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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도마뱀을 위해 새로 마련된 격리실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조그마한 도마뱀이 신나게 박수를 치며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재미있었다.

    나는 도마뱀의 멋진 연주에 짝짝 박수를 쳤다.

    도마뱀의 연주에는 절로 박수를 치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서, 어디 광장 하나 빌려서 연주를 시키면 도마뱀의 조건인 [만 명에게 동시에 기립 박수를 받는다.]를 순식간에 만족시키지 않을까?

    도마뱀이 격리된 별실을 나와서 내 격리실에 들어가자, 은은하게 울리는 TV소리와 고롱거리며 쌔근쌔근 잠든 아기 고양이 한마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이번 사건에서는 오브젝트 친구 2명을 얻을 수 있었다.

    1명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정말 힘들게 찾아냈는데, 도마뱀이 여기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조금 슬플 뻔 했다.

    TV에서는 요즘 핫한 사건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국립 오브젝트 관리 협회에서 벌어진 뇌물 수수 혐의 등의 용의로 고발된 오무룡 협회장은 나이와 지병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 탐정이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인해 난리가 난 것이다.

    중앙 연구소, 국립 오브젝트 관리 협회 비리 사건.

    사실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귀가 솔깃할 만한 소리가 들려와서 관심 있게 뉴스를 체크하는 중이다.

    1년여 전의 테러 사건.

    서울 연구소 테러사건의 배후가 저 ‘오브젝트 관리 협회’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당시 ‘귀여운 강아지’는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할 만큼 ‘돈이 되는’ 오브젝트였었다.

    그때 서울 연구소 소장은 뇌물 따위 절대 안 주고 버티다가 협회 눈밖에 나버렸고, 테러와 여론 악화 그리고 본인의 실종으로 결국 ‘귀여운 강아지’는 협회 측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협회는 그 강아지를 이용해서 뒷돈을 잔뜩 받아먹었고 말이다.

    어찌 보면 내 인간시절의 원수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딱히 복수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붕괴하고 있었다.

    중앙 연구소 사유화.

    의도적인 사설 연구소 난립 유도.

    돈 받고 오브젝트를 팔아치움.

    고위험등급 오브젝트 격리 지원금 착복.

    안 한 비리를 찾는 편이 더 많을 정도로 너무 많은 비리가 적발되어 협회는 망하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이 정도 큰 건이 재판으로 시간을 질질 끌다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을까? 

    아무리 망해가는 나라라도 그런 일은 없겠지. 

    ***

    콕콕하고 볼을 찌르는 느낌에 눈을 뜨자 안녕! 하고 예린이 밝은 얼굴로 인사해왔다.

    “사신아 안녕?”

    하지만 나는 인상을 쓰면서 그 인사를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예린은 내 찡그린 표정을 보자 내 볼을 주물주물하면서 말했다.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 있었다. 

    아주 큰 일이었다.

    예린의 어깨 위에 조그마한 검은 나비가 한 마리. 

    중앙 연구소에 있던 그 무서운 나비가 있었다.

    어깨 위의 나비를 손바닥으로 톡톡 치자, 파닥파닥하고 도망가는 나비.

    “뭐야? 진짜 무슨 일 있는 거야?”

    내가 어깨를 살짝 건들자, 예린이도 웃으면서 내 등을 토닥토닥 해줬다.

    위험한 녀석이니만큼 파괴해야 했지만, 파괴 조건이 또 당장 해결하기 어려워보였다.

    [검은 거울을 부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린이 중앙 연구소에 있던 검은 나비를 달고 온 것이 우연 같지는 않았다.

    같이 TV보자며 부르는 예린을 무시하고 격리실 밖으로 나가자, 내 예상대로의 풍경이 나를 반겨준 것이다.

    펄럭거리며 날아다니는 검은 나비들이 연구소 복도를 잔뜩 날아다니고 있었다.

    ***

    요즘 연구소의 분위기가 좋았다.

    그 이유가 뭐냐고? 사신이가 아침마다 사람들을 응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문 앞에 서서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정문을 통과하는 사람을 손바닥으로 토닥이면서 격려해주는 것이었다.

    출근의 활력소라고 할 만했다.

    어떤 사람은 한번, 많은 사람은 다섯 번까지 토닥여주는데, 아직도 기준은 불명이었다.

    “심심해.”

    하지만 아침 시간이 지나면 회색 사신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덕분에 나는 사신이랑 TV도 못 보고 업무의 연속….

    물론 사신이 사라질 때마다 수색 작업을 하는 보안팀보다야 낫겠지만.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람.

    “…”

    “그렇게 심심하면 조금 있다가 1층에 방문자가 견학하러 온다는데, 가서 견학이나 시켜주고 와.”

    심심함에 몸부림치고 있으니 김중뢰 선배가 일거리를 하나 던져주고 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을 천천히 하는 건데.

    견학하러 온다는 사람을 기다리려고 연구소 로비에 서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회초리를 휘두르는 소리? 바람이 쉴 새 없이 갈라지는 소리가 연구소 정문에서 들려왔다.

    “야, 저거 미친 사람 아니야?”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정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점점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커져만 갔다.

    ‘저게 뭐하는 짓이야?’

    정문을 통과한 사람을 시야에 넣자, 그 모든 소리와 소란이 이해되었다.

    광인이 나타났다!

    깔끔한 노란 양복을 갖춰 입은 남자가 파리채로 만든 쌍절곤을 들고 끊임없이 자기 몸을 때리고 있었다.

    “오예린 연구원님? 계십니까?”

    태연한 표정의 남자는 예린을 찾기 시작했다.

    절대로, 절대로! 아는 척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제가 오예린이에요.’ 라고 나서자 남자는 ‘안녕하십니까.’ 하고 정중한 인사를 돌려줬는데, 굉장히 정중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인사였다.

    부담스러운 파리채만 없었다면 말이다.

    “그… 저기…”

    “하하. 파리채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생각을 돌리려고 해도 신경을 안 쓸 수 없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 견학 신청을 하셨다고요?”

    “사실 견학 신청을 하기는 했지만,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닙니다.”

    “네?”

    “사건 관련으로 협조 요청을 여러 번 보냈지만, 아무리 보내도 답신이 없어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올린 남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색 사신이 사건 해결에 필요합니다. 협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파리채에 정신이 팔려서 몰랐지만, 지금 보니 이 사람 유명인이잖아.

    노란탐정이라고 유명해진 남자였다.

    이런 유명한 사람의 협조 요청은 왜 무시한 거야? 세희 언니인가? 또 메일 확인 안한 건 아니겠지?

    이런 협조 요청은 세희 언니가 처리해야 하니까, 소장실로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할 때 퍼억 하는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탐정의 등을 무언가가 가격해서 넘어트린 것이었다.

    그 쓰러진 탐정의 뒤편에는 회색 사신이 있었고, 쓰러진 탐정을 사정없이 걷어차고 있었다.

    ***

    사태는 심각했다. 

    송파구 싱크홀에서부터 연구 단지까지 검은 나비가 잔뜩 있었다. 

    중앙 연구소에서 죽은 남자처럼 나비가 잔뜩 달라붙은 사람이 눈에 띄진 않았지만, 내가 뭐 천리안을 가진 오브젝트도 아니고 어딘가에는 분명 희생자가 나오고 있을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무리 살펴보아도 특별히 나비가 많거나, 나비가 흘러나오는 곳처럼 느껴지는 곳이 없었다.

    아침마다 세희 연구소 방역활동을 하고 나서, 저녁까지 돌아다니면서 나비의 근원을 찾고 있는데 도통 근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거기겠지?’

    사실 의심 가는 장소는 있었다.

    아귀가 빨려 들어간 깊은 싱크홀. 

    그 곳에 나비들의 원인이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넓은 곳을 뒤지려면 하루 이틀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찾을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중앙 연구소에 있을 때도 못 찾았는데, 지금 찾는다? 무리수다.

    오늘은 일찌감치 돌아가서 쉴까하고 돌아간 세희 연구소는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내가 차근차근 몰아냈던 검은 나비의 떼가 잔뜩 몰려들어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붙은 나비 말고도 보일 때마다 틈틈이 쫓아내서 세희 연구소는 나비 청정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그 어느 곳보다도 나비가 잔뜩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확인해보니, 문제의 원인은 연구소 로비에 있었다.

    중앙 연구소에서 죽었던 사람만큼이나 나비를 잔뜩 매달고 있는 사람이 연구소 로비에 있던 것이다.

    얼마나 나비가 많은지, 로비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람 살리는 셈치고 드롭킥을 먹여주었다.

    물론 세희 연구소에 나비를 퍼트린 끝없는 원한도 같이 담아서 말이다.

    그 충격에 검은 나비가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는 것은 꽤 장관이었다.

    ***

    나는 깜짝 놀라, 사신이에게 달려갔다.

    “사신아 그만해!”

    이유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가득 실린 발차기를 먹이고 있던 사신이를 떼어 놓자, 탐정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

    “없군! 없어! 사라졌어! 잔뜩 붙어있던 오브젝트가!”

    뭔가를 찾는 듯이 두리번거리던 탐정은 갑자기 크게 포효했다.

    “오오오오오오!”

    “살았다!”

    사신에게 사정없이 맞던 탐정은 불평을 하지 않고, 오히려 대단히 기뻐하고 있었다.

    파리채를 집어던지며 포효를 하는 꼴을 보니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사신이가 너무 세게 차서 정신이 나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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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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