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

       버츄얼 아이돌 하트쨩이 유래없는 대성공을 이룩한 이후, 자색 마탑주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약간 불쾌한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님 진짜 게이임?’ 의 눈빛.

       

       수수께끼의 미소녀 하트의 정체를 아는 건 전 대륙에서 자색 마탑주 한 사람 뿐. 수제자(남자)의 환영마법(여캐)이 대륙을 질풍처럼 뒤흔들어 놓았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자색 마탑주는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

       

       “캐릭터와 플레이어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

       

       

       그래. 캐릭터와 플레이어는 구분되어야만 한다.

       

       RPG 게임을 할 때에 캐릭터에 몰입하는 경우는 있어도, 캐릭터와 일체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GTA를 하면서 캐릭터와 일체관계가 되는 순간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인생 망하겠지.

       

       TRPG에서도 그렇다.

       

       안에서 초절정미소녀 캐릭터를 굴린다고 해서 내가 초절정미소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동일시하는 순간 대참사가 벌어진다. ‘게임을 게임으로 못 보게 되는’ 병에 걸려버린다.

       

       

       ‘GM님, 제 캐릭터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아무리 다이스가 1이 나왔다지만 성공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레벨 1짜리가 드래곤한테 싸움을 걸었고, 심지어 다이스가 펌블인데 뭘 어떻게 비벼요.

       

       ‘GM님, 그러니까 제 캐릭터는 엘프라서 하찮은 인간들이랑 같은 테이블에 앉기 싫다니까요?! 플레이를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제 캐릭터는 이게 맞다고요!’

       

       다른 플레이어분들이 다 인간 종족 고르셨는데 그럼 세션 진행을 어떻게 합니까?

       

       ‘⋯⋯⋯⋯⋯⋯’

       

       지금 자기 캐릭터 판정 실패했다고 입 닫고 하스스톤 켠 거에요?

       

       

       “크윽.”

       

       치밀어오르는 주화입마에 가슴께를 쥐고 비틀거렸다.

       아무튼 캐릭터와 플레이어는 구분되며, 이는 소설 작가가 퍼리 여캐를 등장시킨다고 본인이 퍼리 여캐가 아닌 이치와 완전히 동일하다.

       

       내가 하트를 조작해서 도네이션을 달달하게 땡겼지만, 그건 하트라는 캐릭터를 만들어서 풀어놓은 것이지 내가 넷카마질을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여자가 좋다.

       

       “여, 역시 북부 대공님과의 실연의 상처가 아직⋯⋯?”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어떻게 본 걸까.

       

       금단의 사랑 떡밥을 굴리기 시작하는 자색 마탑주는 먹금 하기로 했다.

       원래 오해라는 게 풀기가 쉽지 않다. 말을 해도 안 믿고 안 해도 안 믿는다면, 이 다음은 하늘에 맡기고 할 일이나 하러 가는 게 정답이다.

       

       바로 마법 개발이다.

       다음에 어떤 마법을 만들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야기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하지 않던가?

       

       버추얼 아이돌 하트를 구현하면서 ~환상 마법을 사용한 사실적인 홀로그램 구현 : 피시전자의 몰입을 이용한 촉각 환상 강화를 중심으로~ 논문을 완성한 참이다.

       

       환상 마법은 어디까지나 환상. 꿈 속에서 손가락이 잘리고 사람이 불탄다고 현실에서 상처가 생기지 않듯, 환상으로 아무리 속여봐야 물리적인 데미지는 제로다. 치명적인 약점이다.

       

       또한 일정 경지 이상의 초인에게는 환상이 잘 듣지 않는다. 마법저항력이 높아도 듣지 않고, 피시전자의 의지가 강해도 잘 듣지 않고. 소드마스터쯤 되면 기합으로 최면을 부수더라.

       

       그런 약점을 보완한 것이 내가 개발한 특제 홀로그램이다.

       

       대상의 의지를 역이용해서 환상 마법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마법이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믿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 감정을 부풀려서 환상을 견고하게 만든다.

       

       그렇게 강화된 환상은 무려 촉감까지도 재현이 가능한 것이다. 환상인데 만질 수가 있다니까! 

       

       개발 단계에서는 리소스 부족으로 냄새까지는 구현할 수 없었지만, 수정과 보완을 거친 지금은 환상에 냄새도 입혀낼 수 있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인물을 구현했으니, 다음은 배경이다.

       

       땅, 흐르는 시냇물, 떠오르는 태양, 불어오는 바람.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산산히 부서지는 햇살과 피톤치드의 향기. 그것을 환상으로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 순간 내 이세계 TRPG 계획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의욕이 돌았다.

       나는 자색 마탑주에게 당당하게 요구했다.

       

       “3년 정도 방에 틀어박혀서 마법 개발할 테니까, 고기 들어간 식단으로 삼시세끼 챙겨주시고 별 일 아닌 걸로 절 찾지 마세요.”

       

       “가, 갈수록 쓰레기같은 말을⋯⋯. 그, 그으으런데 3년?”

       

       “짧으면 2년 반 정도고요.”

       

       “저, 저기⋯⋯. 내년 초에 발표회 있는 거 알지?”

       

       “예?”

       

       “마탑 연구 발표회⋯⋯ 귀, 귀족분들이랑, 왕실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마탑을 순회 방문하면서, 지원금 사용 내역을 점검하거든⋯⋯. 매, 맨날 구박만 받았지만, 이번 년도에는 네가 있으니까아⋯⋯.”

       

       “음⋯⋯.”

       

       

       초비상.

       

       하트로 수금을 달달하게 땅겼다지만, 양심적으로 페이를 받느라 그렇게까지 거금은 아니었다. 양심 팔고 엉덩이도 흔들어주고 했으면 마탑 하나 더 세울 돈을 벌었겠지만, 그랬다가는 내 여린 심장이 남성성과 함께 찢겨나가버렸을 거다.

       

       지원금이 끊긴다고 쿨하게 ‘내가 벌어서 쓰지 뭐’ 하기에는 지원받는 액수가 너무 크다. 어떻게든 예산을 타 내야 연구비를 충당할 수 있다⋯⋯.

       

       발표회라.

       

       버추얼 아이돌 프로젝트를 시연하면 인기가 참 화끈할 것 같긴 한데, 그 날 마탑도 화끈하게 불타버릴지도 모른다.

       자색 마탑주를 시켜서 조심조심 알아보니까 하트쨩의 인기가 상상 이상이었다는 모양이라서.

       

       하트가 졸업하고 2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 행적을 찾고 있는 남정네들이 있다고 하니 공개는 무리다. 그렇게 집착하고 좋아하던 여자애가 사실은 남자 마법사의 환상마법?!

       

       바로 죽창이랑 가솔린 꼬나들고 자색 마탑으로 달려오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발표용으로 새끈한 대량살상마법을 연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마법을 연구하면 내 영혼이 죽어버린다. 

       

       음.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저만 믿으세요.”

       

       “지, 진짜지? 이번에도 막, 이상한⋯⋯ 이상한 거 아니지?”

       

       “네. 높으신 분들도 다들 좋아할 듯.”

       

       “그, 그러엄 믿고 맡길 테니까⋯⋯. 파, 파이팅! 오늘 저녁은 양고기 해 줄게⋯⋯!”

       

       

       자색 마탑주는 화색이 되어 도도도 달려나갔다. 위염이라도 걸린 것 같던 얼굴이 밝게 피어나니 참 보기가 좋았다.

       

       그래, 마음이라도 편해야지.

       

       세상에는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게 있다. 내가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제가 탑주가 아니잖아요. 예산 부족하다고 제 알 바는 아닌 듯? 탑주님이 벌어오셔야지.’ 라는 본심을 말했다면 그녀가 저렇게 방긋 웃을 수 있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나는 부디 그녀의 심신의 평화가 오래 가길 기도했다. 그래야 밥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

       

       내 공수표에 평온해진 마탑주의 마음도 발표회가 다가오자 폭풍이 휘몰아쳤다.

       

       발표회 일주일 전. 

       스스로 ‘믿고 맡긴다’고 말해서 그런가, 이제와서 ‘준비는 다 됐니’ 라던가 ‘좀 어떠니’ 라고 묻지도 못 하고 내 옆을 서성이고 다녔다. 

       

       결심했다는 듯 나한테 ‘얘, 얘기 좀 해!’ 라고 말하다가도 ‘아, 아무것도⋯⋯ 오늘 스튜 어떠냐구⋯⋯’ 로 선회하는 매끄러운 전진-후진. 찐따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 중요한 실물 자료라서 잔뜩 메모해 뒀다.

       

       3일 정도 지나니 측은지심이 학구열을 뛰어넘었다. 사람이 딱따구리같이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꼴이 안쓰러워서 내 마법을 보여주기로 했다. 

       

       “지, 진짜⋯⋯?!”

       

       “네. 안심이 될까 싶어서.”

       

       “쓰, 어, 엉뚱한 방향으로 머릴 써서 그렇지⋯⋯ 너는 천재니까! 제, 제대로 발표회를 준비한 거잖아, 그, 그치? 그러니까 난 믿어⋯⋯.”

       

       

       자색 마탑주의 무한한 신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쓰레기같은 방향으로 머리를 쓴다는 악담도 한 음절만 내뱉었으니까 세이프 아닌가.

       

       나는 지팡이를 세워 허공에 띄우고, 두 손을 교차하며 좌우로 펼쳤다.

       마력을 끌어모은다. 전신에 흐르는 마력이 일정한 법칙에 의해 신체 곳곳을 경유한다.

       

       정교하게. 물을 깎아서 칼날을 벼려내듯이 정교하게.

       완벽으로 수렴하는 무의미한 동작에 영혼을 담아 세계에 바친다. 이를 마법이라 한다.

       

       

       “하늘이란 무심합니다. 굽어보는 눈길에 사랑은 없습니다.”

       

       “누구도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면, 홀로 저 달을 넘어서 나아갈 수밖에.”

       

       “마음을 붓으로 삼아 발 아래에 피워내노라.”

       

       “제월경(濟月景) – 공상주박(空上柱縛).”

       

       

       나를 중심으로 세계가 뒤집힌다.

       발치로부터 습기가 스민다. 습기는 이윽고 물방울로 변하여 공중으로 떠오른다. 메마른 연무장 바닥이 잔잔한 호수의 수면이 되는 건 찰나의 일이다.

       

       “⋯⋯으, 으햐앗!”

       

       자색 마탑주가 찰박거리며 허둥대어도 호수에 잠기는 일은 없다. 물방울이나 사방으로 튀길 뿐, 잔잔한 호수는 젤리처럼 두 발을 받쳐올리고 있었으니까.

       

       맑은 호수 아래에는 하늘이 비친다.

       

       호수에 비친 푸르고 깨끗한 하늘, 그 중심에는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거대한 기둥이 허공에 떠 있다. 기둥의 표면에서는 마력의 실이 해파리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아름답고도 장엄한 광경이지만, 자색 마탑주는 어쩐지 느껴지는 강렬한 위협에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녀의 직관은 옳았다. 기둥이 발하는 마력의 실은 해파리의 촉수처럼 유독한 것이다. 그것에게 한 번이라도 쏘이는 순간, 환상 마법에 저항하는 힘을 잃게 되니까.

       

       점거한 공간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환상 마법에 마력 저항 관통을 부여하는, 환상 마법의 극의⋯⋯ 라는 설정의 배경 모델링이었다.

       

       음.

       

       옛날 씹덕들은 고유결계, 요즘 씹덕들은 영역전개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열심히 깎느라 고생했다. 습기와 호수의 냄새, 그리고 어쩐지 느껴지는 위압감까지 구현하느라.

       

       

       심상찮아 보이는 이펙트에 어안이 벙벙하던 자색 마탑주는, 기대감과 경외를 두 눈에 품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한 손을 가슴께에 두고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무, 무슨 효과가 있는 주문이야⋯⋯?!”

       

       나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간지요.”

       

       “⋯⋯응?”

       

       “멋있음.”

       

       “⋯⋯그거 말고 효과는?”

       

       “없죠.”

       

       “꼬르륵.”

       

       

       자색 마탑주가 트윈테일을 팔랑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멋있음 확정 선언에 너무 감동해버린 모양이다. 

       

       음. 발표회에 이걸 써먹을 생각은 아니었다. 강자들에게는 멋있기만 한 환상이라는 게 금방 들킬 테니까, 아무리 필살기인 척을 해봤자 먹히지 않을 것이다.

       

       마탑주가 속아넘어간 것은 그녀의 전공이 조금 달라서 그렇다. 

       

       내가 발표회에서 재생할 영상은 좀 다른 거다.

       요지는 내가 기깔나는 비주얼을 뽑을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영화 같은 미디어 산업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영화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은 장르가 무엇인가, 액션이다.

       

       액션은 남녀노소 좋아한다. 

       그리고 귀족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정답은⋯⋯ 천마다.

       무림천마가 천마군림보를 쓰고 천마데스빔으로 산 하나를 날려버리면 정말 멋지겠지.

       

       이번에도 모두 좋아하지 않을까?

       

       

       ⋯⋯⋯⋯.

       

       

       분석의 실패였다.

       

       “이딴 어줍잖은 환상으로 지원금을 타 먹을 생각을 한 겁니까? 우습군요.”

       

       “저 꼬라지 하고는, 검술의 검자도 모르는 것 같아. 어째서 횡으로 휘두른 거지? 마력을 담을 때 불편하기만 할 텐데?”

       

       “낄낄낄⋯⋯ 푸하하하하! 어떤 기사가 저런 덜떨어지고 가성비 나쁜 기술을 쓴다는 말이오?”

       

       “꼴에 있어 보이는 단어를 쓰는구료? 뭐, 유능제강? 와하하하하!”

       

       

       마법이 있는 세상, 착취당하던 영지민 중에 갑자기 소드마스터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귀족 노릇도 무력이 없으면 해먹기 힘든 세계라는 것이다.

       

       대체로 작위와 무력은 비례한다. 설령 비례하지 않더라도, 옆에 그만한 강자를 보디가드로 끼고 있다. 그리고 전쟁터를 굴러다니며 온갖 사람들을 베어 온 인간흉기들 앞에서 내 환상 마법은⋯⋯.

       

       축구 선수한테 ‘드리블 잘 하는 법 : 뒷꿈치를 쓰면 잘 됨’을 보여준 거나 마찬가지!

       

       욕만 옴팡지게 들어먹다가 끝났다. 

       

       유일하게, 어느 쪼끄만한 소년 기사만이 나쁘지 않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래, 그 나이면 화려하고 멋있으면 다 좋아할 나이지⋯⋯.

       

       

       망한 발표회가 끝나고, 자색 마탑은 0.7 초상집쯤 되었다.

       

       “내, 내 후원금⋯⋯ 후원금이⋯⋯!!”

       

       깨꼬닥.

       자색 마탑주는 숨을 헐떡이다가 쓰러졌다.

       

       나는 침통한 얼굴로 패배를 곱씹어보다가.

       

       그렇다고 내가 살상마법 연구에 올인할 것도 아닌데, 꽁해있어봤자 이득이 없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이제 인물 배경 끝났으니까 비유하자면 서버를 구축할 차례였다.

       

       나는 연구실로 들어가서 문을 조용히 닫았다.

       

       “이, 이 시발, 시, 시발새끼야! 이 와중에 그러고 싶냐-악!”

       

       누군가의 험한 욕설이 들려왔지만, 

       나는 그게 마탑주의 것은 아니리라고 믿고 싶었다⋯⋯.

       

       ===============================================================

       

       다가닥. 다각.

       마차를 타고 주종이 숲길을 지나고 있었다.

       

       자신의 키보다 훌쩍 큰 롱소드를 허리에 맨 소년이 상석에 있었고, 수염 난 중년의 기사가 고삐를 쥐어 마차를 몰았다. 제법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자색 마탑이 선보인 묘한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스운 마법이었습니다. 환상 마법이 화려하고 그럴듯하긴 했지만, 내용이 워낙 유치해야지요.”

       

       “글쎄⋯⋯.”

       

       특이하게도 중년의 기사가 존대를, 소년이 하대를 하고 있었다.

       소년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가 중년 기사에게 물었다.

       

       “정말 환상 마법이었다고 생각하나?”

       

       “그게 환상 마법이 아니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경.”

       

       “우리에게 보여준 것 자체는 환상이 맞네. 하지만 환상의 내용은 꾸며낸 것이 아니었어. 자네는 그 사내의 무술이 어떻게 보였나?”

       

       “허황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발을 내딛는다고 해서 대지가 울리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칼 끝에서 오러 구체를 만들어내는 것도⋯⋯ 마법사나 할 법한 발상 아닙니까? 마지막에 산을 가르는 참격은 우스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보았나.”

       

       젊은 노기사는 천으로 된 특이한 옷을 입은 환상 속의 남자를 떠올렸다.

       

       스스로를 악마로 빗대어 칭하는 남자. 천마.

       그의 무술은 확실히 엉성하고 허황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에는 무술의 오묘한 이치가 정교하게 담겨 있었다. 몇몇 단어와 표현은 곱씹을수록 깨우치게 만드는 깊이가 있다. 유능제강. 물극필반.

       

       무술을 깊게 파고들어 통달한 자만이 전할 수 있는 명료한 깨달음을 골방의 마법사가 스스로 떠올려내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심지어 남자의 복식과 그가 서 있던 지형은 대륙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문화권의 것이었다.

       

       한 사람의 망상보다는.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마법사가 환상 마법으로 재현해내었으나, 마법사의 안목이 부족하여 움직임의 묘리를 100% 재현해내지 못 했다. 쪽이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그 말씀은⋯⋯.”

       

       “차원 마법은 실전되었다고 여겼건만.”

       

       그래.

       얼뜨기들은 마법사가 꾸며낸 환상에 불과하다고 여겨 우습게 봤지만, 사실 그 자리는 ‘환상 마법 시연’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차원 마법.

       

       자색 마탑은 시공간의 바다를 넘어 다른 세계를 관측해내었노라고, 은유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위대한 업적을⋯⋯ 어째서 한 번 꼬아 발표했다는 말입니까? 그 자리에 모인 귀족들이 전부 자금을 투자했다면 제법 거액이었을 텐데요.”

       

       “걸러내기 위함이었겠지.”

       

       어중이떠중이들을 걸러내고,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이들에게만 시연해보인 것.

       전 대륙에 올려퍼지는 부와 명성 대신에 소수의 강자들에게 귓띔한 이유.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시연장에서 선보인 영상이 하필이면 거리낌 없이 ‘유아독존’하는 남자의 것이었으니⋯⋯

       담겨있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갈 길 가겠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교통정리를 하도록.’

       

       “깜찍하군.”

       

       실전된 차원 마법의 공개가 불러올 대륙의 혼란을 물밑에서 막을 수 있다면, 마탑에 돈 좀 투자하는 건 싸게 먹히는 일이었다. 소년은 고급 양피지에 ‘자색 마탑 황실 지원금 인상 : 30배’ 라고 적었다.

       

       ⋯⋯.

       

       시연회 이후 앓아 누웠던 자색 마탑주는 갑작스러운 지원금 30배 펀치에 맞고 하루 종일 마탑을 뛰어다니다가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환상 마법에 입술의 감촉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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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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