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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어머니, 죽을 구해왔어요. 이것 좀 드셔보세요.”

-“미안, 하구나···.”

[스킵. 바로 성인 시점으로 돌리고, 멈추라고 할 때까지 빠르게 넘겨.]

[재생 구간을 재조정합니다.]

[최대 배속으로 재생합니다.]

과거 회상을 틀어놨더니만. 도적단과 접촉하게 된 계기, 그러니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여주고 자빠졌다.

지금 필요한 건 이놈들이 도적단과 내통했음을 입증할 증거품. 악당의 구구절절한 과거사 따윈 추호도 궁금하지 않았다.

[스톱. 방금 내가 보고 여기다 하고 느낀 부분부터 다시 재생해.]

[재생 구간을 재조정합니다.]

그렇게 쓸모없는 부분은 빠르게 휙휙 넘기다. 심상찮은 부분에 멈춰 섰다.

도적 삼 형제 중 첫째, B급 녀석이 통신구 너머의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길드에 이번에 대박 건수가 들어온 거 같습니다.”

[여기네. 소리 좀 더 키워봐.]

[음량을 70으로 조정하였습니다.]

-“네. 최소 백작가 이상은 된다고 봅니다. 네. 네. 디스포제 방향 길목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역시 하나라도 등급이 높은 놈을 먼저 들여다보는 게 정답이었다.

정보 전달부터 해서 중요한 일을 도맡아해왔다면, 물증 또한 나올 확률이 높으리라.

[저 대화 상대와의 직간접적인 접촉만 모아서 보여줘. 물건을 주고받은 걸 최우선으로.]

[해당 조건으로 검색합니다.]

-“이, 이게 다 얼마야···!”

찾았다. 화면 속 회상의 주인공은 금품을 내려다보며 실실 웃어댔다. 하필 또 손에 쥔 게 반지라 그림이 좀 그렇다.

저게 도난품이라는 건. 튜토리얼 관리자의 권한으로 당사자의 인식을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다른 두 사람도 같은 조건으로 검색해 줘.]

[같은 조건으로 검색합니다.]

등급이 낮다고 해서 열정페이로 일했다거나, 그런 눈물겨운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보수의 질과 양에선 약간의 차이가 날지언정. 대우는 섭섭지 않게끔 거의 엇비슷했다. 훔친 물건들이라 바로 팔 수도 없으니, 녹여서 재가공해 줄 업자를 기다리는 것까지.

도적단 주제에 웬만한 기업보다 쿨거래인 게 아이러니할 따름이었다.

[물건을 숨겨둔 위치까지 전부 알아냈고. 다음은 여펨아을 영주와의 접점 위주로 찾아봐 줘.]

[해당 조건으로 검색합니다.]

이번 요청에는 지표 자체가 현저히 적어졌다.

그나마도 영주가 개인 용무로 길드에 방문했을 때 스쳐 지나간 거나, 행사 중 멀리서 본 게 고작.

그 외에 수상한 낌새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걸로 결백하다고 확정은 아니지만···일단은 오케이. 예상보다 훨씬 여유롭게 끝냈네.]

종료까지 앞으로 20분 가까이 남은 시점.

얘네들 갖고 할 건 다 했다. 이제 포박하든가 해서 경비대에 넘기기만 하면 되지만.

기왕 발동한 김에, 숙련도도 올릴 겸 본전을 뽑아야 하지 않겠나. 눈에 띄어서 아무 데서나 쓸 수 있는 스킬도 아니고.

[과거 회상 종료.]

[플레이어들의 ‘과거 회상’을 종료합니다.]

다들 좋은 꿈 꿨기를 바란다. 무얼,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그 무엇보다 금쪽같은 시간이었을 거다.

하지만 인간에게 행복할 권리가 있다면, 불행할 의무도 있는 법.

무엇보다 나는 직접 습격을 받은 최대 피해자 중 한 명으로서. 이 정도 사적 제재는 저것들이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다.

내가 괜히 장르를 호러로 설정했겠나.

[본인들 실제 경험 기반 악몽 랜덤 재생시켜. 자체적으로 과장 좀 보태서.]

[해당 조건으로 재생합니다.]

이번에는 악몽을 꿀 시간이다.

* * *

“허억···! 헉, 허억···”

“오. 바로 일어나셨네요.”

“너, 너어···!!”

도적 삼 형제가 사이좋게 기상하자마자 일제히, 나를 향해 손짓이나 눈빛으로 힐난해 왔다.

누가 보면 꿈에서들 봤을 과거가 죄다 내가 벌인 짓들인 줄 알겠다.

그래도 단번에 상황을 이해할 만치 머리가 굴러가기는 하나 보다. 너무 괴롭히기만 하는 모양새가 아니라 다행이다. 엄연히 악당은 저쪽인데.

“이건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세 분이서 형제 관계는 아니시죠?”

“죽여버리겠어···!”

내뱉은 말이 표정에 묻어난 그 즉시, 몸을 옆으로 움직여 삼 인분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저 레벨대의 도적 계열 이동기 스킬이라면 직선상 공격뿐.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기들 하고. 방금 그 거리에서 뭐가 날아올지 안다면야 눈 감고도 피한다.

“방금, 쳤어?”

말했다시피 안 맞았지만.

집단 린치로 살해 위협을 당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 이제 내가.

“마리아~!”

아니 우리가 무얼 하든. 그건 합법적인 정당방위다.

중세와 유사한 이 세계에, 과잉 대응 같은 하남자스런 법은 존재하지 않으니.

“누가 우리 오빠 건드렸어?”

“누가 우리 주인 건드렸느냐?”

““···.””

벽에 막혀 제자리에 머물며, 끝내 도적단과 놀아난 B급 하나. 그리고 거기에조차 못 미치는 C급 둘 앞으로.

A급 모험가, 그리고 이에 준하는 기백을 뿜어내는 소녀가 당도하였다. 소녀들은 한창 놀다 오는 참이라 몬스터의 피로 흥건했다.

““어, 어어···.””

턱-

“···으응?”

천천히 뒷걸음질 치던 도적 하나가, 무언가에 등을 부딪쳐 뒤를 확인해 보았다.

그들보다 머리가 두 개는 더 큰, 한밤중 아래에서도 존재감을 훤히 드러내는 새하얀 갑옷의 기사.

가슴팍에 새겨진 황실 문양이 멀리서도 돋보였다. 도적들은 자신들한텐 없는 유명 브랜드 명품이 부러운지 거의 울려고 들었다.

“하, 항복···”

콰앙-!!

항복 선언은 행동으로 대차게 거절했다.

먼저 죽이려 든 마당에 곱게 잡아갈 거라 생각하는 건 멍청한 짓. 무엇보다 이는 마리아의 새 인형과 아스트레아의 역량을 파악할 좋은 기회다.

일방적인 양상일 게 뻔해서 그 점은 아쉽지만, 인정사정 안 봐줘도 되는 대인전인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서걱-

새하얀 기사가 검을 크게 횡으로 그었다.

콰아아-!!

도적 트리오가 가까스로 굴러 이를 피해내면, 그 여파가 뒤로 쭉 나아가 해당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오.”

마리아도 그게 본 목적이었다는 듯. 출중한 위력에 감탄사를 자아냈다.

과연 황실 장인의 솜씨. 어쩌면 당장 올해에 S급을 노려볼 만할지도 모르겠다.

“바닥을 기는 꼴이 우습구나. 이제야 태도가 좀 마음에 드는 것이니라.”

다음으로 나서는 건 아스트레아. 그녀가 어깨와 목을 풀며 한가로이 나섰다.

그리곤 쾅- 하고 발을 내디뎌, 지면에 드러누운 도적들을 단숨에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우, 우와악-!!”

C급 둘은 일찍이 기절. B급 녀석만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서 아우성쳤다.

마리아가 새 인형에 만족했다면, 아스트레아는 자신에게 취한 채. 말아쥔 주먹을 허공으로 내질렀다.

[천마신공 – 일격(一擊)]

파아아앙-!!

깊은 밤, 어두운 숲속. 더한 어둠이 아닌 길목에 드리웠다.

이것은 희생양들을 덮쳐 희롱하였으며. 고고히 떠오른 붉은 달 두 개만이 휘어져 일렁였다.

“이 몸은 천마신교의 유일한 정통 계승자, 천마 아스트레아! 그 이름을 죄인 된 몸이나마 똑똑히 기억하거라!”

콕콕-

“기절했어.”

“이런. 깨우고 다시 해야겠느니라.”

보기는 잠깐 봤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벌써부터 기존 인형들의 재등장이 기대되는 마리아의 전력 강화도 그렇고, 아스트레아도 단순 컨셉충으로 치부할 단계를 아득히 넘어섰다.

“으악, 으아아악!”

“봤느냐? 여기를 꺾으면 효과는 좋으나, 시끄럽게 해선 안 될 상황에선 추천하지 않느니라.”

“응. 마리아 명심할게.”

서로 기절한 사람 깨우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모습은 훈훈하기까지 했다.

마주치기만 하면 (마리아만) 으르렁대던 애들 맞냐. 심장도 없는 가슴이 절로 다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그러다 실수로 죽이면 안 된다?”

밤은 여전히 길다.

우리는 운반하는 과정에 간간이 동료 간의 우애를 다졌다.

못 써먹을 악인을 이렇게라도 활용하는 것. 사회를 위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그러니까···살해 미수 피해자시라고요?”

“네.”

“저쪽이 가해자고요···?”

간악한 배신자들을 인계받은 경비대 수사관이 뻘쭘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해가 가는 것이. 저기 쓰러진 피, 아니 가해자의 꼴은 빈말로라도 멀쩡하지 못했다.

온몸이 무너져 내려, 얼굴에 이르러선 아예 울퉁불퉁해진 탓에 신원확인에 차질을 빚었고. 사지가 우습게, 안 부러진 뼈를 찾는 게 빠를 지경이었다.

“네.”

물론 겉모습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내면, 평소에 뭐 하고 굴러먹던 인간이냐다.

“···.”

“아니 진짜예요. 제 동료들이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쯤 죽음을 면치 못했을 거라구요.”

“맞아. 마리아가 이걸로 구해줬어.”

마리아가 새하얀 기사를 꺼내었다.

그리고 손으로 가리키는 척, 노골적으로 황실 문양을 강조했다.

“···마리아가 참 큰일을 했네? 그치?”

수사관이 곧장 꼬리를 내리고 단숨에 조서를 써 내려갔다.

우린 황실을 팔아먹은 게 아니다. 그저 마리아가 새 인형을 자랑했고, 이에 상대가 감복했을 뿐.

그런 식으로 적당히 장난을 치다가, 회상을 통해 알아낸 사항들을 일러준 뒤 조사실을 나섰다.

이제 길드 마스터한테 상황 보고만 마치면 일은 알아서 마무리될 것이다.

“마리아. 성국의 대성당은 주일에만 외부인을 받지?”

“응. 마리아 지명 의뢰로 인형극 하러 가봤어서 알아.”

“호오. 다음에 한번, 인형극 말고 재롱잔치는 안 해주더냐?”

“피의 잔치는 벌여줄게.”

‘여전히 주일만이면 오늘은 쉬고, 내일 출발하면 늦지 않게 딱 맞겠다.’

일행들이 투닥대는 사이. 인벤토리를 열어 나를 성녀로 인도해 줄 추천장은 잘 있나 살폈다.

[세피로트의 추천장]

[황궁의 서고관 세피로트가 직접 써준 추천장. 가장자리에 그녀의 눈물 자국이 묻어 있다.]

동료 한 명은 천마에, 본인은 아예 몬스터지만. 자비로운 신께서 사랑으로 정답을 내려주시길.

오늘은 자기 전에 기도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밤 우리 모두 개쩌는 바니걸 후배의 꿈을 꿀 수 있도록 빌게요. 성공하시면 저도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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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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