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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탁탁.

         

       “…제법 좋은데.”

         

       넓진 않으나 적당한 넓이의 마당.

       무성한 잔디와 벌레들.

       이끼를 비롯하여 나무넝쿨이 무성한 목제로 지어진 오두막.

         

       실상 귀신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으나, 이 또한 제법 감지덕지하다.

       무려 땅값이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학술원이거늘, 이토록 저렴한 자가(自家)를 구했으니까.

         

       비록.

         

       ‘귀신 나온다는 소문도 있고, 살인사건도 몇 번 있었고. 범죄자들 아지트란 소문도 있지만, 뭐, 상관없겠지.’

         

       불온한 소문이 잔뜩 난 오두막이었으나, 이한에겐 그다지 상관이 없다.

         

       귀신이 나온다면 두들겨 패면 되고.

       살인범이 찾아온다면 그 새끼도 두들겨 패고.

       범죄자들도 두들겨 패고.

         

       그러면 그만이 아닌가.

         

       그러니 이 집은 이한에게 있어 아주 귀한 집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뒷산에 절벽이 있다니…. 여긴 천국인가?”

         

       절벽 타기를 할 수 있다!

       그 사실이 못내 가슴을 고양시켜 이한은 더할 나위 없이 흐뭇했다.

         

       성공적인 ‘이사’가 아닐 수 없었다.

         

       * * *

         

       갑작스럽지만 그는 3년 만에 둥지를 옮겼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교관으로 취업한다는 건 앞으로 기사단이 아니라 왕립 학술원으로 출근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원래 살던 주거지에서 출근하고 싶어도 출근거리가 25km인 이상 이사는 필수가 되어야만 했다.

         

       …마음만 먹으면 운동 삼아 달릴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냥 차라리 이사를 하는 게 낫지.’

         

       물론 이사란 수단 말고도 기차도 있고 마차란 이동수단도 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 중세 판타지는 산업혁명은 안 일어났지만 기형적으로 발달한 수단이 많으니까.

       그러나 이 세상의 이동수단은 지극히 비싸다.

         

       서민이 한 달만 기차를 타고 다녀도 파산하지 않을까?

         

       그러니 차라리 이사를 하는 게 이득인 거다.

         

       물론 발품을 팔고 교관에겐 휴일과 같은 1주의 수강정정기간 동안 집을 알아보는 건 귀찮고도 아깝기 그지없지만, 이토록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았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

         

       쿠웅.

         

       “후우, 이걸로 끝인가?”

       “기사님, 이건 어디다 옮길까요.”

       “그냥 아무데나 놔둬요. 나중에 따로 정리할 테니까.”

       “넹!”

         

       깨질 물건을 제외한 것만 옮기게 하니 그녀는 실수하지 않고 짐을 잘 옮겨줬다.

       워낙 맹하여 언제 넘어질지 모르지만, 다행스럽게도 건강함과 힘만큼은 제법 높은 레이라였다.

         

       ‘…옷장이 저렇게 가볍게 들 수 있는 거였던가?’

         

       둘이서 들어야 할 것을 혼자 드는 그녀의 활약.

       새삼 생각하건데, 신은 제법 공평하다.

       어여쁜 외모와 건강을 주었지만, 지능 수치를 저토록 떨어트려 놨으니.

         

       “…공사장 데리고 가면 인기 많겠네.”

         

       특히 반장 아저씨들한테.

       저만한 특급 인력이 없다.

       물론 돈 떼어먹힐 우려가 있으니 데려가면 안 되겠지만.

         

       쿠우웅!

         

       “와아, 기사님! 힘 엄청 세시네요? 나무가 막 뽑혀요!”

       “뽑는 게 아니라, 그냥 부러트리는 겁니다.”

       “근데 멀쩡한 나무는 왜 부셔요?”

       “이 나무는 이미 죽은 나무인지라 놔두면 벌레 꼬여요.”

       “그렇구나! 그런데 맨손으로도 나무를 부러트릴 수 있는 거예요?”

       “단련하면 누구나 가능한 일입니다.”

       “와아! 저도 가능할까요?”

       “반년, 아니다 한 1년만 저 따라다니면 어떻게 될지도….”

         

       그녀의 타고난 근질을 봤을 때, 한 1년만 단련시킨다면 기사단의 쭉정이 녀석들 못지않은 실력자로 만들 수 있을지 않을까?

         

       ‘권사로 키우면 딱일 것 같은데?’

         

       머리는 모자라지만, 세계 여자 복싱의 패권을 차지할 인재를 발견한 복싱 관장마냥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때.

         

       “-미친 소리하고 자빠졌네. 제발 정상적인 대화를 해라.”

         

       누군가가 그들의 정신 나간 대화에 태클을 걸어주었다.

         

       “아, 왔냐.”

       “그래, 왔다, 이 미친 인간아.”

       “…보자마자 왜 시비야?”

       “네가 시비 걸게 하잖아.”

       “??”

       “…됐다, 내가 하프 트롤한테 무슨 소릴 하는지, 원.”

       “누가 하프 트롤이야!”

         

       …이 자식, 은근히 감이 좋다.

         

       제이크 파머.

         

       이한의 유일한 친구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젓고 있었다.

         

       * * *

         

       친구 이사를 축하하는 따스한 집들이 문화는 안타깝게도 팬드래건 왕국에 없다.

       도리어 이사를 하면 신전 소속 교회를 찾아가 축사를 부탁하며 기부금을 낸다면 믿겠는가?

         

       그리고 그 기부금 내다가 ‘파산하는 인간들’이 수도에 널렸다는 것이 형용할 수 없는 공포다.

         

       그렇기에 이한은 전생처럼 현생도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는 파산하고 싶지 않았으니.

         

       “너무 극단적인 예시야. 신전에 내는 성금은 성의에 불과하다고. 훗날 세상을 떠날 때 아발론에 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거지.”

       “됐어, 여기까지 와서 포교하지 마.”

       “…불신자 녀석.”

         

       왕국의 유일무이한 종교, <광명의 빛>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든 채 제이크는 성경의 구절 일부를 낭독했다.

         

       “전능하신 광명의 빛이시여, 광명이 빛을 따르는 칠대천사시여, 부디 불경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축복을 내려주시길, 아멘.”

       “불경한 죄인이 혹시 나를 말하는 거냐?”

       “그럼 누굴까.”

       “…그래, 참 고맙다.”

         

       반은 빈정거림이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이사한 친구를 위해 성경마저 낭독해주는 놈이 얼마나 되랴.

       고마운 친구다.

         

       “정말 고마우면 이 십자가를 구매해.”

       “이 사이비 놈이…?”

       “나도 그냥 주고 싶긴 한데, 무작정 베풀면 불행이 찾아온다고 하거든.”

       “…….”

         

       취소다, 고맙긴 개뿔.

       지하철역에서 대기하다가 호구 잡으면 부적 강매하는 잡상인 같은 놈.

         

       투덜대는 이한이었지만 그는 결국 은화 두 개를 튕겼다.

       호구라 산 것이 아니라, 은이 입혀진 십자가를 교회에 가져가면 훗날 신성력 치료를 저렴하게 받을 수 있기에 강매당하여 주는 것이다.

       아이템으로 따지면 희귀 등급은 뜰 만한 십자가.

         

       “중급 사제가 준 십자가니 아마 30% 할인까지 받을 수 있을 거다.”

       “됐고. 가지고 온 거나 내놔.”

       “급하긴.”

         

       제이크는 홍차 한 잔 주지 않느냐며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챙겨온 서신을 건넸다.

         

       정보길드에 의뢰한 정보.

       이한이 직접 구매할 수도 있었으나, 만약을 위해 위탁거래 하는 것이었다.

         

       “대공에 대한 정보는 워낙 꽁꽁 숨기고 있는지라 얼마 알아낸 건 없어. 공작도 마찬가지고. 적힌 거라곤 남들이 아는 것밖에 없을 거야.”

       “그거면 충분해.”

         

       자세한 정보를 원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아는 만큼, 혹시나 싶은 정보가 있을까 싶어 읽어보는 것이지.

         

       “…딱 기대한 정도네.”

         

       다행히도 돈이 아깝지는 않을 것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가격 값만 하는 정보.

       이를 읽고 난 후, 이한은 망설임도 없이.

         

       화르륵.

         

       “…금화 한 장이 불쏘시개가 되는군.”

       “시끄러.”

         

       서신을 불쏘시개 삼아 태우곤 이한은 심드렁하니 팔짱을 꼈다.

         

       “상당히 다 미친 인간들일세.”

       “불경하게.”

       “불경하긴 개뿔.”

         

       하나같이 다 사이코패스 같은 놈들이구먼.

         

       * * *

         

       갈라하드 공작.

       아내를 잃은 후부터 광증(狂症)이 생기고, 이로 인해 항상 범죄자를 고문하고 죽이는 데 심취한 극도로 위험한 인간.

       특히 갈라하드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마검을 계승하였고, 역대 공작 중 마검과의 적합율이 최고로 강력하다고 한다.

         

       결론, 불온하고도 위험천만한 살인귀 정신병자다.

         

       다음으로 라이오넬 대공.

       가문의 핏줄 특성상 아내가 많다.

       사자 무리마냥 프라이드(Pride)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갈라하드의 마검처럼 가문 대대로 이어져 오는 ‘신비’를 계승한 자이며, 이러한 신비 부작용 때문에 신분 가리지 않고 여자를 다 건드리다 시녀마저 건드린 인간.

       그런 주제에 건드린 여자와 태어난 아이를 책임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결론, 아랫도리 관리 못하는 강간범이자 무책임한 아동방임자다.

         

       “다만 하나같이 절세미남인지라, 여전히 귀족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라. 하! 얼굴만 잘생기면 살인이랑 강간을 해도 다 용서받나 보지?”

       “크흠.”

       “뭐, 권력이 엄청나니까 이런 것도 가능하나 보지 뭐.”

         

       로맨스 특.

       잘생기고 돈 많으면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다 무죄판결이다.

         

       …근데 전생도 좀 비슷했지 않던가?

         

       “하여튼 이놈의 더러운 외모지상주의.”

       “저는 기사님도 멋지다고 생각해요!”

       “…고마워요, 시녀님. 시녀님도 예뻐요.”

       “헤헤, 평소에도 많이 듣던 말이에요.”

       “저, 저는 어떻습니까, 시녀님?”

       “…어? 누구세요?”

       “…….”

         

       제이크는 진심으로 상처 입은 표정을 지었고, 레이라는 진심으로 제이크가 있는지 몰랐다며 멀뚱히 눈을 끔뻑거렸다.

         

       그게 더 상처인지도 모르고.

         

       허나 그런 두 남녀관계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이한은 고민에 빠졌다.

         

       그가 공작과 대공에 대한 정보를 얻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예로부터 장수를 죽이려면 말 모가지부터 따라고 했다.

       이한은 나름 옛 성현의 말을 잘 듣는 착실한 어른이었고, 로엔과 아이린에게 접촉하기 전에 그 주변 인물도 대충 알아보는 중이었다.

       한데 조사결과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물론 이 세상이 정말 로맨스 판타지라고 한다면, 사뭇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원래 로맨스 판타지 세상의 주역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망가진 놈들이니까.

         

       ‘자식들도 멀쩡하진 않을 것 같은데?’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이 말은 여기서도 통용될 것이며, 이한은 아이시스가 자신에게 ‘부탁’마저 한 것이 나름 납득이 되기 시작했다.

         

       ‘나 같아도 이딴 인간들 자식이 제 집 앞마당에 있으면 거슬리긴 하겠다.’

         

       본의 아니게 아이시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이한이었다.

         

       * * *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또 말해. 그리고…. 가능하면 권력자와는 멀리하는 게 좋아. 이건 기사나 귀족으로써 말하는 게 아니라, 친구로서 걱정돼서 말하는 거다.”

         

       얼씨구?

         

       어디서 연극이라도 보고 온 건지, 아니면 레이라 때문인지 폼 잡는 발언을 남기는 제이크는 유유히 발걸음을 돌렸다.

         

       뭐, 안타깝게도.

         

       “기사님, 저분 좀 이상한 분이신 것 같아요. 혹시 어디 불편하신 분이 아닐까요?”

       “…아니야, 그런 거.”

         

       레이라에겐 그냥 아픈 사람 취급밖에 못 받았지만.

       그래도.

         

       “이상한 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분 같아요. 기사님을 걱정해주는 게 보였어요!”

       “괜찮은 녀석이지.”

         

       제이크 녀석은 저래 봬도 몰락하긴 했지만, 제법 역사 깊은 가문의 자제다.

       억울한 사연으로 가문이 몰락하였다고 했던가.

       허나 그럼에도 왕실에 대한 충성심을 잊지 않았으며 가문의 대를 이어 기사단에 입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한과 같은 불량학생과 다른 모범생이 아닐 수 없다.

         

       한데 그런 녀석이 권력자와, -왕실과 멀어지라고 충고해준다.

       어찌 보면 자신의 충성심조차 억누르며 그를 위해주는 셈.

         

       놈은 충성심보다 의리를 중요시한 것이다.

         

       …희한한 일이다.

       전생에는 고아란 이유로 왕따만 당했고, 친구라 생각했던 녀석들은 뒤통수치기만 바빴는데.

       현생에 이르러 진심으로 나를 위해주는 녀석을 만난 거니까.

         

       “이번 생은 나름 잘 산 모양이다, 나도.”

       “네엥?”

       “그런 게 있습니다. 그보다 시녀님, 이제 슬슬 왕성으로 돌아가시죠? 저녁도 늦었는데.”

         

       다른 이라면 이한이 애써 말을 돌리려는 걸 알 테지만, 레이라에겐 그런 눈치는 없었다.

       워낙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착한 애니까.

         

       …보증 사기 먹어도 해맑을 것 같아서 불안스럽긴 하지만.

         

       그리고 그런 그녀가 특유의 아이 같은 해맑은 미소와 함께.

         

       “안 갈 건데요?”

       “…?”

       “저 앞으로 기사님이랑 같이 살 거예요. 왕녀님도 기사님을 잘 보살피라고 그러셨는걸요, 헤헤.”

       “…스읍, 그건 좀 아니다 싶지 않습니까?”

         

       남녀가 한 지붕 아래 사는 게 어떤 의민지 모르는 걸까?

       허나 그녀는 그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았다.

         

       “기사님은 안전하다고 왕녀님이 그러셨어요! 뭐라고 그러셨더라? 아아! ‘남자 구실 못하는 놈이니까 걱정할 거 없다’고 하셨어요!”

       “…….”

       “근데 남자구실이 뭐예요?”

       “…알 필요 없습니다.”

         

       잔혹한 것, 이런 식으로 자존심을 긁어?!

         

       ‘망할 아줌마, 다음에 만나면 두고 봐라.’

         

       이한은 다음을 기약하며 이를 갈고 있자니.

         

       쿵쿵.

         

       “어머, 손님이 오셨네요.”

       “잠시 뒤로 가 있으시죠.”

         

       낯선 냄새다.

       슬며시 풍겨오는 산수유의 향기.

         

       사람 특유의 체취를 귀신 같이 기억하는 이한의 감각이 낯설음을 느끼니, 그는 슬며시 문을 열었다.

       맨손이지만, 대략 맨손으로도 척추를 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 안녕하세요. 그, 여, 옆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굳힌 폴렌타(Polenta)를 돌리고 있어요, …어머? 이한 교관님 아니세요?”

       “…….”

       “이·렇·게 뵙게 되다니, 참 신기한 우·연이네요!”

       “음….”

         

       다른 건 모르겠고, 얘.

         

       ‘연기 더럽게 못하네.’

         

       이한은 그녀를 보았다.

         

       아이린 윈들러.

         

       그녀가, 감시대상 2호가 누가 봐도 수상한 모습으로 마당을 서성거렸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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