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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라이너스…?”

       “디안! 오랜만이구나!”

       “라이너스!”

       

       주인공이 왜 여기 왔는지에 대한 의문보다도 반가움이 앞선 나는 한달음에 담을 뛰어넘어 놈에게로 달려갔다.

       

       내가 갑자기 빠르게 달려오자 놀란 기사들이 라이너스의 앞을 방어하듯 가로막고 섰다.

       

       설마 기사들이 끼어들 거라 생각도 못했던 나는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해 그들과 부딪히고 말았다.

       

       “으악!”    “커헉!”

       

       맨몸인 나와 부딪힌 기사들이 그대로 넘어지면서 요란하게 바닥을 굴렀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갑자기 그렇게 끼어들어 버리면 곤란해요.”

       “10년이 지나도 여전하군, 디안.”

       

       신음하며 몸을 비트는 기사들을 내려다 보며 라이너스가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쓰러진 기사들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대체 어쩐 일이냐? 기별도 없이?”

       “네가 보고 싶어서 왔지. 선물도 가져왔고.”

       

       라이너스가 품 안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 보였다. 늘씬한 유선형의 기다란 외양에 따뜻한 햇빛에 다소 기묘한 붉은색으로 일렁이는 저것은….

       

       “우왓!? 그거 아르망드 브리냑 아니야!?”

       “역시 좋아할 줄 알았다.”

       “어서 들어가자, 어서.”

       

       나는 라이너스와 기사들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미 올리시아는 대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갑옷은 벗는 게 어때요? 여기는 제국 수도랑 달라서 굉장히 더울 텐데.”

       

       작은 정원으로 들어오는 기사들에게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근위대는 아무 곳에서나 갑옷을 벗지 않습니다.”

       “여기가 황성도 아니고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라이너스를 돌아보니 놈이 웃으며 기사들에게 말했다.

       

       “갑옷을 벗어요. 근위대장에게는 절대 이르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잠시 주저하던 기사들은 결국 답답한 가죽흉갑을 하나둘 벗기 시작했다.

       

       “올리시아. 저 사람들한테 레모네이드 한 잔씩 돌려. 여기 이 사람도 주고.”

       “알겠습니다, 디안 님!”

       

       기사들은 거실의 소파에 앉게 하고 나와 라이너스는 테라스로 나갔다.

       

       “정말로 좋은 곳에 살고 있었군.”

       

       라이너스가 테라스 아래 내려다 보이는 도시와 바다의 전경을 보며 활기차게 말했다.

       

       “바다, 갈매기, 범선, 시장. 낭만이 넘치는 곳이다. 참으로 부럽다, 디안.”

       “나도 만족하고 있어. 이제 그날밤에 내가 황성을 떠난 이유를 알겠냐?”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큰 뜻을 알게 되었군. 역시 너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아르망드 브리냑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능력은 없다니까. 그랬다면 네가 여기 찾아올 것도 이미 알고 있었겠지.”

       “여튼… 정말로 반갑다, 디안. 늘 네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궁금하고 그리웠다.”

       “뭐, 이렇게 그냥저냥 살고 있어. 바쁜 너랑은 다르게. 그나저나….”

       

       아르망드 브리냑을 협탁에 내려 놓으며 물었다.

       

       “이제 근위대장이 아니냐? 아까 들으니까 근위대장 어쩌고 하는 게 직책이 바뀐 것 같은데.”

       “최근에 다른 자리로 옮겼다. 주요 진급자리인 황성 근위대장에 오랫동안 앉아 진급길을 막고 있는 건 사람도리가 아니니까. 그건 그냥 상징적인 자리였어.”

       “대륙의 영웅이 지키는 황성! 이런 거겠지. 하긴… 너 정도 되는 놈을 고작 근위대장이나 시켰을 리가. 그럼 지금은 뭘 하고 있는데?”

       

       그때 마침 올리시아가 우리 몫의 레모네이드 두 잔을 가지고 왔다.

       

       “이 술은 일단 부엌 찬장에 시원하게 넣어 놔. 엄청 비싼 거니까 조심해야 한다.”

       “얼마나 비싼 건데요?”

       “이거 열 병이면 아까 그 제국 전함 한 척을 살 수 있어.”

       “히익?!”

       

       깜짝 놀란 올리시아가 양팔로 아르망드 브리냑을 꼭 감싸고 발발 떨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라이너스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하녀인가? 하녀치고는 너무 어린 것 같은데.”

       “여기 들른 노예선에서 샀어. 전쟁고아인데 안전한 왕국으로 피난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탄 배의 선장이 그대로 노예상에 다 팔아 버렸다 하더라고.”

       “그런 안타까운 사정이 있었군. 참 잘한 결정이다, 디안.”

       

       고개를 주억거리던 라이너스는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시원하고 맛있다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냐?”

       “아, 그것 말인가. 최근에 황성 첩보부에서 페렌치노 조합과 관련된 첩보를 입수한 게 있더군. 듣자마자 바로 너란 것을 알았지.”

       “첩보부에서 그런 자잘한 것까지 다 알고 있다고?”

       “자잘한 거라니. 이쪽 일대를 주름잡는 불량집단의 소속원 서른 명을 혼자서 때려눕힌 사람에 관한 것인데 그게 어떻게 자잘한 것이 될 수가 있겠나.”

       

       그 말을 하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라이너스는 어깨를 떨며 낮게 웃었다. 

       

       “디안, 너는 조용히 살고 싶다며 황성을 떠난 것 아니었나?”

       “그랬지. 하지만 세상일이 모두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하긴, 그래도 네가 그런 사고를 벌인 덕분에 나도 네 행방을 알 수 있었으니까 오히려 잘된 일이지.”

       

       그러며 라이너스는 또 환하게 웃는다. 비록 10년이나 지났지만 저놈의 특유의 그 선량한 분위기는 그대로다.

       

       라이너스.

       

       대륙의 구원이자 마족의 재앙이라 불리는 유일무이한 용사. 내가 빙의한 이 판타지 소설의 원작 주인공이다.

       

       금발벽안에 훤칠한 키와 잘 짜여진 근육질 몸매는 여느 귀족가 자제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외모.

       

       때문에 일견 오만하고 콧대 높아 보이지만 실상 라이너스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그의 출신은 제국 촌구석에 있는 이름조차 생소한 작은 영지에 속한 농노의 자식.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따라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히 영지를 떠나 입대했다.

       

       전쟁의 참상을 듣고 차마 일신의 안녕을 영위하며 농사나 지을 수는 없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뻔히 라이너스의 성향을 알고 있으면서도 직접 이 이야기를 듣고는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같은 소대에 소속되어 싸우면서 확실히 느꼈다. 이놈은 미친놈이다.

       

       라이너스는 겸손하며 정의로운 성정을 지녔다. 입가에는 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눈빛은 선량하기 그지없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며 설령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더라도 옳다고 생각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는 매우 훌륭한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문제다.

       

       라이너스가 군단에서 말단병사로 구르는 것은 원작 스토리의 배경설정. 원작의 프롤로그는 여러 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라이너스가 그 공을 인정받아 장교로 진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말은즉 이놈이 앞으로 몇 년 동안 죽지 않아야 최소한의 스토리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인데. 이 자식의 넘치는 열정과 정의감 때문에 괜히 죽을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 가지 예시로, 소대가 전멸하고 우리 둘이서만 포위선을 뚫던 최악의 상황에 라이너스는 공격을 받는 민간마을을 구하겠다며 다짜고짜 전투에 돌입했다.

       

       만약 그때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이놈은 시체도 찾지 못했을 것. 이게 미친놈이 아니면 대체 누가 미친놈이란 말인가.

       

       이렇게 여차저차 수없이 사선을 함께 넘나들며 나는 기어코 라이너스를 프롤로그 시점까지 사지 멀쩡하게 살려낼 수 있었다.

       

       이후 우리는 나란히 진급했고 나중에는 마왕의 본거지를 습격할 특임대, 그러니까 용사파티에 차출되었다. 그 후로는 원작의 스토리대로.

       

       그러니까 라이너스는 내게는 조력해야 할 원작의 주인공인 동시에 생사고락을 함께한 둘도 없는 전우다.

       

       “그나저나 디안. 오늘 저녁은 같이 먹지. 여기서 가장 좋은 식당에서 대접하겠어.”

       “좋지. 그런데 식당 말고 우리집에서 먹자. 안 그래도 저녁에 고기 구워 먹으려고 했거든. 그런데, 너 여기 얼마나 있을 거냐? 오래 있을 거면 방을 좀 비워주고.”

       “아니, 그러지 않아도 돼.”

       

       라이너스가 고개를 저었다.

       

       “당장 내일 새벽에 수도로 돌아가야 해서. 잠도 배에서 잘 거다.”

       “엄청 바쁜가 보네. 어쩔 수 없지. 대륙의 구원자가 백수한량처럼 지내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거니까.”

       “네게 그런 말을 들으니 민망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군. 그럼 저녁은 여기서 먹는 것으로 하지.”

       

       올리시아에게 고기와 이것저것을 더 사오라고 시키자 라이너스가 기사 몇 명을 대동시켰다.

       

       

       # # # # #

       

       

       해가 서서히 저물 무렵, 우리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넓은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올리시아와 기사들이 한쪽의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동안 우리는 별도의 테이블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나눴다. 군단 말단병사 시절의 이야기, 훗날 용사파티라 불리는 특임대에 차출되었던 이야기, 셀린느를 비롯한 파티원들과 마왕성에 침투하던 이야기 등등.

       

       해가 완전히 지고 동쪽 바다의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할 때까지도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아르망드 브리냑 한 병을 모두 비워 서로 적당히 취기가 오를 무렵에 나는 라이너스에게 물었다.

       

       “라이너스. 왜 여기 온 거지?”

       “말했잖나. 널 보고 싶어서 왔다고.”

       “라이너스, 너는 말이야.”

       

       라이너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는 단순한 놈이야. 숨기고 속이는 것에는 전혀 재능이 없지.”

       

       내 말에 라이너스가 술잔을 기울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얼른 말해 봐. 왜 온 거야?”

       “하하. 역시 대단하군.”

       

       라이너스가 언덕 아래 명멸하는 항구의 불빛을 보며 말했다.

       

       “10년 전에 서로 헤어지던 날, 기억하나? 언젠가 필요하면 나를 돕겠다던 그 말.”

       “기억하지.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거냐?”

       “그래, 디안. 오직 너에게만 부탁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게 뭔데? 설마 마왕이 또 부활하기라도 했어?”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마왕을 죽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니? 세상에 그런 일이 있나?

       

       “혹시 제국 특수임무 아카데미에 대해 아나?”

       “몰라. 그게 뭔데?”

       “최근에 제국에서 새로 만든 기관인데 국내외 정보수집 전문가 등을 양성하는 곳이다.”

       “간첩학교냐?”

       “하하. 뭐, 어느 정도는. 하지만 다들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제국의 전천후 공무원을 만드는 곳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더러 거기서 애들 가르치라고 하려는 건 아니지?”

       

       라이너스가 대답이 없다.

       

       “…정말이냐?”

       “디안.”

       

       라이너스가 술잔을 내려놓고 세상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제국 특수임무 아카데미의 교장이 되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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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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