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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모의고사가 어려운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모의고사라고는 하지만, 사실 실제 입학시험과는 문제 내는 스타일도 다르고, 그 난이도도 ‘적당히’가 잘 없다. 난이도의 균형 자체가 정확하지 않아서 어떤 문제는 너무 쉽고, 또 어떤 문제는 너무 어렵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자면 문제의 난이도 자체는 전반적으로 높지만.

        

       이건 아카데미 입학시험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살던 세상에서도 대부분의 모의고사는 실제 시험보다 다소, 혹은 지나치게 어려웠다.

        

       이유는 별거 없다. 그 모의고사를 풀고 입학시험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 모의고사를 실시하는 회사로서는 좋기 때문이다.

        

       아무리 모의고사가 실제 문제를 다소 본떠 만든 가짜 문제고, 공신력도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의고사를 풀면서 학생들은 일희일비한다. 사람이라는 짐승은 원래 보상심리라는 게 있어서, 자기가 이미 어떤 목표를 달성했다고 판단하면 이후에는 그냥 긴장을 풀어버린다.

        

       그러니, 차라리 모의고사를 바짝 어렵게 만들어서 실전 시험 문제가 지나치게 어려웠을 때의 변명거리를 만들고, 동시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긴장을 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앨리스는 그런 시험을 이미 몇 번이고 치러 왔다.

        

       앨리스는 그 뛰어난 두뇌로 열심히 공부하여 언제나 높은 점수를 획득했고—

        

       —나는 내 능력이 가진 편법을 이용하여 몇 번이고 교재를 보고 공부하여 내용을 통째로 외우고 이해하며 넘어갔다.

        

       솔직히 무지 지루했다. 아무리 정신이 육체를 따르고 내가 시간을 되돌리면 그 육체의 상태도 원상복구 된다 하더라도, 내 기억은 ‘시간을 되돌린 것’으로 인지하지 않고 경험이 쌓이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니까, 아무리 시간을 돌려도 결국 내 시선에는 그냥 같은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게 그 말인가?

        

       뭐, 아무튼.

        

       그래서 나는 그냥 그 수많은 기회 도중에 푹 자거나 푹 쉬는 시간도 만들었다.

        

       수업을 빼먹고 황성 바깥을 산책한다거나,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냥 푹 자버린다거나.

        

       남들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시간은 그냥 버리는 시간이었으니까. 정신적인 피로만 최소화하고 시간을 되돌려 원래대로 돌아간다.

        

       사람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다지만, 막상 그렇게 보고 또 본 것들은 결국 기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몸의 뇌 용량이 큰 것인지, 아니면 원래 나에게도 그런 재능이 있었는데 내가 활용하지 않고 살았던 건지는 모르겠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세이브 파일을 몇 개씩이나 따로 저장하고 몇 번이고 불러와 가면서 플레이하던 것을 생각하면…… 뭐, 이제 와서 원래의 나에게 어떤 재능이 있었을지 상상하는 것도 별로 의미는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봐야 지금의 나는 실비아 팬그리폰이라는, 원작의 세계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캐릭터였으니까.

        

       “문제는 어땠어?”

        

       아무리 황녀의 신분이라도 입학시험은 반드시 지정된 곳에서 치도록 되어있었다.

        

       제국은 넓다. 아무리 최신식 기차로 달리더라도 지방에서 론다리움까지 오려면 몇 시간은 기본이고 반나절이나 하루 걸려 와야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리고 전날에 그런 식으로 무리를 하면 시험 볼 때 컨디션에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지방에 사는 평민들이야 그렇다 쳐도, 매번 그러면 귀족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생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자식 교육은 중대 사항이었으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은 제외하고.

        

       그래서, 지방에도 지정된 시험 장소가 있다. 그조차도 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상황이라면 자기가 그런 재능을 가졌는지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애초에 배움의 기회조차 없는 곳에 살고 있을 테니까.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제도의 황립 론다리움 아카데미에서 시험을 치렀다.

        

       솔직히 제도에 사는 사람이 아카데미 시험을 보게 된다면 그건 행운이다. 아카데미를 직접 가 볼 일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시험에 붙건 떨어지건, 그 잘 지어진 건물에 한 번 들어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축제 기간을 제외하면 개방되지 않는 학교니 면학 분위기가 조성된 모습은 대부분의 일반인은 보지 못한다.

        

       “모의고사보다는 난이도가 낮았습니다.”

        

       “역시 그렇지?”

        

       물론, 우리가 아무리 아카데미에서 직접 시험을 봤다고 하더라도 다른 학생들과 완전히 같은 취급을 받을 수는 없었다.

        

       호위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가 들어간 교실의 학생들은 우리를 엄청나게 신경 쓰게 될 테니까. 결국에는 그게 성적으로도 이어질 수 있고.

        

       그리고 귀족 중에서는 자기 자식 성적에 엄청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모도 많다. 차라리 자식한테 화를 냈다면 제국에서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시험 장소에 그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다.

        

       황제는 당연히 그런 말들을 가뿐히 무시한다. 애초에 그런 사소한 이야기는 황제에게까지 올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교직원들은 그럴 수 없다. 그리고 이 나라의 교육부를 운영하는 고위직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백작가, 공작가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사람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애초에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이번만큼은 우리는 특별히 다른 교실에서 시험을 봤다.

        

       교실 밖으로 나오며 앨리스의 얼굴을 슬쩍 봤는데, 표정이 별로 나쁘지는 않았다. 역시 앨리스가 풀기에는 쉬운 시험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랬다. 정말 질릴 때까지 봤던 내용들이니, 아마 모의고사 때보다 성적이 잘 나왔으면 잘 나왔지, 못 나오지는 않을 거다.

        

       물론, 일부러 틀린 문제가 몇 개 있긴 했지만.

        

       “얼른 가서 한 번 가채점이라도 해 보자. 전부 다 맞춰볼 필요도 없어. 애매한 문제 몇 개 정도는 너도 기억하고 있겠지? 대충 그 정도만 맞춰봐도 우리 성적은 예상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앨리스는 아카데미 입학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거야 당연하다. 애초에 앨리스는 원작에서 아카데미 학생으로 나오니까.

        

       지금이야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가득한 건물이라 이렇게 따로 시험을 보고 옆에 호위도 따라붙었지만, 학기가 시작될 때쯤에는 합격자 중에서 불순 분자는 죄다 걸러낸 뒤일 거다. 아카데미 바깥은 몰라도 안에서는 동등한 존재였으니 말도 놓고 지낼 거고.

        

       유명무실한 규칙이라 결국 시간이 지나면 급이 나누어지긴 하지만. 앨리스야 뭐 너무 유명해서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는 얼굴이고.

        

       우리가 걷는데, 저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시험이 끝난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학생들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가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굳이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우리 앞을 호위하는 기사가 나아가서 척하고 자리를 잡았다.

        

       우리 쪽을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우리 앞에 있는 기사들 때문에 이쪽으로 오지 못했다. 애초에 앨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와 친교를 맺은 적이 없는 아이였으므로, 유명한 귀족가의 아이들도 그냥 막 말을 걸기는 많이 껄끄러웠을 거다. 상대를 모르니까.

        

       앨리스는 황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되고자 하는 아이였다. 무도회장에 갈 일이 있으면 책을 한 자 더 읽고 검술 수련을 하는 성격이었으니, 귀족 중에 아는 사람이 없을 만도 했다.

        

       “저 애 중에서 몇 명이나 아카데미에 합격할까?”

        

       “아마 극소수겠지요.”

        

       원작에서는 설정상 입학정원은 학년당 귀족 30명에 평민 60명이었다.

        

       실제로 얼굴이 나오는 캐릭터는 그보다 훨씬 적었고.

        

       지금 우리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학생과 비교하면 거의 한 줌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아이들이 지나가는 복도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그 아이들이 다 지나가기를 멍하니 기다렸다.

        

       “…….”

        

       그러다가 문득, 입으로 아, 하는 소리를 낼 뻔했다.

        

       저 멀리, 푸른 머리카락의 아이가 지나갔다.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은 아니다. 게임에서 봤던 모습도 아니었고, 마지막으로 봤던 그 꼬질꼬질한 모습은 더욱 아니었다.

        

       훨씬 더 많이 성장한, 풍성한 푸른 머리카락을 뒤로 올려 묶어 정석적인 포니테일을 하고 있는 그 애는, 게임에서처럼 기가 세 보이는 화장을 하고 있지도 않았고, 교복을 개조해서 노출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아주 반듯한 학생의 모습. 솔직히 어디 반장이라고 해도 엄청나게 어울릴 것 같았다. 안경은 쓰고 있지 않았지만.

        

       클레어였다.

        

       클레어는 자기 옆에서 걷는 한 잘생긴 남자아이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애는 그레이스 가의 아들이겠지.

        

       이 게임의 주인공.

        

       “…….”

        

       “왜?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예. 귀족가의 자녀들이 몇 보이는군요.”

        

       “……음.”

        

       괜히 아니라고 하는 것보다는 비슷한 다른 말로 변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는 침음을 흘렸다.

        

       “주의해야 할 사람이라도 있어?”

        

       “있긴 합니다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것도 클레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클레어는 차라리 나를 모르는 것으로 되어있는 것이 나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의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지.

        

       ……내가 죽인 크로우필드 백작의 딸도 이 학교에 다닐 예정이다. 원작에서는 히로인 중 한 명이니까.

        

       “……그래, 그러면 돌아가서 알려줘. 나도 주의해서 나쁠 거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나의 말을 듣고 단박에 표정이 심각해진 앨리스에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원작에서야 앨리스와 클레어는 사이가 무척 나빠서 앨리스가 이런 정보를 받을 일은 없었지만.

        

       지금이야 뭐, 내가 그 클레어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클레어도 원작이랑은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진 것 같고.

        

       그러니 이 정도의 정보 공유는 해도 별로 상관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

        

       “……어?”

        

       이야기를 나누던 클레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클레어와 함께 걷던 레오가 물었다.

        

       “왜? 뭐라도 봤어?”

        

       “아, 그게…….”

        

       클레어는 잠깐 멍하니 뒤를 바라보았다. 저 앞의 꺾이는 곳에 사람이 서 있었는데, 아마 그걸 보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레오는 생각했다. 한 사람은 빛나는 금발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검은 단발. 금발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올해 황녀님께서도 입학할 예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그 두 사람의 앞에 있던 기사 두 명의 존재도 이해가 갔다. 다른 한 명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이었어? 가서 만나 볼까?”

        

       레오가 그렇게 말하며 지나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했지만, 곧 밀려오는 다른 학생들의 불만 어린 시선을 받고 뻘쭘하게 멈추어 섰다.

        

       “아, 아냐, 그럴 것까진 없어.”

        

       그리고 그제야 제대로 정신을 차린 클레어가 말했다.

        

       “아마…… 아마 잘못 봤을 거야. 그냥 닮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래?”

        

       클레어의 행동이 이상하긴 했지만, 레오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클레어가 찾는 언니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몇 번이나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 언니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여기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신분이 보증되어야 했으니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클레어의 이야기대로라면—물론 클레어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혼자 무리에서 떨어진 어린아이였던 그 언니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생존하고 성장해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칠 가능성은 극히 떨어졌다. 게다가 그 시험을 황녀 옆에서 치를리는 더더욱 없다. 얼핏 보기에 시녀인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애초에 진짜 시녀였다면 레오나 클레어와 비슷하게 학생 사이에 섞여서 시험을 봤을 거다.

        

       게다가 클레어도 요즘 와선 거의 포기한 것 같았고. 여기서 마주칠 확률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극히 떨어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응. 괜찮을 거야. 그냥…… 느낌일 뿐이겠지. 이번에도.”

        

       어린 시절에도 머리가 검고 긴 사람이면 아무에게나 가서 얼굴을 확인하던 클레어였으니까. 오히려 아니었다는 것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컸기에, 이제는 기대를 접는 법도 알았을 것이다.

        

       애초에 여길 지나는 사람들 사이에도 검은 생머리 여학생은 넘쳤고.

        

       “……가자.”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고 걷기 시작하는 것을 조금 씁쓸하게 보며, 레오는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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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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