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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분명 이름은 티타노보아다.

         

        내가 사냥했던 사권의 고수와 같은 이름, 같은 종이었다.

         

        그러나 그 크기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야생의 눈으로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저 종은 최대 15m까지 자란다. 그러나 저 녀석은 그 크기조차 아득히 넘었다.

         

        전설 속에나 나올 거 같은 이무기라는 표현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사아아아!”

         

        녀석이 혀를 날름거리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온몸이 떨린다.

         

        저 녀석은 카이만보다 더 위험한 녀석이다.

         

        심지어 이곳은 물가도 아니니, 녀석에게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도 없었다.

         

        “네가 저 작은 뱀에게 사용한 무공은 소림의 것이다.”

         

        백연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몇 번이나 했던 진부한 설명이었다.

         

        지금은 그걸 들을 상황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으면 사이좋게 저 뱀에게 먹히고 말 거다.

         

        백연영의 손가락을 잡고 끌어당겼다.

         

        “겍…!”

         

        이 사람아.

         

        뭐 하고 있어!

         

        바로 도망가도 모자를 상황에.

         

        “본녀는 소림의 무공을 좋아하지 않는다. 뭐만 하면 불살이라고 하니 좋아할 수가 없지 않으냐.”

         

        …그래.

         

        그거다.

         

        두꺼비와 거북이가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처럼, 이 여자도 공포에 몸이 얼어붙은 게 분명하다.

         

        텁.

         

        날카로운 이빨로 손가락을 마구 깨물었다.

         

        사람.

         

        그것도 처음 만난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 걸 볼 순 없었다.

         

        어떻게든 함께 도망쳐야 한다.

         

        “본녀를 걱정하는 게냐. 갸륵한지고.”

         

        백연영은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걸었다.

         

        내가 있는 곳이 아닌, 이무기의 방향으로.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다.

         

        그냥 걷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쿠구구구궁!

         

        천지가 개벽하기 시작했다.

         

        공기가 짓눌린다.

         

        심후한 내공이 내 몸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압도적인 힘에 전율감이 느껴졌다.

         

        …이게 백연영의 힘이라고?

         

        “소림의 모든 무공이 불살 기조를 띠었다면,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다.”

         

        백연영은 벽화를 어루만졌다.

         

        내가 보고 따라 했던 그 무공이 있는 부분이었다.

         

        “소림의 것이지만 패도적이다.”

         

        백연영은 자세를 잡았다.

         

        기운에 압도당하던 이무기가 정신을 차리고 공격적인 소리를 내었다.

         

        “사아아악!”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뱀의 커다란 아가리가 백연영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손끝을 세운 채 가만히 기다릴 뿐이었다.

         

        시선조차 뱀을 보고 있지 않았다.

         

        “소림의 무공은 곡선을 그리는 법이다. 땡중의 무공이란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콰가가각!

         

        “이게 내가 소림의 것을 싫어하는 이유다.”

         

        뱀의 이빨이 그녀를 삼키기 위해 날아들었다.

         

        백연영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달싹였다.

         

        “그러나 용조수만은 예외니라.”

         

        하얀 손끝이 움직였다.

         

        점에서 점으로.

         

        저명한 화가가 붓으로 단박에 선을 긋듯, 그녀의 손끝이 뱀의 아가리와 맞붙었다.

         

        쩌어어어엉!

         

        뱀의 수많은 이빨이 그대로 부서졌다.

         

        “용의 발톱과도 같은 무공이다. 그 고고한척하는 땡중들이 직선을 그린다.”

         

        백연영은 찔러 넣었던 손을 다시 회수했다.

         

        쩌어어엉!

         

        회수함과 동시에 뱀의 대가리를 땅에 처박게 했다.

         

        “서른여섯 개의 초식 하나하나가 전부 살초지.”

         

        쩌저저적!

         

        그 압도적인 힘에 동굴의 바닥이 갈라졌다.

         

        “이 녀석이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담아두거라.”

         

        이무기는 금세 머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빨이 박살 나고 대가리를 땅에 박았음에도 아직 여력은 남아 있었다.

         

        뱀이 남아 있는 이빨로 어떻게든 물기 위해 다시 한번 달려들었다.

         

        “수와 장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느냐.”

         

        쩡!

         

        그녀는 손바닥으로 뱀의 턱을 가격했다.

         

        “날을 쓰면 수고 손바닥을 쓰면 장이다. 그렇게 와전되었지만, 그게 아니다.”

         

        쩌저적!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의 주먹질이 날아들었다.

         

        쩌어어억!

         

        “자고로 수란 장, 지, 권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직선이었다.

         

        하나하나가 적을 죽이겠다는 살의가 담긴 살초였다.

         

        콰득.

         

        소림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잔혹한 초식이었다.

         

        쩌엉!

         

        이무기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럼에도 백연영의 몸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 보고 있었다.

         

        “어떠냐. 소림의 것이지만 참으로 패도적이지 않느냐?”

         

        커다란 하얀 뱀은 이제 붉은 뱀이라고 해도 좋을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신체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고 날카롭던 이빨도 모조리 빠져버렸다.

         

        “너의 몸으로 펼칠 수 있는 무공을 고르자면, 이 용조수가 제격일 거다. 네 녀석도 그걸 알기에 작은 뱀에게 사용한 거 아니겠느냐.”

         

        그런 거 몰랐다.

         

        그냥 손으로 펼치는 무공이길래 따라 했던 것뿐이다.

         

        이무기의 몸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어떠냐. 눈에 잘 새겼느냐?”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헛것을 보고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분명 그리 강해 보이지 않던 여성이었다.

         

        끽해봐야 삼류 무사인 줄 알았다.

         

        내게 무공을 가르치는 모습이 참으로 어색했으니까.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 따위가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게 가르치질 못한 거다. 천재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는 법이니까.

         

        “본녀가 용조수는 잘 사용하지 않아 실수하지 않았나 걱정되는구나.”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실수가 걱정된다고?

         

        저 커다란 뱀을 저런 꼴로 만들어 놓고?

         

        실제로 실수했더라도 누가 감히 그렇다고 말할까.

         

        “…겍겍.”

         

        배를 만져도 뭐라고 하지 않을게요.

         

        “껙….”

         

        그때였다.

         

        구오오오오.

         

        이무기의 몸에서 강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꾸득.

         

        꾸드드득.

         

        커다란 알과 같은 막이 만들어졌다.

         

        본능적으로 저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진화다.

         

        “게에엑!”

         

        나는 급하게 그 사실을 백연영에게 전하려 했다.

         

        저 정도 괴수가 진화를 한다면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저거 안 부수면 큰일 나.

         

        …나는 못 부수니까 네가 해줘.

         

        “살살한 보람이 있구나. 더 보여줄 수 있겠어.”

         

        뭐라고?

         

        백연영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하얀 뱀을 기다렸다.

         

        쩌적.

         

        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놈이 부화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다섯 개 달린 거대한 하얀 뱀이었다.

         

        [감정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이 여자를 봤을 때와 똑같은 문구가 나왔다.

         

        내 알량한 지식으로 감히 판단해 보자면, 저 녀석은 신화 속에나 나오는 히드라. 혹은 야마타노 오로치 같은 존재일 거다. 거대한 다섯 개의 대가리가 그걸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내가 아는 그 녀석이 맞다면, 단순히 목을 자르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아무리 이 여자가 강하더라도 대처법 없이 이 녀석과 싸우는 건 위험한 일이다.

         

        “껙껙!”

         

        이미 늦었으니, 도망가는 게 상책일 거다.

         

        이 여자라면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을 거다.

         

        …물론 날 데리고.

         

        백연영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작은 도마뱀아.”

         

        백연영은 손가락을 빼낸 후, 내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무공이란 건 그에 맞는 심법을 익혀야지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런 설명을 들을 때가 아니었다.

         

        아직 움직이지 않는 지금 공격을 해보던가, 아예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의 무림은 그걸 당연한 사실이라고 여기고 있다. 심법이 없다면 반쪽짜리 무공이고 심마에 빠질 수 있다는 소문이 있지.”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던 걸 멈췄다.

         

        알을 깨고 나오는 뱀을 직시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뚜벅.

         

        쿠우우웅.

         

        뚜벅.

         

        콰아아앙!

         

        엄청난 내공이 공간을 장악하듯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구음신조라는 무공이 있다.”

         

        하지만 하얀 뱀은 그 정도는 우습다는 듯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진 거다.

         

        “다섯 손가락에 힘을 주어 수뇌를 잡아채라.”

         

        백연영은 손을 펼쳤다.

         

        “사람들은 이것이 옳은 구절이라고 하더군.”

         

        뚜벅.

         

        콰아아앙!

         

        다시 한 걸음.

         

        “그런데 말이다. 본녀는 구음진경을 읽어본 적이 없다.”

         

        뚜벅.

         

        콰아아앙!

         

        다섯 개의 아가리가 백연영을 노리고 쇄도했다.

         

        하나하나가 아까 상대했던 이무기 하나보다 강대했다.

         

        아무리 저 여자라고 해도 다섯 마리의 합공을 이겨내는 건 힘들 거 같다.

         

        백연영은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다섯 뱀의 공격을 피해냈다.

         

        “배운 게 없었다. 잡부의 딸로 태어났으니, 무얼 읽고 무얼 공부하겠나.”

         

        뚜벅.

         

        또 한 걸음.

         

        콰아아앙!

         

        “우연히 찾아낸 서적 하나. 구음진경이라 적혀 있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원본이 아니더구나.”

         

        뚜벅.

         

        콰아앙!

         

        “백골이 사방에 굴러다닌다. 옆집의 꼬마가 오대세가를 건드린 죄로 죽었다. 배가 고프다. 목이 마르다. 누군가의 한탄이 가득 찬 일기와도 같았다.”

         

        마침내 백연영이 하얀 뱀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그걸 구음진경이라 믿었다.”

         

        뱀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섯 머리가 동시에 그녀를 덮쳤다.

         

        하나 하나가 그녀의 목숨을 노릴 수 있는 위험한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해석을 달리했지.”

         

        피할 수 있는 곳이 단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사각이었다.

         

        “다섯 손가락으로 적의 머리를 부숴라.”

         

        뚜둑.

         

        손가락 한 마디 한 마디에 살의가 가득 담겼다. 그녀의 손은 용의 발톱과도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백연영은 그렇게 손을 휘둘렀다.

         

        그래.

         

        단지 휘둘렀을 뿐이다.

         

        퍼어어어엉!

         

        그와 동시에 뱀의 다섯 머리가 전부 터져 나갔다.

         

        피의 비가 내린다.

         

        “이것이 나의 구음신조(九陰神爪).”

         

        이번에도 그녀는 피에 젖지 않았다.

         

        피의 분수 사이에 고고히 서 있는 마의 모습은 내가 본 그 어떠한 풍경보다 아름다웠다.

         

        “아니, 구음백골조(九陰白骨爪).”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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