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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청운은 대련 내내 건방진 흑도 놈을 압도하는 문주를 자랑스레 바라보았다.

   

    ‘건방진 놈. 입을 함부로 놀린 대가다!’

   

    문주의 검이 부드러움과 강함의 조화를 이루며 휘둘러질 때마다 선선한 바람이 분다.

   

    저것이야말로 청류청천검淸流淸天劍. 대대로 청하문의 문주에게만 전해지는 독문무공이다.

   

    언젠가 자신이 저 검을 물려받고 마리라. 다짐한 청운의 눈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런데 저놈…, 흑호문 소속이라 하지 않았나?’

   

    흑도의 말종이 저런 깨끗한 기운을 풍길 수가 있다고?

   

    문주와 서준의 대련이 잠시 멈추고, 문주가 검을 집어넣을 때까지 청운은 미심쩍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문주와 대화를 나누던 놈이 느닷없이 문주에게 달려드는 게 아닌가. 문주는 이미 납검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런…!”

   

    청운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몸을 기울였다. 그런 그의 앞을 자그마한 인영 하나가 막아섰다.

   

    “방해하지 마라. 중요한 때야.”

    “너는….”

   

    저 건방진 놈과 같이 다니던 꼬마다. 차마 아이에게 손을 쓸 수도 없었던 청운은 좋게 말로 타일렀다.

   

    “얘야, 저 사람이 하는 행동을 좀 보아라. 저런 놈과 같이 다녀서 좋을 것 하나 없어. 차라리 청하문에 몸을 의탁하는 게 어떠냐. 성실히 일을 한다면 청하문의 제자가 될 수도 있을….”

   

    흠칫, 청운의 몸이 굳었다. 눈치채지도 못 한 사이 목에 겨눠진 검.

   

    자신을 바라보는 꼬마의 눈이 섬뜩한 빛을 띠고 있었다.

   

    “조용. 그냥 입 다물고 보고 있어.”

   

    혀를 찬 춘봉이 검을 집어넣었다. 

   

    하여간 정파 놈들도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다. 같이 다녀서 좋을 거 하나 없다니. 알지도 못하는 놈이 멋대로 지껄이기는.

   

    재개된 대련을 지켜보던 춘봉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무언가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문주를 몰아치는 서준의 모습에 절로 흥이 난다.

   

    어느새 꼭 쥔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그렇게 눈도 깜빡이지 않고 둘의 대련에 집중하던 춘봉의 눈이 돌연 부릅 떠졌다.

   

    “…어?”

   

    서준의 검이 탁하고 끈적한 기운에 감싸인다.

   

    저게 뭐지? 저런 건 진짜 가르쳐준 적 없는데?

   

    당황한 춘봉이 눈을 굴릴 때, 서준의 입에서 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혼원.”

   

    그 이름에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혼원신공. 분명 황운신공과 청운신공, 청류검을 섞어 만든 무공이라 했는데….

   

    ‘아예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어설프던 혼원신공이 아니다.

   

    아무거나 뒤섞은 잡탕 무공이 아닌, 정말 제대로 된 하나의 무공.

   

    춘봉의 눈에 비친 혼원신공은 그러했다.

   

    ‘어쩌면 정말로….’

   

    나중에는 신공의 이름에 어울리는 무공이 탄생하는 게 아닐까?

   

    춘봉의 눈에 열기가 깃들었다.

   

   

    *

   

   

    혼원混元.

   

    혼원신공의 첫 번째 초식이다. 

   

    아니, 사실 초식이라 하기에는 정해진 형식도 없는 기술에 불과하다.

   

    앞으로 만들어나갈 혼원신공의 기초이자 토대가 될 하나의 기술.

   

    “똑똑히 봐라.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지켜보던 수십쯤 되는 문도들의 표정에 의아함이 서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웃음기 빼고 진지하게 간다.

   

    “흡…!”

   

    서준이 검을 휘둘렀다. 검을 감싼 탁한 검기의 형상이 변화한다.

   

    콰앙-!

   

    검을 막아낸 문주가 기겁하며 급히 몸을 틀었다.

   

    쉬익-

   

    검기에서 뻗어나온 가시가 문주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디서 이런 무공이…!”

   

    문주가 발을 뒤로 끌며 검을 잡아당겼다. 그의 검에 어린 검기가 진해지는가 싶더니, 빠르게 흐르며 강의 거친 흐름을 담아냈다.

   

    폭류暴流

   

    청류청천검의 초식이 펼쳐진다.

   

    서준의 눈이 그것을 담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무공. 거기에서 파생될 초식이라 해봤자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다.

   

    “스읍….”

   

    숨을 들이쉬며 검을 비스듬히 들었다. 

   

    이내 두 강물이 하나로 합쳐지듯, 부드럽게 검을 휘감은 서준이 문주의 검을 아래로 흘려냈다.

   

    “뭐라…!”

   

    문주의 눈이 부릅 떠졌다. 대련 초반에 자신이 펼친 검이 그대로 상대의 손에서 펼쳐졌다.

   

    하지만 그 도발에 분노할 정신이 없었다. 서준의 검이 푸르게 물든 까닭이다.

   

    맑고 탁함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금빛이던 내공이 아예 다른 색으로 변했다?

   

    말이 안 된다. 상식을 부정하는 일이다.

   

    한 사람이 두 가지의 심법을 운용할 수는 없다. 

   

    무당의 양의신공이 신공이라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의 육신으로 두 가지 심법을 운용할 수 있다는 기적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양의신공조차 초절정은 되어야 제대로 운용할 수 있을 텐데?

   

    “잘 막아보쇼.”

   

    서준의 눈이 일순 푸르게 빛났다. 푸르게 물든 검의 주변에 성에가 끼었다. 

   

    짙은 음기에 문주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서준의 검이 검끝에 하늘을 건 채 떨어져내린다. 삼재검법의 태산압정이다.

   

    문주 역시 전력을 다해 검을 올려쳤다.

   

   

    콰아앙────────!!

   

   

    검이 부딪히는 충격에 거센 바람이 불었다. 

   

    문주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반쯤 얼어붙은 손에 감각이 없다.

   

    “무슨, 사술을 부린 거냐…!”

    “사술이라니. 신공이지.”

   

    서준이 맞붙은 검을 내리눌렀다. 카가각-! 검을 사이에 둔 채 힘을 겨루는 두 검수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때, 서준의 입가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슬슬 적응하셨나?”

   

    문주의 손에 끼었던 성에가 녹으며 떨어진다. 무슨 수를 썼는진 몰라도 음기에 저항하는 것이다.

   

    사악한 마두나 지을 법한 서준의 미소에 문주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서준이 무슨 수를 쓰든 대비할 수 있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서준의 다음 수는 문주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었다.

   

    음양반전陰陽反轉

   

    음기가 양기로 화한다. 푸르던 검기가 금빛으로 타오르며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치이익-!

   

    “끄읍!”

   

    피부가 익은 문주가 급히 물러섰다. 서준은 문주를 쫓으며 지탄을 날렸다.

   

    파바박-!

   

    문주가 급히 검을 휘둘러 막았다.

   

    “말도 안 되는…!”

   

    지탄을 막은 검을 타고 서늘한 냉기가 전해져온다. 지탄에 음기가 섞여있는 거다.

   

    “일월마공日月魔功!?”

   

    달리 일월신공이라고도 부르는 마교의 마공. 그것이 아니고서야 음기와 양기를 이렇게 자유롭게 다룰 수는 없다.

   

    “아는 무공 이름 다 나오겠다, 인마.”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서준이 검을 꽉 틀어쥐었다.

   

    문주가 다급히 막아내려 몸을 움직였지만, 양기와 음기가 침투해 굼떠진 움직임으로는 너무 느리다.

   

    승리를 확신한 서준이 씩 웃으며 손에 쥔 검을 땅에 버렸다. 동시에 오른손의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춘봉아…! 오빠가 이겼다…!”

   

    뻐억-!

   

    “커헉…!”

   

    명치에 주먹이 꽂힌 문주가 배를 부여잡고 비틀거린다. 

   

    그 앞에 선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청류검 쓰는지 시험한 건 시험한 거고, 말을 싸가지 없게 했으면 맞아야겠지?”

   

    주먹이 운다.

   

   

    *

   

   

    “아이고 문주님…!”

    “문주님! 괜찮으십니까!”

    “저, 저 천하의 못돼처먹은 놈을 봤나! 저놈을 당장 쳐죽여야 합니다!”

   

    눈가가 푸르게 물들어 퉁퉁 부은 문주를 보며 문도들이 대성통곡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자기 문파는 잘 챙겼나 보네. 춘봉이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서준을 노려보았다.

   

    “야, 인마. 싸가지 없게 말한다고 저렇게 때리면 너는 나중에 맞아 죽겠다 아주?”

    “어허, 금춘봉. 너 왜 좋으면서 또 안 좋은 척 해.”

   

    서준이 춘봉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자 입술을 삐죽 내밀어 숨기고 있던 웃음이 그녀의 입가에 화악 피었다.

   

    “뭐, 뭐가! 하여간…. 아무튼 잘했어. 진짜 이길 줄은 몰랐네.”

    “그럼. 누가 응원해줬는데. 당연히 이겨야지.”

    “또 지랄.”

   

    괜히 좋으면서 튕기기는. 서준이 픽 웃었다.

   

    그런 그들에게 문주가 다가왔다. 잠시 서준을 노려보던 문주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늦었지만 나는 청하문의 13대 문주 청무원이라 한다. 예의 무례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아, 다 풀려서 괜찮아요.”

   

    후드려팼더니 속이 시원해졌다.

   

    서준이 웃으며 손을 내젓자 문주가 또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나저나 대단한 무공이더군. 혼원신공이라 했나? 들어본 적 없는 무공임에도 가히 신공이라 칭할 만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하…, 그렇지.”

   

    헛웃음을 흘린 문주가 서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뒷골목 시정잡배 같은 언행과 달리 깨끗하고 정순한 기세. 그러나 기세에 깃든 심상이 과격하고 세속적이다.

   

    구파의 인물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세가 쪽 인물일 텐데….

   

    고민하던 문주가 눈 딱 감고 물었다.

   

    “그냥 터놓고 물어보지. 정말 사문이 어딘가?”

    “모르는데요.”

    “…그래, 알려주기 싫으면 됐네.”

    “정 궁금하면 쟤한테 물어봐요. 쟤가 스승이니까.”

    “뭐라?”

   

    문주가 눈을 부릅 떴다. 광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눈초리에 서준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뭐요.”

    “스승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군사부일체도 모른단 말이더냐!”

   

    군주와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가 같다. 대충 스승을 군주나 아버지처럼 생각하라는 뜻이다.

   

    이 정도야 알지.

   

    서준이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문주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섰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 해도 스승은 스승! 당장 예의를 갖춰라!”

    “뭣.”

   

    눈을 크게 뜬 서준이 춘봉에게 다가갔다. 

   

    “어, 엄마…?”

    “하아…, 이 새끼 어떡하지 진짜?”

   

    이마를 짚은 춘봉이 문주에게 말했다.

   

    “스승이 아니니 그리 말씀하실 것 없습니다. 매사가 장난인 놈이라 그러니 이해해주시지요.”

    “…하지만.”

    “저는 저 새끼한테 엄마라 불리기 싫으니 그냥 좀 이해하시지요.”

   

    공손한 듯 무례한 말에 문주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

   

   

    *

   

   

    “…편히 쉬다 가시게.”

    “거 진짜 괜찮겠어요? 좀 빡친 것 같은데.”

    “…패자가 무슨 말이 있겠나. 애초에 내가 무례하게 대했으니 할 말 없네.”

   

    청운을 불러 접객을 맡긴 문주가 인사와 함께 문주전으로 향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문주의 뒷모습이 굉장히 피곤해보였다.

   

    ‘아, 부탁할 거 하나 있었는데.’

   

    나중에 찾아가든 해야겠다.

   

    서준이 입맛을 다시며 청운을 바라보았다.

   

    “음…, 안녕하세요?”

    “…됐소. 뭘 이제 와서 새삼스레. 손님방으로 안내해드리겠소.”

   

    자기네 문주가 얻어맞아서 그런가 기분이 아주 안 좋아 보인다.

   

    서준은 현대 사회에서 단련된 사회생활 스킬을 발휘했다.

   

    “거, 청류검이었나? 무공이 참 괜찮던데.”

    “소…, 협의 무공만 하겠소? 청류검은 청하문의 기초 무공에 불과하오.”

    “지가모태노코노코 무공탓탓.”

    “그게 무슨 말이오…?”

    “아차. 아니 그냥, 청류검도 괜찮은 무공이라고요.”

   

    절대 니가 허접이라 그런 거라는 말은 아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도 연참.. 하고 싶은데 이게 마음 같지 않네용..
페이스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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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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