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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불길한 예상은 틀리는 법이 없다.

   

   고블린을 처리하고 잠깐 정신이 없을 때는 잊고 있었지만 포셀은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 사람을 굴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미쳤지. 기사들을 굴려서 성장시키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한테 직접 굴려달라고 부탁을 하다니!

   

   그는 내가 말을 꺼낸 순간부터 일말의 사양도 없이 나를 지옥으로 내몰았다.

   

   과장하는 거 아니냐고? 나도 과장이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우선 포셀은 2층까지만 굴리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취소해 버렸다.

   

   그래서 난 졸지에 던전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른 기사 셋을 지휘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사람들을 이끌고 던전을 공략하는 거야 게임 속에서 지겹도록 해봤던 일이니까.

   

   모니터 속의 2D였던 게 졸지에 4D로 바뀌어서 생각하느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던 걸 뺀다면 그럭저럭 버틸 만 했다.

   

   근데 여기서 전투까지 나한테 시키더라고.

   

   고블린 잡고 나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여 줬는데 전투를 강요하는 게 말이 돼?!

   

   연약한 아가씨를 걱정해 달란 말이야!

   

   뭐어. 그래. 여기까지도 버틸 만 했어.

   

   어쨌든 포셀은 많아도 둘이나 셋 정도의 상대만 내게 맡겼으니까.

   

   그 정도 고블린을 상대하는 건 충분히 할 만 했다.

   

   좀 잡생각이 많이 들긴 했지만 그건 익숙해져야 할 일이었으니까.

   

   근데 여러 함정의 해체도 나한테 시키고.

   

   거기에 더해서 처음엔 날 배려해 천천히 가던 녀석들이 갑자기 속도를 높이니까 그를 따라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덕분에 중반부터는 힘들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못하겠더라.

   

   그렇게 난 2층을 지나 3층을 넘어 4층. 5층. 6층을 넘어 보스룸 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으하. 이제야 끝이 보이네.

   

   여기만 넘어가면 끝인 거지?

   

   진짜 더럽게 힘들었어.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내가 벌써 레벨 3을 찍었겠냐고.

   

   갑옷이고 무기고 옷이고 피가 묻지 않은 곳이 없네.

   

   공략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 지금 나 엄청 이상한 냄새가 날 게 분명해.

   

   던전에서 빠져나가면 샤워부터 하든가 해야지.

   

   “벌써 보스룸이네요. 단장님. 이 정도면 저희 기준으로도 빠르지 않습니까?”

   “빠르지. 아가씨를 데리고 움직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더더욱. 아가씨의 지휘가 그만큼 뛰어났다는 거다.”

   

   하!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소울 아카데미 1만 3천 시간의 썩은물이라고!

   

   소울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을 외우고 있는 내가 지휘를 하는데 빠르지 않을 수가 있겠어?!

   

   내가 소울 아카데미 스피드 런 기록을 세운다고 최적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너네들은 모를 거다!

   

   “루시 아가씨.”

   

   ‘네?’

   “왜.”

   

   기사들의 칭찬에 속으로 못내 흐뭇해하고 있던 중 포셀이 말을 걸어왔다.

   

   “던전의 보스전은 만일의 위험이 있으니 뒤에서 구경만 해주십시오.”

   

   ‘알겠어요.’

   “맘대로 해.”

   

   쉬라고? 알겠어.

   

   쉬게 해주겠다는 데 거절할 정도로 난 의욕적인 사람이 아냐.

   

   에반스 던전에 나오는 보스 중에 위협적인 보스는 없지만 그래도 보스니까 너네끼리 알아서 해.

   

   어차피 너네들이 싸워도 경험치는 들어오니까 난 얌전히 버스를 받도록 할게.

   

   포셀이 던전의 문을 열자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를 지니지 못한 존재였다.

   

   오래 전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잊혀져 던전의 깊숙한 곳에 틀어박히게 된 이.

   

   바위로 만들어져 심장을 가지지 못했기에 자신을 만들어낸 이의 명령밖에 따르지 못하는 자.

   

   골렘.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골렘은 에반스 던전의 보스로 희귀하게 등장하는 녀석이다.

   

   일반적인 보스들보다 난이도가 높지만 그만큼 좋은 보상을 주기 때문에 루엘의 둔기를 찾으러 왔다 골렘을 만나면 보통 환호성을 지르기 마련이지.

   

   예전에 한창 열심히 소울 아카데미를 하던 시절의 나도 그랬고.

   

   승차감은 별로지만 속도와 돌파력 하나만큼은 일군인 버스를 타고 있는데 골렘이 튀어나오다니.

   

   사람이 살면서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구나!

   

   하긴 게임을 하다 메스가키 몸에 빙의된 것만 해도 이미 몇 년치 액땜을 한 셈이잖아!

   

   운이라도 안 좋으면 억울해서 어떻게 살겠어!

   

   “골렘은 오랜만이네요.”

   “단장님. 항상 하던 것처럼 하시겠습니까?”

   “그래야지. 페르비. 시선 끌어.”

   “알겠습니다!”

   

   포셀의 명령에 따라 대머리 기사가 앞으로 달려 나간다.

   

   발을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돌바닥이 패이는 거센 발걸음에서 시작된 속도는 경이로웠으니.

   

   수십 미터는 되었을 법한 거리가 일순에 좁아진다.

   

   그러자 자신의 대적자를 감지한 골렘이 팔을 치켜들었다.

   

   골렘의 동작은 너무도 단순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기.

   

   나조차도 궤적을 예상할 수 있는 뻔한 공격에 당해 줄 정도로 대머리 기사는 허술하지 않았다.

   

   콰앙!

   

   골렘이 내리 찍은 것은 어디까지나 대머리 기사의 잔상뿐이었다.

   

   흙먼지가 흩뿌려지는 순간 대머리 기사의 뒤를 따라 칼과 포셀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골렘은 그를 보고서 두 사람을 견제하기 위해 남은 팔을 휘둘렀다.

   

   칼과 포셀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팔을 향해서 돌진했다.

   

   두 사람이 골렘의 팔과 충돌하겠다 싶었던 순간 앞에 나선 칼이 검을 휘둘렀다.

   

   성인 남성의 몸통만한 거대한 주먹과 얇은 칼이 부딪혔을 때 결과가 어찌 될 지는 얼핏 뻔해 보였다.

   

   허나 판타지 속 세상에서 상식이란 건 그리 유용하지 못했다.

   

   검과 골렘의 팔이 부딪혀 승리를 거둔 쪽은 검이었고.

   

   골렘의 팔이 위로 튕겨 나가며 골렘의 몸이 열렸다.

   

   포셀은 달리던 속도를 유지하며 그대로 골렘의 품 안으로 들려 들었고 그 가속을 그대로 담아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포셀의 주먹이 골렘에 닿은 순간 던전 전체가 진동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위에서 떨어진 돌멩이에 얻어맞은 난 머리를 문지르며 고통에 신음하다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주먹 한 방에 완전히 박살나버린 골렘이 있었다.

   

   진짜 더럽게 강하네. 골렘이 패턴이 단순해서 그렇지 스펙이 약한 보스는 아닌데.

   

   포셀은 게임으로 따지면 레벨이 어느 정도 되려나.

   

   최소한 게임 후반부에 나오는 NPC급 스펙은 될 것 같은데.

   

   “아가씨. 이제 안전하니 오셔도 됩니다.”

   

   그래. 말 안 해도 그렇게 보여.

   

   천천히 포셀에게로 다가가자 쓰러졌던 골렘의 몸이 흩어지며 던전 한 가운데에 문이 생겨났다.

   

   던전의 입구로 돌아가는 문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의 앞에 탁자도 하나 나타났다.

   

   던전에서 주는 클리어 보상이 현실에선 이런 식으로 구현되는 구나?

   

   뭘까?

   

   보통 골렘을 잡고 나면 주는 보상은 좋은 것밖에 없는데.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건 브로치였다.

   

   에반스 던전의 골렘이 주는 브로치면 그거지?

   

   수호의 브로치.

   

   착용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부서지는 걸로 위험을 대신 받아주는 아이템.

   

   소울 아카데미에서는 필수적으로 몇 개 정도 챙겨다녀야 했던 물건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게임오버를 당해야 할 위기를 넘기게 해주거든.

   

   이걸 이용한 꼼수도 몇 가지 있었는데 현실에서도 먹힐까 모르겠네.

   

   성능이 좋은 만큼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이기도 한데 이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오. 수호의 브로치군요.”

   

   ‘단장님…’

   “바보 포셀. 이거 알아?”

   

   “알죠. 전장에서 이것 떄문에 목숨을 건지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진짜? 현실에서도 제대로 작동을 하는 구나.

   

   어떤 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착용자의 목숨을 구해주긴 하나 보네.

   

   그럼 일단 이건 실전을 자주 경험해야 하는 너네들이.

   

   “아가씨께서 가져가시죠.”

   

   ‘제가요?…’

   “내가? 이런 건 허접한 너희들한테 어울리는 물건이잖아.”

   

   “괜찮습니다. 비슷한 물건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처음으로 던전을 공략한 기념이라 생각하시죠.”

   

   포셀의 말에 다른 두 기사도 동의하는 지 고개를 끄덕였다.

   

   흐흥. 뭐어 주겠다면 거절하진 않을게.

   

   수호의 브로치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갓템이니까!

   

   *

   

   던전 공략을 끝마치고 나왔을 무렵에는 하늘의 해가 정 가운데에 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들어가서 오후 무렵에 나온 거니까 대충 서너 시간 정도 걸린 셈인가.

   

   최대 효율로 달린 것치고는 오래 걸렸네.

   

   다시 우리가 야영지로 돌아왔을 때 그 곳에서 쉬던 기사들은 우리가 갈 적에 쓰러졌던 모습 그대로 잠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힘들었다고는 하지만 기껏 쉬는 시간을 얻었는데 잠만 자도 괜찮은 거야?

   

   잠 이외의 무언가를 하고 싶진 않았어?

   

   나 예전에 한창 일할 때 잠으로 쉬는 시간을 다 날리면 그만큼 억울할 때가 없었는데.

   

   “일어나라!”

   

   포셀이 고함을 치자마자 기사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잠을 자다가 주인이 오는 소리에 눈을 뜨는 강아지마냥 다급히 일어나는 그 모습은 실로 처량해보였다.

   

   “충분히 쉬었나?”

   ““예!””

   “그럼 식사를 한 후에 다시 훈련에 들어가겠다! 잠을 깬 후 식사를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던 나는 야영지의 한 천막에서 얌전히 서 있다 인사를 건네는 시녀에게로 향했다.

   

   아 힘들었다.

   

   이제 무기랑 갑옷에 묻은 피도 닦아내고 씻은 후에 밥 먹고 나서 좀 쉬어야겠다.

   

   “루시 아가씨?”

   

   ‘왜요?’

   “왜?”

   

   “어디 가십니까. 훈련하셔야죠?”

   

   ‘네?’

   “어?”

   

   “다른 병사들처럼 굴려달라고 한 건 아가씨지 않으십니까.”

   

   물론 내가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

   

   하긴 했는데 그건 던전 안에서의 이야기였거든?

   

   지금은 네가 하도 굴려준 덕분에 마음도 안정이 됐으니까 조금 정도는 쉬어도 괜찮을 것 같아.

   

   숨 좀 돌리면 안 될까?

   

   나 진짜로 힘들단 말야.

   

   그런 마음을 담아 포셀을 바라봤지만 포셀은 그저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안돼? 안 되는 거야?

   

   진짜로?

   

   *

   

   다음 날 나는 다시 포셀. 칼. 페르비와 함께 던전에 들어왔다.

   

   멤버를 보면 알겠지만 내가 바라서 이루어진 구성은 아니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칼과 단 둘이서 들어오고 싶었거든.

   

   그래야 루엘의 시련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게 수월할 테니까.

   

   칼하고 같이 들어온 다음 충성을 강요해서 입을 틀어막아버리면 완전범죄잖아.

   

   심지어 나름 명분도 있었다.

   

   너희들이랑 같이 가니까 훈련이 안 된다.

   

   더 실전 같이 하려면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칼만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고집을 부려서 일을 해결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포셀이 허락을 안 해주더라고.

   

   어제와 같은 만전의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지친 상태에서는 그럴 수 없다면서.

   

   솔직히 말해 억울했다.

   

   날 이 꼴로 만든 게 누구인데!

   

   어제 낮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굴려댄 건 너잖아!

   

   물론 덕분에 어제 하루 종일 잡생각을 할 틈이 없긴 했어!

   

   잠을 잘 때도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기절하듯이 쓰러져서 꿈도 안 꿨다고!

   

   그래. 그건 맞는데!

   

   으으. 짜증나!

   

   어쨌건 내가 다치면 베네딕을 볼 면목이 없다는 포셀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뭐 상관은 없어.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조금 위험할 수도 있어서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포셀이 저렇게 완고한 데 어쩌겠어.

   

   알겠어? 포셀?

   

   내가 위험해지면 다 네가 허락을 안 해 준 탓인 거야!

   

   …이건 좀 억지인가.

   

   아무튼 간에 그래서 이 방법이라는 게 무엇이냐!

   

   바로 던전에 존재하는 함정을 이용하는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이 1천을 넘었네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재밌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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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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