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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참, 믿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상황을 모두 들은 <성녀>가 불신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하기사,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신성력으로 무장한 덕에 ‘동화’라는 그 기이한 경험을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직관적인 사실이라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네.”

        “맞아요. 그, 그러니까 제가 임혜성을 여보라 부른 것은 모두 빌런 때문이라고요!”

       

        잔뜩 붉어진 얼굴의 한유리가 소리쳤다.

       

        아니,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뭔가…… 그리 부정하니까 나도 조금은 슬픈데.

       

        “그나저나, 두분의 아이가 있다는 말은 사실입니까? 그건 정말 심각한 사안입니다.”

       

        차를 한모금 마신 성녀가 진중한 태도로 말했다.

       

        심각한 사안이라고?

       

        이해는 간다만, 조금 과격한 표현 아닌가.

       

        그런 내 의중을 읽었는지, 성녀는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귀여운 아이들은 인류의 미래입니다. 그 아이들을 이용해, 당신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것은 분명 천인공노한 짓이 틀림없습니다.”

        “와, 엄청 <성녀> 같네.”

        “……그냥 넘기긴 어려운 말입니다? 저는 <성녀>가 맞습니다만?”

        “아까 그 모습을 보니 그냥 방구석 폐인처럼 보이더라고.”

        “으흠! 흠! 흠!”

       

        ‘아까’란 바로 PC방에서 샷건을 난사하던 성녀를 말하는 거다.

       

        과연, 그녀 역시나 자신의 추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괜스레 헛기침을 연발했다.

       

        “잊지마십시오. 제가 두분께 협력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의’를 위한 것입니다. 추악한 빌런이 창조주를 흉내낸 공간을 붕괴시키고, 이곳에서 나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아까 한 약속. 그건 물러도 되는 건가?”

        “쓰레기 같은 말은 그만두십시오. 당신의 혀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을 논하는 것입니까!”

        “…….”

       

        곧장 날선 반응에 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무언가 고상한 느낌으로 말하긴 했다만, 결국 성녀가 말하는 건 게임 약속을 지키라는 소리잖아.

       

        진성 겜창…… 아니 <성녀>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지,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던 한유리가 말했다.

       

        “이상해요.”

        “뭐가?”

        “<성녀> 안젤리카 님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평소 들리던 소문과 너무 달라서요.”

        “……그치?”

        “…….”

       

        내가 슬쩍 맞장구를 치니, 성녀는 괜히 창밖의 먼 산을 바라본다.

       

        성녀의 일탈은 아카데미 내의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원래는 자신의 집에서 그 스트레스를 풀겠지만, 이 회색빛 도시엔 그녀의 집도, PC도 없다. 자연히 의도치 않게 그녀의 비밀이 공개된 것이다.

       

        “소, 소문이 무어가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만. 됐고, 일단은 병원으로 돌아가자.”

       

        회색빛 도시에도 ‘시간’이라는 개념은 존재한다.

       

        아침부터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해가 저무는 저녁이 되었다.

       

        “병원……?”

       

        그런데, 안젤리카에겐 생소한 단어였던 모양이다. 병원으로 돌아가자는 내 말을 듣자마자 그녀가 고개를 삐뚜름하게 들며 나를 쳐다봤다.

       

        “우리 아이들이 입원해있거든.”

        “……그렇군요. 아까 일의 연장선인가 봅니다.”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 다시 만나자.”

        “알겠습니다.”

       

        스윽!

       

        고개를 끄덕이는 안젤리카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루종일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더니 괜스레 걱정이 인다. 

       

        혹여나 나와 한유리가 없는 사이에 하늘이가 아프지 않았을까, 오빠가 아프다는 사실과 자신도 우려된다는 현실이 소미를 두렵게 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걱정들.

       

        “……?”

       

        그런데, 온화한 표정의 <성녀> 안젤리카가 내 뒤를 졸졸 쫓아온다.

       

        뭐하자는 거지?

       

        “왜 따라와?”

        “무슨 소리입니까? 저는 당신들과 함께할 것이라 말하지 않았습니까.”

        “설마.”

        “네. 저는 집도, 돈도 없습니다. 아까 PC방에서도 당신들이 계산했는데, 잊으셨습니까?”

        “…….”

       

        터무니없이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이 없어졌다.

       

        ……거머리냐?

       

        * * *

       

        “와아아아! 엄마! 아빠!”

        “이 이쁜 언니는 누구야? 엄마 친구야?”

       

        병실을 방문하니 어느새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도도도, 달려와 품에 안겼다.

       

        “선생님들 말 잘 듣고 있었어요?”

        “응!”

        “나도 안아줘!”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생긋 미소짓는 한유리를 보니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필시, 학생회장께서는 미래에 아주 좋은 어머니가 될 것 같습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쭈뼛거리며 병실 구석에 서 있었던 안젤리카가 맞장구를 쳤다.

       

        “얼핏 보면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슬픈 장면이지.”

        “참으로 그렇습니다.”

       

        한유리의 앞뒤를 둘러싸고 재잘거리는 두 아이들.

       

        행복한 미소를 지은 한유리도 언뜻 즐거워 보였으나, 그 내면엔 깊은 수심이 어려있었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그녀의 생각과 달리, ‘미래’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거짓된 공간 속에서 우연히 만난…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유리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저 포근한 미소며, 힘을 주어 두 아이를 꽉 끌어안은 팔을 보라.

       

        “…….”

       

        안젤리카가 방금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좋은 엄마가 될 것 같다고? 내 생각도 그렇다.

       

       

       

        그 뒤로.

       

        시간이 또다시 흘렀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나와 한유리는 병실 구석에 마련한 간병인 전용 침대에 몸을 뉘었다.

       

        “…….”

        “…….”

       

        사실 ‘부부’라는 캐릭터를 부여 받았을 뿐, 실제 우리는 부부가 아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나 병실을 지킬 이유는 없었지만…… 한유리는 싫단다. 자기 혼자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그녀의 의견에 이리 함께 병실을 지키게 된 것이다.

       

        잠이 든 두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 저 구석에서 도로롱- 울리는 성녀의 잠꼬대소리.

       

        멍하니 천장을 보던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나처럼, 잠을 자지 못하는 한유리가 눈을 뜬 채로 똑바로 누워있었다.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저 바깥의 우리는 묘한 거리감이 있는 사이였다. 나와 송수아가 근래에 들어 제법 친해진 덕분에 친구의 친구 정도라고 할까.

       

        헌데 ‘동화’의 영향일까?

       

        이리 함께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는데도 이상하다는 감정이 들지 않는다. 마치 원래 이래야 됐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혜성. 안 자죠?”

        “그래.”

        “우리 아이들… 하늘이와 소미는, 어떻게 될까요?”

       

        대뜸 무거운 주제가 내게 날아들었다.

       

        한유리는 이 세계… 회색빛 도시가 파괴된 이후. 그걸 궁금해하던 것이다.

       

        “아마, 사라지겠지.”

        “……그건.”

       

        삽시간에 한유리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요?”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두 아이들의 역할은 ‘죽음’. 분명…… 수도 없이 끔찍한 경험을 겪었을 거야. 다행히도 그 일들을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

       

        제법 놀란 건지, 한유리가 곧장 크게 숨을 들이켰다.

       

        사랑해 마지 않는 두 아이가 수도 없이 반복되는 이 세계에서, 계속해서 죽음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엄마’인 그녀에겐 퍽 끔찍한 일이겠지.

       

        “나 또한 마음이 아파. 그렇기에,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끝을 내야겠어.”

        “…….”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주머니 속의 수첩을 쥐고 읊조렸다.

       

        그런 내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한 걸까?

       

        “고마워요.”

       

        뜬금없는 감사인사가 한유리에게서 튀어나왔다.

       

        “……고맙긴.”

       

        그 짧은 인사에 담겨진 의미를 조금 알 것도 같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참 신기해요. 당신을 보고있으면, 가슴이 막 두근거려요. 언제나 곁에 있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 부끄러운 소리를 하는데도 한유리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분명 ‘캐릭터’의 영향이겠지?

       

        “……혹시.”

        “왜?”

        “손, 잡아줄래요? 이, 이건 제 의지가 아니에요. ‘캐릭터’의 영향을 받은 ‘동화’ 때문에…….”

       

        스윽.

       

        그리 중얼거린 그녀가 새하얗고 작은 손을 슬쩍 내민다.

       

        “…….”

       

        덥썩.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손을 마주잡았다.

       

        ‘동화’의 영향일까?

       

        두근! 두근!

       

        서로 누워 마주본 채로, 깍지낀 손이 제법 우스웠다.

       

        “하아.”

       

        나와 마주본 한유리가 달콤한 한숨을 내뱉었다.

       

        이건, 내 감정일까? 아니면 꿈 속의 ‘캐릭터’…… 그러니까 한유리의 남편 역할을 담당한 캐릭터의 감정일까.

       

        알 수 없었다.

       

        * * *

       

        “시바아아아알!”

       

        새하얀 가운에, 파란 옷.

       

        어딘가 병원 의사 같은 차림새를 한 ‘꿈속을 걷는자’가 길게 포효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저히 저 해괴한 놈의 행동에 납득이 가지 않았다.

       

        ‘호스트’.

       

        빌런, 꿈속을 걷는자와 의식을 연결한 놈. 그 한 놈 때문에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했다.

       

        “요호호호-! 요호호호-!”

        “이런 미친 새끼! 너는 내 명령을 수행해야 한단 말이다! 그게 ‘계약’ 아니었나?!”

        “술병을 전해주러 간다네-”

        “끄아아아악! 제발 말 좀 들어!”

       

        꿈속을 걷는자는 현실 세계, 그러니까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힘’을 추구하는 놈을 찾았다.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D등급 학교, 히어로 계의 떨거지 촌에서 강렬한 의지를 품은 놈을 발견했으니까.

       

        그는 ‘놈’에게 제안했다. 힘을 줄 터이니, 자신과 협력해 꿈속 세계를 지배하자고.

       

        ‘D의 의지인가.’

       

        꿈을 걷는자의 예상대로, 놈은 흔쾌히 수락했다. 자신이 상상한 ‘오의’를 완성하기 위해, 그와 손을 잡겠다는 말과 함께 계획에 동참한 것이다.

       

        꿈속 세계에 들어온 놈…… 호스트는 바라던대로 힘을 얻었다.

       

        하지만.

       

        “JET 바주카!”

       

        퍼어엉!

       

        그때부터 호스트, 아니 미친놈의 돌발행동이 시작되었다.

       

        저 갈아마셔도 시원치 않은 놈은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명령을 듣기는 커녕… 해괴한 만화 속 캐릭터를 흉내내는 것처럼, 한눈에 보아도 우스꽝스러운 기술을 연마하던 것이다. 무려 일주일 동안 주구장창! 같은 기술만 계속!

       

        “시발…….”

       

        빌런, 꿈속을 걷는자가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아직……. 희망은 있다.”

       

        회색빛 도시는 그가 이끌던 하나의 세상이다.

       

        설마 누군가 핵폭탄이라도 떨어트려, 회색빛 도시 자체를 소멸시키지 않는 이상 꿈은 지속된다.

       

        미약하고 희미한 희망. 

       

        ‘꿈속을 걷는자’가 원하는 것은, 이 시간이 부디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었다. 모든 이방인의 동화가 끝날 때 까지 말이다.

       

        “큭큭! 그런 정신나간 테러리스트가 아카데미에 있을리가?”

       

        인명을 살상하는 빌런 하나만 나타나도 덜덜 떠는 것이 히어로 아카데미가 아닌가.

       

        그도 히어로 아카데미 출신이다. 자연히 히어로라는 족속들의 생각을 훤히 꿰고 있었다.

       

        도시와 함께 폭사한다고? 

       

        만약 그런 놈이 있다면…… 히어로가 아니라 그냥 미친놈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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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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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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