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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뭐냐, 너는. 같이 가주기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

        

       노파의 말에 그냥 말없이 노파를 올려다보자, 노파는 그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말했다.

        

       “뭐, 나온 김에 잘 됐다. 여기 램프라도 들어라.”

        

       노파는 손에 들고 있던 오일 램프를 나에게 넘겼다. 기름이 가득 들어있는 램프는 꽤 무거웠다. 더 가벼운 가스램프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지속시간이 오일 램프보다는 오래 가지 않았으니까.

        

       이 고아원에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싸구려였다. 옷은 이전에 있던 고아들이 몇 번이고 돌려 입어서 목은 다 늘어나고, 밑단은 헤지고, 때 탄 데가 구멍까지 숭숭 뚫려있었고, 속옷은 너무 늘어나서 크기가 맞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억지로 허리에 맞춰서 옷핀으로 고정해 흘러내리지 않을 수준만 겨우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건물을 마지막으로 수리했던 것은 또 언제일까. 깨져서 구멍이 난 창문은 남는 헝겊을 대충 쑤셔 박아 구멍만 남겨두었기 때문에 언제나 바람이 숭숭 들어왔고, 마루는 언제 꺼질지 모르겠을 정도로 삐걱거렸다.

        

       매일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나오는 포리지도, 분명 싸구려 재료를 대충 넣어서 만든 것이 분명했다.

        

       아마 이 고아원에서 제일 비싼 물건들은 고아 그 자체뿐이리라.

        

       “하여간에 음침해서는. 아무리 반반한 얼굴이라도 그딴 식으로 계속 행동했다간 아무도 데려가려 하지 않을 거다.”

        

       “…….”

        

       내가 말을 말아야지.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노파를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아무리 지팡이 짚고 다니는 이빨 다 빠진 노파라고 하더라도 다섯 살짜리 아이보다는 힘이 강할 거다. 지난번에 내 팔을 잡아끈 적이 있었는데 나와 힘 차이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났으니까.

        

       반박해봐야 괜히 얻어맞기만 하고, 어쩌면 클레어 옆을 걷는 것조차도 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나는 이 순간에도 어떻게든 클레어를 빼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 대단한 방법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클레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이미지는 결코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싸가지 없고, 콤플렉스 덩어리에, 공략 대상 중 하나인 황녀의 능력을 깎아내리고 약 올리는 캐릭터였으니까.

        

       하지만 점점 과거가 밝혀지고, 황녀와 화해하면서 서서히 이미지를 개선해나가다가 후에 세계 제패를 시도하는 황제의 편에 서서 싸우고, 최후에는 그 황제의 명마저 무시하고 황녀를 위해 희생하는 캐릭터였다.

        

       나는…… 클레어라는 캐릭터를 좋아했다.

        

       아니, 따지자면 이 게임 시리즈에 나오는 거의 모든 주역 캐릭터를 좋아했다.

        

       한 편을 깰 때 보통 짧게는 70시간에서 길게는 150시간씩 걸리는 시리즈였고, 공략을 위해서 다 회차 플레이를 하는 경우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들을 오랫동안 보아온 나는 이 게임에 나오는 거의 모든 주역 캐릭터들에게 나름대로 애정을 품고 있었다.

        

       무려 7년이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매년 이 게임의 신작이 나오는 날을 기다리고, 예약구매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 상자를 뜯었다.

        

       심지어 택배 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해서 다운로드 판을 한 번 더 샀던 적도 있다.

        

       그렇게 애정을 가진 게임의 등장인물이다. 어떻게든 상황을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나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미래를 알고 있다고는 하나 고작 다섯 살.

        

       종종 다른 작품 세계로 전이되는 경우, 특히 게임 속으로 전이되는 경우 상태 창을 보거나 엄청나게 많은 특전 능력을 보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것도 없었다. 아니, 만약 있더라도 당장 사용법을 모른다.

        

       어째서 하필이면 여기였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굳이 히로인 곁에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자, 인사드려라.”

        

       뒤에서 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은 열려있었다. 여름이라서 그럴까. 하늘은 까맸다. 유복한 집안의 중년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은 굳이 이런 한밤중에 여길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아무래도 인사를 하지 않으면 들어가서 다시 얻어맞을 테니 나는 일단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내 옆에 서 있던 클레어도 나를 따라 어색하게 허리를 숙였다.

        

       “호오.”

        

       인중에 덥수룩하게 난 수염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머리에 원통 모양의 실크햇을 쓴 남자가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날씨는 아직 초겨울인 모양이다. 차가운 바람이 몸을 쓸고 지나갔다.

        

       하지만 내가 몸을 부르르 떨었던 건 그저 피부에 느껴진 바람이 차가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눈두덩에 단안경을 낀 남자는 그 안경 알 때문에 한쪽 눈만 기괴하게 커 보였다.

        

       “이 아이인가?”

        

       “아, 아뇨. 오늘 보러 오신 쪽은 이쪽……”

        

       평소에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짜증 가득한 목소리만 내던 노파는 남자에게는 싹싹한 목소리를 냈다.

        

       “……이긴 합니다만, 물론 그쪽도 판매 중인 물건입니다요.”

        

       “흐음.”

        

       남자는 내 손에 들린 오일 램프를 빼앗아 들더니 램프를 내 얼굴 옆으로 들이밀었다. 오일 램프 특유의 기름 타는 냄새가 확 풍기고, 두꺼운 유리 너머 심지에 붙은 불의 열기가 느껴졌다. 램프의 불빛은 붉다 못해 조금 푸른 기를 보이고 있었다. 안에 있는 것은 기름이었지만 마치 가스 불을 켜둔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남자는 그 불빛 아래에서 내 얼굴을 꼼꼼하게 살피더니, 램프를 천천히 아래로 내리면서 나를 훑듯이 관찰했다.

        

       그리고 옆으로 몇 걸음 걸어가더니 클레어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다.

        

       “오늘은 아쉽게도 가지고 온 돈이 한 명분 뿐이군. 그래도 이쪽 아이가 아슬아슬하게 나이가 걸쳐 있어. 고객께서 좋아하실걸세. 가격은 같은가?”

        

       클레어의 몸까지 전부 살펴본 남자가 물었다.

        

       그동안에 살이 통통한 중년 여성은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전혀 관심 없다는 듯, 남자로부터 몇 걸음 정도 떨어져 있었다.

        

       “아, 그것이, 이 아이는 원래 상등품이라서 꼭꼭 숨겨두고 있었던 터라. 조금 더 나이 든 아이를 좋아하는 고객님께 팔려고 익히는 중이었습죠…….”

        

       “흠.”

        

       남자는 다시 내 쪽으로 돌아서더니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잡았다. 등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내가 원래의 몸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남자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은 원단으로 만들어진 양복 안쪽에는 부푼 근육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마 이대로 내 머리를 붙잡고 짓이겨버리면 두개골이 깨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손가락도 굵고 거칠었다.

        

       내가 굳어있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남자는 마치 색이라도 확인하듯 머리카락을 램프에 비추어보았다.

        

       “이쪽이 더 고객님의 취향에 맞겠군. 경험은 있는 아이인가?”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듯 놓은 남자가 노파를 향해 물었다.

        

       “아휴, 아닙니다. 저희는 언제나 신품만 유통합니다. 그게 당연한 거지요.”

        

       “그렇군. 그렇다면 가공은 이쪽에서 하겠네.”

        

       남자는 허리를 쭉 펴고는 램프를 노파에게 건넸다.

        

       지금 보니 남자는 오른손에 단단한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 지팡이는 그냥 대충 나무를 깎아 만든 노파의 지팡이와는 달랐다.

        

       검고 반짝거리며, 손잡이는 독수리 머리 모양이었다. 어쩌면 은으로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그래, 그래서 가격이 어느 정도라고 했지?”

        

       남자가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 노파를 내려다보면서 말하자, 노파는 아까 내 이야기를 엄청나게 포장해서 했던 것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어휴, 아닙니다. 어차피 둘 다 고아인데 가격이 다를 수가 있으련가요. 그냥 지난번에 말씀해주셨던 가격으로 해 주시면 됩니다요.”

        

       “그런가. 알았네.”

        

       남자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꽤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노파에게 휙 던졌다. 간신히 주머니를 받아서 든 노파는 안쪽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었다. 얼굴의 주름살이 마구 구겨지고 이가 거의 다 빠져버린 입 안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래쪽에 램프가 있어서 그 주름들이 역광을 받아 분위기가 거의 공포영화 수준이었다.

        

       “감사합니다요. 앞으로도 이용 부탁드립니다요…….”

        

       노파가 안 그래도 굽은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그래. 저 아이는 그때까지 잘 간수하고 있게.”

        

       남자는 클레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입니다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가자.”

        

       남자는 노파의 이어지는 말도 기다리지 않고 나를 보고 말했다.

        

       “언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클레어가 그제야 나를 보며 말했다.

        

       “……클레어.”

        

       상황이 이렇게까지 굴러갈 줄은 몰랐지만……

        

       적어도 지금은 된 건가?

        

       이후에 클레어가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당장 일어날 일은 막아낸 건가? 내가?

        

       “……건강하게 지내.”

        

       아무튼, 나는 그렇게 인사했다.

        

       “언니, 어디 가?”

        

       클레어가 불안하다는 듯 물어서 나는 고개를……

        

       “그래.”

        

       ……끄덕이기 전에, 남자가 말했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딱딱한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소름 끼치도록 따뜻한 목소리였다.

        

       남자는 뒤돌아서더니 클레어 쪽으로 걸어가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마치 다정한 어른을 연기하듯 클레어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말했다.

        

       “너의 ‘언니’는 좋은 곳으로 가는 거란다. 훨씬 따뜻하고 굶을 일도 없는 곳이지. 그러니 여기서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라. 곧 너도 데리러 올 테니까. 그때는 너의 언니와 같은 곳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될 거다.”

        

       “…….”

        

       하지만 클레어는 그 어린 나이에도 그 말을 별로 믿는 것 같지 않았다.

        

       클레어의 시선이 남자와 나를 불안하게 왔다 갔다 했다.

        

       “…….”

        

       남자는 클레어에게 한번 웃어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펴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로 거리에 세워진 마차를 향해 곧장 걸어갔다.

        

       “…….”

        

       나는 클레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웃을 상황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억지로 웃어주었다.

        

       클레어는 내 웃음을 보더니 마음이 놓였는지 그제야 손을 흔들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마차를 향했다.

        

       *

        

       쿵!

        

       하고,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마차를 타자마자 난 소리라서 나는 그게 문 닫히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뒤늦게 몰려오는 이마의 통증을 느끼고, 그제야 내가 얼굴부터 바닥에 내려 찍혔다는 것을 알았다.

        

       눈앞이 번쩍거리고 귀가 웅웅거렸다. 사실 통증보다는 어지럼증이 컸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려찍어버린 것이다. 오히려 내가 이렇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

        

       하지만 그렇다고 내 몸이 완전히 멀쩡했던 건 아니다.

        

       얼굴에서 피가 줄줄 나고 있었다. 코가 깨진 걸까?

        

       입 안에서 뭔가 굴러다니는 감각이 느껴졌다.

        

       손으로 얼굴을 만지려는데—

        

       짝!

        

       그런 소리가 들리더니 고개가 오른쪽으로 휙 돌아갔다.

        

       “히, 히이……”

        

       그제야, 고통이 느껴졌다.

        

       아프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뒤늦게 나온 눈물이 시야를 흐리고, 머릿속이 윙윙 울려서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조금 전의 그 뺨 맞은 것으로 고막이 나갔는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별로 미안하지 않은 듯한 감정 없는 목소리가 그 이명 사이로 흐릿하게 들렸다.

        

       “나도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저 고객께서 조금 망가진 쪽을 선호하실 뿐이다.”

        

       두꺼운 손이 나의 목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걱정하지 마라. 죽이지는 않을 테니.”

        

       “끄윽…….”

        

       뭔가 말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남자가 손을 들어 올리는 게, 아직 부어오르지 않은 쪽 눈으로 살짝 보였다.

        

       싫어……

        

       *

        

       ……그리고 그다음 순간, 나는 내 몸의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가만히 기다렸지만, 손이 이어서 나를 때리는 일은 없었다.

        

       아니, 그보다, 마차 안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기운이 갑자기 사라졌다.

        

       혹시 죽기라도 한 걸까?

        

       잔뜩 긴장한 채 고개를 들었더니,

        

       내 앞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클레어가 서 있었다.

        

       “언니?”

        

       침대 위에서 뭔가에 잔뜩 겁먹은 채 팔을 올리고 웅크리고 있는 나를 보고, 클레어가 물어본다.

        

       “……어?”

        

       천천히 팔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고아원이었다. 내가 떠나기 전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은.

        

       손을 들어 얼굴을 만져보았다.

        

       어디 터진 곳도 없고, 찢어진 곳도 없다. 아픈 곳도 없이 멀쩡하다. 혀를 움직여봤지만 깨지거나 빠진 이도 없었다.

        

       이게, 무슨……?

        

       내가 지금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클레어!”

        

       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널 데려가 주시겠다는 분이 오셨다! 기쁘게 나와라!”

        

       이미 한 번 들어본 적 있는 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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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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