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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아이고, 제발 살려주십쇼!!”

        

       베르너가 그 말을 내뱉자마자, 혁명파 다이엔 슈미트는 냅다 땅바닥에 엎드렸다.

        

       간담이 서늘해지다 못해, 미리 방광을 비워놓지 않았더라면 오줌마저 찔끔 쌌을지도 모른다.

        

       혁명전선을 모조리 찢어 죽인다.

        

       그 말인즉슨, 자신도 찢어 죽이겠다는 말이 아닌가.

        

       눈칫밥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다이엔이다.

        

       윗층에서 뒷세계의 거물들 사이에 낑겨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자신이 감히 적대하려 했던 군인이 다름 아닌 개명한 전쟁영웅 루터스 에단이라는 것.

        

       무슨 이유로 루터스 에단 준장이 개명에 계급까지 바꿔가며 이 자리에 와 있는지는 몰랐다.

        

       애초에 알고 싶지도 않았다.

        

       쓸데없는 호기심에 이끌려 죽임당하는 놈들은 어딜 가나 있는 법.

        

       다만 그 정체를 알게 된 이상 다이엔에게 남은 건 두 가지뿐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당하던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여 살아남는 것.

        

       그리고 다이엔은 제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제가 아는 모든 건 다 불어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부족하시다면, 저를, 저를 길잡이로 사용하시지요!”

        

       “…길잡이라.”

        

       베르너가 제 턱을 쓸어내리며 읊조렸다.

        

       공기마저 얼려버릴 듯한 푸른 눈동자가 다이엔을 꿰뚫었다.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한다던 저승사자도 저렇게 살벌하지는 않을 것이다.

        

       “혁명전선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됩니다! 그렇지만 이번 거사가 순식간에 실패했으니, 분명 저쪽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조사하려 할 테지요!”

        

       합리적인 전제였다.

        

       본래라면 동부군관구를 철저하게 무너트리기 위해 깔아두었던 도청은 역으로 혁명전선의 음모를 사전에 알아차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덕분에 베르너는 연회장에 잠입해있던 혁명전선이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도 전에 모조리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

        

       후문에서 대기 중이던 간부급 인원까지 헌병대가 들이닥쳐 싹 청소해버렸으니, 저쪽에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터.

        

       “그때 제가 나서겠습니다!”

        

       엎드려 있던 다이엔이 고개를 치켜들며 외쳤다.

        

       베르너는 그의 결의가 꽤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일단 솔직했다.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 아니다.

        

       덜덜 떨리면서도 격양된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경외심에서 비롯된 감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오히려 제 감정을 숨기는 것보단, 이런 쪽이 베르너에게 있어서는 더 편했다.

        

       “괜찮겠나? 들켰다간 죽는 건 똑같을 텐데.”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똑같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은 뒷세계에서 다들 알아주시는 사람들이죠.”

        

       다이엔 슈미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미 동앗줄은 잡았습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이게 제 인생 일대의 기회일지.”

        

       “기회?”

        

       “사실 저에겐 가족도 없습니다! 이미 알고 계셨겠지만! 혁명전선에 가입한 것도 그냥 제 의지로 먹고살기 위해 한 거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물러서면 안 된다.

        

       일 초라도 망설여선 안 된다.

        

       생각조차 하지 말고,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모든 추레함을 적나라하게 내던진다.

        

       이미 눈앞의 사신은 몇 번이고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다.

        

       여기서마저 놓친다면, 앞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참한 죽음뿐이겠지.

        

       “그런데 먹고살기 위해 뭐든 하는 게 전 딱히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혁명전선도 따지고 보면 자기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고!”

        

       “…호오.”

        

       다이엔의 말에 마테우스가 흥미롭다는 듯이 발로 바닥을 탁탁 두 번 두드렸다.

        

       “결국 사느냐 죽느냐는 자기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거니까! 저는 제 하찮은 인생, 베르너 국장님께 거하게 배팅해보렵니다!!”

        

       다이엔이 그렇게 말하곤 다시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베르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다른 주춧돌에게로 옮길 뿐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나오면 다른 놈들보단 믿을만하죠. 먹이만 제대로 던져주면 절대 다른 생각은 안 할 테니.”

        

       마테우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글쎄 나는 회의적인걸? 저런 말을 하는 남자가 한둘이었어야지. 남자는 원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잖아.”

        

       도로시는 딱히 흥미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손을 더럽히지 않기엔 제격. 딱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지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던 레고로도도 작지만 선명한 목소리로 덧붙이고.

        

       “뭐, 인생사 잘 먹고 잘 사는 게 전부 아니겠습니까! 정보원은 많을수록 좋고, 내부자도 많을수록 좋죠!”

        

       어느새 다이엔의 목소리도 카피한 살로카가 유쾌하게 마무리했다.

        

       “…좋아. 다이엔, 그럼 네가 직접 증명해보도록 해. 이건 명령이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 밤, 다이엔 슈미트는 가장 가까운 혁명전선 지부로 돌아갔다.

        

       충정을 증명하겠답시고 오른쪽 어깨에 위치추적기를 직접 박아넣고 스스로 꿰매기까지 했다.

        

       무기고에서 벌어진 학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도망쳐왔다고 할 생각이라던가.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베르너 그라임의 총구는 혁명전선, 더 나아가 감히 국가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모든 반동세력으로 향했다.

        

       안보전략국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은 첫 사냥감이었다.

        

        

        

       ***

        

        

        

       고요한 침묵만이 감도는 방.

        

       시간은 이미 늦어 창밖은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 있었다.

        

       찰칵.

        

       베르너는 말없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욱, 숨을 내쉬자 독한 연기가 눈앞에서 흩어졌다.

        

       군 은퇴와 함께 청산할 예정이었던 인연들이었다.

        

       비석의 주춧돌이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결국엔 범죄 집단이다.

        

       자신이 직접 부리는 입장이니만큼 그들을 직접 폄하하지는 않겠지만, 매번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자, 붉은 적십자가 그려진 커다란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동부군관구 브란베르크 병원.

        

       레아 길리아드가 입원해있는 병원이었다.

        

       어제까지만해도 저기에 있었지만, 아르헨을 비롯한 전 그레이브야드 소속의 인원들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빠져나왔다.

        

       아마 아르헨은 레아를 붙잡고 엉엉 울고 있지 않을까?

        

       겉보기엔 차가워 보여도 내면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여리고 유한 여자였으니.

        

       베르너는 병실에서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아르헨이 싫어했던 이들을 만난 직후였으니까.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저는 조금, 아니 많이 껄끄러워요, 루터스.

        

       -결국 저들은 범죄자였잖아요. 저희처럼 대의조차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루터스 당신이 저들에게 물들까 걱정이 돼요.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서도, 범죄자들과 회담을 갖는 것을 아르헨이 좋게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적어도 그때까지는 신뢰가 두터웠다.

        

       아르헨은 루터스의 연인이었고, 다른 약혼녀들과의 관계에서도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깊어진 신뢰와 관계만큼이나, 아르헨은 루터스의 생각을 최대한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 모든 접근을 원천 차단하다 못해, 끝끝내 미움까지 받아버린 이번 회차에서의 아르헨의 반응은 그야말로 최악.

        

       -우리가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범죄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죠?

        

       -사령관인 당신이 범죄자들과 붙어먹는다면, 전선에서 목숨까지 걸어가며 싸우는 우리들의 명예까지 땅바닥에 처박아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건가요!!

        

       -치욕스러워, 부끄러워요.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고 피력해도, 당신이 이 요새의 사령관이고 내 직속상관이라는 사실이 내 의지를 꺾어놓는단 말이에요!

        

       사실 그래서 어느 회차보다도 더욱 가깝게 지냈던 것이기는 했다.

        

       아르헨은 물론이고 샬롯에게도 절대 좋은 말은 못 들을 게 뻔했으니까.

        

       특별히 레아에게는 더더욱 조심했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루터스 에단은 주춧돌이라 불리는 이들을 잔혹하게 휘둘렀고, 준장이라는 계급으로도 전선 전체를 휘어잡을 수 있게 되었다.

        

       지역갱단, 게릴라, 심지어는 약쟁이들에 이르기까지.

        

       그레이브야드의 출혈을 최소화하는 대신, 그들의 목숨 값으로 지불했다.

        

       지금 겪는 이 모든 일이 업보라면 업보이리라.

        

       하지만 그 업보 위에 또 다른 업보를 쌓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 멈출 수는 없었다.

        

       치지직.

        

       베르너는 끝까지 타들어 간 담배꽁초를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어차피 내일은 포비든 레이크로 돌아가야 할 날이었다.

        

       혁명전선이라는 조직에 대해 더 캐봐야 할 것도 많았고, 그만큼의 조직을 분쇄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으니까.

        

       ‘게다가… 신입들도 있었고.’

        

       이제 슬슬 실무에 투입될 시기기는 했다.

        

       안보전략국이라는 새로운 식구들이 생긴 이상, 그들도 챙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 일은 많았다.

        

       공허할 뿐인 마음과는 다르게 말이다.

        

        

        

        

       다음날.

        

       베르너 그라임과 카린 메이븐은 최고 사령부의 헬기를 타고 안전국으로 복귀했다.

        

       다이엔 슈미트가 혁명전선에 무사히 잠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2주가 지난 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Tristesse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응원의 말씀대로 열심히 정진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이 작품을 발견해주신 분은 독자님이니, 앞으로도 독자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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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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