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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20화. 눈의 정수 ( 1 )

       

       

       

       

       

       ‘…딸?!’

       

       

       루샨 공작의 입에서 나온 말에 단장은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단장의 턱. 단장은 떨리는 눈으로 케니스를 바라봤다.

       

       

       ‘…케니스가 루샨공작의 숨겨둔 딸?’

       

       

       루샨공작의 검은 머리카락과 케니스의 붉은 머리카락을 쉴 새 없이 오가는 단장의 눈동자.

       

       

       ‘도대체 어떻게?!’

       

       

       단장은 혼란에 빠졌다.

       

       

       “루샨 공작님! 단장님이 오해하고 계시잖습니까!”

       

       

       케니스의 얼굴이 빨갛게 불타오르는 듯했다. 뭐가 그리 억울한지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

       

       

       “단장님, 아닙니다! 공작님은 저희 아버지가 아니세요!”

       

       

       케니스는 다급한 태도로 단장에게 설명했다.

       

       

       “공작님이 예전에 저를 마음에 들어 하셔서, 수양딸로 받아주신다고 하셨거든요! 저는 그때, 신에게 귀의한 몸이라고 말씀드리면서 거절했어요!”

       

       “네가 거절해도, 내가 딸처럼 여기면 딸인 거지.”

       

       “그런 억지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케니스가 공작에게 빼액 소리 질렀다. 공작은 씨익 웃었다.

       

       

       “케니스, 네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우리 닉스 가문은 널 가족이라고 생각할 거다. 닉스 가문의 가훈을 잊은 거냐?”

       

       

       공작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프리가가 끼어들었다.

       

       

       “‘가족과 전우를 위하여’. 케니스, 우리 가문은 전우와 가족을 절대 잊지 않아.”

       

       

       프리가는 루샨 공작과 똑 닮은 미소로 웃었다. 사나운 맹수와도 같은 미소.

       

       

       “반가워, 케니스 동생.”

       

       “동생 아니라구요!!”

       

       “그럼 네가 언니 할래?”

       

       “그것도 싫어요!!”

       

       

       몬테그로스의 닉스 성에서 케니스의 비명이 밤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

       

       

       

       한바탕 소란아닌 소란이 가라앉고, 단장과 케니스는 연회 테이블의 자리에 앉았다. 케니스의 자리는 루샨 공작 옆에 준비되었지만, 케니스는 극구 사양하며 단장의 옆에 앉았다.

       

       

       “배고플 텐데 일단 식사부터 하지.”

       

       ㅡ짤랑

       

       

       공작이 작은 종을 울리자 하인들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테이블을 수놓는 북부식 요리들. 순록의 넓적다리 구이와 곰의 앞다리를 찐 음식 같은 것들이 테이블을 채웠다.

       

       

       ‘음…’

       

       

       단장은 음식을 먹으며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공작은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하고 있고, 프리가는 케니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ㅡ깨작깨작

       

       

       케니스는 그 시선이 불편한지,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불편한 공기가 단장을 압박했다.

       

       

       ‘이게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군.’

       

       

       불편한 식사가 끝나고, 공작은 와인을 천천히 마시며 입을 열었다.

       

       

       “흠. 데이비드 단장. 우선 만신전에서 요구한 ‘눈의 정수’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좀 조사를 해봤네.”

       

       “아, 그렇군요. 어떻습니까?”

       

       

       케니스는 자세를 고쳐잡으며 공작의 입에 집중했다. 리치에게 당해 얼어버린 케일과 한스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눈의 정수’. 케니스는 이어지는 공작의 말에 귀 기울였다.

       

       

       “꽤 옛날 문헌에 적혀있더군. 그 ‘눈의 정수’라는 것은 보름달이 뜨는 밤에 피어나는 꽃. 달빛을 머금고, 얼음으로 된 꽃봉오리를 피운다고 하지.”

       

       “말씀만 들어도 범상치 않은 영물임이 분명하군요.”

       

       “그렇지. 문제는 그 꽃이 피어나는 위치가 저 마수의 산이라는 거야.”

       

       “그런… 쉽지 않겠군요.”

       

       

       단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공작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야. 저 넓은 마수의 산에서 딱 한 곳에 군락지가 있다고 나오더군.”

       

       “한 곳에서만 서식한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군락지의 위치는 지도로 남아있네. 옛날에 한 전사가 산에서 우연히 군락지를 발견하고 기록한 모양이야.”

       

       “천만다행이군요! 지도가 있다니.”

       

       

       과거에 용의 둥지라 불리며 숭배의 대상이 됐을 정도로 드높게 솟아오른 마수의 산. 

       지금은 용은커녕 마수가 쏟아져 나오는 골치 아픈 산이지만, 그 높이와 방대함은 대륙에서 제일로 친다. 

       

       단장은 하마터면 온 산맥을 샅샅이 뒤져야 할 뻔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네.”

       

       

       공작은 얼굴을 굳히며 단장에게 말했다.

       

       

       “얼마 전부터, 마수의 산에 있는 마수들이 빈번하게 산에서 내려와 습격을 하고 있네.”

       

       “마수들의 습격은 어느 정도 있던 일 아닙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케니스가 공작에게 물었다. 케니스의 북부 파견 시절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마수와 드잡이질을 했던 몬테그로스. 

       어지간한 수준의 습격은 일상에 가까웠다.

       

       

       “그래, 마수들이 내려오는 건 항상 있던 일이지.”

       

       

       공작은 케니스의 말에 끄덕거렸다.

       

       

       “문제는 상위 포식자인 녀석들까지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거다.”

        

       “상위 포식자…?”

       

       

       케니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케니스가 파견 동안 본 마수들은 포식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평소 내려오는 놈들은 산의 경쟁에서 밀리고 도태된 녀석들이다. 더 이상 산에 갈 곳이 없어 마을을 습격하는 놈들이지.”

       

       “그런…”

       

       “그런데, 요 몇 주 사이에 상위 포식자 녀석들까지 산 밑으로 밀려오더군.”

       

       

       루샨 공작은 와인을 한입에 꿀꺽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평소라면 산의 포식자로 군림했을 녀석들이, 줄줄이 산에서 쫓기듯 내려오고 있다. 이건 명백한 이상 신호지.”

       

       “… 좋지 않은 상황이군요.”

       

       “그래. 산에 더 강하고 난폭한 포식자가 나타났거나, 누군가 일부러 마수들을 몰고 있다는 거니까.”

       

       

       단장과 케니스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느 것 하나 좋지 못한 가정들. 

       

       

       “우리도 그걸 알아채고, 정찰대를 몇 번 산에 올려보냈는데. 다 돌아오지 못했어. 마수의 산이라면 눈 감고도 돌아다니던 녀석들인데도.”

       

       

       프리가가 씹어먹듯 말을 했다. 

       

       

       “어떤 개잡놈이 산에서 무슨 짓거리를 벌이는지 확인도 못 한 거지. 모두 허무하게 뒤져버렸어.”

       

       “프리가 공녀님…”

       

       

       부하의 죽음에 대해 강한 트라우마가 있던 프리가를 아는 케니스는 걱정스럽게 프리가를 바라보았다. 프리가는 케니스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피식 웃었다.

       

       

       “하!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걱정하지 마, 옛날처럼 질질 짜지 않으니까.”

       

       “…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케니스는 프리가를 마주 보며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웃었다. 프리가는 문득 짖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누가 나를 엄청 때려서 정신이 번쩍 들었거든. 다시 맞는 게 무서워서라도 그렇게는 못 하지.”

       

       “… 때렸다?”

       

       

       단장이 의아하게 중얼거렸다. 케니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프리가에게 말했다.

       

       

       “하, 하하! 공녀님, 무슨 말씀이세요! 누가 공녀님을 때렸다고 그러시나요! 하하하!”

       

       

       어색하고 과장되게 웃는 케니스. 루샨 공작이 와인잔을 빙빙 돌리며 툭 끼어들었다.

       

       

       “흠, 나도 그때는 참 놀랐지. 설마 몬테그로스에서 공작의 딸을 패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공녀 위에 올라타서 아주 죽일 듯이 패더군.”

       

       “우와아아악! 공작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우와아악!”

       

       “… 케니스?”

       

       

       단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케니스를 노려봤다. 단장의 시선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케니스. 얼굴이 머리카락처럼 새빨개진 채로, 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이게 다 무슨 말이지, 케니스? 공녀님을 때렸다고? 그것도 위에 올라타서?”

       

       “아, 아니. 단장님 그게 말이죠. 제가 공녀님을 일부러, 그 때린 게 아니구요. 아니, 때리긴 했는데요. 이게 그, 이유가…”

       

       “아하하하하!”

       

       

       프리가는 당황하는 케니스의 모습이 즐거운지 배를 붙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찌나 웃었는지 찔끔 눈물까지 흘린 모습.

       

       

       “아~ 배 아파. 단장, 너무 그러지 마. 그때 나는 좀 맞을 만했거든. 뭐, 지금 와서는 조금 고맙기도 하고 말이야.”

       

       “… 그렇습니까?”

       

       

       단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프리가는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예전에는 부하들이 죽는 거에 좀 예민하게 굴었거든. 죽은 부하들 환청이나 환각도 좀 보이고, 많이 오락가락했지. 아, 이것도 보여줄게.”

       

       슥ㅡ

       

       

       프리가는 딱 달라붙는 바지를 풀러 허벅지까지 쓱 내렸다. 눈처럼 하얗고 보드라운 허벅지가 흔들리는 불빛에 옅게 빛났다.

       

       

       “무, 무슨!”

       

       

       단장은 대경하여 얼굴을 붉히며 눈을 돌렸다. 프리가는 그 모습에 눈썹을 찌푸렸다.

       

       

       “뭘 보는 거야? 내 허벅지 말고 흉터를 보라고.”

       

       “흉터…?”

       

       

       단장은 눈을 유혹하는 검은색 속옷에서 어렵사리 시야를 내려 프리가의 하얀 허벅지를 바라보았다. 설원 같은 허벅지의 군데군데 남아있는 흉터들. 칼과 같이 날카로운 것에 찔린 흔적들이 가득했다.

       

       

       “이게 무슨…”

       

       “옛날에 환청이 들릴 때, 허벅지에 칼을 쑤신 자국들이야. 그러면 좀 괜찮아지더라고.”

       

       “… 제가 공녀님과 함께 싸울 때도, 몇 번이나 저렇게 자해하셨습니다.”

       

       

       케니스는 흉터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다가 케니스가 정신 차리라면서 나를 흠씬 두들겨 팬 거야. 언제까지 그렇게 죄책감에 찌들어있을 거냐고 하면서 엄청 패더라.”

       

       “엄청 패지는 않았습니다…”

       

       “하! 뭐 아무튼. 그렇게 패면서 죽은 부하들에게 미안하면 남은 자식들에게라도 잘해주면 되지 않냐, 내가 그렇게 흔들리면 남은 내 부하들은 어떡하냐고 막 하더라고.”

       

       “그렇군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지. 남은 내 부하들, 죽은 녀석들의 자식들과 몬테그로스의 시민들… 아직 나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그렇게 찌질거릴 때가 아니더라고. ”

       

       

       프리가는 낯부끄럽다는 듯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흠, 이런 말을 하니까 조금 오글거리네.”

       

       “하하. 프리가 공녀님. 얼굴 빨개졌습니다.”

       

       “흥, 아닐껄? 잘 못 본 거야.”

       

       

       케니스가 프리가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작게 웃었다. 프리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흰 피부가 약간 달아오른 것이 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후후. 프리가도 어디가서 맞고 다닌 적은 없는데 말이지. 그 일 이후로, 케니스를 따라다니면서 한 판 붙자고 하더군.”

       

       

       공작이 케니스를 바라봤다. 부담스러운 눈빛에 케니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요행에 가까웠습니다. 저도 그렇고, 공녀님도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구요.”

       

       “하, 참. 아무리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도, 아무한테는 맞고 다니지는 않아. 내 또래 중에서 날 그렇게 때려눕힌 건 네가 처음이라고, 케니스.”

       

       

       프리가의 강렬한 눈빛에 케니스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저 이글거리는 눈빛. 케니스는 먹은 음식들이 체할 것처럼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때 왜 공녀님을 때렸을까!’

       

       

       케니스는 순간의 답답함과 화를 참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내가 이것저것 내기를 걸고 계속 대련하자고 하는데. 케니스는 나를 피하더라고?”

       

       “당연하죠! 제가 이기면 공작님의 수양딸이 되고, 지면 파견을 연장하라는데! 제가 그 대련을 왜 합니까!”

       

       “둘 다 괜찮은 거 아니야? 몬테그로스도 익숙해지면 얼마나 살기 좋은데.”

       

       

       케니스의 입장에서는 이겨도 져도, 북부에 남는다는 지옥의 양자택일. 그래서 케니스는 악을 쓰고 프리가와의 대련을 피해왔다.

       루샨 공작은 투닥거리는 둘을 바라보다 단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흠, 데이비드 단장.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만 밤이 늦었군. 나머지는 내일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나?”

       

       “그러시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그래. 이만 늦었으니 들어가 보게. 마차를 빌려주지. 내일 점심쯤에 내가 사람을 보내겠네.”

       

       

       루샨 공작이 자리의 해산을 선언했다. 

       프리가는 연회장을 나서는 케니스를 바라보며 짓궂게 웃었다.

       

       

       “잘 가, 케니스 언니! 내일 보자고!”

       

       “언니 아니에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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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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