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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당장 자리에 앉지 않으시면 가불로 받아 가신 의뢰비들, 지금 바로 내놓으셔야 할 거예요.”

       

       소란은 곧 창구 직원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게 바로 공권력인가?

       

       “크, 크흠. 너무 귀여워서 그만.”

       “그래. 사람이 거 귀여운 거 좀 보고 그러면 흥분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나 같이 평소에 점잖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나.”

       “그럼, 그럼.”

       

       용병들은 자리에 앉으면서도 내 손에 들려 있는 해츨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상했던 반응이랑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으니 다행인가.’

       

       특히 이런 작은 마을의 용병 길드는 텃세가 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해츨링이 의외의 활약을 해 준 덕분에 시비가 트이는 걸 피할 수 있었다.

       

       ‘오히려 대도시 쪽이 용병 길드 자체의 규모도 크고 용병 인원들의 회전율도 높아서 텃세가 별로 없는 편이지.’

       

       그래서 사실 되도록이면 처음 용병 길드에 등록할 때에는 대도시 쪽 길드에서 하는 편이 낫다.

       

       ‘거기서 경력을 좀 쌓고 등급을 올려서 마을로 가면 그래도 나름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으니까.’

       

       다만, 대도시의 경우 용병 길드가 떼는 의뢰 수수료가 센 편이고 흔히 말하는 ‘꿀 의뢰’가 거의 없는 편이라, 텃세를 감당할 자신만 있다면 이런 작은 마을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고. 

       

       ‘게임에선 용병들이 텃세를 좀 부려도 스페이스바로 텍스트를 넘겨 버리면 어쨌든 해결은 됐는데…. 이게 또 실제로 들으니까 확실히 느낌이 다르긴 다르네.’

       

       어쨌든 용병이란 존재는 전장에서, 그리고 의뢰를 하면서 목숨 걸고 돈을 위해 굴러 살아남은 존재들.

       직접 옆에서 날것의 분위기를 느껴 보니, 일반인은 웬만한 담력으로는 안 쫄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 녀석 덕분에 이제는 여기서 꿀 의뢰도 낮은 수수료로 받고 용병들 사이에서 텃세도 안 받을 수 있게 생겼네.’

       

       역시 복덩이라니까. 

       

       “뀨우?”

       

       내가 해츨링을 바라보자 어김없이 나를 마주 올려다 본 해츨링이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와…. 방금 본 사람?”

       “그냥 미쳤는데.”

       “웃는 거 봐라. 거의 뭐 저거 사람 홀리는 마물이다.”

       “울음소리도 겁나 귀여운 게, 딱 내 스타일이네, 내 스타일이야.”

       

       …이 아저씨들 주접 보소.

       

       “…진짜 귀엽긴 하네요.”

       

       이젠 창구 직원까지 멍하니 해츨링을 바라본다. 

       

       “저기…. 등록 마저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아! 그, 그렇죠. 죄송합니다! 어디까지 했더라….”

       

       창구 직원은 허둥대며 펜을 집었다. 

       

       “그래요, 직업은 테이머이시고…. 그럼 사역마는 혹시 종족이 어떻게 되나요?”

       “와이번입니다.”

       

       나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와이번이군요. 와이번 새끼가 이렇게 귀여운 줄 몰랐네요.”

       “하하….”

       

       창구 직원은 해츨링을 힐끔힐끔 보면서 종이에 와이번이라고 적었다. 

       

       “쀼우.”

       “음?”

       

       나는 문득 해츨링이 아까부터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 해츨링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내 이름이랑 직업, 그리고 사역마 종 이름 칸을 번갈아서 보고 있는데.’

       

       아, 혹시 글씨를 배우고 싶은 건가?

       

       ‘하긴, 이해와 습득, 응용만 있으면 얘가 글씨 배우는 건 뭐 일도 아니겠지.’

       

       종이와 펜만 있으면 마나가 부족할 때 ‘음성화’를 사용하는 대신 글로 소통할 수도 있을 거다. 

       

       ‘나중에 한번 가르쳐 줘 봐야겠네.’

       

       뭐든 빨리 배우는 아이니, 자꾸만 가르쳐 줄 만한 게 보이면 기회를 엿보게 된다. 

       

       ‘이래서 똑똑한 아이의 엄마들이 그렇게 영재교육을 시키고 여기저기 학원을 보내는 건가?’

       

       어렸을 땐 그런 학부모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천재 해츨링을 키우는 입장이 되어 보니 왠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물론, 우리 해츨링이 배우기를 원한다는 가정 하에 가르쳐 준다는 얘기지만.’

       

       하기 싫다는 걸 억지로 시킬 생각은 절대 없으니까.

       

       “…다 됐습니다! 여기 F등급 용병패랑 등록증이에요. 용병패를 잃어버리시더라도 등록증만 있으시면 재발급 가능하시고, 첫 재발급은 무료지만 그 다음부터는 돈을 내셔야 해요.”

       “감사합니다.”

       “의뢰를 수주하고 싶으시면 저쪽에 게시판이 있으니 저에게 의뢰지를 가져오시면 돼요!”

       

       …원래 창구 직원의 설명이 이렇게 친절했던가. 

       해츨링을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사무적인 톤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나는 발급된 용병패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게시판으로 가서 F등급으로 수주 가능한 의뢰 목록을 쭉 스캔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네.’

       

       그나마 혼자 해츨링과 가서 쓸어 버릴 수 있는 커먼 울프 소탕 의뢰는 이미 누가 선점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아무리 내가 레키온 사가를 잘 안다고 해도, 이런 현장의 자잘한 변수까지 전부 계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상단 호위도 안 되고…. 역시 지금 할 만한 건 저거밖에 없나. 좀 날먹이라 양심에 찔리긴 하는데.’

       

       하지만 고민은 짧았다.

       

       ‘뭐, 어때. 날로 먹는 의뢰도 있을 때 해야 하는 법이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한쪽 구석에 작게 붙어 있는 의뢰지를 떼어 접수한 뒤, 해츨링을 다시 가방에 넣고 용병 길드를 나섰다.

       

       “이런, 벌써 가는 겐가?”

       “술 한 잔 하고 가지! 형씨, 오늘은 내가 살게!”

       “그래, 저 녀석이 살 테니 한 잔 하고 가!”

       “뭐라고?”

       “오오! 방금 가방에서 잠깐 얼굴 내밀었다!”

       “아, 나 못 봤는데!”

       

       …그리고 길드를 나서는 길에도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

       

       “쀼우우우!”

       “거기도 찾았어?”

       “쀼우!”

       “좋아. 여긴 이제 끝이라 슬슬 먼저 정리하고 있을게.”

       

       숲의 북동쪽, 구불구불한 수풀 언덕 위에서, 나와 해츨링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약초를 캐고 있었다. 

       

       “쀼우!”

       

       내가 천천히 다 캔 약초들을 미리 준비해 뒀던 유리병에 넣는 동안, 해츨링은 짧동한 발을 부지런히 놀려 자신이 캔 약초를 배달해 주었다. 

       

       “쀼우?”

       “오오, 이번엔 잘못 캐 온 거 하나도 없는데? 역시 배우는 건 진짜 빠르다니까.”

       “쀼우웃!”

       

       해츨링은 흙투성이가 된 손을 허리에 얹고 의기양양하게 배를 쭉 내밀었다. 

       

       “이걸로 의뢰분은 전부 끝. 혹시 품질로 태클 걸 때를 대비해서 예비로 캐 놓은 것도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가방에 약초가 든 유리병을 전부 넣었다. 

       

       ‘크으, 의뢰 하나가 해 지기도 전에 벌써 끝이라니. 진짜 날로 먹었네.’

       

       내가 수주한 의뢰는 바로 약초인 ‘윈더’를 캐 오는 것이었다. 

       

       ‘이 약초는 계절마다 바람에 옮겨 다니면서 피기 때문에, 이 위치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확 달라지지.’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이 시기에 윈더가 어디에 피는지 알고 있었다. 

       

       “그럼 해가 지기 전에 피크닉이나 좀 즐겨 볼까?”

       “쀼우!”

       

       나는 미리 가방에 싸 온 샌드위치와 음료를 꺼내 해츨링과 나눠 먹었다. 

       

       “쀼우우!”

       “샌드위치는 빨리 먹으면 목 막히니까 천천히 먹으렴, 천천히.”

       

       해츨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샌드위치 하나를 게눈 감추듯 먹은 뒤, 미지근한 우유병을 입에 대고 꿀꺽꿀꺽 넘겼다. 

       

       ‘평화롭고 좋구만.’

       

       마음 같아서는 평생 이런 날로 먹는 의뢰만 하면서 살고 싶지만….

       

       ‘이런 꿀 의뢰는 자주 찾아오는 편이 아니니까.’

       

       어쨌든 용병 등급을 올리려면 이런저런 의뢰를 전부 수주할 능력이 되어야 한다.

       

       ‘진짜 딱 쓸 만한 마법서 하나만 구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화염계 전투 마법이면 더 좋고.’

       

       [Lv.1 레온]

       힘 : 6 민첩 : 7 체력 : 5 마력 : 3

       고유 특성 : 「신뢰의 계약」

       스킬 : 없음

       

       “후우….”

       

       저 ‘스킬 : 없음’이 진짜 열 받는단 말이지.

       

       ‘잠깐만, 그러고 보니….’

       

       상태창을 살펴보던 내 시선이 다시금 고유 특성 「신뢰의 계약」 쪽으로 옮겨 갔다.

       

       ‘지난번에 「신뢰의 계약」 설명 밑에 뭔가 효과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곧바로 고유 특성란을 터치했다.

       

       <고유 특성 : 「신뢰의 계약」>

       -등급 : 유일

       …

       …

       또한, 특성의 부가 효과를 개방할 때마다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수 효과 펼치기)

       

       ‘그래, 이거였지. 맨 아래에 있던 설명.’

       

       나는 다시 손가락으로 ‘특수 효과 펼치기’를 터치했다. 

       

       그리고 펼쳐진 설명에 눈을 번쩍 떴다.

       

       “어?”

       

       「신뢰의 계약」 부가 효과

       -스탯 동기화 : 특정 조건 만족 시 신뢰의 계약이 체결된 대상과 능력치의 일부를 동기화할 수 있습니다. 

       (현재 비활성화 중)

       -스킬 동기화 : 특정 조건 만족 시 신뢰의 계약이 체결된 대상과 스킬을 일부 공유할 수 있습니다. 

       (현재 비활성화 중)

       -잠김

       

       “…와. 이걸 이제 알았네.”

       “쀼우?”

       

       입가에 우유를 잔뜩 묻힌 해츨링이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해츨링의 입을 닦아 준 뒤, 눈앞에 떠 있는 ‘특정 조건 만족 시’, 그리고 ‘스킬 공유’라는 글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것만 활성화할 수 있으면…. 그냥 마법서를 안 사도 되는 거잖아?’

       

       물론 ‘일부 공유’긴 하지만, 어쨌거나 당장 쓸 수 있는 마법 하나가 필요한 나에겐 그것도 감지덕지다.

       

       ‘특정 조건이라…. 특정 조건….’

       

       내가 한참 해당될 만한 게 없는지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해츨링이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응? 무슨 일이니? 우유 더 줘?”

       “쀼우!”

       

       해츨링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음성화를 사용해 말했다.

       

       “레온, 나 부탁할 거 이써!”

       “부탁? 뭔데?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 줘야지.”

       

       해츨링이 나한테 따로 부탁이라니, 무슨 일이지?

       

       해츨링은 말하기가 조금 쑥스러운지 앞발로 코끝을 몇 번 긁었다.

       

       “나 아까, 용병 길드에서부터 계속 생각해써.”

       “응.”

       “길드 누나가 내 이름 적을 때 와이번이라고 적는 거 봐써.”

       “어? 글씨를 벌써 읽을 줄 아는 거야?”

       “우응! 간판 보고 공부해써.”

       

       해츨링은 부끄러운 듯, 땅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다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레온, 나도 이름 지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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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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