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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그래, 내가 초면에 큰 말실수를 좀 하긴 했는데… 아가씨 너무 매정하네! 팀장한테 이래도 돼?”

         

         “……아직 팀원도 아닐뿐더러, 자꾸 아가씨라고 부르지도 마.”

         

         “그럼 이름이라도 알려줘 누님!!”

         

         내가 연상이라는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 그냥 기분이 더럽다는 걸 돌려서 표현했는데 이 자기중심적인 용병은 이 상황이 마냥 기뻐 보였다. 아무리 즉석에서 모집한 인력이라지만 어떻게 이런 망나니가 팀장인 팀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보리.”

         

         “그건 누님의 암구호…… 아니지…? 우연히 같았을 수도 있지…! 아이보리 누님! 이번 임무 잘 부탁해!!”

         

         “하아아…….”

         

         주린 배와 빠져나간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앞에 놓인 감자튀김을 집어먹는다.

         음. 진짜 감자인지는 몰라도 바삭바삭하고 짭조름해서 꽤 맛있다.

         

         테이블 위에는 따로 부탁한 적도 없는 룸서비스 음식이 한가득. 호레이쇼가 말하기로는 딱히 자기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지금도 804호실 문 앞을 초조하게 지키고 있는 검은 정장차림의 브로커가 멋대로 제공한 서비스라고 한다.

         

         후한 보수에 극진한 대접. 고용된 인력과 기 싸움하는 대신 받들어 모시는 브로커라니?

         

         “…너무 친절한데?”

         

         “역시! 누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야, 도미노! 넌 어떻게 보냐?”

         

         …짤깍!

         

         호레이쇼의 시선이 거의 십여 분만에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했다.

         

         괜찮은 퀄리티의 음식에도 관심을 일체 보이지 않고 줄곧 침대위에 누워 묵묵히 잭나이프만 폈다 접었다 하던 삐쩍 마른 남자 도미노.

         그는 슬쩍 발을 동동구르는 브로커를 곁눈질하더니 나지막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가끔 있지. 메가 코프에서 던져준 차명 의뢰를 뭣도 모르고 방치하다가, 완수일이 닥쳐서야 허겁지겁 사람 구하는 중개인이. 자기 할 일도 못하는 놈에게 줄 수수료가 아깝긴 한데… 배짱 장사할 기회는 흔치 않지.”

         

         “크…!! 오랜만에 봉을 잡았구만…!”

         

         “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영 신뢰가 안 가던 퀭한 얼굴과 짙은 다크 서클이 갑자기 다른 의미로 해석됐다. 숨은 실력자 포스가 물씬 풍기는 침착함과 객관적 태도? ……제발 당신이 진짜 팀장이라고 말해주세요.

         

         

         “……콜록.”

         

         “응?”

         

         아직도 지글거리는 큐브 스테이크, 왠지 쌀알이 사각형인 볶음밥, 윤기가 흐르는 파스타 등등. 희망적인 관측을 믿고, 마음 놓고 공짜 음식을 조금씩 즐기다 보니 목이 막혔다.

         한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건너편에 놓인 음료수 병에 손을 뻗는데… 한발 빠르게 움직인 손이 친절하게 뚜껑까지 따서 나에게 병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아이보리 누님!”

         

         “……고마워.”

         

         어쩌면 진짜 극진한 건 브로커가 아니라 이 호레이쇼라는 남자의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공공연하게 망신을 준 상대한테 좋다고 달려드는 근거가 무엇인지 의심된다.

         …혹시 내가 사이버웨어가 아니라 뇌를 잘못 건드렸나?

         

         삐비빅! 삐비비빅!!

         

         “…앙?”

         “……저런, 무슨 일 이래… 드디어 완벽주의도 때려치운 건가….”

         

         침대 한구석에 올려져 있던 노트북과 우리의 몸에 내장된 사이버웨어로부터 시끄러운 알람이 울린다. 오후 3시 30분, 마감시간이다.

         

         “이런 씨발… 씨발! 개좆……!!”

         

         단정한 정장과 커다란 선글라스에 가려진 부분을 제외하면, 드러난 모든 피부가 새빨개진 브로커가 쿵쿵거리며 노트북으로 다가갔다.

         한차례 바쁘게 손가락이 자판위에서 춤을 추자 누구인지 모를 인물과 통화가 연결되었다.

         

         – …쓸데없이 왜 전화했지? –

         

         굵직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이쪽도 양배추보다는 팀장의 자질이 엿보였다.

         

         “쓸데없다니?! 지금 다 오멘 당신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데!!”

         

         – 다가 아니라 데어데블과 녹턴, 두 명이겠지. 공석이던 해커는 결국 안 오지 않았나? 그러니 구태여 올라가볼 필요도 없지. 시간과 열량 낭비다. …댁 같은 초짜와 떠드는 이것도 심각한 낭비군. –

         

         ““……?””

         

         좌중의 어리둥절한 눈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편하게 군것질하던 와중에 갑자기 관찰 당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왜요. 저 지원한 넷 해커 맞아요. 뭐요.

         

         “…해커도 이미 와서 편하게 식사 중이니까, 얼른 올라와주게…!! 지각 페널티도 눈 감아줄 테니까!”

         

         –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하지? 내가 족히 한나절은 로비에서 모든 출입자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

         

         오멘이라는 남자의 얼빠진 대꾸에 또 다시 시선이 모여든다. 이래서야 밥도 못 먹겠다.

         

         “…전 계단으로 와서.”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을 썼다는군. 자, 호기심도 풀렸으면 이제 일 얘기 좀 할 수 있도록 모여주겠나…?”

         

         – 모든 출입자를 감시했다니까 그게 무슨 상관…!! …아니, 직접 가서 보고. 만약 거짓말이면 널 반으로 접어버리겠다…! –

         

         뚝! 하고 통화가 끊어졌다.

         브로커는 안심했고, 도미노는 다시 손장난에 열중. 호레이쇼는 여전히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반으로 접어버린다는 게 부디 내 얘기는 아니길 바란다.

         

         왠지 입맛이 싹 떨어져서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얌전히 오멘이라 불린 남자를 기다렸다.

         1분… 2분…. 직전까지 로비에 있었다고 하는 만큼 금방 올 거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쿵쿵—!!

         

         방이 지진 난 듯 흔들리자 후다닥 달려나간 브로커는 어찌나 몸이 달았는지 별 다른 확인도 없이 문을 열었다.

         마침내 네번째 팀원인 오멘의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직 무지막지한 하체와 우락부락한 상반신. 흑사회의 똘마니들은 난쟁이로 보일 수준의 거한이다.

         

        세로는커녕 가로로도 출입구 사이즈가 충분하지 않자 그가 투덜거렸다.

         

         “…유서 깊은 호텔은 무슨.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없군.”

         

         덜컹…!!

         

         고개를 숙이고, 상체를 비스듬히 눕혀서 입구를 통과한 오멘이 방을 찬찬히 살핀다.

         

         “어…….”

         

         ‘기업이 세운 법이나 규칙 따위, 이 인간전차 앞에서는 감히 중얼거릴 엄두도 안나리라.’

         

         게임 상에서 표시된 저거노트의 특성 설명이다. 강화된 근육과 골격으로 가득 찬 육신은 비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몸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완성된 궁극의 아름다움과 항거할 수 없는 에너지를 맥동하고 있었기에 넋을 놓고 쳐다볼 지경이었다.

         

         말끔한 스킨 헤드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슈트.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저 거체를 유지하기 위해 장비한 입가의 마스크에는 영양제 앰플이 꽂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인간병기는, 지금 한쪽 눈을 치켜 뜬 채로 나를 내려다보느라 바쁘셨다.

         

         탁! 타닥… 타닥탁….

         

         “…….”

         “후우……….”

         

         침묵이 너무 무겁다.

         오멘의 숨소리와 브로커가 데이터 정리하는 소리밖에 안 들린다. 호레이쇼라도 좀 떠들었다면 좋았겠는데 그는 어울리지 않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오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작군. 그래서 놓친 건가?”

         

         “…아니, 여기서 미리 숙박하고 있던 몸이라 그냥 온 건데…?”

         

         끝에 자동으로 ‘헛고생시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라는 말도 붙일 뻔했다.

         ……괜히 쫄지 말자. 피부, 옷, 장비 중에 단 하나라도 절연 대책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근접 상황에서 언제나 미약한 승산은 존재한다. 어디 힘 자랑을 해볼 테면 해보시….

         

         쿵…!

         

         “!!”

         

         한 손으로 가볍게 의자를 치워버린 오멘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맨바닥에 허리를 굽히고 있는데도 의자에 앉은 나보다 여전히 눈높이가 높은 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의뢰 내역을 해킹해서 미리 호텔에서 자리잡고 쉬었나 보군. 장비도 깨끗하고… 마음에 들어! 오랜만에 괜찮은 넷 해커를 만났군.”

         

         어라…? 험악했던 분위기가 단번에 무산되고 화기애애해진다. 아니면 최초부터 내가 착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키야아…! 오멘 이 새끼… 생긴 거랑 다르게 보는 눈은 정확해 아주! 아이보리 누님의 진면목을 바로 알아보다니?! 이 데어데블님을 한방에 무력화한 분 답지 않으시냐? 응?”

         

         “아이보리…? …못 들어본 닉네임이군. 하지만 행실이 등신 같은 너와는 별개로 일처리는 확실해 보여서 안심했다. 게다가 지인이라니… 등 뒤에서 찔릴 걱정도 조금 덜었군.”

         

         “…등신? 이 새끼는 사람이 칭찬을 해줬는데 말뽄새가 아주….”

         

         “그 앞의 말에서 깊은 악의를 느꼈다. 억울하면 거울이나 보도록.”

         

         딸깍하고 마스크를 벗은 오멘이 접시 째로 음식을 기울여 입에 털어 넣는다.

         도미노는… 이젠 아예 눈을 감아버렸고 호레이쇼는 자기는 등신이 아니라며 마구 으르렁거린다.

         

         소외된 쭈구리 브로커를 제외한 셋은 상당히 이 광경이 익숙해 보인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단어들을 확인해보기 위해 해커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검색 엔진을 최대로 활용했다.

         

         데어데블 호레이쇼… 녹턴 도미노… 그리고 오멘.

         애써 나타난 정보를 분류할 필요도 없었다. 다 공통점이 있었으니까.

         

         [ 데어데블네 팀은 왜 맨날 해커만 바뀌냐? 뭐 들어가면 사라지는 마법의 구멍인가? ]

         

         [ ㅋㅋㅋㅋㅋ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약국에서 새치기 했다가 녹턴한테 손가락 날아간 썰 푼다 씨발. 이 새끼는 왜 이 시간에 빈민가 약국에 있는거냐…. ]

         

         [ 오멘이 자기네 팀 해커를 일종의 고기 경단으로 바꿔 놨다는 게 진짜냐? 그런 새끼가 왜 아직도 멀쩡하게 용병 활동하냐 씨발?? ]

         [ 보수분배 과정에서 해커가 자꾸 멋대로 ‘팁’ 을 떼 가다가 걸리면 그렇게 되는 거니까, 모르면 좀 닥치고 지내자. 우리 업계 불문율이 용병들이랑 일 할 때도 통하는 줄 아는 새끼가 많네. ]

         

         “어우….”

         

         현실감각이 무디어진 넷 정키(Junkie) 겸 해커들의 피해사례가 우르르 쏟아졌다.

         이렇게까지 소문이 났다면 해커를 못 구하던 이유도 알 만하다. 아무리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하더라도 뻔히 보이는 위험인물들과 마주하기는 싫었겠지….

         

         하지만 나처럼 돈이 급하고, 어찌어찌 관계의 첫 단추를 잘 꿴 사람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얘기다. 수상할 정도로 호의적인 호레이쇼의 의중은 나중에라도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타닥…!

         

         “…좋아. 나머지 셋은 고용완료 됐으니…. 해커 아가씨? 블랙 마켓 ID를 알려주겠나? 신청 메시지에도 따로 적어 놓지 않았던데….”

         

         …아. 맞다.

         

         “만들어 주세요.”

         

         “……뭐라고?”

         

         한숨 돌린 브로커의 얼굴이 돌처럼 굳는다.

         다소…가 아니라 많이 뻔뻔한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다. 내 해킹 방식이 굉장히 특이한 이상, 흔적이 어떻게 남을지 모르니 정규 루트를 통해 해결하거나 구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제도를 따르는 게 맞다.

         

         “하베스트 플래닛에는 오늘이 처음이라 시민권 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블랙 마켓 ID 작성도 부탁한다고요. …수수료는 알아서 가져가시고.”

         

         “…그리고 마켓 ID는 모든 메트로폴리스 공용이지!! 내가 분명 숙련된 해커만 고용한다고 적어 놓지 않았나?! 씨발,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게 무슨 개수작이지…?”

         

         “…….”

         

         표현이 거칠긴 해도 틀린 말은 없었다. 이 도시의 해커 커뮤니티는 가입 1일차, 수행한 의뢰목록도 깨끗하고 블랙 마켓 ID도 없는 나를 믿을 요소도 전무했다.

         

         …그래서 뭐. 꼬우시면 다른 사람 구해 보시던가!  

         

         “그럼 하다못해 다른 관련분야 경력은 있겠지…? 전문분야나…??”

         

         “어…. 메가 코프랑 관련된 말 못할 경력은 있고 어비스 다이브도 가능해요.”

         

         “씨팔, 허풍은 세계 제일이네!! 그 반반한 면상으로 뭐든지 다 스리 슬쩍 넘어가면서 살아왔나?!”

         

         나름 최선을 다해 대답했는데 정말 단칼에 잘려 나갔다.

         해커에게 배정된 보수만 거의 천만 크레딧에 달하는 만큼 어지간하면 꼭 의뢰를 받고 싶었지만… 고용전까지는 모든 권한을 쥔 중개인이 이래서야 어쩔 수 없다.

         

         공짜 밥이나 축냈다고 생각하고 다른 기회를 노려야겠다.

         

         덥썩!

         우드득…!

         

         그런데 그때, 등부분의 초록색 문신이 인상적인 손이 나불대던 브로커의 턱주가리를 움켜쥐었다.

         

         “…우리 브로커 씨는… 이빨을 몇 개나 새로 심어야 말을 예쁘게 하실까…? 응?? 이 데어데블이 보증한 인재가 좆으로 보여? 응? 그게 아니면….”

         

         버둥거리는 브로커를, 데어데블 호레이쇼는 자기 눈앞까지 억지로 끌어당겼다.

         

         

         “혹시 내가 좆으로 보인 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독자분께서… 무려 55코인을 후원해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연재주기에 관한 확실한 공지를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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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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