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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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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은 천재지변처럼 아무런 낌새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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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노아 오늘 저녁에는 미아님과 실험을 할 예정이라 같이 못 먹을 것 같아. 나는 미리 먹고 갈 테니까, 네가 배식해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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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멍한 표정으로 태연한 얼굴로 끔찍한 말을 입에 담는 리안을 바라보았다. 노아는 굳어버린 혀를 겨우 굴려 메마른 대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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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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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 밝게 웃어 보이고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노아는 리안이 사라진 자리를 텅 빈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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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맞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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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말했다. 제 몸은 쉽게 낫는다고 그다지 아프지 않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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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아, 괜찮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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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끝에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눈앞에 감옥 안에서 끌려 나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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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명과 비릿한 피 냄새가 머릿속을 마비시키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리안이 괜찮다고 말해도 노아에게 끔찍한 기억이 남아있는 이상 ‘그렇구나.’하고 넘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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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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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자신을 포함해 제 동생이 실험당하길 원하지 않았다. 동시에 리안이 끔찍한 실험을 당하는 것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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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 마음은 잔혹한 현실 앞에서 공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확인하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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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 -…실험이 잔혹하지 않은지, 리안이 정말 괴로워하지 않는 건지. 확인해보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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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리안과 그다지 오랜 시간 함께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꽤 의지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억지로 철이 든 노아와 달리 리안은 정말 어른처럼 그들을 챙겨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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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은연중에 리안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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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말대로 실험이 그다지 잔혹하지 않고, 리안 또한 그다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면 태어나 처음 맛본 안온한 평화 속에서 마음껏 웃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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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마음먹자마자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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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 혹시 오늘 저녁에 배식을 맡겨도 될까? 리안을 급하게 도와줘야 할 일이 생겨서.”
   “알았어. 배식만 해주면 되는 거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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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가 흔쾌히 배식 당번을 받아준 덕분에 노아는 저녁에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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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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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나는 먼저 가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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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 준비를 끝낸 리안이 주방을 떠나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노아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곤, 그가 떠나기 무섭게 피아를 찾아가 식사 준비가 끝났다는 걸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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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가 주방에 들어서는 걸 보곤 곧바로 리안이 걸어간 복도 쪽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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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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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왔어요.”
   “우선 거기 앉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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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도착했을 땐 리안이 실험실에 들어간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문이 살짝 열려있어 그 틈으로 실험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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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게..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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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마법사의 실험실은 생각한 것보다 더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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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봐도 불길해 보이는 검붉은 색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화덕, 흉측하게 생긴 마물의 부산물이 비쩍 마른 채 벽에 걸려있고 신선 마법이 걸려 있어 살아있는 것처럼 움찔거리며 녹색 피를 질질 흘려대는 고블린 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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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끔찍해 보이는 것들이 가득했다. 거기다 뭘 만들고 있는 건지 고약한 냄새까지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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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웅 -. 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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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실 쪽으로 내려갔던 미아가 돌아왔다. 그는 거대한 오크통에 든 걸 욕조에 부어버리더니 리안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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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준비는 다 끝났으니 실험을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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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안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미아가 익숙하게 리안의 팔을 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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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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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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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가,피가…붉은 피가 솟구쳤다. 미아는 익숙하다는 듯 실드로 쏟아지는 피를 막아내곤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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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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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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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그녀가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 꼴을 수없이 보았다고 해도, 항상 잔혹한 상황 앞에선 눈을 질끈 감거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했기에 직접적으로 잔혹한 장면을 본 적은 그다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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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이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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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자신만만하게 전혀 아프지 않다고 했던 실험이 이어진다. 그의 팔이 독으로 인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진물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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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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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라내야 할 것 같은 상처를 헤집자 핏물이 쏟아져 내린다. 핏물에 가려져 리안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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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이게 무슨 고통스럽..지 않은 실험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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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두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은 채 몸을 덜덜 떨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이다 못해 볼을 따라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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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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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를 헤집다 못해 뼈까지 부러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팔이 꺾여선 안될 방향으로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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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잔혹한 장면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자, 미아가 옆으로 이동한 듯, 그녀의 몸이 리안의 상처를 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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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당신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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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연한 대화는 노아의 귀에 닿지 않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귓속에 이명이 울려 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리안이 팔에 무언가를 꽂은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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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가졌던 팔은 어느새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잔혹한 실험이 꿈이 아니었다는 듯 그의 팔 위로 불긋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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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의 시선이 리안의 팔에 꽂힌 것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커다란 통에 붉은 피가 찰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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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어떻게 생긴 몸인 거지? 분명 온몸을 해부해봤는데도 알 수가 없어. 역시 머리를 열어봐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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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은연중에 미아를 잔혹한 흑마법사와 분리해서 보고 있었다. 그녀의 외모가 아름답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 머물 곳과 식사 따위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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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굶주리며 핍박받고 살아왔던 만큼, 의식주를 해결해준 미아를 은연중에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거라고 생각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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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해버렸기에 리안의 말을 믿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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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온몸을 해부해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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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리안의 몸에 새겨진 잔혹한 흔적들을 떠올렸다. 낙서처럼 보이기도 했던 흔적이 전부 미아의 손에서 일궈졌음을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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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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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엉엉 울다가 잔혹하게 살해당하거나, 정신병에 걸려 미쳐버리는 아이들에 비하면 확실히 노아는 이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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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나이대에 비해 이성적이지 결단코 그녀가 지혜로운 건 아니다. 지혜가 쌓이기엔 그녀는 너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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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난…아무것도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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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평화가 즐거움이 얼마나 끔찍한 희생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었는지 그녀는 너무 쉽게 잊고 있었다. 어쩐지 목이 졸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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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그럼 다음 실험을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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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실험을 한다는 말에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이상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다 못해 피를 토해낼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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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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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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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뛰지 않았음에도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 목구멍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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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하하하! 진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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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가에 웃음소리가 맴돈다. 리안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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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에는 이걸 해보는 건 어떨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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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나이대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모습이 눈앞에 잔상처럼 맴돈다. 노아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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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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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저런 끔찍한 실험을 자신 혹은 제 동생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 동시에 리안이 자신을 대신 희생해주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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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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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막히는 죄악감과 죄책감이 그녀의 명치를 두드렸다. 헛구역질을 해보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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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그녀의 걸음은 멈춰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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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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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탁하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은 손이 붉은 과즙으로 더럽혀진 것처럼 보였다. 노아는 제 손등을 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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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강하게 긁어 생채기가 생긴다. 붉은 자국 위에 눈물이 떨어졌다. 리안의 상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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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봐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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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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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마주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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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 선명하게 드러났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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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몸을 빙글 돌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심장이 거칠게 뛰고 속이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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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어느새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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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그음님, ***님!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작품 소개에 개그피폐(?)가 제대로 안담겨서 고민중입니다.

좀더 많은 분들이 개그피폐집착감금을 함께해주셨으면 좋겠는데…흑흑.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사건은 천재지변처럼 아무런 낌새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아, 노아 오늘 저녁에는 미아님과 실험을 할 예정이라 같이 못 먹을 것 같아. 나는 미리 먹고 갈 테니까, 네가 배식해줄 수 있어?”

노아는 멍한 표정으로 태연한 얼굴로 끔찍한 말을 입에 담는 리안을 바라보았다. 노아는 굳어버린 혀를 겨우 굴려 메마른 대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래.”

“고마워!”

그는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 밝게 웃어 보이고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노아는 리안이 사라진 자리를 텅 빈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게 맞는 거겠지?’

그는 말했다. 제 몸은 쉽게 낫는다고 그다지 아프지 않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맞아, 괜찮다고 했어.’

손끝에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눈앞에 감옥 안에서 끌려 나가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비명과 비릿한 피 냄새가 머릿속을 마비시키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리안이 괜찮다고 말해도 노아에게 끔찍한 기억이 남아있는 이상 ‘그렇구나.’하고 넘길 수 없었다.

‘…확인해보자.’

노아는 자신을 포함해 제 동생이 실험당하길 원하지 않았다. 동시에 리안이 끔찍한 실험을 당하는 것도 싫었다.

두 가지 마음은 잔혹한 현실 앞에서 공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확인하면 될 터였다.

‘리안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 -…실험이 잔혹하지 않은지, 리안이 정말 괴로워하지 않는 건지. 확인해보면 될 거야.’

노아는 리안과 그다지 오랜 시간 함께 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꽤 의지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억지로 철이 든 노아와 달리 리안은 정말 어른처럼 그들을 챙겨줬기 때문이다.

노아는 은연중에 리안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의 말대로 실험이 그다지 잔혹하지 않고, 리안 또한 그다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면 태어나 처음 맛본 안온한 평화 속에서 마음껏 웃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노아는 마음먹자마자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피아, 혹시 오늘 저녁에 배식을 맡겨도 될까? 리안을 급하게 도와줘야 할 일이 생겨서.”

“알았어. 배식만 해주면 되는 거지?”

“응.”

피아가 흔쾌히 배식 당번을 받아준 덕분에 노아는 저녁에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녁 시간.

“그럼 나는 먼저 가볼게.”

식사 준비를 끝낸 리안이 주방을 떠나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노아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음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곤, 그가 떠나기 무섭게 피아를 찾아가 식사 준비가 끝났다는 걸 알렸다.

피아가 주방에 들어서는 걸 보곤 곧바로 리안이 걸어간 복도 쪽으로 달렸다.

***

“저 왔어요.”

“우선 거기 앉아있어요.”

노아가 도착했을 땐 리안이 실험실에 들어간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문이 살짝 열려있어 그 틈으로 실험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저게..다 뭐야?’

흑마법사의 실험실은 생각한 것보다 더 끔찍했다.

딱 봐도 불길해 보이는 검붉은 색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화덕, 흉측하게 생긴 마물의 부산물이 비쩍 마른 채 벽에 걸려있고 신선 마법이 걸려 있어 살아있는 것처럼 움찔거리며 녹색 피를 질질 흘려대는 고블린 팔 등등.

온갖 끔찍해 보이는 것들이 가득했다. 거기다 뭘 만들고 있는 건지 고약한 냄새까지 나고 있었다.

후웅 -. 쿵! 쿵!

지하실 쪽으로 내려갔던 미아가 돌아왔다. 그는 거대한 오크통에 든 걸 욕조에 부어버리더니 리안에게 다가갔다.

“이제 준비는 다 끝났으니 실험을 시작하죠.”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안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미아가 익숙하게 리안의 팔을 그어버렸다.

“어..?”

푸슛!

피가,피가…붉은 피가 솟구쳤다. 미아는 익숙하다는 듯 실드로 쏟아지는 피를 막아내곤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손이… -…

‘아,아아 -…’

노아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아무리 그녀가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 꼴을 수없이 보았다고 해도, 항상 잔혹한 상황 앞에선 눈을 질끈 감거나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했기에 직접적으로 잔혹한 장면을 본 적은 그다지 없었다.

치이익 -.

리안이 자신만만하게 전혀 아프지 않다고 했던 실험이 이어진다. 그의 팔이 독으로 인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진물이 차오른다.

푸화악!

잘라내야 할 것 같은 상처를 헤집자 핏물이 쏟아져 내린다. 핏물에 가려져 리안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볼 수 없었다.

‘이게,이게 무슨 고통스럽..지 않은 실험이라는 거야?’

노아는 두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은 채 몸을 덜덜 떨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이다 못해 볼을 따라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우드득.

상처를 헤집다 못해 뼈까지 부러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팔이 꺾여선 안될 방향으로 꺾였다.

너무 잔혹한 장면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자, 미아가 옆으로 이동한 듯, 그녀의 몸이 리안의 상처를 가리고 있었다.

“…리안, 당신 혹시…”

태연한 대화는 노아의 귀에 닿지 않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귓속에 이명이 울려 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리안이 팔에 무언가를 꽂은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망가졌던 팔은 어느새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잔혹한 실험이 꿈이 아니었다는 듯 그의 팔 위로 불긋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노아의 시선이 리안의 팔에 꽂힌 것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커다란 통에 붉은 피가 찰랑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몸인 거지? 분명 온몸을 해부해봤는데도 알 수가 없어. 역시 머리를 열어봐야 하나?”

“…!”

노아는 은연중에 미아를 잔혹한 흑마법사와 분리해서 보고 있었다. 그녀의 외모가 아름답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 머물 곳과 식사 따위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굶주리며 핍박받고 살아왔던 만큼, 의식주를 해결해준 미아를 은연중에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거라고 생각해버렸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해버렸기에 리안의 말을 믿은 것일지도 모른다.

‘온…온몸을 해부해봤다고?’

노아는 리안의 몸에 새겨진 잔혹한 흔적들을 떠올렸다. 낙서처럼 보이기도 했던 흔적이 전부 미아의 손에서 일궈졌음을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똥오줌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엉엉 울다가 잔혹하게 살해당하거나, 정신병에 걸려 미쳐버리는 아이들에 비하면 확실히 노아는 이성적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나이대에 비해 이성적이지 결단코 그녀가 지혜로운 건 아니다. 지혜가 쌓이기엔 그녀는 너무 어렸다.

‘아무것도, 난…아무것도 몰랐어.’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평화가 즐거움이 얼마나 끔찍한 희생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었는지 그녀는 너무 쉽게 잊고 있었다. 어쩐지 목이 졸리는 것만 같았다.

“후, 그럼 다음 실험을 해볼게요.”

새로운 실험을 한다는 말에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더 이상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다 못해 피를 토해낼 것만 같았다.

그녀는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학,하악…”

얼마 뛰지 않았음에도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 목구멍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 푸하하하! 진짜? }

귓가에 웃음소리가 맴돈다. 리안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 다음에는 이걸 해보는 건 어떨까? }

그 나이대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모습이 눈앞에 잔상처럼 맴돈다. 노아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나는,나는…”

노아는 저런 끔찍한 실험을 자신 혹은 제 동생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 동시에 리안이 자신을 대신 희생해주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우욱…”

숨막히는 죄악감과 죄책감이 그녀의 명치를 두드렸다. 헛구역질을 해보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어느새 그녀의 걸음은 멈춰있었다.

“…”

그녀는 탁하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은 손이 붉은 과즙으로 더럽혀진 것처럼 보였다. 노아는 제 손등을 긁기 시작했다.

너무 강하게 긁어 생채기가 생긴다. 붉은 자국 위에 눈물이 떨어졌다. 리안의 상처가 떠올랐다.

“난….봐야해.”

노아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중얼거렸다.

“직접..마주해야 해.”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 선명하게 드러났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노아는 몸을 빙글 돌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심장이 거칠게 뛰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녀는 어느새 뛰고 있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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