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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하루 종일 푹 정양한 후. 다음 날.

        근육통은 싹 나았음에도 불구, 강의실에 앉은 내 미간은 여전히 잔뜩 찌푸려진 채였다.

        

        밤새 머리를 싸매도 해결되지 않은 고민.

        초반부 빌런, 윈터러의 모순 때문이었다.

        

        

        “이번 강의는 내가 직접 강의하지. 각성자들의 주적, 빌런들의 습성에 대해….”

        ‘하, 윈터러 걔 뭐지? 뭐 숨겨진 설정이 있나?’

        

        

        게임에서 빌런이 어떤 존재인지 단번에 이해시켜주는 극초반 악역, 윈터러.

        

        한국에서 그녀의 악명은 자자했다.

        한국 각성자 사회의 대들보인 이사장을 죽이려 드는 인물 아닌가.

        그 목표만 봐도 1급 빌런으로 지정된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동시에, 게임에서 그녀의 역할은 동네북.

        프롤로그부터 아카데미 습격에 실패한 모지리로 나오고, 두 번째 습격에선 아예 플레이어한테 털리는 전형적인 악당.

        

        때문에 난 그녀를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모르고 당하면 게임오버 직행 루트를 타지만, 패턴만 외우면 날먹 가능했으니까.

        나에게 그녀는 그저 엑스트라 악당 A였다.

        

        

        ‘……분명 그런 줄 알았는데, 뭐지? 왜 하루를 안 써먹은 거야?’

        

        

        하지만, 서하루의 존재를 생각하면?

        

        고작 습격을 실패할 리가.

        하루와 함께 협공하면, 아무리 백전노장의 이사장이라 해도 목숨을 지킬 수 없었다.

        윈터러가 그것도 모를 정도로 머리 나쁜 빌런은 아니었고.

        

        한데, 아카데미 습격은 실패.

        하루는 건물이나 조금 부수다 이사장에게 잡힘.

        

        윈터러가 하루의 능력을 안 써먹는 걸 넘어, 마치 일부러 풀어준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빌런이 하루한테 그럴 리는 없….’

        “크흠. 서유진 생도? 강의에 집중하지. 그리 대놓고 멍 때리면 나도 좀 무안하다네.”

        “……아, 죄송합니다!”

        “푸흡. 그럼 이 참에 서유진 생도가 빌런의 특성을 말해보게.”

        

        

        생각에 잠긴 와중, 날 부르는 이사장.

        무려 S급 4위이자 빌런 식별 최고 권위자의 강의에 딴청을 피우냐는 듯한 미소가 날 향했다.

        

        …시급 천 육백만 원짜리 알바 시켜주는 사장님한테 밉보일 수는 없는 노릇.

        얼른 일어나 대답했다.

        

        

        “예. 빌런은 각성자들 사이 드문 빈도로 나타나는 특이 케이스로….”

        

        

        빌런. 일반적인 범죄자와는 달리, 살인을 마치 마약처럼 받아들이는 이상 개체.

        사람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빌런의 유일한 행복이자 존재 의의였다.

        지나친 도파민에 절여진 뇌는 그것만을 갈구하며 살아가게 되니까.

        

        그와 동시. 그들은 소시오패스적 특성도 가진다.

        각성의 순간, 원인불명의 자극으로 뇌가 공감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

        자신 이외의 사람은 어찌 되어도 좋다 진심으로 여기는 게 빌런이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 빌런은 사회악이 된다.

        각성 전까지 쌓아온 도덕관념이나 가치관 따위는 잊고, 그저 쾌락살인이 주는 도파민을 쫓는 악당.

        일반적인 범죄자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악적이.

        

        

        “요약하자면, 나쁜 녀석들입니다.”

        “완벽하군. 그럼, 빌런의 교화 가능성은 어찌 생각하지? 최면 능력을 가진 서유진 생도라면 흥미로운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만.”

        “장담컨대, 절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빌런은 내 최면으로도 교화가 불가능했다.

        

        내 최면은 상대방이 얼마나 싫어하느냐에 따라 지속 시간이 달라지는 편.

        한데, 빌런들은 ‘착하게 살아라’ 이 명령을 말 그대로 죽기보다 싫어했다.

        자살시키는 게 한 5배쯤 더 편할 정도니 말 다한 셈.

        

        그런 명령을,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걸라고?

        

        척 봐도 무리고, 실제로도 무리였다.

        친구 부탁으로 0급 빌런 교화를 시도해 본 적 있는데, 아예 3초도 안 가서 풀리더라고.

        

        

        ‘뭐, 이건 지금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최근 각종 미디어 매체가 빌런의 미화나 교화에 대해 다루고, 인권 단체에서도 말이 많지만….”

        “절대 불가능하지. 그래. 서유진 생도의 말이 백 번 옳다.”

        

        

        내 설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사장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입술을 슬쩍 핥는 건 덤이었다.

        

        

        -츄릅. 중얼중얼.

        

        “말은 그래도, 직접 겪어보기 전엔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거늘. 보면 볼수록 문란한 놈일세. 대학원생. 아니, 후임으로 저만한 놈이 없…….”

        ‘저 할매 왜 저래? 자기가 강의할 거 내가 다 말해서 삐졌나? 주책도 참.’

        

        

        아무튼. 이 정도면 강의 중에 딴청 피운 벌은 다 치른 것 같아 도로 앉은 나.

        

        옆에 앉아있던 시아가 곧장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의외네. 너라면 ‘당연히 가능하죠. 실은 저, 좀 세거든요’ 같은 말 할 줄 알았는데.]

        

        -사각사각.

        

        [그거 입학 시험때 내가 했던 말인데. 그건 또 언제 들었어?]

        [인터넷에 나돌던데? 귀엽더라.]

        [……멋있지 않았어?]

        [다들 허접해서 귀엽다던데?]

        

        “…….”

        

        

        …뒤늦게 약간 귓불이 뜨거워졌다.

        앨리스한테 멋있게 보이려고 한 말이었는데, 막상 이리 글로 보니 좀 유치한 것 같기도 하고.

        

        설마 앨리스도 그리 생각하나 싶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흥.”

        

        -홱.

        

        “…….”

        ‘맞다. 얘 아직 삐져있었지.’

        

        

        이걸 눈도 안 마주쳐주네.

        

        뭐, 이해 못 할 반응은 아니긴 해.

        어제 멋대로 재우고, 생리에 잘 듣는 진통제까지 왕창 사다 줬는걸.

        뭐야 얘. 징그러워. 극혐. 뭔 짓 한 거 아냐?

        이런 생각에 날 꺼리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사각사각. 스윽.

        

        [유진, 어제 진짜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눈 안 마주쳐주는 것과는 별개로, 앨리스가 나한테 종이를 쓱 건넸다.

        

        이건… 아마, 그녀 나름의 화해의 제스처.

        너 아무 것도 안 했지? 그래. 잘 하자.

        이런 뜻을 담은 필담임이 분명했다.

        

        화색이 되어 받았다.

        

        

        ‘나 같아도 의심했을 텐데, 이걸 믿어준다고? 캬, 역시 내 아내. 사랑….’

        

        -홱.

        

        “……?”

        “흐응? 흐응~?”

        

        

        ……시아가 홱 뺏어버렸지만.

        

        영문을 몰라 눈만 깜빡거리는 나.

        하지만 시아는 의미심장하게 웃고선 펜을 놀릴 뿐이었다.

        

        

        -사각사각. 홱.

        

        [유진이 잠든 상대한테 무슨 짓 할 사람으로 보여?]

        

        “……쯧.”

        

        -홱.

        

        [시아 양한테 물은 거 아니거든요. 그리고, 유진이 그럴 사람 아닌 건 잘 알아요.]

        

        

        그 종이를 받아들고선, 혀를 한 번 차고 바로 시아에게 토스하는 앨리스.

        너무 빨리 건네서 뭐라 쓰여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이게 무슨….’

        

        -홱. 홱홱.

        

        [하긴, 잘 알겠지. 얼마나 유진을 귀찮게 굴었으면 재우고 방치했겠어?]

        [유진은 절 방치한 게 아니거든요? 저 잘 자라고 머리까지 풀어줬어요.]

        [방치한 거 맞네. 너 자는 동안, 유진이랑 난… ■스 했거든. 끝나고 유진 숙소에서 오붓하게 점심도 같이 먹고.]

        

        “……What?”

        

        

        탁구를 방불케하는 초고속 랠리가 잠시 멈췄다.

        앨리스의 얼빵한 목소리는 덤.

        

        깜빡, 깜빡. 이게 뭔가 종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스윽.

        

        [저기, 시아 양. 이거, 앞 글자가 흐려서 안 보여요. 유진이랑 뭘 했다고요?]

        [일부러 썼다 지운 거야. 신성한 강의실에서 그런 단어를 쓸 수는 없잖아?]

        [그런 단어가 뭐냐니까요?]

        [순화해서 말하자면, 남녀가 서로 땀투성이가 되는 일?]

        

        “……? ………!!!!!?”

        

        -홱.

        

        

        이번엔 날 빤히 쳐다보네.

        눈을 크게 뜨고선. 마치 이게 사실이냐는 듯.

        

        …아니, 나한테 안 보여주고 너희들끼리 얘기했잖아.

        말을 해야 대답해 주지.

        

        

        “왜 그래, 앨리스?”

        “……으으.”

        

        -사각사각. 홱.

        

        [더러운 농담 하지 마요, 시아 양. 유진 그럴 사람 아니에요.]

        

        

        심지어 물어봤더니 무시.

        얼굴이 새빨개진 앨리스가 초고속으로 시아에게 종이를 던졌다.

        

        결과. 제 2회 초고속 필담 랠리가 시작됐다.

        

        

        -홱홱홱.

        

        [그럴 사람 맞던데?]

        [거짓말 마세요. 유진은 그런 거 몰라요.]

        [모르긴. 얘도 남자애인데, 그런 거에 관심이 없겠어?]

        [유진은 그런 거 모른다고요!]

        [엄청 잘 알던데.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씻은 다음에 치킨을 혼자 두 마리나 해치웠다니까?]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시아 양은 거짓말쟁이에요.]

        [증거를 보여줘야 믿을래? 내 옷 안 보여? 어제 입었던 옷, 유진 덕에 이리저리 푹 젖어버렸거든. 그래서 이거 입고 온 거야.]

        

        -빠득.

        

        

        여자들끼리 뭔 필담을 이리 열심히 나누나, 이거 자리 바꿔줘야 하나.

        이리 고민하고 있으려니 들린 이 가는 소리.

        앨리스한테서 난 소리였다.

        

        그녀의 입술이 내 귀로 향했다.

        

        

        -소곤소곤.

        

        “그, 유진? 시아 양이 거짓말을 해서 그러는데, 그으… 어제, 시아 양 옷이… 유진 때문에 젖었다고…….”

        “응?”

        ‘뭐지. 드라이클리닝 할 돈 내라는 건가.’

        

        

        뭘 물어보려나 싶었는데, 어제 내 땀에 흠뻑 젖은 시아 옷 얘기한 모양.

        

        그제야 왜 둘이 이러는지 이해가 갔다.

        하긴. 운동하다 축 쳐진 놈 부축해 주느라 땀투성이가 됐는데. 사례하기는커녕 드라이클리닝 값도 안 줬으니까.

        그게 여자 사이에 공분을 산 모양.

        

        

        ‘시아는 돈 많으니까 신세 좀 지려 했는데… 쯧. 이사장님한테 가불 부탁해야겠네.’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지.”

        “응. 그래서 내가 책임지려고.”

        

        

        마침 강의도 끝났기에, 책임지고 변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앨리스가 소스라쳤다.

        

        

        “……!!!!!? 유, 유, 유진. 책임이라니….”

        “어제 시아한테 그렇게 신세를 졌는데, 무책임하게 모르는 척 넘어갈 수는 없잖아?”

        “하, 하아?”

        “천만 원은 필요할 테지만, 급히 마련해 보려고.”

        ‘아티팩트는 수선 비용도 장난 아닐 테니까 말야.’

        

        

        하지만 난 당당했다.

        고작 땀에 젖은 것뿐이니 그냥 드라이클리닝만 해도 별 문제 없겠지만, 아예 풀코스 수리를 맡겨주겠다.

        아주 새것처럼 뽀송뽀송하게 만들어주겠다.

        

        남자로서 백 점짜리 대답에, 지켜보던 시아조차…

        

        

        “……? 유진? 그게 무슨 소리야?”

        “응?”

        

        

        감동할 줄 알았는데, 어이없어하더라.

        뭐지.

        

        

        “그게, 비싼 아티팩트 젖었으니까. 수선 비용으로….”

        “그거 그냥 물빨래 하면 되는데?”

        “……그래?”

        “응. 애초에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너한테 돈 내라 하겠어?”

        “엥. 그럼 앨리스 너는 왜…?”

        

        

        뭐지. 드라이클리닝 값 안 준다고 뒷담 하던 거 아니었나.

        왜 화낸 건가 싶어 앨리스를 빤히 쳐다봤다.

        

        앨리스가 손에 든 종이와 날 번갈아 쳐다봤다.

        

        

        “어… 혹시 유진. 어제 시아 양이랑 뭐 했어요?”

        “응? 아아, 그 얘기 중이었구나? 앨리스도 관심 있어? 내 진심 헬스.”

        “………?”

        

        

        앨리스의 표정이 멍해졌다.

        시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건 덤이었다.

        

        

        “…시아 양?”

        “장난이었는데, 이걸 진짜 걸려드네. 푸흡.”

        “그, 남녀가 땀투성이가 된다고.”

        “운동하면 당연히 땀투성이가 되지. 난 기진맥진한 유진 옮겨주느라 덩달아 젖었고.”

        “남자가 관심을.”

        “운동에 관심 없는 남자애 쪽이 드물지 않아?”

        “…….”

        

        

        종이를 한 번 내려다보고.

        시아를 한 번. 나를 한 번.

        마지막으로 종이를 다시 한 번.

        

        이어,

        

        

        -부들부들.

       

        “…….”

        

        

        뭔가 엄청 복잡한 표정으로 울먹이더라.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야.

        

        

        “앨리스? 왜 그래…?”

        “……유진은 몰라도 돼요.”

        “응. 넌 몰라도 돼~.”

        “……?”

        

        

        뭐지. 나 빼고 둘이 오목이라도 둬서 시아가 이겼나.

        여자들의 세계란 알다가도 모르겠네.

        

        

        * * *

        

        

        아무튼. 그렇게 아내들과 꽁냥거리고 있으려니, 강의를 끝마친 이사장이 설렁설렁 걸어왔다.

        

        

        “서유진 생도. 잠시 할 말이 있네만….”

        “예? 아. 말씀하시죠.”

        ‘갑자기 왜 이런대? 하루한테 무슨 일이라도….’

        

        [벌써 알려졌다간 소란이 날 테니 전음으로 하지. 내일, S급 7위가 아카데미에 방문할 예정이네.]

        

        “…….”

        

        -빠드득.

        

        ‘S급 중 유일한 남자. 그 놈이, 온다고……?’

        

        

        절로 이를 악물게 되는 소식과 함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슬픈엄지유저 님 1코인 선물 감사합니다!
    감사의 응애모드를 뜌땨… 뜌우땨이 뜌땨땨 우땨야!

    + 플러스 기념 연참 이번 주까지 한댔는데 왜 벌써 일요일?
    오후 7시까지… 다음 화 작업… 어떻게든 해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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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2회차 최면교배 아저씨가 능력을 안숨김
Score 5.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Since I regressed, I decided not to hide my abilities.

“Hypnosis, huh? That’s amazing! Hypnotize me too!”

“How about me, instead of that sly fox? If you join our clan… you, you can hypnotize me!”

…Maybe I exposed it to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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