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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내가 준비한 ‘단편 소설’의 산을 마주한 작가 지망생들의 반응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졌다.

       

       

       “흐어억! 이, 이게 호메로스 작가님의 미공개 단편…!”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흐윽….”

       “호메로스 작가님은 신이야!”

       

       

       처음에는 다들 기뻐했다.

       

       원고를 받아든 작가 지망생들은 전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미공개 원고를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싱글벙글하며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의문을 느끼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흐아아… 이, 이 고통스러운 게 소설…? 글이라는 건 대체….”

       “후우, 이번 작품도 굉장했다…. 그런데, 어라?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어…?”

       

       

       내가 준비한 단편들은 문학적인 체급 강화를 위해 특별히 고르고 고른 단편들이었다.

       

       이 시대에는 알맞지 않은 작품들도 많았고, 아예 전위적이기까지 한 글들도 꽤 있었다. 전부 재미있게 읽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눈이 건조해…. 흐으…. 눈이…. 제발 사제를 불러줘….”

       “하루 종일도 읽을 수 있어…!”

       

       

       결국, 강의 시간이 마무리되어갈 때쯤에는 학생의 절반 이상이 탈진해버렸다.

       

       그래도 눈에 띄는 학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글자를 핥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원고를 전부 읽고도 부족해서 다시 처음부터 읽는 애독가도 몇몇 보였다.

       

       시간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원고는 가져가셔도 괜찮습니다. 외부에 유출되어도… 으음, 본인의 이름으로 출판한다거나, 그런 목적이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대부분은 이 시대에 안 맞는 글들이지만, 그런 글들도 나름대로 문학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다. 정말로 큰 영향력을 줄만한 이름있는 고전들은 아니기도 하고.

       

       그보다는 이 ‘작가 지망생’들의 성장이 우선이었다.

       

       

       “흐, 흐헤헿…. 호메로스 작가님의 미공개 원고….”

       “조금 더 읽고 싶은데….”

       “펜, 펜이 필요해! 이 영감을 글로 정리하고 싶어!”

       

       

       지금도 눈을 반짝이며 글을 쓰고싶어하는 학생들이 몇몇 보였다. 새로운 작품의 씨앗이 이세계에 싹 트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현 시대 대중의 입맛과는 별로 안 맞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내가 읽기에 재미있으면 충분하다.

       

       나는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이들이 재미있는 소설을 써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

       .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실 ‘막장 드라마’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젊은 남자와 유부녀의 불륜, 그 결혼 상대와의 우정, 그로 인한 고뇌와 갈등, 로맨스.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주인공의 포지션도 전생의 로맨스 드라마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즉,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자극적인 플롯의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고전’이라 불리며 인기를 끌 수 있던 이유는.

       

       

       “이게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작품일까요? 호메로스 작가님은, 분명 베르테르와 같은 격정적이고 슬픈 사랑을 하셨던 게 분명해요….”

       “스스로의 상처를 문학을 통해 풀어내신 거겠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한 부분을 섬세하게 직시했다는 점에 있으리라.

       

       소설의 내용 자체는 단순히 연애 소설과 다르지 않았지만, 괴테는 사람의 영혼을 적나라하게 전시하면서도 부드럽게 위로하는 재주가 있는 작가였다.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감정을 제멋대로 파헤치고는.

       

       누구나 이런 나약함을 가지고 있다며 당연하다 위로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불같은 감정을 가진 청년들이 이 작품에 영혼을 빼앗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결과 곤란한 일들도 생겼다.

       

       

       “…사랑합니다. 약혼자가 있는 당신께 이런 감정을 품는 것이 잘못된 거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죽이는 일 또한 천주께 죄를 짓는 일이라면, 당신께 한번이라도 저의 감정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고백이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저도, 당신을 계속 사랑했어요….”

       

       “…하, 하지만─.”

       “쉿. 먼저 고백해놓고 이제와서 변명할 필요 없잖아요? 가문의 이름을 제 이름에서 지우는 한이 있더라도, 더이상 사랑을 속이지는 않을 거니까요.”

       

       

       이름 있는 가문들 사이에서 약혼을 파혼하는 일들이 늘어났다.

       

       본래라면 교회와 가문의 비난을 면치 못한 일이었지만─.

       

       

       “사랑은 천주께서 저희에게 내려주신 가장 고귀한 감정입니다. 어떤 약속도 사랑보다 우선할 수는 없지요.”

       “크흠, 네 생각이 그렇다면, 약혼을 파기할 수 있도록 내가 라히텐 가주께 이야기해보마. 많은 이권을 포기해야하겠지만… 가문의 영광이 우리 딸보다 소중하지는 않겠지. 정말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한 파혼을 탓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모두가 호메로스의 작품을 통해 크든 작든 마음이 움직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어린 왕자가 준 교훈 또한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그리고.

       

       

       “…성령께서 부족한 저희에게 지혜를 내려주시기를 바라며, 공의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교황청에서는 교리의 새로운 해석을 시작했다.

       

       

       .

       .

       .

       

       

       공의회가 열렸다.

       

       교회의 모든 추기경들이 교황청으로 모였다.

       

       

       “이번 공의회가 열린 이유는, 저희가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자살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의회를 주도한 것은 가르니에 추기경이었다.

       

       교회에서도 가장 젊은 추기경인 그가 공의회를 주도한다는 사실에 언짢음을 느끼는 추기경도 있었으나, 가르니에 추기경의 말이 이어질수록 그들은 입을 다물고 그저 경청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 내용에 경도되어서는 아니었다.

       

       

       “율법은 강한 자를 억누르고, 복음은 약한 자를 위로합니다.”

       

       

       공의회에 성령이 깃들었다.

       

       가르니에 추기경이 입을 열수록 그의 눈에서 반짝이는 신성력이 그 광채를 더해갔다. 새하얀 광휘가 공의회에 내려앉으며 그의 신앙을 증명했다.

       

       

       “우리의 권위는 오직 믿음과 신앙을 위한 것이여야하며, 약한 자를 억누르기 위해 권위가 휘둘러져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를 죽일 정도로 위태롭고 혼미한 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천주의 위로가 필요한 어린 양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로하고 이끌 의무가 있습니다. 책망하고 탓하는 대신, 사랑으로 아끼고 지혜롭게 위로해야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해야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신께 우리를 봉헌하는 일이며, 신 앞에 경건한 일입니다.”

       

       “잊지 맙시다. 우리의 천주께서는 사랑이시며, 말씀이십니다. 위로이시며, 평화이십니다.”

       

       “그분을 닮기 위해 노력합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구세주와 천주께서는 하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라도 우리를 구하기 위해 역사하십니다. 우리 또한 그리 해야합니다.”

       

       

       성령이 내려앉은 공의회에서 감히 불경한 미혹 따위에 휘둘리는 추기경 따위는 없었다.

       

       

       “천주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천주님, 감사합니다.”

       

       

       천주께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것으로 공의회를 마치겠습니다. 이제 모두 복음을 전파합시다.”

       

       

       그리하여, 교황청은 ‘자살자’의 심리를 연구하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방책을 마련하기 위한 사제기사단을 편성했다.

       

       교황청에서도 가장 관용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제들로 이루어진 기사단이었다. 즉,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아웃사이더들이었다.

       

       가르니에 추기경이 직접 그들을 마주했다.

       

       

       “여러분은 이제 그 어떤 사제들보다도 자비롭고 자애로워야만 합니다. 교황 성하의 말씀도, 오래된 율법도, 공의회의 교리도 전부 잊어버리십시오. 오직 천주의 말씀을 등불로 삼아, 저희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이들을 위로해주십시오.”

       

       

       이들은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들, 자살한 이들의 유가족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고, 그 모든 것을 기록하여 지혜를 구할 것이었다.

       

       그리하여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자살을 예방하고.

       

       기존에 자살한 이들 중에서, 비극적인 열병에 시달렸음에도 자살했다는 이유만으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고.

       

       위령할 것이었다.

       

       

       “사랑은 모든 진리에 우선하며, 만사는 무엇보다 사랑으로 행해져야합니다. 하지만 그리 행하기에 저희의 교황청은 너무 낡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을 신의 기사로 삼아, 가장 낮은 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기겠습니다.”

       “…기사단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신교(新敎). 여러분은 새로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황청의 권위보다 말씀을 우선하는 복음주의 기사단─.

       

       신교(新敎)의 탄생이었다.

       

       .

       .

       .

       

       기사학과의 건물을 빌려 쓰고있는 문학 아카데미.

       

       눈을 반짝이며 강의를 기대하는 작가 지망생들을 보며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 친구들이 내가 읽을 사료… 작품을 만들어주겠구나.

       

       나는 벅찬 감정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글을 대중 앞에 내맡겨야만 합니다. 대중 앞에 공개된 순간부터 여러분의 글은 여러분의 것이 아닌 대중의 것이 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여러분의 글을 ‘잡지’를 통해 연재해볼 생각입니다.”

       

       

       학생들의 머릿속에 단편 문학의 정수를 때려박았으니, 이제 그 결과물을 출력할 차례다.

       

       이미 하프 앤 하프의 사장님과 이야기도 끝마쳐둔 상태였다.

       

       

       “매주 여러분의 글을 잡지에 연재하며, ‘독자 투표’를 통해 매주마다 작품의 순위를 매길 생각입니다.”

       

       

       독자 투표.

       

       21세기의 만화 잡지에서 사용하는 그 문명을 나는 이곳까지 끌고올 생각이었다.

       

       직관적으로 작품의 인기를 확인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독자 투표에서 1등을 차지한 학생과는 ‘공동 집필’의 기회를 가질 생각입니다.”

       “…예? 공동 집필이라면─.”

       

       “네. 저와 함께 새로운 작품을 집필하는 겁니다.”

       “…!!”

       

       

       잡지 연재에 열성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미끼도 던져놨다.

       

       

       “잡지 연재를 하기 위해 알아야할 글자 수 제한, 형식 등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학생들이 눈을 반짝였다. 의욕이 흘러넘치는 모습들이다.

       

       하지만, 저 학생들이 1위를 차지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코난 사가를 연재했던 ‘헤로도토스’의 이름으로 저들과 같은 시기에 ‘신작’을 연재할 테니까.

       

       만약 그 작품을 상대로 1위를 쟁취해낸다면….

       

       뭐, 그때는 내가 업혀가면 그만이다. 그만한 천재라면 나같은 표절 작가와 함께라도 대단한 작품을 써내겠지.

       

       .

       .

       .

       

       [하프 앤 하프]

       [‘코난 사가’를 연재한 헤로도토스 작가의 신작, 연재 시작!]

       [지금 하프 앤 하프에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트가 끝났습니다!

    이번에는 ‘자살’과 ‘종교’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던만큼, 읽으시면서 약간의 부담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전히 작가의 역량 부족입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말이 있죠? 같은 맥락에서 문학은─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서구 문학은─ 신학의 자식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가장 위대한 문학이며, 모든 문학은 결국 성경의 재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물론 서구 문명이 기독교적 가치관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지만… 그 이상으로, 성경 자체의 문학적 가치가 상당하기 때문도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쓰인 이야기라는 것은, 결국 문학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요.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한때 교황청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게 조금 웃기는 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금서로 지정된 걸 계기로 수많은 해적판들이 인쇄되며 오히려 이 책을 더 유명해지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책을 읽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그 책을 금서로 지정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죠. 이 말이 해리포터에 나오는 말이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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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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