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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20 – 저 믿고 따라와요>

     

    “그럼 시험시작에 앞서 여러분의 위치를 파악하고 채점을 하고자 감지장비를 개방하겠습니다. 모두들, 티켓을 꺼내 손목에 대주십시오.”

     

    티켓이 꾸물꾸물 거리며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더니, 금속 링처럼 단단해져서는 손목을 감쌌다.

     

    “이것이 여러분의 심사를 도울 티켓워치입니다. 티켓워치는 착용자가 시험을 지속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시에 가까운 심판에게 구조신호를 보냅니다.”

     

    물론 저거만 믿고 있다간 덜컥 죽는다.

    구조신호를 보낸다고 했지 저게 내 목숨을 구해주는 건 아니잖아.

    더욱이 저 시계에는 맹점도 있지.

    시계를 찬 손목이나 팔이 잘리면?

    그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도 시체도 못 건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참가자 여러분은 최대한 본인의 안위에 신경 쓰시고, 시험속행이 무리라고 판단될 시에는 즉시 <기권>을 선언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최소 골드티켓을 지니고 참여하신 만큼, 본 상급시험에서 기권하거나 탈락하더라도 하급시험을 응시하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플래티넘 티켓의 소지자분들은 플래티넘 특권을 상실하는 대신 중급시험 최종시험에 응시하실 수 있습니다.”

     

    와 미친.

    이게 이런 구제방책이 있었어?

    솔직히 깜짝 놀랐다.

    시험 떨어져도 아래쪽 반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캐릭터들이 종종 있기에 저건 뭐지? 싶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런 기믹이 있었다니.

    매번 우월한 스펙과 고인물 지식을 바탕으로 상급시험을 통과했던 입장에서는 미처 몰랐던 기능이다.

     

    ‘현실이 되니까 묘하게 정보에 친절하네.’

     

    명호스님은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알렸다.

     

    “본 시험은 어디까지나 기프트 아카데미의 상급학생을 판별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참가자 간의 교전은 허락하되, 사망자가 생기면 해당 응시생에게는 막대한 감점이 주어집니다.”

    “만일 과도한 살상행각이 적발될 시에는 심사관이 임의로 응시자격을 박탈할 수 있으며, 최대 3년간 재응시가 불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

     

    사실 존나 뻔한 소리기는 하다.

    세탁기에 아이를 넣지 마시오.

    개에게 초콜릿을 먹이지 마시오.

    다리미로 허벅지를 지지지 마시오.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들이지.

    그런데 이 게임의 정서는 한국보다 미국에 가깝다.

    뭐 이딴 소리를 하나 싶은 규정이 있는 이유는 그게 다 실제로 일어난 적이 있기 때문이거든.

     

    ‘전쟁세대로 플레이하는 회차에서는 저 스님은 상상도 못할 일까지 일어나지.’

     

    다행히도 참가자의 면면을 보면 그렇게까지 험악한 세대는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출현하지 않는 주조연 캐릭터들이 발견되었거든.

    북부대공녀가 나왔으니 <마족조기침공> 지역이벤트도 없고, 동방제국의 검객 싱이 참가했으니 <동방제국의 침략> 지역이벤트도 없다.

    서부 주요NPC도 확인했으니 <서부내란>도 없고 남부 주요NPC도 봤으니 <남만해적왕의 습격>도 없는 사방이 모두 클린한 회차다.

     

    “그럼 1차 관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요컨대, 주조연 억까가 없는 회차다.

    나만 잘하면 된다 이거지.

     

     

    * *

     

     

    <1차 관문 석탑쌓기 이벤트>

    최대한 많이, 최대한 많이 돌탑을 쌓아라!

    제한시간은 6시간.

    탑을 쌓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지만 시험이 끝날 때까지 탑을 지킬 수 있는지는 별개입니다.

    자신의 탑을 지키든, 남의 탑을 부수고 다니든, 숨어서 몰래 탑을 쌓든 시험에 응하는 방식은 자유!

    당신만의 방법으로 1차 관문에 도전하십시오.

     

    입학시험은 인간성의 시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내가 잘 나가는 것보다 남이 못나가는 것을 더욱 즐기는 사람이 있다.

    내가 잘되기는 어렵고 힘들다.

    노력이라는 것을 해야 하니까.

    남을 망치기는 쉽다.

    폭력만 휘두르면 가볍게 망가뜨릴 수 있으니까.

    그런 폭력으로부터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이 법의 역할이지만 입학시험장은 애석하게도 치외법권.

    어느 나라의 법률로도 보호받지 못한다.

    트롤들이 활개 치기 딱 좋다는 말이다.

     

    “북부대공녀 아이린이다!”

    “저 콧대 높은 년이 우리 파벌의 초청을 거절했지?”

    “본때를 보여주자고.”

     

    네임드 NPC들은 보통 적이 많다.

    북부대공녀 아이린은 본인의 차가운 성정과 도도한 태도로 인해 특히나 그렇다.

    아이린이 쌓은 석탑을 향해 돌을 던지며 방해하는 방해꾼들이 빠르게도 등장했다.

     

    쩌적

    쩌저적

     

    “응?”

    “어?”

    “도, 돌이 공중에서 얼어붙었어?”

     

    원숭이수인 손오천이 “오”하고 감탄했다.

    나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끌었다.

     

    “뭘 멍하니 있어? 빨리 도망쳐야지.”

    “쥐방울 아니랄까봐 겁도 참 많구나. 네놈은 궁금하지도 않냐? 이번 입학지망생 중 가장 강할지도 모르는 녀석의 실력이.”

    “신진 3강 말이군요.”

     

    지젤이 아는 체를 했다.

     

    “어린 시절부터 북부 이민족들과의 전쟁을 경험한 북부대공녀 아이린. 서부삼국에 명성을 떨친 성기사 제이다스. 남부의 명장 헤더의 아들, 헥토르.”

    “그놈들이 나보다 강한가?”

    “저로서는 손오천씨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아 몰라.

    난 말했다.

     

    “음? 기온이 차가운데?”

    “이, 이런. 하늘입니다. 하늘을 보십시오!”

     

    지젤이 뒤늦게 이상을 눈치 챘다.

    나무에 맺힌 이슬이 얼어붙어 고드름이 됐다.

    고드름은 뚝 떨어져나와 얼음가시가 되고, 얼음가시는 나란히 도열하며 그녀의 돌담을 공격했던 이들을 향해 날을 세웠다.

     

    “도, 도망쳐!”

    “으아악, 우린 공격 안했다고!”

    “이쪽으로 오지 마, 미친놈들아!”

     

    하필이면 아이린에게 도발을 걸었던 응시생들이 도저히 다 피할 수 없는 얼음가시들의 습격에 줄줄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인파 사이로 숨어든 이들은 간신히 부상을 면했지만, 소동에 휘말린 이들이 가만 둘 리가 없다.

     

    “이 미친 새끼가 어디서 개수작이야!”

    “우리까지 탈락당할 뻔했잖아!”

     

    경쟁도 수준이 맞아야 시도라도 해보지, 현역 종군마도사로 뛰는 북부대공녀 앞에서는 너도 나도 두려워하며 눈에 찍히지 않기에 급급하다.

    수준차이도 모르고 콧대 높였던 도련님아가씨들은 결국 얼음가시에 당하거나, 습격에 휘말려 탈락할 뻔한 다른 이들의 공격에 당해 대부분이 탈락했다.

     

    “거 더럽게 차갑네.”

    “아니, 그걸 몸으로 받아냈습니까?”

     

    손오천은 무식한 원숭이수인 아니랄까봐 창으로 대부분의 가시를 받아내었는데, 미처 막지 못한 가시 하나는 그냥 몸으로 때웠다.

    남들은 찔리는 족족 관통상을 입거나 상처부위 주변이 얼어붙어 괴사할 걱정을 하고 있는데 혼자 겉가죽에 살얼음만 조금 일었다.

    튼튼함 하나만큼은 정말 인정해줄만하다.

     

    “뭐냐, 그 망토는?”

    “문명의 이기라는 겁니다. 냉기속성 공격을 막기에 최적화된 냉기망토라고도 부르죠.”

    “아니, 무슨 시험을 템빨로 치러?”

    “템빨로 때우면 안 된다는 법은 없었습니다.”

    “더럽게 억울하네.”

     

    티격태격하던 지젤와 손오천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근데 쥐방울은 어디로 갔지?”

    “오크노디 양. 계십니까?”

    “여깄어요.”

     

    나를 찾는 목소리에 고개를 쏙 내밀었다.

     

    [광역공격을 나무뿌리 밑에 숨어 피했습니다.]

    [숨기 경험치+3]

    [신속기동 경험치+1]

     

    두 사람이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나무뿌리 밑에서 기어 나오니, 기막히다는 시선이 날아왔다.

     

    “이건 뭐 두더지인간도 아니고.”

    “허참. 얼음이 날아들기 전까지만 해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언제 그 밑까지 숨었습니까? 숨는 재주가 정말 탁월하시군요.”

    “평소의 수행 덕분이죠.”

     

    부지런히 이곳저곳 숨어다닌 보람이 있다.

    역시 숨기 기능은 가성비 원탑이야.

    키우면 절대로 배신하지 않아.

     

    “……평소의 수행이라니요?”

    “이런 때에 대비해서 이곳저곳 자주 숨어 다녔거든요.”

    “이런 때라는 건 어떤 때를 말하는 겁니까?”

    “무슨 당연한 걸 물어요? 마법폭격을 당할 때라거나, 살인자에게 쫓길 때라거나?”

    “그러니까, 열 살이나 갓 될까 말까 한 그 나이에 평상시에도 살인자와 마법폭격을 피해 숨는 경험을 쌓았다는 말입니까?”

    “우씨, 저 열 살 아니거든요? 아저씨가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나이 많을 텐데?”

     

    원래는 스무 살도 넘었다고.

    그런 내 말이 어지간히도 믿기지 않았는지 입만 뻐끔거리던 끝에 지젤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 집사와 메이드에게는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군요.”

    “왜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괜히 공격받기 전에 자리부터 뜹시다.”

     

    서늘한 눈으로 어디 더 까불 수 있으면 까불어봐라,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아이린.

    그녀의 눈에 띄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쳇. 도전과제는 포기해야겠네.’

     

    참고로 아이린이 쌓는 돌탑의 꼭대기에는 100%의 확률로 스탯석이 출현한다.

    흔치 않은 확정출현 스탯석이지만 북부관련 스타팅이 아니면 거기까지 접근할 수도 없다.

    혼자서 응시생 수십 명을 쓸어버릴 수 있는 신진 3강에게 안면도 없이 얼쩡거리는 건 미친 짓이지.

     

    “여긴 우리 서부용병연합이 점유한 영역이다. 다치고 싶지 않으면 꺼져라.”

    “명문귀족으로 이름을 알리지도 못한 촌뜨기를 귀족연합에 받아줄 생각은 없단다. 그대로 지나가렴.”

     

    주변의 다른 땅들도 아이린에게 밀린 사람들이 하나씩 점거했다.

    다수연합은 그나마 말이라도 하면서 경고하지, 소수의 강자들은 경고도 없다.

     

    “돌대가리도 돌 아닌가? 맞나? 아닌가?”

    “으아악 미친놈이다!”

    “도망치지 말고 가만있어봐.”

     

    멀쩡한 사람을 석탑재료로 쓰려는 또라이.

     

    “일단 다 쓰러뜨리면 방해할 놈도 없겠지.”

    “아, 제발! 우린 너한테 관심 없다고!”

     

    근처에 있는 응시생은 모조리 들이받는 호전적인 창술사.

    하나같이 살벌한 놈들이 날뛰어댄다.

     

    “거 자존심 상하게 굳이 산 위로 올라가야 되나? 모인 놈들은 만만해 보이고 따로 있는 놈들은 붙어보고 싶은데.”

     

    손오천은 산을 타는 것이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상급시험관 미하엘에게도 시비를 걸 정도로 호전적인 양반이 여기까지 참은 것도 용했다.

    북부대공녀 아이린의 광역기에는 그도 ‘아, 이건 좀.’ 하면서 눈치를 보며 달아났지만 나머지들을 상대로는 자존심이 상하나보다.

     

    “저 믿고 따라와요. 산 밑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이라고는 대부분이 자갈 수준이나 다름없잖아요.”

     

    힘 센 개인이나 머릿수 믿고 뻐팅귀는 다수는 바위산 초입에서 자리를 깔고 앉았고, 힘이 약한 개인이나 세력이 부족한 소수그룹은 산을 올랐다.

    그렇지만 산을 오른다는 행위가 꼭 불리함으로 작용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상급시험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마요. 그냥 자리 지키고 아무데나 돌탑 세울 수 있으면 그걸 아카데미 입학시험으로 삼겠어요?”

     

    이 이벤트.

    인생 1회차 NPC들은 모를 엄청난 서프라이즈 이벤트가 숨어있다.

     

    ‘5시간 뒤였지, 아마?’

     

    바위산에서 돌탑쌓기 이벤트.

    여기, 시험 끝나기 1시간 전에 산사태가 일어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든 탑 부수기 MVP는 시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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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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