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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20화. 위수지역 해제.
     
     
     
     
     
     
     
     
   “울프에게, 인사는 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
     
   강호의 태도가 너무 매정해 보였는지, 침울한 표정의 사토시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래도, 울프는 소령님께만 무조건 복종했던 녀석입니다. 소령님만 바라보고, 소령님만 따랐어요. 전 늘 녀석과 있어서 압니다.”
     
   그런 사토시를 보며, 참 말주변 없는 사람이 진심을 표현하려 애쓰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라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닌데.’
     
   강호는 제 팔을 잡은 사토시의 손등을 툭툭 쳐주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울프가 몸을 날린 곳으로 갔다.
     
   “…….”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울프.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굳이 눈물을 보이지 않아도, 너라면 내 마음을 알아줄 거로 생각한다.’
     
   울프와 대화하듯 생각하자 처음 그와 만났던 때부터 지금까지가 주마등처럼 스륵 지나갔다.
     
   ‘동료. 그 이상.’
     
   괜히 어깨 한쪽이 시큰했다.
   강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살짝 말아쥐었다.
   짧게 심호흡하고 눈을 떴다.
     
   “평온히 잠들어라.”
     
   그렇게 잠깐의 묵념을 끝내고 돌아서니 레이나, 리사, 사토시, 그리고 그들 뒤로 다른 모두가 묵념에 동참하고 있었다.
     
   강호는 심장이 울리는 걸 애써 다독이며 재난 매뉴얼을 뒤졌다.
     
   ‘산 사람은 산 사람의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격납고 문을 열 수 있는 비상 코드를 찾아 열었다.
     
   쿠우우우우.
   처커덩.
     
   3층 높이의 거대한 출입문이 양쪽으로 개폐됐다.
   그러자 꼭 공항과 같은 웅장한 공간이 드러났다.
     
   “와.”
   “오갈 때는 몰랐는데, 여기가 이렇게 컸었나?”
     
   환호성과 감탄사 등이 마구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격납고 천장 일부의 채광창에서 지상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장면이 가슴을 웅혼하게 만들었다.
   마치 축복이라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조금 전까지 죽음의 문턱 앞을 헤매다 온 사람들이라 감격이 더 했다.
     
   “다신 못 보는 줄 알았는데.”
   “나도.”
     
   몇 사람의 젖은 목소리가 금방 눈물로 전염됐다.
   삼삼오오 모여 서로를 안고 다독이는 사이, 강호는 천장이 아닌 바닥을 확인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운송 수단은 모두 멀쩡해 보였다.
   그리고 그 기체들을 올려보낼 거대 리프트도 깨끗했다.
     
   ‘비행체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뭐, 됐다. 전술 차량과 장갑차가 어딘가.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서두르자.’
     
   강호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 * *
     
   지하 1층에 도착했을 때, 총 63명이었다.
   강호 일행이 이끌고 꾸역꾸역 생존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사망자 11명.
   부상자 9명.
   최종 생존자 52명.
     
   사망자는 모두 마지막 지하 1층 격납고에서 발생했다.
   층 전체가 급격히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 차량 하나가 떨어지는 건물 잔해에 맞고 폭사했다.
   그곳에 타고 있던 일행 열한 명이 사망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급박한 상황에서 모두 침착하게 대처를 잘 해주어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리고 드디어 리프트가 지상 1층 격납고에 도착했다.
   일행이 나눠 탑승한 몇 대의 차량이 입구까지의 이동 벨트 위에 얹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이이잉.
     
   강호는 그 잠깐 사이에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름]: 한강호
   […]: …….
   [특성]:우레폭풍(thunderstorm.雷雨) / 광역 특화.
   [등급]: Lv.14
   [강화]: 70%
   [속성]: 플라즈마. 전자기장.
   [전문 기술]: 기체방전. 제어 열 핵융합.
   [기본효과]: 오염저항(독 내성)
   [보조 기술]: 매뉴얼-전용 서고(Ver.2). 위협.
   [제한 효과]: 도약.
   [칭호]: 리더(S).
   […]: ……….
     
   몇 가지 항목의 내용에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보조 기술 아래 새로운 항목이 생겼다.
     
   [제한 효과]: 도약.
     
   기본효과와 달리 사용하는 데 어떤 제약이 있는 능력이었다.
   재사용 시간이라던가,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던가.
   즉, 기본 효과가 패시브라면, 제한 효과는 액티브 속성으로 보면 될 것 같았다.
     
   ‘도약이라.’
     
   그걸 보는 순간, 강호는 레이나의 보조 기술에 있는 도약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용처럼 솟구쳐 오르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때의 감탄과 함께 자연스레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속성, 혹은 이능력 전이.’
     
   다크앱의 전류에 감전돼 추락하는 레이나를 받았을 때, 몸에 느껴졌던 기묘한 감각.
   그녀의 몸을 두르고 있던 전류를 흡수하면서, 그때 그녀의 능력 중 하나가 함께 흡수된 것 같았다.
     
   그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다크앱이 흡수와 반사를 함께 하는 에너지 전이체기 때문이다.
   레이나의 물리력을 방어하기 위해 발출했던 전기력에 그녀가 감전됐고, 그것이 매개체가 되어 강호에게 전이 된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의문 하나를 살피는 사이, 차량을 실은 이동 벨트가 지상 1층의 대형 로비에 안착했다.
     
   “하아. 드디어.”
   “사, 살았다!”
   “오, 주여.”
     
   생존자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고비는 넘긴 건가.’
     
   하지만 강호는 어쩐지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게 종 보관소와 함께 지하에 묻힌 무수히 많은 이들 때문인 건지, 위험을 감지하는 육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리사가 건네준 생수를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자, 나가자.”
     
   * * *
     
   [세계 종(種) 보관소]
   – 2027~2050.
     
   : 2027년 설립된 연구단지로, 지하 10층까지 내려간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인류 보존 프로젝트.
   : 한 층의 넓이가 서울의 한 개 구 크기인 만큼, 지하도시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광역 시설.
   : 2050년, 폭발 사고와 보안을 위한 자체 폐쇄 등으로 모든 시설이 매몰되었다.
   : 현재 지하 1층 격납고만 보존 상태.
   : 격납고 가동. 그 외 시설 이용 불가.
     
   강호는 상태창에 떠 있는 재난 매뉴얼의 설명을 가만히 바라봤다.
   바로 직전까지 있던 곳, 종 보관소의 소개 내용이 바뀌어 있어 황당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 수치가 100을 향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재난 매뉴얼 확장 패치(Ver.3) 동기화 진행 중]
   [변경된 지리, 환경정보 반영]
   [진행률 48%]
     
   강호는 그만 상태창에서 시선을 거두고 주변을 돌아봤다.
     
   “…….”
     
   말문이 막혔다.
   보고 또 봐도 믿기지 않는 폐허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격납고에서 막 나왔을 때의 황당함과 허무함보다 지금 느껴지는 막막함이 더 기가 찼다.
     
   백두산 주변은 과거와 달리 광역도시급이었다.
   2026년 빙하기 때 북한 세습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통일 대한민국이 된 이후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특히 인베이젼의 주도로 세계 종 보관소가 들어서며 고도화까지 이룬 첨단 도시였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폐허는 도저히 같은 장소라고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레이나가 강호의 생각을 물었다.
   마침 부상자를 돌보던 리사도 다가와 의문을 내보였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종 보관소에서는 밖의 상황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그 말에 사토시가 제 의견을 얹었다.
     
   “그게 이상합니다. 상태를 보면 원래부터 이랬던 곳 같지 않습니까? 저 무성한 식물들을 보세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호가 입을 뗐다.
     
   “식물은 환경만 맞으면 하루 만에도 세상을 덮을 수 있다.”
     
   지금의 상태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폐허더미를 뒤덮은 녹지라고 해봐야 전부 풀이나 이끼들이지, 수령이 오래된 아름드리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종 보관소에 입소한 게 1년 전이다.”
   “그러면, 이 상태가 아무리 오래됐어도 1년이 채 안 됐을 거라는 얘기네요.”
   “그보다 더 짧을 거야. 아마도.”
     
   리사가 팔짱을 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잠깐의 생각을 끝내고 다시 말했다.
     
   “우리가 탈출하는 데 약 30일이 걸렸어요. 외부 정보와 차단 된 기간이기도 하죠.”
     
   듣고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30일 동안 밖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건물이 파괴된 건 맞는데, 또 직접 힘을 가한 흔적은 보이지 않고.”
     
   레이나가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말을 함께 듣고 있던 사토시가 강호에게 질문했다.
     
   “혹시, 핵폭발이었을까요?”
     
   강호는 폐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고개만 저었다.
     
   “레이나 말대로 외부 충격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 탄흔이나 폭격 흔적 같은 것들 말이지.”
   “아.”
     
   사토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폐허를 살폈다.
     
   기울거나 무너지지 않은 멀쩡한 고층 건물들.
   하지만 관리가 전혀 안 된 낡고 부식된 외관 상태.
   파괴된 흔적이 없는 도로.
     
   확실히 전쟁이나 폭발, 폭격 등의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도시와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 빼곡하고 풍성하게 어우러진 식물들이 시간의 흐름을 짐작하기 어렵게 했다.
   
   띠링.
     
   [재난 매뉴얼 확장 패치(Ver.3) 동기화 완료.]
   [업데이트 완료.]
   [위수지역 해제.]
     
   때마침 패치가 완료됐다.
   강호는 상태창으로 재난 매뉴얼의 달라진 목차를 살폈다.
     
   ‘… 응?’
     
   [관할 소재 재편]
   […]: ……
   [제 5 차원문]
   [위치/관할]: 서울 / 대한민국.
   […]: ……
     
   내용 일부를 확인하자마자 강호는 인데르 박사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테라포밍에 성공했다더니, 차원문이라는 게 설마….’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으니 혼자 추측해 본 것이다.
   그리고 결정해야 했다.
     
   “모두 차량에 탑승. 남쪽으로 이동한다.”
     
   일단 가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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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위수지역 해제.

“울프에게, 인사는 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

강호의 태도가 너무 매정해 보였는지, 침울한 표정의 사토시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래도, 울프는 소령님께만 무조건 복종했던 녀석입니다. 소령님만 바라보고, 소령님만 따랐어요. 전 늘 녀석과 있어서 압니다.”

그런 사토시를 보며, 참 말주변 없는 사람이 진심을 표현하려 애쓰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라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닌데.’

강호는 제 팔을 잡은 사토시의 손등을 툭툭 쳐주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울프가 몸을 날린 곳으로 갔다.

“…….”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울프.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굳이 눈물을 보이지 않아도, 너라면 내 마음을 알아줄 거로 생각한다.’

울프와 대화하듯 생각하자 처음 그와 만났던 때부터 지금까지가 주마등처럼 스륵 지나갔다.

‘동료. 그 이상.’

괜히 어깨 한쪽이 시큰했다.

강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살짝 말아쥐었다.

짧게 심호흡하고 눈을 떴다.

“평온히 잠들어라.”

그렇게 잠깐의 묵념을 끝내고 돌아서니 레이나, 리사, 사토시, 그리고 그들 뒤로 다른 모두가 묵념에 동참하고 있었다.

강호는 심장이 울리는 걸 애써 다독이며 재난 매뉴얼을 뒤졌다.

‘산 사람은 산 사람의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격납고 문을 열 수 있는 비상 코드를 찾아 열었다.

쿠우우우우.

처커덩.

3층 높이의 거대한 출입문이 양쪽으로 개폐됐다.

그러자 꼭 공항과 같은 웅장한 공간이 드러났다.

“와.”

“오갈 때는 몰랐는데, 여기가 이렇게 컸었나?”

환호성과 감탄사 등이 마구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격납고 천장 일부의 채광창에서 지상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장면이 가슴을 웅혼하게 만들었다.

마치 축복이라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조금 전까지 죽음의 문턱 앞을 헤매다 온 사람들이라 감격이 더 했다.

“다신 못 보는 줄 알았는데.”

“나도.”

몇 사람의 젖은 목소리가 금방 눈물로 전염됐다.

삼삼오오 모여 서로를 안고 다독이는 사이, 강호는 천장이 아닌 바닥을 확인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운송 수단은 모두 멀쩡해 보였다.

그리고 그 기체들을 올려보낼 거대 리프트도 깨끗했다.

‘비행체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뭐, 됐다. 전술 차량과 장갑차가 어딘가.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서두르자.’

강호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 * *

지하 1층에 도착했을 때, 총 63명이었다.

강호 일행이 이끌고 꾸역꾸역 생존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사망자 11명.

부상자 9명.

최종 생존자 52명.

사망자는 모두 마지막 지하 1층 격납고에서 발생했다.

층 전체가 급격히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 차량 하나가 떨어지는 건물 잔해에 맞고 폭사했다.

그곳에 타고 있던 일행 열한 명이 사망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급박한 상황에서 모두 침착하게 대처를 잘 해주어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리고 드디어 리프트가 지상 1층 격납고에 도착했다.

일행이 나눠 탑승한 몇 대의 차량이 입구까지의 이동 벨트 위에 얹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이이잉.

강호는 그 잠깐 사이에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름]: 한강호

[…]: …….

[특성]:우레폭풍(thunderstorm.雷雨) / 광역 특화.

[등급]: Lv.14

[강화]: 70%

[속성]: 플라즈마. 전자기장.

[전문 기술]: 기체방전. 제어 열 핵융합.

[기본효과]: 오염저항(독 내성)

[보조 기술]: 매뉴얼-전용 서고(Ver.2). 위협.

[제한 효과]: 도약.

[칭호]: 리더(S).

[…]: ……….

몇 가지 항목의 내용에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보조 기술 아래 새로운 항목이 생겼다.

[제한 효과]: 도약.

기본효과와 달리 사용하는 데 어떤 제약이 있는 능력이었다.

재사용 시간이라던가,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던가.

즉, 기본 효과가 패시브라면, 제한 효과는 액티브 속성으로 보면 될 것 같았다.

‘도약이라.’

그걸 보는 순간, 강호는 레이나의 보조 기술에 있는 도약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용처럼 솟구쳐 오르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때의 감탄과 함께 자연스레 한 가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속성, 혹은 이능력 전이.’

다크앱의 전류에 감전돼 추락하는 레이나를 받았을 때, 몸에 느껴졌던 기묘한 감각.

그녀의 몸을 두르고 있던 전류를 흡수하면서, 그때 그녀의 능력 중 하나가 함께 흡수된 것 같았다.

그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다크앱이 흡수와 반사를 함께 하는 에너지 전이체기 때문이다.

레이나의 물리력을 방어하기 위해 발출했던 전기력에 그녀가 감전됐고, 그것이 매개체가 되어 강호에게 전이 된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의문 하나를 살피는 사이, 차량을 실은 이동 벨트가 지상 1층의 대형 로비에 안착했다.

“하아. 드디어.”

“사, 살았다!”

“오, 주여.”

생존자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고비는 넘긴 건가.’

하지만 강호는 어쩐지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게 종 보관소와 함께 지하에 묻힌 무수히 많은 이들 때문인 건지, 위험을 감지하는 육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리사가 건네준 생수를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자, 나가자.”

* * *

[세계 종(種) 보관소]

– 2027~2050.

: 2027년 설립된 연구단지로, 지하 10층까지 내려간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인류 보존 프로젝트.

: 한 층의 넓이가 서울의 한 개 구 크기인 만큼, 지하도시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광역 시설.

: 2050년, 폭발 사고와 보안을 위한 자체 폐쇄 등으로 모든 시설이 매몰되었다.

: 현재 지하 1층 격납고만 보존 상태.

: 격납고 가동. 그 외 시설 이용 불가.

강호는 상태창에 떠 있는 재난 매뉴얼의 설명을 가만히 바라봤다.

바로 직전까지 있던 곳, 종 보관소의 소개 내용이 바뀌어 있어 황당한 마음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 수치가 100을 향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재난 매뉴얼 확장 패치(Ver.3) 동기화 진행 중]

[변경된 지리, 환경정보 반영]

[진행률 48%]

강호는 그만 상태창에서 시선을 거두고 주변을 돌아봤다.

“…….”

말문이 막혔다.

보고 또 봐도 믿기지 않는 폐허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격납고에서 막 나왔을 때의 황당함과 허무함보다 지금 느껴지는 막막함이 더 기가 찼다.

백두산 주변은 과거와 달리 광역도시급이었다.

2026년 빙하기 때 북한 세습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통일 대한민국이 된 이후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특히 인베이젼의 주도로 세계 종 보관소가 들어서며 고도화까지 이룬 첨단 도시였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폐허는 도저히 같은 장소라고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레이나가 강호의 생각을 물었다.

마침 부상자를 돌보던 리사도 다가와 의문을 내보였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종 보관소에서는 밖의 상황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그 말에 사토시가 제 의견을 얹었다.

“그게 이상합니다. 상태를 보면 원래부터 이랬던 곳 같지 않습니까? 저 무성한 식물들을 보세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호가 입을 뗐다.

“식물은 환경만 맞으면 하루 만에도 세상을 덮을 수 있다.”

지금의 상태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폐허더미를 뒤덮은 녹지라고 해봐야 전부 풀이나 이끼들이지, 수령이 오래된 아름드리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종 보관소에 입소한 게 1년 전이다.”

“그러면, 이 상태가 아무리 오래됐어도 1년이 채 안 됐을 거라는 얘기네요.”

“그보다 더 짧을 거야. 아마도.”

리사가 팔짱을 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잠깐의 생각을 끝내고 다시 말했다.

“우리가 탈출하는 데 약 30일이 걸렸어요. 외부 정보와 차단 된 기간이기도 하죠.”

듣고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30일 동안 밖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건물이 파괴된 건 맞는데, 또 직접 힘을 가한 흔적은 보이지 않고.”

레이나가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말을 함께 듣고 있던 사토시가 강호에게 질문했다.

“혹시, 핵폭발이었을까요?”

강호는 폐허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고개만 저었다.

“레이나 말대로 외부 충격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 탄흔이나 폭격 흔적 같은 것들 말이지.”

“아.”

사토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폐허를 살폈다.

기울거나 무너지지 않은 멀쩡한 고층 건물들.

하지만 관리가 전혀 안 된 낡고 부식된 외관 상태.

파괴된 흔적이 없는 도로.

확실히 전쟁이나 폭발, 폭격 등의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도시와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 빼곡하고 풍성하게 어우러진 식물들이 시간의 흐름을 짐작하기 어렵게 했다.

띠링.

[재난 매뉴얼 확장 패치(Ver.3) 동기화 완료.]

[업데이트 완료.]

[위수지역 해제.]

때마침 패치가 완료됐다.

강호는 상태창으로 재난 매뉴얼의 달라진 목차를 살폈다.

‘… 응?’

[관할 소재 재편]

[…]: ……

[제 5 차원문]

[위치/관할]: 서울 / 대한민국.

[…]: ……

내용 일부를 확인하자마자 강호는 인데르 박사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테라포밍에 성공했다더니, 차원문이라는 게 설마….’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으니 혼자 추측해 본 것이다.

그리고 결정해야 했다.

“모두 차량에 탑승. 남쪽으로 이동한다.”

일단 가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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