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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주서연, 주서연이구나.’

       

       CF 감독을 맡은 조민태는 대기실의 분위기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점찍은 아이는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단순히 얼굴이 다가 아니야.’

       

       분위기.

       좌중을 사로잡는 분위기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일을 쫓아다녔던 조민태는 배우를 여럿 보았다.

       

       배우들은 하나 같이 아름답고 멋진 외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 소녀, 주서연은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아우라라고는 아직 말할 수 없으나,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무언가가.

       

       “확실히 느낌이 괜찮네요. 연기도 딱 저 외모만큼 해주면 좋으련만.”

       

       보는 눈은 다 비슷한 법이다.

       캐스팅 디렉터 김형석 역시 서연을 눈여겨 보았다.

       

       물론, 조민태보단 그 기대감이 덜했다.

       

       ‘저런 애들이 간혹 있지.’

       

       얼굴도 예쁘고, 분위기도 타고 난 애들.

       하지만, 외견은 결국 외견.

       

       모델을 할 게 아니라면 배우는 결국 연기였다.

       설령 간단한 CF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특히 이번 CF는 단독으로 나오는 것도 아닌, 배우가 한 명 더 있었다.

       

       ‘그쪽도 따로 준비해야 될 텐데.’

       

       아역도 이런 판에, 제대로 된 배우가 구해질까 싶긴 했다.

       

       “슬슬 다 온 것 같은데요? 이제 시작하는 게 어떻습니까.”

       “아, 예. 시간도 많지 않으니, 서두르도록 합시다.”

       

       슬슬 프로필로 확인한 아이들도 다 온 것 같고, 오디션이 예정된 12시까지 대략 10분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형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의 문을 열고 외쳤다.

       

       “자, 오디션 시작하겠습니다. 번호표는 받으셨죠? 1번부터 순서대로 부를 테니 들어오시면 됩니다.”

       

       무미건조한 그의 말에 대기실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연아 긴장할 필요 없어.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응, 엄마.”

       

       그중에서 유일하게 매니지먼트에 속한 지연도 내심 긴장한 티가 났다.

       그녀의 어머니인 홍진희는 그런 딸을 달래며, 아까 눈에 띄던 아이를 힐끗 보았다.

       

       ‘애가 무슨 심장이 강철인가? 표정에 변화가 없네.’

       

       서연의 긴장감 없는 얼굴을 보며 진희는 눈을 찌푸렸지만, 이내 피식 웃었다.

       

       ‘하지만 저래서야 연기는 볼 필요도 없겠어.’

       

       배우란 결국 연기에 감정을 담는 직업.

       이것은 설령 작은 CF여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오히려, 짤막한 단막극이나 마찬가지인 CF이기에 그런 감정적인 부분이 극대화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둔한 아이라면 감정 연기에 서툴게 분명했다.

       

       ‘왜 날 보며 웃지?’

       

       반면 서연은 자신의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었다.

       아까부터 자신을 노려보듯 바라보는 아줌마가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서연아, 기, 긴장하면 안 돼. 알지? 긴장되면 엄마 손 꼬옥 잡고.”

       “네.”

       

       긴장한 건 서연이 아니라 어머니인 수아쪽이었다.

       서연은 그런 수아를 보며 손을 꼭 잡아줬다.

       긴장해서가 아니라, 엄마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상하다. 연기는 내가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서연은 우선 오늘 CF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 식품 광고라고 했지.’

       

       정확히 어떤 상품인지는 몰라도, 대분류 정도는 미리 알 수 있었다.

       식품.

       즉, 무언가를 먹는 연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맛있게 먹는 건 중요한 법.’

       

       지금은 그 개념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였지만, 불과 몇 년 후에는 먹방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된다. 물론 이건 버튜버에는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버튜버의 경우에는 먹방은 할 수 있어도, 어디까지나 컨텐츠의 일부일 뿐 주력으로 미는 건 어려웠다. 

       

       그래도 뭐든 할 수 있으면 좋았다.

       어쨌든 먹방도 하나의 컨텐츠가 아니겠는가?

       

       “서연아, 저기 먼저 들어간 친구들이 나오고 있어.”

       

       그때 수아가 서연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시선을 돌리자, 오디션장 안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딱 봐도 좋지 못한 평가를 들은 얼굴이다.

       

       “다음 5번 들어오세요.”

       

       계속해서 번호가 호명되었다.

       서연의 번호는, 분명 기억하기로 22번.

       

       참가자의 숫자를 볼 때, 상당히 후 순번인 것 같았다.

       

       “13번.”

       

       무슨 식품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미 매니지에 속해 있다던 아이가 벌떡 일어섰다.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아이들보단 확실히 나았다.

       

       ‘응?’

       

       서연은 별생각 없이 아이의 얼굴을 보다가, 문득 한 광고를 떠올렸다.

       이제야 깨달았지만, 뭔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두유 광고.’

       

       지연이라고 했나?

       분명 저 아이의 어머니로 추측되는 인물이 아이를 그렇게 불렀었다.

       

       ‘맞아, 두유 광고가 맞아.’

       

       저 여자아이는 본 기억이 있었다.

       분명 엄청 오래 전에 본 광고임에도, 이상할 정도로 기억이 또렷했다.

       

       이것도 환생하며 생긴 보정과 같은 걸까?

       

       ‘아마…… 평가는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

       

       물론 저 아이가 있던 것 만으로 지금 서연이 참가한 오디션이 기억 속 두유 광고일 확률은 적다.

       저 지연이라는 아이도 오디션을 여러 번 봤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만약 맞다면…….’

       

       서연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기억 속에서 보았던 두유 광고가 떠올랐다.

       

       광고에 출연한 건 이지연 한 명이 아니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도 한 명 더 있었다.

       

       김정하, 아마 그런 이름이었지.

       지금은 그리 뜨지 않은 배우이지만, 불과 3년 후에 케이블 드라마의 주연으로 들어가 연기력을 크게 인정받게 된다.

       

       거기다 이 CF도 후에 재조명 받게 되는데, 이때 출연했던 ‘어색한’ 배우가 김정하였음이 후에 알려지게 된다.

       

       ‘그래서, 아역 배우와 괴리감이 엄청났던 걸로 기억해.’

       

       묘하게 어색한 광고였다.

       물론, 오히려 그게 이슈가 되어 그냥저냥 두유가 팔리긴 했지만 좋은 광고는 아니었다.

       

       참고로 이 광고가 후에 재조명되는 건 단순히 김정하 때문이 아니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

       

       “역시 우리 딸. 완벽했어!”

       

       서연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연기를 마친 이지연이 오디션장 밖으로 나왔다.

       표정은 제법 밝았는데, 다른 이들과 달리 호평을 들은 게 분명했다.

       

       ‘흥, 어차피 이 CF는 우리 딸 지연이 꺼야.’

       

       서연이 딸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홍진희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딸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안아 올렸다.

       

       ‘왜 저런데.’

       

       오디션을 잘 봐서 기쁜 건 알겠는데, 왜 자신을 보면서 기뻐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저 반응을 보아, 이 CF는 이지연이 아역 배우로 캐스팅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두유일 확률이 올라갔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우선 두유로 가정하고 생각하자.

       서연의 순번이 오기까진 아직도 대략 열 명 가까이 남은 상태였다.

       시간이 있었다.

       

       ‘이것도 결국 RP와 같은 거야.’

       

       두유를 맛있게 마시는 아이, 라는 캐릭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 장면이라 생각하자. 

       

       과거의 광고를 떠올린다.

       이건 혼자 찍는 광고가 아니다.

       

       두 명이 출연하는 광고.

       그만큼 합이 중요했다.

       

       ‘이게 또 버튜버하면 합방이거든.’

       

       합방을 잘 살리려면 상대의 특색에 맞춰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서로 따로 놀면 서로의 장점만 죽이고, 혼자 방송할 때보다 맛이 안 사는 경우도 있었다.

       뭣보다 RP를 중요시한다면 더더욱.

       

       ‘김정하 배우는 굉장히 발랄한 이미지였어.’

       

       CF도 그랬다.

       굉장히 발랄하고, 텐션이 굉장히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덕분에 그저 상큼한 딸의 역할을 맡은 아역의 색이 죽어버렸다.

       

       ‘그 텐션에, 내가 맞출 수 있나?’

       

       서연이 한 연기라 해봐야 쭉쭉 체조나 좀 조지면서 한 게 전부다.

       RP로 이런저런 캐릭터를 연기해보긴 했지만…….

       

       ‘흠, 뭐 이 또한 경험인 거니까.’

       

       최선은 다하겠지만, 애초부터 서연은 자신이 오디션에 붙으리라 생각도 안 했다.

       연습은 자신만 한 것도 아니며, 이곳에 있는 아이들이라면 전부 했을 것이다.

       

       어쩌면 더 열심히, 더 많이.

       매니지먼트에 들어간 아이는 말할 것도 없다.

       

       ‘경험인 거지만…….’

       

       서연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조금이지만 눈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 더 붉게 빛났다.

       

       “……그걸로만 끝나면 아쉽지.”

       

       어설프게 해서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과거의 자신처럼.

       

       그리고.

       

       “22번 들어오세요.”

       

       드디어 서연의 순서가 되었다.

       

       ***

       

       “아무래도 아까 13번이 제일 낫죠?”

       “예, 아무래도 그렇네요.”

       

       조민태와 김형석은 그런 대화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오디션에 참여한 아이들의 숫자는 총 25명이니, 이제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엔터에 들어갔으니, 실력은 있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김형석은 그렇게 말하며, 남은 프로필들을 대충 덮었다.

       이제 더 볼 것도 없다 싶었으니까.

       

       “예, 그렇긴…… 합니다만.”

       

       하지만 조민태는 영 불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CF 감독으로서 첫 일이니 좋은 배우와 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예산도 부족했고, 좋은 배우라면 애초에 이런 광고를 굳이 찍으러 오지도 않는다.

       단순히 돈을 떠나 광고 노출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아직 22번이 남았잖아요? 아까 눈 여겨 보시던 아이요.”

       “아, 예. 그렇죠.”

       

       조민태는 머리를 긁적이며 방금 호명한 22번의 프로필을 살폈다.

       

       ‘연기 경력은 이번이 처음.’

       

       역시 오늘 오디션을 보러온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처음에는 기대했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실력을 보고 있으니 ‘경험’이 없다는 게 얼마나 큰 지 느낄 수 있었다.

       

       “그 얼굴의 반만 해줘도 좋을 텐데요.”

       “예, 그러면 정말 좋겠…….”

       

       덜컹!

       

       대화를 하던 중, 문이 열리며 작은 아이가 들어왔다.

       긴 검은 머리칼에, 묘한 색깔의 눈동자.

       하얀 얼굴은 마치 도자기 인형 같아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만약 그 뒤를 따라오던 아이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계속 바라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 보호자 분은 그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네.”

       

       어머니 쪽은 얼마나 긴장했는지 흐트러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무표정한 딸과는 정반대였다.

       

       ‘아니, 이쪽도 긴장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

       

       조민태는 준비된 의자에 다소곳하게 앉은 서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무척 바른 자세였다.

       허리는 곧고, 시선은 정면.

       

       그 곧은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조민태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이름이 서연이죠?”

       “네.”

       “오늘 무슨 연기할 지 이야기는 들었나요?”

       “식품이라는 것만 들었어요.”

       

       고저 없는 담담한 대답이었다.

       감정이 워낙 희박하여,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줄어들었다.

       

       “크흠, 그러면 이제 마시는 연기를 할 거예요. 그러니까…… 어디 보자, 차가운 우유를 맛있게 마신다 생각하고 한번 연기해보세요.”

       

       이는 말 그대로 즉흥이었다.

       미리 어떤 광고인지, 어떤 캐릭터인지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스크린 캐릭터용 대본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즉흥 연기.

       

       보통 이런 경우, 아이들의 경우엔 ‘여기서요?’와 같은 반응이 나온다.

       입으로 내뱉지 않아도 순수한 아이들은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법이다.

       

       “네.”

       

       하지만 이번에도 지극히 짧은 단답이었다.

       조민태는 헛웃음을 지으며 김형석과 시선을 교환했다.

       

       ‘이거 안 되겠죠?’

       ‘저렇게 무뚝뚝해서야…… 음식 연기는 어렵겠네요.’

       

       대충 그런 의미가 담긴 시선이었다.

       특히 이런 오디션에선 감독인 조민태보다, 캐스팅 디렉터의 말이 더 강한 부분도 있었다.

       

       김형석은 이미 배역으로 이지연을 반쯤 확정시켜둔 상태였기에, 서연이 어지간히 잘하지 않는 이상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거 아쉽네.’

       

       꼭 저 아이와 하고 싶었는데.

       조민태가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이었다.

       

       “후.”

       

       서연의 입가에 웃음기가 맺혔다.

       방금까지 무표정했던 아이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해맑은 미소였다.

       

       분위기가 변했다.

       칙칙하던 색이 단번에 화사하게 느껴졌다.

       

       ‘뭐야.’

       

       조민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손을 움직이는 서연의 손이 보였다.

       

       무언가를 쥐었다.

       마시는 것을 연상하면 일반적으로 손은 ‘컵’을 묘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연의 손 모양은 달랐다.

       그건 ‘팩’이었다.

       

       우유팩.

       그것도 일반적인 크기의, 200ml 우유팩이 아닌.

       

       길쭉한, 190ml 두유팩을 그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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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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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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