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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산 하나를 넘으면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구조.

         

       내 경우에는 그 산의 굴곡이 바이어슈트라스 함수를 닮아서, 모든 점에서 연속이지만 동시에 모든 점에서 미분 불가능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매끄럽게 넘어가는 게 없다는 소리다.

         

       당장 직면한 문제는 등록금이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헤를라인 선생님이 운영하는 골렘 연구실은 돈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도와달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200만원 상당의 돈을 꾸려면 선생님 랩실에 계신 대학원생 한 분이 굶으셔야 했다.

         

       ─ 많이 못 해줘서 미안해. 대신 사용인에겐 잘 일러둘 테니까 기숙사 들어갈 때까진 내 저택에서 묵어도 돼.

         

       무엇보다도 헤를라인에게는 지금까지만 하더라도 받은 게 한둘이 아니었다. 이 이상으로 금전적인 빚을 지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다시 노동해야 한다. 아무래도 내 인생은 당장 편해지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천 년 묵은 아카데미가 입학생에게 쏟아붓는 장학금이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점은 별로 마음에 안 들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쉬지 않고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의 재정이 건전한 적이 있었나.

         

       전쟁은 이겨도 좆되고, 지면 더 좆되는 것인데. 이 나라가 천 년이나 유지되고 있다는 것만 해도 기적이겠지.

         

       틸레트 아카데미의 장학제도가 짠 이유는 그것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기본적으로 입학생 대부분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귀족이기 때문이다. 정말 잘하는 애들 한둘을 제외하고는 굳이 등록금을 덜어줄 이유가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찌 되었건 아카데미 등록금을 벌지 못할 정도까지 내몰린 건 아니다. 입학 직전까지 평민이었던 헤를라인 선생님께서도 두 달 바싹 알바해서 등록금을 냈다고 하셨으니까.

         

       나는 그 반액만 내면 되니 풀타임으로 아르바이트 하나 정도만 뛰면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선배, 그래서 괜찮은 알바 없을까요?”

         

       내 얘기를 듣던 로르웰은 아직도 선배라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불과 처음 만날 때까지만 해도 로르웰이 날 아카데미를 먼저 졸업한 선배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쭉 ‘조수님’이라는 호칭으로 날 불렀고.

         

       근데 이젠 어쩌나. 로르웰의 기수가 나보다 하나 더 높은데.

         

       생각해보니 난 대학원생이었는데 이제 대학생으로 바뀐 거잖아. 세상에서 나처럼 학력 역주행을 하는 케이스가 몇이나 있을까 싶다.

         

       내 질문에 로르웰이 대답했다.

         

       “중앙시장에 나가면 괜찮은 테이블 알바가 몇 개 있을 겁니다. 그보다도 선배라는 호칭은 좀….”

       “저한테 굳이 존대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물론 수도에 아르바이트할 자리가 차고 넘친다는 건 조금만 밖에 나가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로르웰을 찾은 건 어디까지나 안목을 트기 위해서였다.

         

       아직 실력은 미숙하지만 로르웰 또한 화계마도 사용자였고, 거기에 틸레트 아카데미의 재학생이기도 했다.

         

       그 두 가지 조건만으로도 합격이다.

         

       하스펠트를 대신할 조력자로 나는 로르웰을 포함한 아카데미의 모든 화계마도 사용자들을 선택할 생각이었다. 이른바 집단지성을 활용한다는 방안이다.

         

       왜, 생각해 보니까 한 명에게만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더라고. 로르웰과 친하게 지내다 보면 나중에 교류할 때 좋은 화계마도 서적을 추천받거나, 유명한 귀족의 연줄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인생사 기브 엔 테이크다.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누구처럼 테이크만 하는 일은 없으리라. 웬만하면 공정한 비즈니스 관계를 쌓은 뒤 때가 되었을 때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져 줄 계획이다.

         

       “그, 그럼 후배님?”

       “존대 안 붙이셔도 된다니까요.”

       “크흠, 시급 좋은 아르바이트라면 3번가를 찾아보는 게 좋을 거야. 내 친구도 거기서 일했거든.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좋은 가격에 편히 할 수 있는 카운터 알바 같은 게 널려 있다고 들었어.”

       “오…. 감사합니다.”

         

       좋아. 계획대로다. 이걸로 2학년 선배 한 명과 친목을 다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뒤 3번가로 향했다.

         

       3번가는 식당이 몰려 있는 장소였는지라 걸어 다니기만 해도 금세 배가 고파지곤 했다.

         

       합격 시즌이라 그런지 한파 속에서도 식당가는 성수기 그 자체를 맞이하고 있었다. 손님이 얼마나 많이 들락거리는지 어느 곳을 둘러보더라도 종업원이 부족해 보일 지경이었다.

         

       여러 곳을 비교 분석해보고는 그중에서 가장 시급이 높아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카데미 합격통지서를 보여주고 알바 좀 하고 싶다고 말하니 주인아저씨께서 격하게 반겨주셨다.

         

       “잘 됐어, 안 그래도 회계가 없던 참이었거든. 아카데미 학생이니까 수학은 잘 하겠지?”

       “제 소싯적 별명이 인간 계산기였습니다, 주인 어르신.”

         

       글쎄, 주판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탔다니까요.

         

       “허허, 거 재밌는 금안족 아가씨가 들어왔구만! 좋아, 바로 여기서 일하렴!”

         

       일단 계약은 한 달, 풀타임으로 진행됐다.

         

       비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편했다. 시급이 넉넉해서 그런 걸지도.

         

       이 세계에서 카운터 관리 업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교육제도의 미비로 인해 평민 계층은 대부분 계산대를 관리할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위 ‘배우신 분’ 타이틀을 단 귀족들은 돈이 차고 넘쳐날 테니 이런 비효율적인 업무는 맡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배움의 기회가 불공평하다는 사실은 안타까웠지만 오히려 지금의 내게는 호재였다. 특히 테이블 회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오전 시간에는 카운터에만 앉아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아가씨, 수고했어! 저녁 먹고 잠시 쉬었다 다시 하자구.”

         

       이것이…. 노동…?

         

       내가 여태까지 해 온건 도대체…….

         

       내가 일하기 시작한 곳은 주점이었기에 낮보다는 밤에 사람이 많이 들어왔다. 저쪽 세계에서 10년, 이쪽 세계 3년의 도합 13년간 밤샘 경력으로 다져진 멘탈이 활약할 기회였다.

         

       “아가씨는 지치지도 않아? 첫날인데 너무 무리는 하지 마.”

       “이 정도는 괜찮아요.”

         

       기껏해야 카운터를 보고 있다가 테이블에서 추가 주문이 들어오는 걸 서빙하는 정도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던 중 폭탄이 도착했다.

         

       콰아아앙─!!

         

       “주인아저씨이! 여기 에일 1L짜리 하나랑 과카몰레에 토마토랑 청고추 팍팍 넣어서 한 접시 주세요오!”

         

       얘는 어떻게 알고 여기 찾아온 거지?

         

       카운터에 가까운 테이블에 착석한 프레이가 한껏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실실 웃었다.

         

       “야! 너 오랜만이다! 여기서 알바해?”

       “어, 오늘부터. 그러는 넌 여기 왜 있는데?”

       “주점, 히끅. 탐바앙!”

       “어린애가 벌써부터 술을 이렇게 퍼마시면 안 되지.”

       “나 성인이라고오─!!”

         

       프레이의 되도 않는 술주정에 근처에 앉은 사람 몇몇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인 뒤 프레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 으읍! 읍!!”

       “조용히 해. 알겠어?”

         

       끄덕끄덕.

         

       “푸하, 숨 막혀 뒤지는 줄 알았네. 그나저나 넌 왜 교수 밑에서 안 있고 이런 데 돌아다녀?”

       “나한텐 그럴 자유가 있으니까.”

       “히끅, 뭐래.”

         

       프레이는 유리잔에 담겨 나온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순식간에 절반이 날아갔다.

         

       “합격 축하한다, 짜샤.”

         

       **

         

       프레이는 과카몰레 두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고 맥주도 500mL를 추가로 시켜먹은 뒤 다음 술집으로 향해야겠다며 발을 옮겼다. 비틀거리는 모습이 영 불안했다.

         

       저 몸뚱이에 저게 다 들어간다는 게 신기하다. 위장에 식신이라도 살고 있나?

         

       프레이의 테이블이 비워진 자리에는 세 여학생이 둘러앉았다.

         

       그들 중 한 명은 내가 한 번 봐서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붉은 단발에 홍색 눈동자를 한 소녀.

         

       이름이….

         

       “로테 님, 뭐 시키실래요?”

       “너희 먹고 싶은 걸로 해. 난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메뉴판을 들고 다가간 나는 눈앞의 두 소녀가 얘기하는 내용을 수량별로 체크했다.

         

       “어, 그 금안족이잖아요?”

       “여기서 알바하시는 거예요?”

         

       놀랍지 않게도 로테를 포함한 세 학생은 나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나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마저 할 일을 했다.

         

       로테는 테이블이 준비되는 동안 자신이 메고 있는 포켓에서 종이 몇 장을 꺼내 훑어보았다. 흘긋 보니 무언가 수식 같은 게 즐비했다.

         

       벌써부터 예습을 하는 건가 싶어서 감탄하고 있을 즈음, 곁에서 그걸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던 다른 여학생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미 지난 일이잖아요. 언제까지 보고 계실 거예요?”

         

       로테가 보고 있는 건 아카데미 필기고사에서 수많은 수험생을 괴롭힌 기초마도이론 50번 문제였다. 정확히는, 그 문제를 복원한 것이었다.

         

       출제자는 화계마도 연구실에 사는 어느 마녀였다.

         

       자기도 이제 막 써먹을 수 있게 된 전공자 수준의 마석을 활용한 스크롤 출력을 예상하는 문제였는데, 까놓고 말해 정공법으로 제시간에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걸 보니 지난날들이 떠올라 PTSD가 올 것만 같았다.

         

       나도 저건 날치기로 풀어서 겨우 맞춘 문제였으니까. 누군가가 어떻게 맞췄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찍었다고 답할 것이다.

         

       다른 테이블 업무도 있었기에 대화 내용을 전부 듣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대화로부터 로테라는 여자애가 화계마도에 진심인 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쪽 수식을 변환부에 대입하면 풀리지 않을까요?”

       “대수적으로 봤을 때 안 돼. 식은 네 개인데 미지수가 일곱이잖아. 그보다는 이쪽을 컷오프하고 다른 루트 두 개를 열어보면 범위가 뜨지 않을까 하는데.”

         

       직접 보진 않았지만 만약 하스펠트가 막 새내기였다면 저러고 다니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그 얘기 들으셨어요?”

       “무슨 얘기?”

       “천 년 만에 필기시험 만점자가 나왔다는 소식이요. 듣자하니 입학석차가 차석이라는 모양이에요.”

       “…필기 만점자가 겨우 차석이라고? 로테 님이 3등인데?”

       “진짜야! 실기를 엄청 죽 쒔대. 1등은 과목별로 다 90점이라 총점이 450점인데, 그 사람은 필기 만점에 실기는 과락을 겨우 면할 수준이라 440점 정도 나왔다고 하더라.”

       “그건 또 어디서 주워들은 낭설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하…….”

         

       대화의 맥은 거기서 뚝 끊겼다.

         

       다음 순간에 세 여학생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이때 나는 양손에 맥주를 두 개씩 끼고 돌아다니느라 그들의 시선에 반응하는 게 한발 늦었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맞았다.

         

       아무래도 추가 주문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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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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