콜릿을 몇 등분해서 쪼개 먹는다는 건 비과학적이다. 그래선 허기도 안 사라지고 금세 허탈해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초콜릿을 최대한으로 만끽하는 방법은…….

         

       가장 배고플 때 한입에 털어넣는 것!

         

       중요한 건 맛뿐만이 아니다. 포만감을 같이 채우려면 단맛의 여운이 남아있을 때 다른 음식도 같이 먹어야 한다.

         

       주변에 먹을 게 없나? 아니다. 대자연의 어머니께선 어느 세상에서나 은총을 내려주신다. 주변을 둘러보면 괜찮게 익은 열매 몇 알을 발견할 수 있다.

         

       계산은 완벽하다. 나는 근처 덤불을 뒤져가며 먹을 수 있는 풀떼기나 열매 따위를 모았다. 어떤 풀잎에선 상큼한 민트 향이 나기도 했다. 얘 괜찮겠는걸?

         

       좋아. 이제 이걸 한번에 삼키면 된다. 그럼 씹는 맛도 있고 포만감도 들겠지?

         

       “하읍.”

         

       …….

         

       …어라.

         

       잠깐.

         

       잠시만 기다려봐.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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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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