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

       그날 저녁, 키드 G의 범행예고장을 받은 천옥물류 대표는 곧바로 히어로 협회에 연락해 보호를 요청했다.

       

       “이봐! 키드 G가 지금 이쪽에다가 범행예고장을 보냈단 말이야! 당장 범행 예정시각이 내일 밤 10시라고! 협회에서는 뭘하는 거야! 

       이런 놈은 미리미리 좀 잡아처넣든가 해야지 예고시간 다 돼서 올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어?! 누구든 빨리 파견을 보내서 그 망할놈 좀 막아내!”

       

       뚜-뚜-뚜-

       

       천옥물류 대표의 독촉전화를 받은 히어로 연합의 사건담당 한주연은 짜증섞인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주 의뢰비 낸다고 지들이 갑이지 갑. 다른 히어로분들 스케줄 어떤지부터 알아봐야한다고 몇 번을 말해도 들어처먹지도 않고 뭐 그냥 맨날 맡겨놓은 것마냥…”

       

       한숨과 욕설이 끊이지 않고 튀어나오는 와중에 히어로 연합 사무실로 찾아온 은설이 어두운 포스를 풀풀 풍기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 달려왔다.

       

       “주연이 언니! 왜 또 그렇게 화가 났어요? 누가 또 전화로 트집잡았어요?”

       

       “또라니?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히스테리부리고 사는 사람인 줄 알겠다?!”

       

       ‘맞는 거 같은데…’

       

       은설은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한주연은 책상 위에 풀썩 엎어지면서 고개만 돌려 은설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우리 발키리, 그래서 오늘 대학 입학식은 잘 하고 왔어? 어땠어?”

       

       은설의 정체가 떠오르는 신생 스타 히어로 발키리라는 걸 알고 있는 극소수의 인물인 한주연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은설을 바라보며 캐물었다.

       

       그러나 입학식이라는 말을 듣자 이번에는 은설에게 어두운 포스가 서렸다.

       

       “아… 입학식…”

       

       “왜, 무슨 일 있었어?”

       

       “하… 기분 좋을 뻔했는데 다 망가졌어요. 분명히 키드 G랑 목소리나 얼굴형이나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어서 데려가 추궁했더니 제가 뭐 막 협박한다면서 협박 모욕으로 고소한다고 난리난리치는데…”

       

       “키드 G? 증거는 있었어?”

       

       “물증은… 아니요.”

       

       “야, 그러면 당연히 그쪽에서 화내지. 증거도 없이 사람을 압박부터 하다니 너답지 않게 왜 그랬대?”

       

       “하… 당장 이틀 전에 키드 G 그놈 또 놓친 거 때문에 제가 예민해져 있었나봐요. 그 사람 혹시라도 컴플레인 걸면 귀찮은데…”

       

       “귀찮은 건 전화응대해야하는 내가 귀찮지 니가 귀찮니? 아, 그리고 키드 G 하니까 하는 말인데, 아까전에 천옥물류 대표가 전화와서 범행예고장 날아왔다고 히어로 좀 보내라 하더라. 너 며칠 전에도 그 녀석하고 싸웠었지?”

       

       키드 G라는 말에 자기 실수를 자책하며 머리를 쥐어뜯던 은설이 고개를 벌떡 일으켰다.

       

       “키드 G요?! 그 자식 범행예고 시간이 언젠데요? 훔친다는 물건은요?”

       

       “내일 밤 12시 천옥물류 대표 자택. 훔친다는 건 명확히 표현은 안했는데 ‘부정한 방법으로 남들의 눈에서 눈물을 나게 한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피눈물을’이라고만 적혀있었대.”

       

       “제가 갈게요.”

       

       “어? 괜찮겠어? 이제 대학도 갔고 새학기 시작인데 안 피곤하겠어?”

       

       “괜찮아요! 사회를 어지럽히는 그런 놈들 잡아넣으라고 제가 있는 거니까요!”

       

       “정의감도 좋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 안되면 다른 히어로들한테 내가 연락 돌려볼 수도 있어.”

       

       한주연은 새내기 히어로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과한 의욕을 보이는 은설을 걱정하며 말렸다.

       

       저런 식으로 지나치게 정의감 넘치던 경력짧은 히어로들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다가 일상생활이 무너져 고통받거나, 감당못할 일에 나섰다가 폐인이 되거나 죽는 건 그리 드물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한주연의 걱정에도 은설은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아요 언니! 천옥물류 대표님한테는 제가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키드 G 그 자식, 이번에야말로 제 손으로 잡겠어요!”

       

       “니가 그렇다면 그렇게 연락이야 할텐데…”

       

        사실 한주연도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딱히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키드 G는 재벌그룹 총수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이름이 퍼진 상태였지만 아직 대외적으로는 이름이 그렇게 알려지지도 않은, 빌런이라 치기에도 급이 낮은 좀도둑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유명하고 강력한 히어로들은 그런 좀도둑을 잡으러 나서지 않는다.

       

       이런 좀도둑 수준의 빌런들과 엮인 사건을 해결하는 건 발키리처럼 아직 급이 많이 낮은 신참 히어로들의 몫.

       

       가뜩이나 발키리, 은설이 키드 G와 맞닥뜨린 전적도 몇 번 있으니 연합에다 이 의뢰를 보고하면 연합 상부는 바로 이걸 발키리에게 넘겼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본인 스스로 나서서 일을 맡으면 내부 평가도 오르고 대외적으로 등급도 오를 확률이 크겠지만…

       

       ‘설이가 그런 거 노리고 일을 맡지는 않지.’

       

       은설, 발키리는 정말로 그냥 정의감 때문에 일을 맡을 뿐이라는 걸 한주연은 잘 알고 있었다.

       

       “알았어, 그럼 자세한 내용이랑 천옥물류 대표 저택 구조는 내가 너 핸드폰으로 보내줄게. 새로 업데이트되는 거 있으면 계속 알려줄테니까 잘 확인해, 알았지?”

       

       “네, 언니!”

       

       

       #####

       

       

       다음 날 밤 10시.

       

       나는 인식저해 전파를 방출하는 칩을 달고서 예고한 범행시각보다 조금 더 빨리 천옥물류 대표의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 보소. 씹새끼.’

       

       지금 시간대에 천옥물류 대표 이정석이 저지른 죄라고 하면 본인 입으로 정규직 전환 시켜주기로 약속하고 고용한 계약직들을 전환 1달 남기고 다 권고사직 때려버린 것.

       

       거기에 더해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직원들 성과급 가로채기와 예산 횡령, 탈세, 부정축재 정도.

       

       하지만 이놈의 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중 가서는 경쟁업체의 물류센터에 테러를 일으키거나 히어로 연합에 가야할 물건을 사고로 인한 유실로 위장해 웃돈을 받고 빌런연합에게 팔기도 한다.

       

       이를 알아챈 발키리가 거래를 방해하자 아예 빌런연합에게 사주해 발키리의 정보를 팔고 그녀를 엄청난 위기에 몰아넣기도 하는 등, 겉으로만 평범한 대기업이지 그냥 악이다.

       

       나중엔 더 쓰레기짓을 할 놈이고, 지금이라고 쓰레기짓 안한 것도 아니니 벌을 받아야지.

       

       경비가 삼엄한 정문을 빙 돌아 사람이 거의 상대적으로 적은 후문쪽 장벽에다 손을 살짝 갖다대자 분명 벽이었던 그곳에 딱 한 사람 지나갈 수 있는 크기의 문이 생겼다.

       

       내가 가진 두 능력 중 하나인 모든 것을 열 수 있는 개문(開門) 능력.

       

       문이 없던 곳도, 문이 될 수 없는 사물도 내가 손을 대면 문이 된다.

       

       그야말로 도둑질에 특화된 능력.

       

       손쉽게 저택을 둘러싼 장벽 내부로 진입하자마자 나는 내가 가진 두 번째 능력을 발동했다.

       

       “흐읍…!”

       

       잠시 정신을 집중하자 내 옆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분신이 나타났다.

       

       분신을 일부러 약간 들키기 쉬운 위치로 보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 중 하나가 거수자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거기 누구냐! 당장 두 손 들고 동작 멈춰!”

       

       “잠깐 실례.”

       

       “끄헥?!”

       

       경비가 분신에 시선이 팔린 사이 나는 뒤에서 녀석을 기습해 목 뒤에다 전기충격기를 갖다대고 기절시켰다.

       

       기절한 경비는 분신과 함께 데려와 후문의 수풀 속에 몰래 눕혀두고 입고있던 옷은 싹 벗겨서 내가 대신 입었다.

       

       경비로 위장을 마친 후 이따금씩 순찰을 도는 척하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살폈고, 범행 예고시각 1시간 전인 밤 11시가 되자 드디어 발키리 히어로복을 입은 은설이 도착했다.

       

       천옥물류 대표 이정석은 발키리를 보자마자 성화를 냈다.

       

       “드디어 왔구만! 히어로라는 사람이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하나!”

       

       “한 시간 전에 온 건데요…”

       

       “키드 G가 예고시각에 오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넉넉하게 3시간 전에는 와 있었어야지! 하여튼 이래서 요즘 신참 히어로들은…”

       

       이정석은 히어로 연합 소속의 히어로를 무슨 사병 부리듯 하대하며 투덜거렸고, 발키리는 기분이 나쁠법도 한데 꾹 참으며 그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다 받아주었다.

       

       “그놈, 분명 내 금고를 노리는 거라니까! 그 망할 도둑놈이 내 재산을…”

       

       “키드 G가 범행을 예고한 물건은 어디에 있죠?”

       

       “금고 말인가? 원래는 5층 금고실에 있었는데 범행예고장을 받은 뒤 2층의 숨겨진 방에다 넣어두었다. 발키리라고 했지? 너는 그 2층 방에서 누구도 금고를 가져가지 못하게 막아!”

       

       이제는 아예 발키리에게 부하 부리듯이 하대를 하고 있었다.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추며 순찰하는 척하면서 그 모든 대화내용을 다 들은 나는 씩 미소를 지었다.

       

       12시가 가까워질수록 경비들도 더더욱 촉각을 곤두세웠고, 발키리는 2층의 숨겨진 방으로 향했다.

       

       11시 50분이 되자 나는 행동에 나섰다.

       

       원작을 통해 이미 저택 구조는 알고 있었기에 저택 외부의 사람이 없는 곳에서 벽에 손을 대 문을 만들고 내부로 침입했다.

       

       굳이 진짜 문과 복도를 오갈 필요도 없었기에 침입은 굉장히 수월했고, 나는 순식간에 발키리가 있는 2층 숨겨진 방까지 도달했다.

       

       금고 앞을 지키던 발키리는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날개를 펼치면서 전투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더니 표정을 확 구기면서 소리쳤다.

       

       “너 이 자식! 역시 어제 낮에 봤던 그놈 맞잖아!”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가면이 아니라 눈 주변만 안경처럼 살짝 가리는 형태인데다 인식저해 칩에 내성도 강한 그녀는 나를 바로 알아보고 있었다.

       

       거 만화에서는 이런 안경같은 가면만 쓰고 있어도 아무도 못 알아보던데 신기하네.

       

       “무슨 소릴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생사람을 잡는 겁니까?”

       

       “생사람? 생사람?? 말투까지 똑같은데 생사람? 그래놓고 나한테 망신을 줘? 넌 죽었어!”

       

       발키리는 날개를 펄럭이며 곧바로 내게 달려들었고, 전투력에서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발키리 쪽이 강했기에 나는 바로 붙잡혔다.

       

       밧줄로 나를 꽁꽁 묶은 발키리는 속이 다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키드 G, 드디어 잡았네. 그동안 잘도 도망쳐다니더니 꼴 좋다. 아참, 보고해야지.”

       

       발키리는 상황보고를 위해 무전기를 켰다.

       

       “여기는 발키리. 2층 비밀의 방에 침입한 키드 G를 생ㅍ-”

       

       – 발키리! 발키리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는 거야! 키드 G가 지금 6층의 내 개인실로 가고 있다고!

       

       “… 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문문열매
    다음화 보기


           


I Am a Villain and My Identity Was Immediately Discovered

I Am a Villain and My Identity Was Immediately Discovered

빌런인데 정체를 바로 들켰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lived as a villainous rogue in a heroic story, setting myself against the protagonist. … But then the protagonist caught on to my true identit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