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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가장 처음, 바다를 본 사람의 감상이 어떠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의 감정을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멀리서 본 바다는 그저 아름답고, 푸르고 맑은 미지의 것.

       내겐 감정 또한 다르지 않았다.

       

       전생의 내게 감정은 ‘어떠한 무언가’였다.

       물론, 나는 스스로 전생의 내가 감정을 아예 느끼지 못해 비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단순한 질병이었고, 어떠한 다름의 한 형태였을 뿐.

       

       익숙하지 않아서,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혹은 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피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감정을 피하고 싶다고 해서, 느끼고 싶지 않다고 해서 느낄 수 없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인간이라면 응당 당연하듯 표현하게 되는 법.

       

       그러니, 나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감정에 다가가고 있었다.

       한 발, 또 한 발.

       그리고, 해변으로 밀려온 바닷물에 발목을 적셨다.

       

       그건 너무나 차갑고 낯설어서.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꾸준히 반복하여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물에 비친 나의 모습을.

       

       

       “자, 그럼 한 번 확인해 봅시다.”

       

       공정태 감독의 말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쿵쾅 거리며 심장이 뛰었다.

       

       여태까지 나는, 내 연기를 확인할 때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내게 일상이었고, 당연한 것이었다.

       

       나의 연기에 모두가 박수를 치더라도, 그건 결국 아이가 보일 수 없는 연기였기 때문에.

       실사에 가까운 감정의 모사에 박수 쳤을 뿐이다.

       

       연기.

       그래, 돌이켜 보면 그것도 연기이긴 했다.

       전생부터 나는 타인이 원하는 캐릭터를 연기했으니까.

       하지만 그뿐이다.

       

       베테랑 배우라면, 혹은 그 이상을 내보일 수 있는 배우라면 이미 당연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단지, 그것을 힘들이지 않고 습관처럼 꾸며낼 수 있을 뿐.

       

       그러니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어떤 특별함도.

       어떤 성취감도 느끼지 못했다.

       

       「대비마마!!」

       

       낯선, 하지만 익숙한 나의 목소리가 들리며 연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것을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고 보았다.

       

       아니, 나뿐이 아니었다.

       공정태 감독이, 스태프가.

       

       그리고, 윤종혁 배우와, 정은선 배우가.

       한 자리에서 자신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마지막, 연화공주가 방을 나서며, 문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

       

       “와.”

       

       영상이 끝나기 무섭게, 카메라 감독인 허정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리가 찍었지만 진짜 기깔나네요. 여기 보시면, 제가 또…….”

       “그러네요. 여기 서연 양이 고개를 드는 순간 빛 움직임이 아주 좋아요.”

       

       본래 밝았던 빛이, 일시적으로 서연이 고개를 드는 순간 일시적으로 어두워졌다.

       그 탓에 서연이 붉은 눈동자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이 부분은 공정태 감독이 처음 요구했던 구성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었다.

       허정수 카메라 감독의 감각적인 애드립이라 할 수 있었다.

       

       “……근데 이거 호롱불에 비친 건가요? 아니, 누가 보면 CG 입힌 줄 알겠는데?”

       

       공정태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내 눈을 살폈다.

       영상과 달리, 지금 내 동공은 붉은 기가 도는 갈색에 가까웠다.

       

       덕분에 공정태 감독은 의아한 얼굴로 내 얼굴을 살피다 이내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내 얼굴이 평소와 달랐던 모양이다.

       

       “서연 양.”

       “네?”

       “잘 나온 것 같아요?”

       

       그런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방금 보았던 영상을 되새겼다.

       

       저 장면 하나를 찍기 위해, 며칠간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릿한 손바닥의 상처도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수족관이 아닌, 바닷물에 발목을 적시며 내디딘.

       해변에 깊이 새겨진 나의 첫 발자국이었다.

       

       “네.”

       

       이때 나는 아마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주체할 수 없이 기쁜 일에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된다는 걸.

       전생의 나는 알 수 없었던.

       7살 주서연이 느낀, 이 강렬한 감정을.

       

       “정말, 잘 나온 것 같아요.”

       

       아마, 이때 나는 또래의 아이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

       

       그날의 촬영 이후, 예상했던 것처럼 나는 꼬박 열흘을 앓아누웠다.

       과한 감정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며칠 간 있었던 몸의 혹사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여러모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아이의 몸은, 예상했던 것처럼 시름시름 앓았고 2주가 지났을 시점 완벽히 회복되었다.

       

       다시 태어나며 얻은 이 튼튼한 몸도 한계라는 게 있는 모양이다.

       

       “서연이가 찍을 분량을 미리 당겨서 찍어둬서 한동안 푹 쉬어도 괜찮다고 하네.”

       

       엄마는 그런 내게 걱정 말라는 듯 이야기했다.

       

       어차피 기한은 넉넉히 여유가 있었고, 내가 한동안 열심히 촬영한 탓에 특별히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일주일은 더 쉬어도 여유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다들 너무 걱정하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난 이제 겨우 일곱 살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생각하면, 이쪽이 비상식적이긴 하지.

       

       ‘그런데 짙은 감정 연기는 지금도 이런데, 사춘기 때는 조금 어려울지도.’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다.

       당장도 힘겨워하는데 호르몬이 불균형한 사춘기에는 솔직히 어렵지 않을까.

       

       전생의 영향도 있고, 여러모로.

       물론 지금도 아이의 몸이니 크게 다를 건 없다 싶다만.

       

       “주서연, 오늘은 나왔네? 왜 나온 거야?”

       “마치 나오면 안 됐던 것처럼 들리는데.”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도착한 유치원.

       딱 열흘 만에 찾아온 장소에서 나를 맞이한 건 묘하게 부루퉁한 이지연이었다.

       

       “너 역시, 공주님하고 싶은 거지?”

       

       순간 얘가 또 무슨 말을 하나 싶었지만 유치원 안으로 들어가자 겨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유치원 학예회가 2주쯤 남은 시점이었다.

       

       그러니 각 반의 선생님들은 아이들과 함께, 저마다 연극이나 무용과 같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게 또 유치원 학예회라고 무시할 게 아닌 게 요즘엔 꽤 성대하게 하기도 하더라.

       우선 학부모들은 전원 참가에, 강당을 대여하여 진행되는 경우도 많았다.

       

       “자, 그럼 하고 싶은 배역이 있으면 손!”

       

       햇님반 선생님인 민아가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물론 그 시선은 이지연에게 흘깃.

       그리고 나한테 흘깃.

       

       ‘연극은 너무 속보이잖아.’

       

       예상은 했지만, 햇님반이 준비하는 건 연극.

       그것도 흔한 백설 공주였다. 

       좀 더 창의적이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이게 보통이겠지.

       중요한 건 ‘연극’이라는 시점에서, 학예회 1등을 차지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는 점이다.

       

       “그거 알아? 주서연?”

       “그냥 평범하게 이름만으로 부르면 안 되겠니.”

       

       이지연은 날 부를 때 항상 꿋꿋하게 성을 붙여 불렀다.

       그게 더 입에 붙는다나.

       

       “사실, 엄마가 말하는데. 이런 연극에선 오히려 부모님들이 극성이래.”

       

       얘는 또 어디서 이런 걸 듣고 왔는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누구나 자기 아들딸이 공주님 왕자님을 하길 바랄 테니까.

       

       그러니 배역이 정해져 있는 연극은 싫다고 말하는 학부모도 제법 있다고 한다.

       참고로 전부 이지연이 말해준 것이다.

       가끔 생각하면, 지연이의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하며 사시는 걸까 싶다.

       

       “음, 뭐. 나는 남는 역할 할 거야.”

       “그래?”

       

       내 대답에 이지연은 기쁜 듯 웃었다.

       언제나 참 주연 욕심이 있는 아이다.

       

       아무튼, 내가 가만히 있자 백설 공주는 당연히 이지연의 차지.

       

       애초에 대사도 많고, 부담감이 있는 주역은 아이들이 꺼려하는 법이니까.

       물론 원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감히 이지연에겐 대항하지 못했다.

       

       가히, 이지연 무쌍이라 할 수 있다.

       

       “저, 서연아. 혹시 다른 배역할 생각은 없니?”

       “네. 다른 배역도 딱히 없는걸요.”

       “그렇구나…….”

       

       남는 배역을 가져간 내게 민아 선생님은 아쉬운 목소리를 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들 연극에 내가 나서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뭐, 나도 애긴 한데. 

       부모님도 내가 활약하는 걸 보고 싶긴 했을 테고…….

       

       ‘으음…….’

       

       그래도 내가 얻은 배역이 단순한 엑스트라냐면 또 그건 아니다.

       나름대로 제대로 된 배역이었다.

       

       무려, 왕비의 ‘마법 거울’역.

       어떤 아이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한 배역이었다.

       

       ‘얼굴은 나오지도 않는데, 대사는 또 제법 많으니까.’

       

       이것만큼 꺼려지는 배역이 또 있을까.

       차라리 일곱 난쟁이는 제대로 등장이라도 하지.

       

       ‘음, 아무튼 열심히 해보자.’

       

       어찌 보면 이 거울 역할이 또 버튜버와 비슷한 포지션 아닌가.

       왕비가 슈퍼챗을 제대로 안 쏴줘서 그렇지.

       

       연기에 진심이 되었다고, 버튜버를 향한 내 의지가 딱히 꺾인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배우와 어떻게 엮을 수 있지 않을까 깊은 고뇌를 하고 있을 뿐.

       

       아무튼, 그렇게 학예회가 다가오는 가운데.

       나의 ‘태양을 숨긴 달’의 마지막 촬영이 시작되었다.

       

       ***

       

       태양을 숨긴 달.

       KMB에서 준비한 가상 사극 드라마.

       

       처음에는 그냥 상당한 자본을 투자한 젊은 층 타겟의 사극인가 보다, 라는 평이었다.

       하지만 메이킹 필름이 공개된 이후부터는 여러모로 화제성이 늘어난 상태였다.

       

       “공 감독님, 어제 서연 양의 촬영이 전부 끝났죠?”

       

       태숨달의 기획 프로듀서 하태오가 공정태 감독에게 말했다.

       오늘 회의에 앞서, 여러모로 말하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

       

       “영상 봤는데, 서연 양. 드라마 촬영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던 것 맞죠?”

       “예, 그렇다고 하더군요.”

       

       하태오는 어제 전달받은 영상을 떠올렸다.

       아직 제대로 편집도, 따로 음악이 삽입된 것이 아닌 날 것의 영상.

       

       그럼에도, 하태오는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 듯 영상을 보았다.

       물론 그건 서연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영대군의 역할을 맡은 윤종혁의 연기가 가장 돋보였다.

       과연 악역 연기의 대가!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연기였다.

       

       “그런데도 윤종혁 배우님에게 그다지 밀리지 않았던……, 아니. 특정 장면에선 오히려 더 강렬했던 부분이 있었죠. 아주 잠깐이지만.”

       

       처음 고개를 들던 서연의 눈.

       그때의 모습은 하태오는 여전히 잊혀지지 않았다.

       

       거기에 편집과, 음향을 더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거기에……. 어제 촬영한 거였죠?”

       “맞습니다. 그것도 훌륭하지 않습니까?”

       “이야, 진짜 요즘은 아역이라고 무시할 게 못 돼요. 과연 박선웅 배우님의 아들이라고 할까요. 아, 물론…… 서연 양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만.”

       

       하태오는 드물게 흥분한 목소리였다.

       덕분에 공정태는 자신도 모르게 픽 웃었다.

       

       하기야, 그 연기를 본다면 그럴 수밖에.

       어렸을 때부터 연기 천재라 불리던 박정우, 그 아이도 얼마나 놀라던지.

       

       악을 쓰고 연기하는 꼴이 아주 볼만했더랬다.

       

       “어린 연화공주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씬이 S#32 맞죠?”

       “예.”

       “흐음.”

       

       하태오는 어제 보았던 그 영상을 떠올리며 입술을 움찔거렸다.

       웃고 싶은 걸 참는 미소다.

       

       가끔있다.

       막연한 감이. 

       무조건 잘 될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 있다.

       

       이번이 하태오에겐 딱 그랬다.

       

       “서연 양, 많이 바빠지겠어요.”

       

       서연의 마지막 연기를 보면, 누구라도 그 아이를 찾고 싶어질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이 소설을 쓴 계기는 액터쥬, 같은 게 보고 싶어서였는데요.
    그래서 소설의 성격상 전문가물 보다는 좀 더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주변인들의 반응이라거나.)

    사실 저는 연기로 하는 테니스의 왕자나, 요리왕 비룡 같은 느낌도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이 정도로 그쳤습니다…

    그리고 서연이의 성장은, 이제 시작될 것 같은데 템포를 어찌할지는 좀 생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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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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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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