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

   ​

    마법소녀 코믹북 축제.

    3킬로미터 바깥으로 날려졌던 비라는 30초만에 행사장으로 복귀했으나, 이미 에이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

    ‘망할─ 너무 오랜만이라 감이 다 죽었나?’

    ​

    애시당초 이런 곳에 온 게 잘못이었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고 접촉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경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 하도록 막는 것. 그게 불가능하다면 애시당초 그런 장소로 가면 안 됐다.

    ​

    실내에 들어오면 더더욱 안 되는 거였는데…… 어쩔 수 있나. 이미 일어진 일. 후회하고 반성하기보다 사건 수습이 먼저였다. 비라는 크게 호흡을 들이켜며 소리쳤다.

    ​

    “─아일레에에에에-!”

    ​

    그녀의 목소리가 행사장 안에 드넓게 울려퍼진다. 웬 여성이 대뜸 크게 소리를 내지르니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마구 집중된다. 그리 시선 돌린 오타쿠들은 그녀의 팔다리 피부색이 다른 걸 보고 눈을 내리깔았다. 

    ​

    소리 내지른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서 아일레가 뒤뚱뒤뚱 뛰어오기 시작했다. 구두를 신는 게 퍽 익숙치 않았는지 뛰어오는 게 무척이나 굼떴다. 비라는 그녀를 발견하곤 냅다 그녀 쪽으로 내달렸다.

    ​

    “어, 언니? 갑자기 왜…….”

    “에이트가 납치당했다. 범인은 순간이동 능력자야.”

    “네, 에……?”

    ​

    순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비라를 바라보던 아일레는 곧장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고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 무얼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 아마추어 특유의 어리숙함. 

    ​

    나름 프로였던 비라는 그런 아일레를 보며 곧장 명령을 내렸다.

    ​

    “어, 어떡하죠!?”

    “우선 너는 본부로 복귀해. 부르면 언제든지 뛰쳐나올 수 있도록. 갈름이나 레비탄한테도 이 소식 알리고. 내가 연락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네, 네에엣-!”

    “……보스한테는 일단 내가 연락할게. 가봐.”

    ​

    그렇게 아일레를 본부로 복귀시킨 비라는 꿀꺽 침을 삼키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보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한다는 건 알지만, 동시에 말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새록새록 샘솟았다.

    ​

    보스가 자신에게 과학자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맡긴 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거늘 호위에 실패하다니? 만일 프로일 때 이런 일을 당했더라면 곧장 경질당하고 평생 이 업계에 들어오지 못 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크나큰 실수였다.

    ​

    침을 꿀꺽 삼킨 비라는 조심스럽게 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이후, 보스가 전화를 받았다.

    ​

    [비라. 무슨 일이지?]

    “아가씨. 과학자가 납치당했습니다.”

    [……뭐?]

    “정말 면목 없습니다.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찾을 수 있겠나?]

    “─반드시. 제가 책임지고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돌아올 때는 두 사람 같이 여의 집무실로 올 수 있도록.]

    ​

    보스의 배려를 들은 비라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 뒤 통화를 종료했다. 이제부터 알아봐야 할 것은 에이트를 누가 납치했느냐와 그 목적이 무엇이느냐였다.

    ​

    다행히 이 행사장에 널리고 널린 것이 CCTV였으므로 관리실을 찾아가면 범인의 얼굴을 알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터…….

    ​

    ‘감히 악의 조직을 건드리다니.’

    ​

    대체 어떤 간땡이 부운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평화롭게 끝나지는 않으리라.

    자신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똑똑히 알게 해주리라.

    악의 조직을 건드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

    ​

    * * *

    ​

    ​

    수치스럽다.

    프로 복서가 고등학생한테 맞고 넉다운 당하면 이런 기분일까.

    악의 조직원으로서, 그것도 악의 조직 간부로서 납치를 당한 것은 그만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대강 보기에 날 납치한 녀석들이 그닥 전문가스럽지 않다는 점이 더더욱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

    “야, 이 아저씨 연락처 좀 봐라. 2개밖에 없는데?”

    “뭐? 어디 봐봐…… 와─ 진짜네. 보스랑 아일레라는 사람밖에 없어.”

    “그럼 이 아일레가 아까 팔짱끼고 있던 애인인가?”

    ​

    납치한 피해자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시덕거리는 모습이나, 본인들의 얼굴을 딱히 가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모습이나. 어딜 보아도 프로보단 아마추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해오기보다, 그냥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해왔다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

    “……물어볼 게 있는데.”

    “아저씨 간도 크네? 납치당한 주제에 납치범한테 질문도 하고.”

    “왜 하필 나지?”

    ​

    나는 납치범들을 둘러보며 그리 물었다. 보스의 정보 통제는 완벽했다. 내가 악의 조직 과학자라는 사실을 조직원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

    그러니까 내가 가진 지식을 노리고 나를 납치하지는 않았으리라.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납치범들은 대체 왜 나를 납치했단 말인가?

    ​

    그 대답은 금방 들을 수 있었다.

    ​

    “─아저씨가 눈에 띄었으니까.”

    “……뭐?”

    “아저씨. 비싼 차에서 내리더라? 거기에 그런 곳에서 여자나 끼고 다니고…… 오타쿠들 상대로 우월감 느끼는 음습한 취미라도 있는 거 같아서 아저씨로 정했지.”

    “아니, 그게 무슨.”

    “우리는 빌런이 될 거 거든.”

    ​

    납치범은 제 스스로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

    “유명한 빌런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쁜 짓을 하는 거야. 겸사겸사 부수익도 챙기면 좋고.”

    “……하, 하하하. 고작 그런 이유로 범죄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히어로도 할 일이 생기고 좋잖아? 그러니까 아저씨─ 돈 많아 보이던데 적선 좀 하지?”

    ​

    녀석은 그리 말하며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내가 이대로 경찰이나 히어로를 부르면 어쩌려고…… 고작 그 정도도 생각하지 못 하는 정박아는 아닌 모양이었고, 아마도 제 능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는 타입이리라.

    ​

    하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주겠다던 비라가 반응도 못 하고 그대로 날아가버렸을 정도의 능력 아닌가. 아마도 타임랙-제로의 순간이동 능력…….

    ​

    다른 녀석들도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빌런이 되는 것에 가담했을 정도로 질이 나쁜 녀석들인 데다가 순간이동 녀석이 동료로 삼을 정도로 쓸만한 능력을 가진 건 확실했다. 즉, 쓸데없이 저항하는 건 그닥 좋지 못한 행위였다.

    ​

    “……전화 해도 되지?”

    “얼마든지. 아, 스피커로.”

    “음-.”

    ​

    보스의 목소리를 듣고서 이들이 장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뭐,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나았다. 나는 보스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가 전화를 받았다.

    ​

    [과─.]

    “보스. 지금 납치범들 앞에 있습니다.”

    [……그런가. 알겠다. 뭘 원하지?]

    ​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납치범들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러자 납치범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더니 보스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우리가 돈이 좀 필요한데. 돈좀 주라.”

    [얼마나?]

    “많을 수록 좋은데…… 한 백만 달러 정도?”

    [계좌 부르게.]

    “시티 은행 7ET…….”

    ​

    납치범은 너무나 쉽게 돈을 보내주겠다는 보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심스레 제 계좌번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좌를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납치범은 제 휴대폰으로 돈이 입금되었음을 확인하곤 씨익 미소를 지었다.

    ​

    납치범이 바라는 대로 순순히 돈을 보내주는 건 최악의 수였다. 범죄심리학에서도 나오는 최악의 사례 중 하나. 과연 납치범 녀석은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

    “아- 이거 어쩌지?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부족한 거 같아.”

    [부족하다고? 좋네. 다시 보내주지.]

    “응?”

    ​

    그리고 다시 입금 소리.

    제 휴대폰을 확인하던 납치범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대체 얼마가 들어간 건지…….

    ​

    “어, 음-.”

    [왜? 이것도 부족한가? 더 필요해?]

    ​

    띠링-!

    납치범의 표정이 완전히 딱딱하게 굳는다.

    몇 번 입술을 곱씹어대던 녀석은 나를 슬쩍 바라보곤, 대충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

    “아- 알았다! 이거 사이버 머니 그런 거지!? 빌런들 속이려고 만든 가짜 돈! 이런 거에 안 속지! 현찰, 현찰로 가져와!”

    [어디로 보내면 되지?]

    “……G 시의 지하철 로커. 10번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로커 5번에.”

    [10분만 기다리지.]

    ​

    잠시 후, 현찰을 모두 준비했다는 말을 들은 납치범은 그대로 순간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현금이 가득 들어가 있는 가방을 들고서 돌아왔다.

    ​

    그리 돌아온 납치범은 살짝 떨리는 눈빛으로 가방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세요?”

    “일반인.”

    ​

    납치범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라리더니, 제 동료들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나는 방을 나선 납치범들을 노려보다가 조심스레 눈을 돌렸다.

    ​

    ‘─휴대폰을 두고 가?’

    ​

    슬쩍 휴대폰을 챙긴 나는 곧장 개조에 들어갔다. 이럴 때를 대비해 휴대폰을 업그레이드했었다. 그 대비가 드디어 효과를 발휘할 순간이었다.

    ​

    ​

    ​

    제 동료들을 데리고 방을 빠져나온 납치범은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동료들이 의아하다는 듯 납치범을 바라보았다.

    ​

    “야- 왜 그러는데?”

    “씨발, 씨이빌… 우리 좆된 거 같아….”

    “왜 그러냐니까?”

    ​

    납치범은 조심스럽게 제가 들고 온 돈가방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이게 다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들어가 있었다.

    ​

    그들이 평생 살아오면서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런 금액이.

    ​

    은행을 털고, 사람을 납치하고, 테러를 일으키고. 그런 빌런 짓으로는 도무지 손에 넣을 수 없는 거금을 눈앞에 두자, 이제 막 빌런이 되기로 결심한 아마추어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

    “아, 아니- 이거 구라지……?”

    “진짜야…… 심지어 내 계좌에도 똑같은 금액이 한 번 들어왔거든……?”

    “아니 씹…… 이거의 2배라고……?”

    ​

    개인에게서 뜯어낼 법한 금액이 아니라 어지간한 대기업, 혹은 국가 조직에서 운용할 법한 금액을 눈앞에 둔 납치범들은 자신들이 건드린 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

    이만한 금액을 아무렇지 않게 턱 내놓을 수 있는 상대라면, 아마도 그들을 체포하거나 죽이기 위해 히어로들을 무더기로 보내는 것도 가능할 터.

    ​

    아니, 어쩌면 이미 이 주변을 히어로들이 포위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

    “풀어, 풀어드려야 하는 거 아냐……?”

    “아니, 그냥 여기 내버려두고 튈까?”

    “그, 그러자! 이 돈이면 평생 놀고 먹어도 괜찮은 돈─.”

    ​

    “미안하지만, 그 돈은 놓고 가줬으면 하는데.”

    ​

    납치범들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그들이 납치한 에이트가 홀로 서 있었다. 

    ​

    그 모습을 본 납치범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아저씨. 살려줄 테니까 그냥 여기 계세요. 능력자도 아닌 주제에.”

    “음? 내가 무능력자라고 말했던가?”

    “얘 능력으로 알 수 있거든요? 아저씨가 능력자인지 아닌지. 그래서 납치한 것도 있고. 능력자면 무슨 능력을 가졌을지 모르니까.”

    “아하- 그렇구나.”

    ​

    무슨 능력을 갖고 있는지 몰랐던 마지막 공범의 능력까지 알게 된 에이트는 씨익 웃으며 제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버튼을 띡- 눌렀다.

    ​

    잠시 후, 휴대폰으로부터 불쾌한 소음이 울려퍼졌다. 납치범들은 삐이이-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

    “뭐 하는…….”

    “이제 능력은 쓰려고 하지 마. 몸이 터질 테니까.”

    “그게 무슨-.”

    “궁금하면 한 번 시도해보든가.”

    ​

    에이트의 말에 납치범은 헛웃음을 터트린 뒤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저 건방진 인질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은 뒤 이 거슬리는 소리를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

    그러나 순간이동을 시도한 그 순간, 납치범은 제 머리가 마구 울리는 걸 느끼며 토악질을 해댔다.

    ​

    “우웨에에엑-!”

    “그러길래 쓰지 말라니까.”

    ​

    에이트는 바닥에 엎드린 채 구토질 해대는 납치범을 보며 가볍게 미소지었다. 이 무식한 범죄자 애새끼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해주었다. 제 동료들이 찾아 올 시간을 끌어야했으니.

    ​

    “에밀리아 교수가 발표한 양자 공간 접힘 현상에 의거한 Space Control Techniques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지금부터 능력을 쓰는 놈은 죽는다.”

    ​

    물론 허세였다.

    다만, 눈앞에 있는 이 아마추어들에게 그 허세를 구별할 능력은 없는 듯 했다.

    에이트는 씨익 웃으며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퍼지는 휴대폰을 좌우로 흔들었다.

    ​

    날카로운 비프음과 납치범의 구역질 소리만이 가득 울려퍼지는 가운데, 시간이 충분히 흘렀다. 지폐 속에 감춰진 추적기 신호를 뒤쫓아서 동료들이 도착할 만치 충분한 시간이.

    ​

    “─과학자 씨!”

    ​

    콰아아앙-!

    건물의 윗부분을 완전히 날려버리며, 악의 마법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아드는 파편에 맞아 의식을 잃으며, 에이트는 아일레를 올려다보았다.

    ​

    ‘프랜들리 파이어…….’

    ​

    예나 지금이나,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건 아군 오사였다.

    그 아군이 공격 한 방에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초인이라면 더더욱…….

    잠시 후, 지상으로 내려온 아일레는 기절한 과학자를 보며 분노를 터트렸다.

    ​

    “과, 과학자 씨를 이런 꼴로…!”

    “아, 아니 그건 방금 당신이….”

    “용서 못 해-!”

    ​

    악의 마법소녀의 분노가 납치범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Duuww Rurd님 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매일 매일 더 재밌는 소설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