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코믹북 축제.
3킬로미터 바깥으로 날려졌던 비라는 30초만에 행사장으로 복귀했으나, 이미 에이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망할─ 너무 오랜만이라 감이 다 죽었나?’
애시당초 이런 곳에 온 게 잘못이었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고 접촉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경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 하도록 막는 것. 그게 불가능하다면 애시당초 그런 장소로 가면 안 됐다.
실내에 들어오면 더더욱 안 되는 거였는데…… 어쩔 수 있나. 이미 일어진 일. 후회하고 반성하기보다 사건 수습이 먼저였다. 비라는 크게 호흡을 들이켜며 소리쳤다.
“─아일레에에에에-!”
그녀의 목소리가 행사장 안에 드넓게 울려퍼진다. 웬 여성이 대뜸 크게 소리를 내지르니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마구 집중된다. 그리 시선 돌린 오타쿠들은 그녀의 팔다리 피부색이 다른 걸 보고 눈을 내리깔았다.
소리 내지른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서 아일레가 뒤뚱뒤뚱 뛰어오기 시작했다. 구두를 신는 게 퍽 익숙치 않았는지 뛰어오는 게 무척이나 굼떴다. 비라는 그녀를 발견하곤 냅다 그녀 쪽으로 내달렸다.
“어, 언니? 갑자기 왜…….”
“에이트가 납치당했다. 범인은 순간이동 능력자야.”
“네, 에……?”
순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비라를 바라보던 아일레는 곧장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고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 무얼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 아마추어 특유의 어리숙함.
나름 프로였던 비라는 그런 아일레를 보며 곧장 명령을 내렸다.
“어, 어떡하죠!?”
“우선 너는 본부로 복귀해. 부르면 언제든지 뛰쳐나올 수 있도록. 갈름이나 레비탄한테도 이 소식 알리고. 내가 연락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네, 네에엣-!”
“……보스한테는 일단 내가 연락할게. 가봐.”
그렇게 아일레를 본부로 복귀시킨 비라는 꿀꺽 침을 삼키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보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한다는 건 알지만, 동시에 말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새록새록 샘솟았다.
보스가 자신에게 과학자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맡긴 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거늘 호위에 실패하다니? 만일 프로일 때 이런 일을 당했더라면 곧장 경질당하고 평생 이 업계에 들어오지 못 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크나큰 실수였다.
침을 꿀꺽 삼킨 비라는 조심스럽게 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이후, 보스가 전화를 받았다.
[비라. 무슨 일이지?]
“아가씨. 과학자가 납치당했습니다.”
[……뭐?]
“정말 면목 없습니다.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찾을 수 있겠나?]
“─반드시. 제가 책임지고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돌아올 때는 두 사람 같이 여의 집무실로 올 수 있도록.]
보스의 배려를 들은 비라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 뒤 통화를 종료했다. 이제부터 알아봐야 할 것은 에이트를 누가 납치했느냐와 그 목적이 무엇이느냐였다.
다행히 이 행사장에 널리고 널린 것이 CCTV였으므로 관리실을 찾아가면 범인의 얼굴을 알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터…….
‘감히 악의 조직을 건드리다니.’
대체 어떤 간땡이 부운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평화롭게 끝나지는 않으리라.
자신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똑똑히 알게 해주리라.
악의 조직을 건드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 * *
수치스럽다.
프로 복서가 고등학생한테 맞고 넉다운 당하면 이런 기분일까.
악의 조직원으로서, 그것도 악의 조직 간부로서 납치를 당한 것은 그만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대강 보기에 날 납치한 녀석들이 그닥 전문가스럽지 않다는 점이 더더욱 나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야, 이 아저씨 연락처 좀 봐라. 2개밖에 없는데?”
“뭐? 어디 봐봐…… 와─ 진짜네. 보스랑 아일레라는 사람밖에 없어.”
“그럼 이 아일레가 아까 팔짱끼고 있던 애인인가?”
납치한 피해자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시덕거리는 모습이나, 본인들의 얼굴을 딱히 가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모습이나. 어딜 보아도 프로보단 아마추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해오기보다, 그냥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해왔다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물어볼 게 있는데.”
“아저씨 간도 크네? 납치당한 주제에 납치범한테 질문도 하고.”
“왜 하필 나지?”
나는 납치범들을 둘러보며 그리 물었다. 보스의 정보 통제는 완벽했다. 내가 악의 조직 과학자라는 사실을 조직원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지식을 노리고 나를 납치하지는 않았으리라.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납치범들은 대체 왜 나를 납치했단 말인가?
그 대답은 금방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가 눈에 띄었으니까.”
“……뭐?”
“아저씨. 비싼 차에서 내리더라? 거기에 그런 곳에서 여자나 끼고 다니고…… 오타쿠들 상대로 우월감 느끼는 음습한 취미라도 있는 거 같아서 아저씨로 정했지.”
“아니, 그게 무슨.”
“우리는 빌런이 될 거 거든.”
납치범은 제 스스로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유명한 빌런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쁜 짓을 하는 거야. 겸사겸사 부수익도 챙기면 좋고.”
“……하, 하하하. 고작 그런 이유로 범죄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히어로도 할 일이 생기고 좋잖아? 그러니까 아저씨─ 돈 많아 보이던데 적선 좀 하지?”
녀석은 그리 말하며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내가 이대로 경찰이나 히어로를 부르면 어쩌려고…… 고작 그 정도도 생각하지 못 하는 정박아는 아닌 모양이었고, 아마도 제 능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는 타입이리라.
하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주겠다던 비라가 반응도 못 하고 그대로 날아가버렸을 정도의 능력 아닌가. 아마도 타임랙-제로의 순간이동 능력…….
다른 녀석들도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빌런이 되는 것에 가담했을 정도로 질이 나쁜 녀석들인 데다가 순간이동 녀석이 동료로 삼을 정도로 쓸만한 능력을 가진 건 확실했다. 즉, 쓸데없이 저항하는 건 그닥 좋지 못한 행위였다.
“……전화 해도 되지?”
“얼마든지. 아, 스피커로.”
“음-.”
보스의 목소리를 듣고서 이들이 장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뭐,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나았다. 나는 보스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가 전화를 받았다.
[과─.]
“보스. 지금 납치범들 앞에 있습니다.”
[……그런가. 알겠다. 뭘 원하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납치범들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러자 납치범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더니 보스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가 돈이 좀 필요한데. 돈좀 주라.”
[얼마나?]
“많을 수록 좋은데…… 한 백만 달러 정도?”
[계좌 부르게.]
“시티 은행 7ET…….”
납치범은 너무나 쉽게 돈을 보내주겠다는 보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심스레 제 계좌번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좌를 부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납치범은 제 휴대폰으로 돈이 입금되었음을 확인하곤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납치범이 바라는 대로 순순히 돈을 보내주는 건 최악의 수였다. 범죄심리학에서도 나오는 최악의 사례 중 하나. 과연 납치범 녀석은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아- 이거 어쩌지?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부족한 거 같아.”
[부족하다고? 좋네. 다시 보내주지.]
“응?”
그리고 다시 입금 소리.
제 휴대폰을 확인하던 납치범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대체 얼마가 들어간 건지…….
“어, 음-.”
[왜? 이것도 부족한가? 더 필요해?]
띠링-!
납치범의 표정이 완전히 딱딱하게 굳는다.
몇 번 입술을 곱씹어대던 녀석은 나를 슬쩍 바라보곤, 대충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아- 알았다! 이거 사이버 머니 그런 거지!? 빌런들 속이려고 만든 가짜 돈! 이런 거에 안 속지! 현찰, 현찰로 가져와!”
[어디로 보내면 되지?]
“……G 시의 지하철 로커. 10번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로커 5번에.”
[10분만 기다리지.]
잠시 후, 현찰을 모두 준비했다는 말을 들은 납치범은 그대로 순간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현금이 가득 들어가 있는 가방을 들고서 돌아왔다.
그리 돌아온 납치범은 살짝 떨리는 눈빛으로 가방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세요?”
“일반인.”
납치범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라리더니, 제 동료들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나는 방을 나선 납치범들을 노려보다가 조심스레 눈을 돌렸다.
‘─휴대폰을 두고 가?’
슬쩍 휴대폰을 챙긴 나는 곧장 개조에 들어갔다. 이럴 때를 대비해 휴대폰을 업그레이드했었다. 그 대비가 드디어 효과를 발휘할 순간이었다.
제 동료들을 데리고 방을 빠져나온 납치범은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동료들이 의아하다는 듯 납치범을 바라보았다.
“야- 왜 그러는데?”
“씨발, 씨이빌… 우리 좆된 거 같아….”
“왜 그러냐니까?”
납치범은 조심스럽게 제가 들고 온 돈가방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이게 다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들어가 있었다.
그들이 평생 살아오면서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런 금액이.
은행을 털고, 사람을 납치하고, 테러를 일으키고. 그런 빌런 짓으로는 도무지 손에 넣을 수 없는 거금을 눈앞에 두자, 이제 막 빌런이 되기로 결심한 아마추어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아, 아니- 이거 구라지……?”
“진짜야…… 심지어 내 계좌에도 똑같은 금액이 한 번 들어왔거든……?”
“아니 씹…… 이거의 2배라고……?”
개인에게서 뜯어낼 법한 금액이 아니라 어지간한 대기업, 혹은 국가 조직에서 운용할 법한 금액을 눈앞에 둔 납치범들은 자신들이 건드린 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이만한 금액을 아무렇지 않게 턱 내놓을 수 있는 상대라면, 아마도 그들을 체포하거나 죽이기 위해 히어로들을 무더기로 보내는 것도 가능할 터.
아니, 어쩌면 이미 이 주변을 히어로들이 포위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풀어, 풀어드려야 하는 거 아냐……?”
“아니, 그냥 여기 내버려두고 튈까?”
“그, 그러자! 이 돈이면 평생 놀고 먹어도 괜찮은 돈─.”
“미안하지만, 그 돈은 놓고 가줬으면 하는데.”
납치범들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그들이 납치한 에이트가 홀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납치범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저씨. 살려줄 테니까 그냥 여기 계세요. 능력자도 아닌 주제에.”
“음? 내가 무능력자라고 말했던가?”
“얘 능력으로 알 수 있거든요? 아저씨가 능력자인지 아닌지. 그래서 납치한 것도 있고. 능력자면 무슨 능력을 가졌을지 모르니까.”
“아하- 그렇구나.”
무슨 능력을 갖고 있는지 몰랐던 마지막 공범의 능력까지 알게 된 에이트는 씨익 웃으며 제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버튼을 띡- 눌렀다.
잠시 후, 휴대폰으로부터 불쾌한 소음이 울려퍼졌다. 납치범들은 삐이이-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 하는…….”
“이제 능력은 쓰려고 하지 마. 몸이 터질 테니까.”
“그게 무슨-.”
“궁금하면 한 번 시도해보든가.”
에이트의 말에 납치범은 헛웃음을 터트린 뒤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저 건방진 인질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은 뒤 이 거슬리는 소리를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순간이동을 시도한 그 순간, 납치범은 제 머리가 마구 울리는 걸 느끼며 토악질을 해댔다.
“우웨에에엑-!”
“그러길래 쓰지 말라니까.”
에이트는 바닥에 엎드린 채 구토질 해대는 납치범을 보며 가볍게 미소지었다. 이 무식한 범죄자 애새끼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해주었다. 제 동료들이 찾아 올 시간을 끌어야했으니.
“에밀리아 교수가 발표한 양자 공간 접힘 현상에 의거한 Space Control Techniques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지금부터 능력을 쓰는 놈은 죽는다.”
물론 허세였다.
다만, 눈앞에 있는 이 아마추어들에게 그 허세를 구별할 능력은 없는 듯 했다.
에이트는 씨익 웃으며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퍼지는 휴대폰을 좌우로 흔들었다.
날카로운 비프음과 납치범의 구역질 소리만이 가득 울려퍼지는 가운데, 시간이 충분히 흘렀다. 지폐 속에 감춰진 추적기 신호를 뒤쫓아서 동료들이 도착할 만치 충분한 시간이.
“─과학자 씨!”
콰아아앙-!
건물의 윗부분을 완전히 날려버리며, 악의 마법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아드는 파편에 맞아 의식을 잃으며, 에이트는 아일레를 올려다보았다.
‘프랜들리 파이어…….’
예나 지금이나,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건 아군 오사였다.
그 아군이 공격 한 방에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초인이라면 더더욱…….
잠시 후, 지상으로 내려온 아일레는 기절한 과학자를 보며 분노를 터트렸다.
“과, 과학자 씨를 이런 꼴로…!”
“아, 아니 그건 방금 당신이….”
“용서 못 해-!”
악의 마법소녀의 분노가 납치범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Duuww Rurd님 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매일 매일 더 재밌는 소설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