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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히어로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각양각색의 능력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능력에 따라서 학생들에게 부여되는 등급이 달라진다.

       

        ‘에…… 일단은 D랭크로 합시다.’

       

        먼 과거, 내 능력을 시험하던 평가관이 내린 결론이다.

       

        듣자하니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능력이라나 뭐라나.

       

        하지만 고작 그 D등급의 능력을 사용하는 힘은 결코 우습지 않았다.

       

        사아악!

       

        어둠이 들이닥친다.

       

        “무슨 짓을?!”

       

        새까만 암흑. 그 끝이 안 보이는 어둠 속의 한유리가 비명을 내질렀다.

       

        “영역 전개. 현실 세계와 잠시 분리했다. 한마디로 내가 네 생명의 은인이라는 뜻이지.”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피식.

       

        한유리의 급박한 목소리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여왕’이라는 칭호를 가진 녀석 치고는 안절부절하는 강아지 같은 모습이다. 어찌 우습지 않겠나.

       

        “위험했어. 너는 <재창조>의 힘으로 타격을 입지 않더라도, 나는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거든.”

       

        한순간 웃음기를 지운 나는 저벅저벅, 한유리에게 다가갔다.

       

        “으읏! 제, 제 능력은 겨우 그정도가 아니에요!”

       

        팡!

       

        ‘창조’를 사용하려고 했던 건지, 한유리의 손이 허공을 가른다. 허나 돌아오는 건 허망한 파공음.

       

        이 안에서는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 

       

        내가 현실세계와 분리한 이곳을 부르는 명칭은 ‘공허’. 

       

        효과는 간단하다. 공허에 삼켜진 즉시 히어로의 능력 사용이 제한된다. 때에 따라선 강력한 디버프나 상처를 입힐 수도 있겠지만, 지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면, 이런 공간을 어찌 만들었냐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수많은 실험과 수련 끝에 가능한 일이라고 해두겠다.  

       

        ‘현상 거절.’

       

        내가 가진 힘은 모종의 현상을 관측하고, [ 사건의 진행 -> 현상의 거절 ] 이라는 단순한 알고리즘을 가진게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비로소 이 힘이 거시세계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능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공허는 그런 능력을 응용한 결과물이고.

       

        “힘 빼지 말자. 어차피 바깥엔 S급 히어로가 둘이나 있다며?”

        “……!”

       

        한유리의 앞에 선 나는 나지막히 말했다.

       

        빌런을 처치하는 것?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놈을 처치해서 내가 얻는 이득이 뭐지? 나는 그저 불쌍하고 선량한 시민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 그렇긴 한데…….”

       

        한유리의 확장된 동공이 갈팡질팡 길을 잃었다.

       

        당황한 건가? 죄 없는 어린양이 무고하게 다칠 뻔 했는데 말이지.

       

        “이해가 안 가. 도대체 왜 이런 허접한 기숙사에 빌런이 출몰한 거지?”

        “그, 그게…… 모종의 약물이 원인이에요. 정확히는 말하기 어려워요.”

       

        짙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약물? 도대체 무슨 약물이길래 학생회장, <재창조>의 한유리라는 거물이 튀어나온 것인가.

       

        “능력 증폭제. 뭐 그런 건가?”

        “……!”

       

        나는 원작의 미니 이벤트도 줄줄이 꿰고있는 고인물이다. 약물에 빠져든 히어로의 발작. 

       

        그건 원작 ‘히어로지만 사랑할 수도 있잖아?’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이벤트였으니까.

       

        하지만…….

       

        ‘<히사있>에서는 학생회장이 직접 빌런 토벌에 참가한 적은 없었다고.’

       

        그런 내 생각이 들린 걸까?

       

        한유리는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처럼 간단한 약물 중독 빌런이 아니에요. 평시의 빌런들과 수준이 다르다고요.”

        “그렇게 수준이 다른 놈이라면, S급 히어로가 처치하지 못할 정도인가?”

        “그, 그렇지는 않아요. 조금 시간이 걸릴 뿐이죠.” 

        “도대체 무슨 약물이 뿌려진 거야? 실험인가? 아니면 불법 약물?”

        “……제휴사의 실험 약물인데, 모종의 루트로 외부에 반출됐다고 해요.”

        “하!”

       

        굳이 그 ‘제휴사’가 어디인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녀의 집안이 이끄는 회사, 초거대 공룡 기업인 ‘일성’이겠지. 

       

        ‘이거, 사회적으로 위험한 거 아니야?’

       

        빌런 토벌을 위해 나타난 학생회장, 위험에 빠져 능력을 사용한 나. 

       

        뭐, 겉보기엔 별다를 것이 없는 그저 평소의 히어로 아카데미 같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빌런 토벌 도중, 내가 일성의 금지옥엽을 공허 속으로 납치했다는 것이다. 미친!

       

        “젠장.”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긴장된 얼굴의 그녀가 지금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미래의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납치했다. 누구를? 이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재창조>의 한유리를!

       

        지금 이 어둠 바깥에서 일어난 일이 눈에 선하다.

       

        ‘감쪽같이 사라진 나와 한유리를 찾고 있겠지. 빌런은 그 S급 히어로들이 처치했을 것 같고.’

       

        뭐, 그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S급 히어로는 랭커의 ‘밑’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제법 강한 놈들이니까.

       

        그러면…… 그들은 찾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어둠 속으로 데려온 한유리를 말이다.

       

        이대로 나와 한유리가 사라진다면, 어떤 기사들이 쏟아질까.

       

        [ 사상초유의 사태! 학생회장, 재창조의 한유리. 빌런 토벌 도중 실종! ]

        [ 범인은 누구? 한밤중의 난리에 학생회 ‘마비’ ]

        [ 아카데미, 조심스레 납치 가능성 제기…… 사건의 전말은? ]

        [ 유력한 용의자, D등급의 ‘임혜성’이 사라진 이유는? ]

       

        보나마나 현기증 앓는 일들이 벌어지겠지.

       

        “당신!”

        “……?”

       

        혼자서 이 난관을 어찌 돌파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한유리가 대뜸 나를 불렀다.

       

        이질적인 어둠 속인데 나름 침착한 목소리다. 아니,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하는 걸 수도.

       

        “D, D 레벨 아니죠? 이곳은 D급의 기숙사… 당신, 평범한 학생이라고 세상을 속인거군요!”

        “나 D등급 맞는데? 속이긴 뭘 속여?”

        “잉?”

       

        헌데 한다는 말이 제법 우스웠다. 나더러 등급을 속였냐는 질문이었다.

       

        한유리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카데미의 자랑 Z급 히어로, <재창조>의 한유리. 즉 본인이 이리 손쉽게 무력화 되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거짓말!”

       

        한유리가 빼액! 소리 질렀다.

       

        “진짜 D등급인데? 봐.”

       

        주섬주섬 주머니의 지갑을 꺼내 학생증을 보여줬다.

       

        “저, 정말 D등, 급……?”

       

        한유리가 내 학생증을 휙 낚아채더니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러다가 혹여나 조작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건지,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스윽.

       

        “여기엔 빛이 없잖아…….”

        “윽! 자, 잠깐 착각했을 뿐이에요.”

       

        …이 어둠 속에서 학생증을 하늘에 비춰볼 줄이야.

       

        랭커라는 이미지와 달리, 제법 깜찍한 구석이 있었다.

       

        “아, 아무튼!”

       

        짝!

       

        손뼉을 친 한유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를 이곳에서 내보내주세요.”

        “싫은데?”

        “그, 그러면 어쩔수 없고.”

        “…….”

       

        하는 짓도 하찮은데, 말투도 앙증맞다.

       

        ‘시무룩’이라는 단어를 빼다 박은 듯, 풀이 죽은 강아지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태도. 어찌 웃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의외네.’

       

        한유리, 그녀를 수식하는 말은 수도 없이 많다. 

       

        Z급의 히어로, ‘랭커’. 더군다나 굴지의 대기업… 일성의 직계, 학생회장, 아카데미의 여왕 등등.

       

        헌데 직접 대화해보니…… 여왕은 커녕, 그냥 찐따미 물씬 풍기는 녀석이잖아?

       

        “조건이 있어.”

        “조건? 뭔데요? 혹시 제 몸을…….”

        “농담은 그만하고.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을 모두 함구해. 그게 내가 거는 조건이다. 너도 죄 없는 학생이 토벌 도중 다칠뻔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을 거 아니야?”

        “알겠다. 당신, 힘숨찐이죠? 아카데미 내에 그런 컨셉 중독자가 몇 있다고 들었어요!”

       

        도대체 힘숨찐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아는 건지는 잠시 넘어가고. 

       

        힘숨찐이라. 그건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거다. 굳이 힘을 숨기고 싶은 생각은 없어.”

        “…….”

       

        곧장 한유리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래서 내 조건, 어떻게 생각하는데?”

        “알겠어요. 당신의 능력,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어요.”

       

        진중한 얼굴이 된 한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적인 교섭.

       

        나는 빌런 토벌에 휘말린 불우한 놈이다. 와중에 랭커의 능력에 휘말렸고, 재수 없는 학생A 로서 이곳을 나가면 일은 깔끔하게 끝나는 것이다.

       

        “좋아. 약속 잊지 마.”

       

        딱!

       

        열렬히 머리를 끄덕이는 한유리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사아악!

       

        어둠이 걷혀나간다.

       

        비로소, 한유리는 자신을 감싸던 어둠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 * *

       

        “회장님!”

        “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얼마나 놀랐다고요!”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자리에서 말끔히 사라졌던 두 사람.

       

        그 한유리와 임혜성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다시 나타나니, 두 학생회 임원은 토끼눈이 되어 달려왔다.

       

        “빌런은 어떻게 되었죠?”

        “이미 무력화된 상태로 후송되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후우.”

       

        한유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빌런은 둘째치고. 그녀를 대뜸 어둠 속으로 끌고 간 힘을 사용한 남자가 더욱 궁금했다.

       

        사실, 랭커인 그녀조차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공포감에 짓눌려있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상대가 그녀를 해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

       

        한유리는 고개를 돌렸다.

       

        무사히 현실세계에 복귀했으니 적어도 그에게 사과와, 감사의 인사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 행동이다.

       

        그런데.

       

        “살려주세요!”

        “저건 뭔 개……?”

        “지, 진정하세요! 일단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

       

        한유리는 자신의 기꺼운 행동을 후회했다.

       

        “회장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자신을 부르는 남학생의 목소리. 하지만 그럼에도 한유리는 멍한 얼굴로 임혜성을 볼 수밖에 없었다.

       

        햄스터를 마주한 독사처럼, 한유리에게 시종일관 뻔뻔한 태도를 고수하던 남자가 이제는 공포에 질린 소시민을 연기한다.

       

        어이가 없다 못해 입이 절로 쩍 벌어졌다.

       

        ‘연기 대상 후보라고 해도 믿겠네요.’

       

        창백한 안색에, 후들후들 떨리는 팔다리.

       

        누가 보아도 랭커인 한유리의 능력에 압도된 무지렁이 같은 모습이다.

       

        “……새로 터득한 능력을 써봤는데, 역효과가 난 모양이에요.”

       

        눈치 빠른 한유리는 그가 원하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그, 그런! 학생회장님은 랭커. 간단한 능력 해방일지라도 엄청난 파급력이 생깁니다!”

        “……에휴.”

       

        남학생의 직언에 한유리는 또 한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능력 해방이 엄청난 파급력을 몰고 온다고?

       

        그녀는 ‘창조’의 힘을 각성한 창조술사다.

       

        말 그대로 그녀의 의지가 닿는 것이라면… 생명체를 제외하면 그 무엇도 존재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겪었던, 능력이 봉인되는 미지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엄청난 짓을 저지른 남자는…….

       

        “손 잡아 드릴까요? 좀 진정은 돼요?”

        “네.”

        “많이 놀랐죠?”

        “손을 잡고 있으니까 조금 진정되는 것 같네요.”

       

        ‘하!’

       

        서로 손을 잡은 채로, 학생회 소속 여학생의 토닥임을 받고 있었다.

       

        ‘뭐, 이, 이정도 쯤이야.’

       

        한유리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그녀는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겁에 질린 학생을 진정시키는 학생회 임원의 모습은 만인의 귀감이 되는 것이니까.

       

        다만 눈 앞에서 벌어지는 꼴에 배알이 뒤틀리는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하려나.

       

        “상황이 정리되었으니,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을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한유리는 서늘함을 가득 담아 말했다.

       

        “알겠습니다!”

        “네!”

       

        도도함이 물씬 풍기는 한유리의 목소리에 우렁차게 대답하는 두 학생들. 그들은 잘 훈련된 군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언제 보아도 믿음직한 모습에 절로 흐뭇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큭큭.

       

        “……!”

       

        순간 미약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누가 터뜨린 웃음인지 찾을 것도 없이, 주인공이 아주 뻔한 상황이었다.

       

        “아이씨!”

       

        한유리는 애써 그 웃음을 외면하며 1층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려 한 행동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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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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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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