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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드래곤은 오만하고 탐욕적인 존재다.

       

       다만 처음부터 드래곤이 오만하고 탐욕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드래곤이 두 신에 의해 세계의 조율자가 되었을 때, 오히려 드래곤에게 주어진 감정은 사명감이었다.

       

       목표를 완수해야만 한다는 사명감.

       그 사명감으로 신에게서 탄생한 두 드래곤은 세계를 조율해왔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

       그 세월이 수십, 수백, 수천 만년이 흐르자, 드래곤은 스스로의 감정에 지쳐갔다.

       

       그 어떠한 욕심도 부리지 못하는 자신들에게, 회의감을 느꼈다.

       

       그렇기에 그들이 만들어낸 분체, 혹은 자식은.

       세계의 조율자였던 드래곤들과는 정 반대의 성질을 지니게 되었다.

       

       한없이 쾌락주의적이고, 이기적이며, 탐욕적이다.

       

       그렇기에 모든 생물들은 본능적으로 드래곤을 두려워했다. 드래곤이 지닌 악한 성향이 두려웠으니까. 돌발적이고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이들이 두려웠으니까.

       

       그런데…….

       

       [얘네는 왜 이렇게 다가오는 거지….]

       

       레힐리스 아트레이나.

       가장 사납고 포악적인 레드 드래곤인 그녀는, 자신의 발치에 다가온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드래곤의 위엄이 땅바닥으로 추락한 것 같다고.

       

       감히, 하찮은 미물 주제에 자신의 발치에 머리를 비비다니?

       

       아주 단단히 혼내줘야할 것 같았다.

       레힐리스는 손으로 토끼를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토끼의 눈높이가 레힐리스와 비슷해졌다.

       

       빵긋.

       

       눈이 마주치자마자 웃는 토끼.

       

       레힐리스는 본능적으로 토끼를 꼬옥 끌어안았다. 비록 엄청나게 작아서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조그맣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더욱 소중했다.

       

       [그러고 보니.]

       

       토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점점 자신을 둘러싸는 동물들이 늘어나는 걸 느끼고 있으니, 문득 한 뱀이 생각났다.

       

       무척이나 커다랗고.

       드래곤인 그녀 보다도 훨씬 더 강한 뱀을.

       

       [요르문간드.]

       

       처음 인상은 엄청 무서웠다.

       묵빛의 검은 비늘이 마치 철갑 같아서 피 한 방울 안 흐를 거 같은 느낌이었고, 푸른 눈동자도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느낌이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자신과는 비교도 안되는 압도적인 크기가 신기했다.

       

       분명 드래곤인 자신도 매우 크다.

       폴리모프를 할 수 있는 탓에 정확한 크기를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본체는 수십 미터를 족히 넘는다.

       

       그런데 그런 크기도 요르문간드에 비하면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숫자로 크기를 세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요르문간드는 엄청 거대했으니까.

       

       솔직히 그가 자신을 잡아먹고자 한다면, 한입에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해보였다.

       

       그래서 그의 격을 마주했을 때.

       레힐리시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그야 저런 포식자가 자신을 가만 둘 리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자신이 먼저 나타나 시비를 걸기도 했다.

       

       만약 그녀였다면 무사히 돌려보내주더라도, 아주 제대로 혼쭐을 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기절한 자신을 레어로 데려와 보살펴주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선물을 주기까지.

       

       [흐흠~]

       

       레힐리스는 묵빛의 비늘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엄청 매끈하고, 단단하고, 또 시원하다.

       

       거기다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 수집품으로 삼기에도 딱 안성맞춤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비늘을 쓰다듬다가, 이내 레어의 가장 깊숙한 곳에 고히 올려두었다.

       

       묵빛의 비늘이 황금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니, 그 누가 봐도 진귀한 보물로 보였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레어에 몸을 둥글게 말아 누웠다. 차가운 바닥이 레힐리스를 감쌌으나, 그런 한기 따위는 드래곤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동물들이 옆으로 다가와 그녀의 몸에 기대니, 자그마한 온기들로 그녀의 몸이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잠이라도 잘 요령이었다.

       

       [……?]

       

       동물들이 그녀의 레어로 들어왔다.

       그 정도라면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수가 달랐다.

       수많은 각양각색의 동물들이 그녀가 사는 동굴로 다급하게 뛰어들었다.

       

       숨을 어찌나 헐떡이는 지, 저러다 숨 넘어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

       

       그녀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동물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급하게 선두로 달려온 다람쥐가,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와 귓가에 속삭였다.

       

       낯선 침입자가 있다고.

       그리고 그 침입자가 숲을 모두 파괴하며,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감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감히 드래곤인 자신이 있는 보금자리를, 멋대로 쳐들어와 파괴한다고?

       

       용납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화나게 하는 것은, 간간히 보이는 동물들이 입은 상처였다.

       

       그리 깊지는 않지만, 매우 아플 것이 분명한 상처들.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레힐리스가 눈을 감으며 집중하자, 순식간에 반경 수 킬로미터가 그녀의 범위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대한 묵빛의 대검을 치켜들며, 숲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는 인간을 찾아낼 수 있었다.

       

       레힐리스의 눈이 고요히 불타오른다.

       

       […….]

       

       그녀가 마법진을 그리는 것과 동시에, 레힐리스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용사.

       

       여신의 선택을 받아 힘을 얻은 고결한 이들.

       

       그들은 압도적인 강함을 지니며, 마계에서 넘어온 적들을 처단하기 위해 싸우는 용감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과연 모든 용사들이 고결할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람들을 구하러 다닐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그렇지 않다.

       인간은 수많은 성향을 지닌 이들로 이루어져있고, 그건 인간인 용사들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오히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구해주는 용사는 무척이나 드물었다. 대부분의 용사가 자신이 강해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설령 다른 이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그건.

       

       탐욕의 용사, 델티안.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숲은 정기가 넘친단 말이지….”

       

       그는 최근 새로 찾은 숲을 탐험하는 중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더러운 걸로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숲.

       

       주변을 둘러보면 자그마한 동물들이 평화로히 돌아다니고 있고, 적절히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따스한 풍광이 주변을 장식했다.

       

       마치 꿈만 같은 장소였다.

       인간의 탐욕이 묻어나지 않은, 한없이 순수하고 깨끗한 장소라고 할까.

       

       그렇기에.

       

       “마음에 안 들어.”

       

       델티안의 심기를 건들였다.

       그는 맑고 순수한 것을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모든 것들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부수고, 혼란으로 어지럽혀진 광경을 좋아했다.

       

       그는 탐욕의 용사.

       탐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면 추구할 수록 더욱 강해지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이런 깨끗한 숲은 그의 파괴 욕구를 자극했다.

       

       “망설일 필요가 있나?”

       

       그의 손아귀에서 묵빛의 검이 빛난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쳐죽이며, 피를 머금어 마검으로 재탄생한 녀석이었다.

       

       녀석이 파르르 떨리며 울부짖는다.

       

       마검은 사용자의 수명을 갉아먹기에, 끔찍한 검이지만.

       

       델티안에게 알 바는 아니었다.

       그의 마검은, 사용자의 수명을 먹는 검 따위가 아니었기에.

       

       “오냐, 네놈도 피가 부족하구나.”

       

       피를 머금어 마검으로 재탄생했기에, 마검이 요구하는 것 또한 피였다.

       

       온몸을 흥건히 물들이게 만드는 엄청난 양의 피.

       

       그를 위해서, 델티안은 검을 휘둘렀다.

       

       핏빛의 참격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콰아아앙!!

       

       숲이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한없이 푸르고 높던 나무들이 박살나 바닥을 뒹굴고, 평화롭게 돌아다니던 동물들이 참격에 휩쓸려 갈래갈래 찢어진다.

       

       “하하하!! 이거지!”

       

       델티안은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붉은 참격이 숲을 휩쓸 때마다, 숲에 가득하던 정기가 피처럼 끈적하게 물들고, 죽음의 기운으로 숲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죽음의 냄새.

       그를 맡으며 델티안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지금이다.

       이럴 때마다, 델티안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숲을 파괴하고, 보이는 동물들을 모조리 참살했다. 그렇게 숲으로 점점 깊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깊은 곳에, 그가 그토록 바라는 강한 존재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 강한 상대.

       

       더 많은 학살.

       

       오직 그를 위해 델티안은 더 깊은 숲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그의 발치에 한 동물이 보인다.

       

       나무에 깔린 다람쥐.

       몸이 껴서 그런지,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이 하찮다.

       

       “살고 싶나?”

       

       델티안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다람쥐에게서 느껴지는 공포.

       델티안은 그 찐득한 두려움을 음미하다가.

       

       “싫은데?”

       

       검을 휘둘렀다.

       커다란 대검이 다람쥐를 참살하려는 순간.

       

       [그만.]

       

       어디선가 쏘아진 마법이 그의 몸을 휩쓸었다.

       

       콰아아앙!

       

       순식간에 날아간 그의 몸이 나무를 몇개나 처박고 나서야 멈춰섰다.

       

       델티안은 나무에 처박힌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당장, 숲에서 꺼져라.]

       

       “하핫.”

       

       그가 그토록 바라던.

       커다랗고 거대한 목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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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I Became Jormungandr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속 요르문간드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A d-dragon!!" "We must offer a sacrifice!" "A dragon devouring the kingdom! I, Asgard the hero, have come to slay you!" I'm not a dragon,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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