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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그날이 밝았다.

        내가 선전포고를 한 마지막 날.

       

        = 앞으로 1시간인가?

       

        1시간이 지날 때까지 내가 요청한 ‘우두머리가 직접 나에게 와서 무릎 꿇고 사죄하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진짜 전쟁이다.

       

        = 음? 그런데 전쟁이 맞는가?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전쟁이라고 하면, 다수와 다수…… 그러니까 무리와 무리가 싸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던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에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 수하들을 끌고 갈 것도 없이 그냥 나 혼자 선에서 정리가 된다.

       

        “주인님.”

       

        = 음?

       

        “인간들이 도착했사옵니다.”

       

        = 호오. 그래도 사죄를 할 줄 아는 이들인 것인가?

       

        마지막 날까지 질질 끈 것은 조금 싫지만, 그래도 어쨌든 선언한 기한 내에 왔으니 별 불만은 없다.

        즉시 북한의 우두머리라는 인간을 보러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기다리던 인간들이 아니옵니다.”

       

        멈칫!

       

        = ……그렇다면 누구냐?

       

        “중국이라는 나라의 인간들이옵니다.”

       

        = 중국?

       

        중국이 어디더라?

        ……아! 생각났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북쪽과 서쪽에 위치한 나라였지.

       

        역사적으로 내 게이트가 위치한 동북아시아에 큰 영향을 끼치던 나라였고, 게이트와 헌터라는 존재가 나타난 뒤로는 미국이라는 나라와 함께 조금 주춤거리는 그 나라.

        그런데 그자들이 왜 날 찾아온 것일까?

       

        =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구나. 데려와보거라.

       

        “네.”

       

        잠시 후.

       

        “바, 반괍숩니따! 저눈…….”

       

        어설픈 한국어로 떠듬떠듬 말을 꺼내는 인간.

        나는 그런 인간에게 말했다.

       

        = 본래의 언어로 말해도 좋다. 인간들의 언어는 공부해 두었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멸천룡이시여.”

       

        “저희는 홍적 대이능 부대에서 온 이들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현 주석이신 메이자오님을 대신하여 찾아왔습니다.”

       

        내 앞에 바짝 엎드린 채 공손히 대답하는 인간.

        나는 바짝 긴장하는 인간들을 향해 물었다.

       

        = 그래.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것이냐?

       

        “앞으로 50분이 지나면, 멸천룡께서는 북한과 전쟁을 벌이신다고 들었습니다.”

       

        = 그래.

       

        내가 한 말이 있는 데다, 내가 당한 것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비록 그 일로 나에게 어떠한 피해도 없었다고 한들, 그것은 엄연하게 나에 대한 공격 행위였다.

        물론 내 처지에서는 개미 한 마리가 나를 톡톡 건드린 수준에 불과하다만…… 공격 행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적어도 사죄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희 주석께서는 멸천룡님께 작은 도움을 드리고자 하십니다.”

       

        = 거절하지.

       

        “그럼…… 예?”

       

        내가 단칼에 거절하자 당황하는 인간들.

        나는 그런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 나에겐 너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저, 적어도 들어 보시고 결정하시면…….”

       

        = 들을 이유가 없지. 너희의 도움이 혹 북한의 지리라거나, 혹은 북한 지도층 인간들의 탈출 경로 같은 것들을 말하는 것이냐?

       

        “…….”

       

        그게 맞는 듯 말을 잇지 못하는 인간.

        이 인간들에게는 안타깝지만, 나는 이미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겪어보았다.

       

        내가 거쳐 온 차원의 개수만 하더라도 수천개가 넘는다.

        그중에선 지금 내가 있는 고향 차원과 비슷한 시간대의 지구도 있었고, 비슷한 문명을 이루고 있던 지구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처럼 다른 나라와 마찰을 빚은 적도 수없이 많았다. 그때 지금처럼 접근한 인간들도 수없이 많았고.

       

        = 겨우 그것뿐이라면 물러가거라. 나에겐 필요 없는 도움이니라.

       

        “……알겠습니다 멸천룡이시여. 그렇다면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인간이 통신기로 보이는 무언가를 내밀었다.

        자예에게 눈짓을 하니, 자예가 나 대신 그것을 받았다.

       

        “언제든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그것으로 연락을 하시면 됩니다.”

       

        = 그래.

       

        “그럼 저희는 이만…….”

       

        조심스럽게 물러나는 인간들.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자예에게 물었다.

       

        = 그래. 지금 것으로 몇 번째지?

       

        “9번째이옵니다.”

       

        처음 내 게이트에 왔던 인간들은 미국인들이었다.

        그다음이 남한이었고, 그다음은 러시아, 그다음이 뜻밖에 영국이었던가?

        내 게이트와 딱 붙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참 늦은 중국의 능력을 평가절하해야 할지, 아니면 지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중국보다 빠른 다른 나라의 인간들이 대단하다고 평가해야 할지…….

       

        = 어쨌든, 시간이 다 되었군.

       

        그러는 사이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다.

       

        = 결국 오지 않는 것인가?

       

        그저 먼저 온 손님 때문에 시간에 늦은 것이라면 이해해 줄 수 있건만, 결국 끝까지 북한에서 온 이들은 없었다.

        혹시 출발했는데 피치 못한 사정이 있어서 늦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천룡안으로 밖을 살펴보았지만, 완벽하게 전쟁 준비를 끝낸 북한 평양의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 그래. 결국 그것이 너희의 선택인 것이냐.

       

        나와의 전쟁을 선택했다면, 나 역시 더 이상 거리낄 것은 없겠지.

        나는 담그고 있던 마그마탕에서 몸을 일으켰다.

       

        = 그럼 움직여야겠군.

       

        “주인님. 주인님께서 직접 움직이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눈을 굴리자, 내 옆에서 다소곳한 자세로 서 있는 자예가 보였다.

        무표정하게 보이지만, 무언가가 불만인 듯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져 있는 그녀.

       

        “명령만 하신다면, 주인님을 따르는 무리가…….”

       

        = 자예.

       

        나는 자예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분명히 자예의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설 것도 없이, 자예를 비롯한 나의 수하들을 보내면 알아서 처리가 될 테니까.

       

        하지만 나와는 달리, 이들은 인간들에게 자비가 없는 이들이다.

        적이 된 처지에서 자비 운운하기는 좀 그렇긴 하지만 적어도 이 전쟁과는 무관한 일반인들까지 피해가 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내가 움직여야 하는 이유도 있다.

       

        = 요즘 계속 쉬기만 했더니 조금 몸이 찌뿌드드하구나. 그냥 나 혼자 다녀오겠다.

       

        “……알겠사옵니다. 부디, 조심히 다녀오시옵소서.”

       

        = 그래.

       

        자예의 말에 피식 웃으며 나는 천천히 게이트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냥 공간을 넘어가도 되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하는 전쟁이다. 그렇다면 한 번 제대로 해 봐야겠지.

       

       

        *            *            *

       

       

        [아! 말씀드린 순간, 백두산 게이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저 황금색! 멸천룡이 나왔습니다!]

       

        [특파원! 지금 현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저기 보이시는 평양은 최고 전시 태세를…….]

       

        “오! 시작됐군.”

       

        “…….”

       

        이현은 인간의 형태로 자기 옆에 앉아 팝콘을 씹는 파트너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매끈매끈한 백색의 장발을 머리띠로 대충 묶어 올린 채 녹색 추리닝 차림으로 앉아 팝콘을 우적대던 백익룡 스카투야 블레이즈가 의아한 얼굴로 이현을 돌아보았다.

       

        “왜?”

       

        “아니……. 이럴 때마다 네가 저 멸천룡과 같은 드래곤이라는 게 안 믿겨서 말이야.”

       

        멸천룡이든 백익룡이든 인간에게 우호적이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둘을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드러난다.

       

        멸천룡은 인간 사회에 대해 조금 어둡고, 어딘가 차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서 백익룡은 인간 사회에 빠삭한 데다 기분파다.

        그리고 백익룡과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백익룡은 생각보다 굉장히 생각 없이 움직이고는 한다.

       

        뭐라고 할까? 철없는 동네 형 같은 느낌이랄까?

       

        “인간 사회에 잘 녹아들었다고 봐야 할지, 찌들었다고 봐야 할지 항상 헷갈린다고.”

       

        “얌마. 찌들었다는 것은 너무한 표현 아니냐?”

       

        그런 말 듣기 싫으면 일단 백수 패션부터 벗어야 하지 않을까?

        함께 몬스터들과 싸울 때는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는 파트너인데, 인간 생활을 할 때는 이런 백수가 또 없다.

        이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옮겼다.

       

        TV 속에서는 거대한 황금의 덩어리가 몸을 털고 있었다.

       

        “오우. 어머니도 간만에 마실 나가시는 모양이군. 몸을 푸시네.”

       

        “저게 몸 푸시는 거였냐.”

       

        그 순간 멸천룡이 몸을 좌우로 돌린다.

        흔히 시바 드릴이라고 부르는 그 행동!

        하지만 저 거대한 거체로 행하자 엄청난 바람이 불며 카메라가 흔들린다.

       

        “그런데 블레이즈.”

       

        “왜?”

       

        “왜 네 어머니는 공간을 넘어가는 게 아니라, 그냥 게이트 입구에서 나오신 거지?”

       

        그녀가 공간을 넘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은 잘 안다.

        이미 두 번이나 그 방법으로 서울에 왔었고, 본인도 할 수 있다고 방송에서 밝혔으니까.

        그러니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면 될 것을…… 왜 귀찮게 게이트 입구에서 나왔는가?

       

        “저 움직이기 불편해 보이는 거대한 몸으로 뛰어가기보다는, 그냥 공간을 넘어가는 게 낫지 않냐?”

       

        “……잠깐. 파트너. 너 설마 우리 어머니를 ‘지룡’으로 보는 것이냐?”

       

        “맞지 않나?”

       

        드래곤의 종류는 총 세 종류로 나뉜다.

       

        비룡. 지룡. 해룡.

       

        날개나 그와 비슷한 기관이 있어 하늘을 날 수 있는 존재는 비룡으로 분류된다. 백익룡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지느러미나 물갈퀴, 아가미 같은 기관이 있어 물속에서 생활할 수 있는 존재는 해룡으로 분류된다. 심해룡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그 외의 드래곤들은 지룡으로 분류된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비룡이나, 물속에서 날아다니는 해룡과는 달리 땅 위를 직접 걸어 다니는 지룡은 특별한 점은 없다.

        하지만 그 대신 강력한 육체 능력이나 특수한 능력을 갖춘 경우가 있기에 결코 쉽게 보면 안 되는 존재다.

        그야말로 드래곤계의 전차라고 할 수 있을까?

       

        “네 어머니의 모습을 봐라. 그냥 황금으로 칭칭 두른 아르마딜로 같은 모습이시잖아.”

       

        “아르마딜로라…….”

       

        떨떠름한 얼굴로 TV를 바라보던 백익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확실히 닮긴 했다.

       

        “그런데 파트너. 우리 어머니는 비룡이시다.”

       

        “……읭?”

       

        백익룡의 말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현.

        서둘러 TV로 고개를 돌려보지만, 그의 눈에 비치는 멸천룡의 모습은 그야말로 두툼한 등딱지를 짊어지고 있는 아르마딜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도대체 어딜 봐서 비룡이라는 거지?

       

        “블레이즈. 거짓말하는 거냐?”

       

        “아니, 진짜라니까.”

       

        어깨를 으쓱거리며 팝콘을 씹는 백익룡.

        그 한량 같은 모습에 이현이 한숨을 내쉬며 한소리를 하려던 그때였다.

       

        쩌저적!

       

        [아닛?! 저, 저기 보십시오!]

       

        “응?”

       

        TV 속의 멸천룡.

        그녀의 등 위에 존재하던 커다란 황금의 등딱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녀의 몸보다 더 거대해 보이는 6개의 황금의 날개.

       

        “비룡 맞다니까?”

       

        “헐?”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TV를 보던 이현이 자기 뺨을 한 대 쳤다.

        그러곤 황당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저 등딱지가 날개라고 왜 안 알려 줬는데?”

       

        “안 물어봤잖는가?”

       

        “이게 진짜…….”

       

        이 얄미운 파트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멸천룡이 천천히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시선을 하늘 위로 두고, 몸을 천천히 웅크리고, 날개를 펼치고.

        그대로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라…….

       

        기이이이이잉-!!

       

        쿠구구구구궁!!

       

        “……어?”

       

        ……펄럭이지 않았다.

        쭉 펼쳐진 날개에 달려 있던 원통형의 기관에서부터 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검은 불꽃을 내뿜으며 멸천룡의 몸을 하늘로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모든 인간이 벙 쪄진 사이에 그녀의 신형은 순식간에 하늘 위의 별이 되었다.

       

        “휘유. 아직 팔팔하시군.”

       

        “제트기?!!”

       

        이현의 고함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딘가의 드래곤이 떠오르신다면, 그거 모티브가 맞습니다.
    물론 속 설정은 다릅니다.

    기계와 드래곤은 로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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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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