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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파스텔은 나무토막 다듬기를 멈췄다.

         

       숨이 가쁘게 나왔다. 손과 팔이 후들거렸다. 달궈진 체온이 추위를 가시게 했다.

         

       완성된 나무 송곳은 뭉툭하긴 해도 위협스러울 만큼 뾰족했다.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찔러보자 뾰족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힘을 주고 말뚝을 박으면 관통될 거 같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나 공예에 재능이 있나?”

         

       이 정도면 뗀석기 시대엔 수준급의 무기로 취급받았을 송곳이었다.

         

       “내 재능 뗀석기 시대.”

         

       원시인 유전자 어디 안 갔다.

         

       완성한 무기를 내려놨다. 한동안 휴식하다가 천천히 스트레칭했다. 찬 공기에 몸이 떨렸다.

         

       공복과 별개로 체력은 나쁘지 않았다. 신체가 좀 이상했다. 생존 호르몬이 강제 펌핑 중인 게 아닐까.

         

       빨리 승부를 봐야겠어.

         

       나무 송곳을 들고 방문을 직시했다. 마음을 다잡으며 다가갔다. 문에 귀를 댔다. 문 너머의 기척은 잘 모르겠다.

         

       긴장을 털어낼 겸 방안을 둘러보다가 문의 막대 잠금장치를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고요 속에서 막대가 조용히 움직였다. 소리 없이 잠금이 풀렸다.

         

       문고리를 잡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나, 둘, 셋!

         

       문을 당겨 거침없이 열었다.

         

       정면으로 흉흉한 검은 늑대가 보였다. 송곳니가 단번에 드러났다.

         

       긴장감이 피부를 따갑게 했다.

         

       “덤벼……!”

         

       검은 몸체가 달려들었다.

         

       파스텔은 몸을 돌려 문에 방패처럼 기댔다. 지면을 딛고 체중을 담아 힘껏 문을 닫았다.

         

       “으랴아!”

         

       달려들던 늑대가 굉음을 내며 문에 부딪혔다. 윽! 무겁다. 밀려난 검은 짐승이 문간에 끼듯 충돌했다. 늑대가 괴성을 질렀다.

         

       파스텔은 물러난 다음 다시 몸을 부딪쳤다. 충격이 문을 때렸다. 소음이 울렸다. 늑대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문으로 늑대의 발버둥이 느껴졌다. 한차례 발버둥에 문이 밀려났다.

         

       힘에서 밀린다.

         

       지체 없이 나무 송곳을 쥐었다. 정신 못 차리는 늑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체중을 담아 나무 송곳을 힘껏 내리꽂았다. 목덜미가 찔리고 검은 기운이 피처럼 분출됐다. 파스텔은 삼킨 기운을 뱉으며 송곳을 꽉 눌렀다.

         

       늑대가 괴성을 질렀다. 검은 육신이 거칠게 흔들렸다. 아윽! 몸체에 얻어맞은 파스텔은 그대로 튕겨 나가 뒹굴었다. 분홍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으, 망할.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 바닥을 짚었다.

         

       짐승의 도약음.

         

       황급히 옆으로 굴렀다. 검은 형체가 본래 자리를 물어뜯었다.

         

       무기, 무기!

         

       손에 문득 이불이 잡혔다. 파스텔은 이불을 쥐며 빠르게 일어났다. 늑대가 달려들었다.

         

       피하며 이불을 펄럭였다. 면직물이 늑대를 휘감았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무마시키고 검은 몸체에 뒤엉켰다.

         

       늑대가 감싼 이불을 찢으며 휘청였다.

         

       이것도 버티나 보자……!

         

       파스텔은 늑대를 향해 도약했다. 빠르게 웅크려 전신을 내리꽂았다.

         

       몸이 목덜미의 송곳을 때렸다. 아윽! 송곳이 거친 저항감과 함께 목덜미를 관통했다.

         

       늑대가 순간 발버둥 치더니 잠잠해졌다.

         

       “하아, 하아.”

         

       파스텔은 사체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자, 잡았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불에 감싸인 사체를 멍하게 내려봤다.

         

       나 좀 싸움 잘하는 듯?

         

       양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분홍 머릿결이 손가락을 휘감았다.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쨉도 안 되는 게 덤비고 있어.”

         

       괜히 사체를 걷어찼다.

         

       그러다 힘이 풀려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아윽! 아우으.”

         

       전신이 욱신거렸다. 팔도 다리도 안 쑤신 곳이 없다. 피부 이곳저곳이 쓸리며 따가웠다.

         

       이불 사채에 눕듯이 기대앉았다.

         

       “후아.”

         

       죽을 맛이네.

         

       마른기침이 나왔다. 배가 고프고 목이 탔다. 그래도 몸을 움직여서 덜 추운 게 다행인가.

         

       파스텔은 손발에 힘을 빼고 쉬었다. 근육이 나른하게 풀렸다.

         

       흐아. 밥도 못 먹고 이게 뭔 꼴이래. 밥 먹고 싶다. 스프에 빵도 좋아.

         

       입맛을 다셨다. 어? 입안에 단맛이 감돌았다. 달콤하고 매력적인 맛.

         

       착각이 아니었다. 확실히 달다. 뭘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늑대의 검은 기운을 들이켰다가 뱉은 순간이 떠올랐다.

         

       파스텔은 서둘러 이불을 치웠다. 검은 사체가 눈에 들어왔다. 늑대 형상이 다소 무너진 채 말랑였다. 고기 푸딩 같다.

         

       달콤한 향이 감돌았다.

         

       침샘이 찌릿했다.

         

       파스텔은 멍하게 손을 뻗다가 흠칫했다.

         

       “헛!”

         

       침을 닦고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딱 봐도 흉흉하고 사악하다.

         

       독이야, 독.

         

       사람이라면 안 먹는 게 맞다.

         

       정신 차려, 파스텔!

         

       정신……!

         

       파스텔은 사체에 얼굴을 박았다.

         

       검은 사체가 고기 푸딩처럼 씹혔다. 달콤함이 입안에 가득 찼다. 신경이 짜릿하게 질주했다.

         

       뇌가 타닥였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희열.

         

       공허가 덜어지는 충족감.

         

       본질과 기원.

         

       영혼이 바라는 것.

         

       마지막 한 점이 입에 들어갔다.

         

       기운 일부가 뼈와 근육에 녹아내렸다.

         

       소녀는 빈손을 떨었다.

         

       여전히 배가 고팠다.

         

         

         

       #

         

         

         

       고기 푸딩을 먹고 나니 참 좋았다. 착각이겠지만 힘까지 좋아진 기분이다.

         

       정작 공복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영 공허한 게 포션 마시고 푹 쉰 기분이야.

         

       입맛을 다신 파스텔은 머리만 빼꼼 내밀어 복도를 살펴봤다.

         

       좌우로 창문 벽과 모퉁이 복도가 보였다. 이 복도에 다른 방은 하나에 불과하다.

         

       “아, 구석 방이구나.”

         

       어슬렁어슬렁 복도로 나왔다. 나무 송곳을 챙기긴 했지만 큰 경계심은 없었다.

         

       큰 소란이 벌어지는 동안 저택에 변화는 없었다. 위험 생물은 없어 보인다. 사용인도 없는 게 문제지만.

         

       “으, 배고파.”

         

       그나마 갈증은 해소돼서 다행인가.

         

       주방 어디려나.

         

       파스텔은 배를 문지르며 모퉁이를 돌았다. 시야가 트이고 새 복도가 보였다.

         

       그리고 늑대 두 마리를 발견했다. 검은 기운이 풀풀 풍겼다. 다행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걷던 자세 그대로 몸이 굳었다가 빠르게 풀렸다.

         

       친구들, 아무 일도 없었어요.

         

       파스텔은 역재생하듯이 조용히 뒷걸음쳤다.

         

       별일 없이 모퉁이로 돌아왔다. 경직됐던 근육이 풀렸다.

         

       주, 죽을 뻔.

         

       괜히 식은땀을 훔쳤다.

         

       아니 소란이 그렇게 일었는데 코앞에 있어?

         

       걷는 소리는 물론 당장 배고프다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진짜 늑대가 아니긴 해도 그렇지.

         

       파스텔은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마 청각이 안 좋나?

         

       기이한 부분이 있긴 했다.

         

       전투 소란은 꽤 컸다. 정원 괴물들이 반응하기 충분할 만큼. 그런데 정원이 조용하다.

         

       다들 청각이 안 좋구나?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암살?

         

       손에 쥔 나무 송곳을 내려봤다. 험하게 쓴 바람에 끝이 뭉툭하게 변했다.

         

       정신이 멍해졌다.

         

       늑대 두 마리와 전투를 상상해 봤다.

         

       살금살금 푹!

         

       엣, 안 죽네?

         

       콱! 콱! 으악!

         

       친구들아 이러지 마……!

         

       이것이 인기 많은 자의 죽음?!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되돌아 걸음을 옮겼다. 살피지 않은 방이 하나 있다.

         

       방에 설마 검 한 자루 없겠어. 최소한 단검이라도. 아니 식칼만이라도.

         

       파스텔은 다른 의미로 긴장하며 새 방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머리만 내밀어 내부를 살펴봤다.

         

       구조는 기존 방과 다를 게 없다.

         

       삭막한 내용물조차.

         

       벽, 바닥, 벽, 바닥.

         

       아니, 구석에 쓰러진 나무 탁자 하나.

         

       마땅한 무기가 없어…….

         

       파스텔은 비틀거리며 문에 기댔다. 머리를 박고 생각하다가 문을 더듬거렸다.

         

       문은 무기로 못 쓰나?

         

       철제 경첩을 살펴보다가 어림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포기했다.

         

       이번엔 창문틀과 유리창을 더듬거렸다. 아, 무리.

         

       쓰러진 탁자로 걸어갔다.

         

       원형 탁자인데 다리가 중심에 하나.

         

       원형 원다리 탁자.

         

       왜 쓰러져 있는지 알겠다. 원다리의 받쳐야 할 지면 부분이 부러졌다.

         

       “음.”

         

       원형 상판은 널찍하고 다리는 길쭉하다. 다리를 잡으면 얼추 망치인가? 들 수는 있을까?

         

       탁자 다리를 양손으로 받쳐 들자 묵직했다. 무겁지만 들 수는 있다.

         

       들고 방 중앙으로 갔다. 다리를 양손으로 잡고 망치 휘두르듯이 휘둘러봤다.

         

       몸이 비틀거리며 자세가 살짝 무너졌다. 원형 상판이 바닥에 부딪혔다. 소리가 울렸다.

         

       파스텔은 흠칫하며 잠긴 문을 주시했다. 잠시 기다렸지만 외부 기척은 변하지 않았다.

         

       “정말 청각이 안 좋구나.”

         

       다행.

         

       탁자를 내려놨다. 손을 털었다.

         

       오래 쓰긴 무겁고 잠깐 쓰긴 휘청인다. 한 마리를 상대하기엔 나쁘지 않다.

         

       근데 두 마리지.

         

       비틀거리면 쉽게 물린다.

         

       하지만 파스텔은 만세했다.

         

       “나무 송곳보다 좋아!”

         

       무기가 개구림에서 구림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오예.

         

       탁자를 자세히 살펴봤다. 무게가 문제였다. 경량화를 하고 싶다. 어디를 발로 차야 적절히 부서지려나.

         

       원형 상판과 다리 사이의 이음새가 눈에 들어왔다. 어? 손을 뻗어 서로 역방향이 되게 돌렸다.

         

       내부에서 교차하며 소리가 났다.

         

       달칵.

         

       서, 설마 이거.

         

       마른침을 삼켰다. 탁자 다리와 상판을 반대로 잡아당겼다. 가볍게 분리됐다.

         

       파스텔은 탁자 다리를 잡았다. 원형 상판은 결합부에 손을 넣어 들었다.

         

       한 손에 탁자 다리.

         

       남은 손에 넓은 원형 상판.

         

       이것은?!

         

       일어난 파스텔은 장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창문 햇살이 나무 장비를 비췄다.

         

       “창과 방패!”

         

       탁월한 선택!

         

         

         

       #

         

         

         

       파스텔은 방 중앙에서 연습했다.

         

       뾰족하게 갈아낸 탁자 다리를 찔렀다.

         

       푹! 푹!

         

       무겁긴 하지만 체감이 다르다. 분리해서 나눠 들은 덕이다.

         

       이번엔 원형 상판으로 막는 시늉을 했다.

         

       든든!

         

       역시 무겁지만 할 만했다. 결합부에 손을 넣어 드니 무게 중심이 신체 가까이 오게 돼 훨씬 편해졌다.

         

       “좋네.”

         

       자세를 잡고 전투를 상상했다.

         

       검은 늑대가 달려들었다.

         

       “왈왈!”

         

       파스텔은 단호하게 원형 상판을 들었다.

         

       “쿵!”

         

       늑대가 상판에 부딪혔다.

         

       재빨리 탁자 다리를 찔렀다.

         

       “푹!”

         

       찔린 늑대가 비명횡사했다.

         

       “완벽해! 가자!”

         

       득템하고 기분이 좋아진 파스텔은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복도 모퉁이가 보였다.

         

       거침없이 돌려다가 그건 좀 그래서 머리만 빼꼼 내밀었다.

         

       딴 방향을 보는 늑대 두 마리. 검은 기운이 흉흉하다. 딱 보기에도 사악하고 안 좋은 기운이었다.

         

       맛있겠다…….

         

       아니 이게 아니라.

         

       파스텔은 흐르는 침을 닦았다.

         

       한 마리만 꼬셔보자.

         

       창을 내려놓고 나무 송곳을 꺼냈다. 한 팔을 내밀며 투척 자세를 잡았다.

         

       하나, 둘, 셋.

         

       투척!

         

       송곳이 슝 날아가 늑대 머리를 때렸다. 검은 늑대가 안 어울리게 깽! 하고 울며 화들짝 놀랐다.

         

       늑대는 두리번거리더니 이쪽을 발견하고 사납게 달려왔다. 뒤편의 늑대는 아직 반응하지 않았다.

         

       파스텔은 모퉁이 뒤로 숨었다. 창을 줍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늑대가 모퉁이를 돌아 달려들었다. 방패로 몸을 가렸다.

         

       들어와.

         

       늑대가 몸을 낮춰 하반신을 노렸다.

         

       아, 사족보행이지?

         

       창을 천장으로 던지고 방패를 양손으로 잡았다. 주저앉듯이 모서리를 내리꽂았다. 방패 모서리와 늑대 주둥이가 부딪쳤다. 이빨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주둥이가 부서질 듯 다물어졌다.

         

       파스텔은 일어나며 한 손을 천장으로 뻗었다. 추락하던 창이 회전해 손에 잡혔다. 체중을 담아 힘껏 내리꽂았다. 궤적이 늑대 눈을 관통해 뇌를 파고들었다.

         

       늑대가 괴성을 내며 휘청였다. 발길질이 늑대를 걷어찼다. 창이 뽑히고 늑대가 쓰러졌다. 달콤한 향기가 번졌다.

         

       모퉁이 너머에서 짐승의 발소리가 울렸다.

         

       소녀는 역으로 달려들었다.

         

       늑대가 모퉁이를 막 돌았다.

         

       달리는 체중을 담아 힘껏 창을 내질렀다. 벌어지는 주둥이를 궤적이 파고들었다.

         

       피육음이 울렸다.

         

       강한 압박감.

         

       창이 체내를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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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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