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

       나는 GM 실격이다.

       

       GM 실격인 나는 이족보행 할 자격을 『박탈』당했다. 사족보행조차도 내게는 너무 사치스러웠다. 나는 등과 배 근육을 이용해서 열심히 바닥을 기어다녔다.

       

       아니, 내가 기어다닌 탓에 먼지님이 닦여져 버리셨다⋯⋯.

       

       나는 이대로 돌멩이가 되어 영원을 살아가는 편이 나았다. 금기를 어긴 자에게는 그만한 처벌이 가해져야 마땅하니까!

       

       지나가던 마탑주가 돌이 된 나를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대체 왜 그래⋯⋯? 잘 끝난 거, 아니야? 혹시 우리 둘이서 밤새우면서 준비한 불꽃놀이 이벤트가 스킵 돼서 그러는 거야?”

       

       그건 확실히 좀 아깝긴 했다. 계획에 따르면, 『맥주와 노래』 작전이 시작함과 동시에 도시 곳곳에 숨겨 둔 폭죽이 터지기 시작한다. 축제 분위기는 무르익고, 미리 심어 둔 바람잡이들에 의해 흥겨운 노래가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뿔싸, 교회 첨탑에 설치한 폭죽에 문제가 발생해서 기폭이 안 되는 게 아닌가! 이리드와 센트라는 다시 한번 갈고리 총을 사용해서 첨탑으로 향한다. 폭죽이 터지는 달밤을 배경 삼아서.

       

       두 사람은 첨탑 망루에 오손도손 앉아 마지막 작별의 불꽃놀이를 터트린다. 화려한 형형색색의 폭죽이 터지고, 펑펑거리는 소음 때문에 서로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센트라는 무언가를 이리드에게 말한다.

       

       폭죽 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이리드는 의아해한다. 센트라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리드가 알아듣지를 못 하니, 센트라는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한다. 폭죽의 피날레와 함께하는 진한 키스로!

       

       그게 엔딩 플랜 A였다.

       

       

       “아, 아니면⋯⋯. 로냐의 마지막 대사를 못 쳐서 그래?”

       

       그것도 좀 아깝긴 했다. 계획에 따르면, 2황자가 공격을 두 번 정도 더 받아내고 난 뒤에 도핑제의 반동이 찾아온다. 로냐는 피를 토하면서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악을 쓰면서 절박한 목소리로 묻는 거다.

       

       “너는, 연합 왕국의 개들이 원망스럽지도 않은 거냐, 이리드!! 너도, 금발이라는 이유로, 제국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만으로 온갖 괴롭힘을 당했잖아! 복수하고 싶잖아, 다 죽여버리고 싶잖아-!!”

       

       “센트라 그년 때문에 내가 복수를 포기해야 했다는 거야?! 나는 복수에 인생을 걸었는데, 고작 애비가 전 리더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등신 같은 평화니 노래니 하는 명령에 따랐어야 한다는 거냐고-!!”

       

       이렇게 멋있는 판을 싹 깔아주면, 2황자님이 간지나는 대사를 뭐든 간에 이렇게 딱! 혹시나 뇌정지가 와서 대사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까 봐, 미리 시간을 느리게 돌릴 준비도 다 해 놓았다.

       

       충분히 잘 생각해서, 자신의 목표와 정체성을 담은 대사를. 뭐든 좋다. “센트라를 사랑하니까.” 이런 왕도적인 대사도 좋고, “네놈은 날 화나게 했다!” 같은 대사도⋯⋯ 만약 했으면 뒤에 BGM으로 일렉 기타 곡이라도 틀어 줄 생각이었다.

       

       2황자가 패링을 두 번 성공시켰어야만 이걸 보여줬을 거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2황자가 막는 시늉만 했어도 로냐의 공격은 막혔을 거다. 플레이어는 해피엔딩을 맞이해야 하니까. 다이스가 구리다는 이유로, 추리를 못 했다는 이유로 배드엔딩을 때려버리는 건 너무나 잔혹하기에!

       

       플레이어는 언제나 멋있어야 하니까!

       

       무얼 숨기랴, 그 당시에 로냐에 탑승해서 컨트롤하던 건 바로 나였다. 쇳소리 섞어서 악을 지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갑자기 도핑제 부작용으로 힘이 빠질 준비도 했고, “큭 머리가⋯⋯!” 라며 쉴 시간을 줄 준비도 끝났었다.

       

       나는 접대 준비를 다 끝내놨는데 아니 이 미친놈이⋯⋯ 아니, 2황자가. 거기서 냅다 안아줘요를 시전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돌려 본 열일곱 번의 시뮬레이션 중에서도 그런 건 없었다.

       

       어쩌면 나는 2황자의 광기를 우습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안전하다고는 했지만, 아니 뭐 어쩌려고 그냥 냅다 죽는다는 말인가? 

       

       ⋯⋯물론. 죽어가는 이리드와 펑펑 우는 센트라의 역 피폐는 좀 맛있긴 했다. 마음속으로 박수를 치면서 재미나게 즐겼다. 센트라가 맛있게 대사를 쳐 줄 줄은 몰랐다. 여차하면 수동 입력을 하려고 했는데 역시 AI는 학습해 놓고 볼 일이다. 

       

       하여간 이게 최종전투 플랜 B였다.

       

       

       “그것도 아니면⋯⋯ 3일간 붙잡고 있던 팬티 모델링을 못 써서?”

       

       “그건 많이 아까워요.”

       

       “나, 나는 농담으로 던진 건데 왜 진짜 아까워하는 거야⋯⋯?!”

       

       팬티는, 과장을 세 스푼 보태서 말하자면 캐릭터의 영혼이다. 똑같은 귀부인 캐릭터라도 안쪽에 무엇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서 캐릭터성이 단번에 바뀐다는 말이다. 로망의 응집체이기도 하고.

       

       나는 이 주제로 A4용지 다섯 페이지 하고도 반을 떠들 수 있다.

       당장에 자색 마탑주의 스커트 아래에 대입해 보더라도⋯⋯.

       

       아니, 아니다.

       

       생각해 보니까 내 모든 고통과 번뇌의 원인은 눈앞의 마탑주였다.

       

       내가 원망을 담아서 째려보자, 마탑주는 상황을 따라갈 수 없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에 빙글빙글 물음표 모양 환상이 돌아갔다.

       

       내가 GM 실격인 이유, 고통에 빠진 이유, 그건⋯⋯.

       

       마지막의 마지막에, 센트라가 키스를 하려는 걸 내가 막았기 때문이다⋯⋯.

       

       그건, 그 장면은 피날레였다. 등신처럼 구르기만 한 2황자 이리드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최소한의 보상이었다. 혀 넣는 것 까지는 막았을 거다. 그건 데이터가 없었으니까. 아마 혀를 넣었으면 더미 데이터로 넣어 둔 카레 우동 맛이 났을 것.

       

       그렇지만 적어도 키스는.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만큼은 남겨야 했다.

       

       그런데 내가 다 망쳤다. 

       

       차라리 그 판단에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 합리적이지 않아도 된다. 뭔가 미학적인 이유가 있었더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유열을 좋아해서 끝까지 2황자를 엿 맥이고 싶었다든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가상현실에 입력된 입술의 감촉 데이터는, 지원금 30배 선언 후 일어난 ‘마탑주 뽀뽀 난사 사건’으로부터 추출한 것이다. 당시 자색 마탑 군기반장(여성 / 마탑 서열 4위 / 마탑주 아낌)의 철저한 통제로 마탑의 모든 남자들은 연구실에 감금되었지만.

       

       사건 발생 직후에 옆에 있었던 나는 뽀뽀 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감히 남자 주제에 마탑주님의 뽀뽀를 받아! 하고 며칠 쫒겨다니기도 했다. 

       

       그때에는 뽀뽀 데이터를 수집해서 이득이라고, 전 여자친구한테서도 못 받아본 걸 이세계 와서야 받아본다고 좋아라 했었는데. 센트라가 이리드의 입술에 키스를 하려는 순간. 뭔가.

       

       이러면 마탑주님이 2황자랑 간접키스 하는 거 아닌가.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반사적으로 셧다운을 누르고 있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셧다운을 눌렀는지. 2황자의 무빙이 그렇게 야속해서, 내 신념을 부수어가면서까지 엿을 먹이고 싶었던 건가? 아니면 그날 먹었던 마탑주의 스튜가 잘못됐나.

       

       어쩌면 처음부터 틀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 플레이어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이 중요한 이기적인 GM이었던 거다⋯⋯.

       

       “으아아악 아니야!!”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영혼이 반으로 쪼개지는 듯했다!

       

       

       “저, 저기⋯⋯. 고민이 있으면 말해 봐. 우리, 서로 돕기로 한 거잖아?”

       

       톡톡. 자색 마탑주가 내 로브 끝자락을 잡고 소심하게 당겼다. 모자챙 아래로 보이는 한쪽이 살짝 가려진 눈, 오똑한 코, 그리고 혈색 도는 조그마한 입술이──

       

       나는 스스로 내 이마를 철썩 때렸다. 그리고 웃었다.

       

       “흐, 흐흐, 흐흐흐⋯⋯.”

       

       “⋯⋯⋯⋯?!”

       

       나는 확신했다. 분명 나는 주화입마가 온 거다. 주화입마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지금 문제의 원인은 ‘데이터 부족’이다.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입술 감촉의 종류가 서른개쯤 됐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았겠지. 이리드는 진한 키스를 나눌 수 있었을 거다.

       

       내가⋯⋯ 데이터베이스에 혀 감촉도 저장해 뒀다면! 이리드는 찐한 딥키스까지도 나눌 수 있었을 거다! 내 부족함이었다. 참담한 심정이다. 

       

       언제까지고 절망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 사람은 밝고 찬란한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법이다. 행동하는 사람만이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선언했다.

       

       “마탑주님. 일주일간 휴가를 내겠습니다.”

       

       “가, 갑자기? 뭐, 뭐어⋯⋯ 좋지만. 기분 전환 겸 놀러가는 거라면, 혹시 나도 같이──”

       

       “수도의 홍등가를 전부 돌아볼 생각이에요.”

       

       “⋯⋯??”

       

       “여체 데이터에 대한 모든 걸 알아 오겠습니다. 절 찾지 마세요. 아디오스.”

       

       “뭐, 뭣, 자, 잠깐! 잠깐만⋯⋯!! 뛰지 말고, 나, 나랑 이야기 좀 해! 야!!”

       

       우당탕쿵쾅.

       

       데이터베이스 팔만대장경 완성을 위한 내 마탑 탈주 시도는, 약 30분간의 난동 끝에 마탑주에 의해 제압되었다. 

       

       ===============================================================

       

       “⋯⋯뭐 하고 있는 거야?”

       

       내 마탑 탈주 시도 이후로 마탑주의 시선이 이상하다. 뭔가, 그, ‘우리 아들이 이런 것도 볼 나이가 됐구나’ 하는 느낌의 시선이었다. 앞으로의 TRPG와 대의를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는데!

       

       ⋯⋯물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나는 시뮬레이션 마법진을 이리저리 조작하면서 대답해 줬다.

       

       “세션 끝났으니까, 로그(Log)를 따고 있어요.”

       

       “로그?”

       

       “2황자 이리드의 두근두근 아찔아찔 100년 후 제국 탐방기 말이에요. 그 전부를 기록으로 남기는 거예요. 나중에 꺼내볼 수 있게.”

       

       “⋯⋯작명센스 구려.”

       

       “구린 건 마탑주님 팬⋯⋯”

       

       “매, 매일! 아침! 저녁마다! 클린! 마법! 쓰거든!!”

       

       마탑주가 강세를 줄 때마다, 레고를 밟은 것 같은 아찔한 충격이 전신을 덮쳤다. 나는 그 비인도적인 『고통 부여』에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녀야 했다.

       

       마탑주는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는 나는 내버려 두고 시뮬레이션 마법진을 쓱 훑어보고는 말했다.

       

       “『영상 기록』 마법치고는 용량이 좀 큰데⋯⋯?”

       

       “세계를 통째로 떼서 저장하려고요. 용량이야 뭐, 2황자를 어떻게 잘 구슬리면 드래곤 하트 주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저번에 최상급 마도석 주고 가셨고.”

       

       “드래곤 하트는 국보라니까. 1황녀님까지 탄원서를 올려야 될까 말까 할걸?”

       

       “1황녀님도 꼬시면 되는 일.”

       

       “그래, 음⋯⋯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1황녀님은 특이하신 분이니까. 남들과는 감성이 조금 다른 느낌⋯⋯?”

       

       “로그 다 땄다. 나중에 심심할 때 같이 봐요.”

       

       “같이 볼 때, 그, 팝콘? 이라는 거 맛있더라⋯⋯. 캬-라-멜 뿌린 거.”

       

       “좋죠. 잠깐만요, 이거 이름만 적으면 끝나거든요? ‘2황자 이리드의 두근두근 아찔아찔⋯⋯’.”

       

       “그 이름 구리다니까!”

       

       “그럼, 뭐. 마탑주님이 정하실래요?”

       

       “황자와 꽃과 레지스탕스!”

       

       “심심한데⋯⋯.”

       

       “두근아찔 어쩌구보다는 백 배 나아! 저리가, 저리갓⋯⋯!”

       

       “아, 아야. 아.”

       

       결국 강압과 횡포에 의해서 로그의 이름은 ‘황자와 꽃과 레지스탕스’로 정해졌다. 저장도 끝냈겠다, 나는 시뮬레이션 룸의 불을 끄고 마탑주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1황녀에게 컨택도 넣어 봐야 하고, 2황자에게 마음의 빚도 갚아야 한다. 수도 크라운홀 시찰을 열심히 돌고 있다는 모양이니까 만나기는 쉬울 것 같았다.

       

       세계의 완성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파이팅이다.

       

       ===============================================================

       

       모두가 나간 방.

       

       시뮬레이션 룸의 마법진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지로도 남기겠지만, 공지를 혹시 못 보실까봐서 여기에도 남겨요!
    내일 아침에 일이 생겨서 연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첫 휴재네요!
    그래서 그 대신 오늘 후다닥 써서 한 편 더 올려봅니다⋯⋯.
    저번화에서는 후일담이 2화 컷이 날 것 같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 환상 마법사의 사악한 농간이었습니다.
    네 개 정도 더 나갈 것 같아요. 이번 편을 포함해서요!

    여러분의 댓글은 하나하나 읽고, 곱씹으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모든 댓글에 답글을 달아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연재 시간이 부족해질 테니까⋯⋯!
    꾹 참았습니다. 마이 프렌즈. 답글보다는 연참을 좋아하시니까요, 그렇죠?
    여러분의 관심 하나하나가 정말, 정말로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 지나가던 마탑주가! 에서 좀 짤려있었네요⋯⋯ 이젠 메웠답니다!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