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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교수회의.

         

       하늘섬 총독부가 없어지고 이사회가 유명무실해진 현재 아카데미의 강력한 결정 기구였다.

         

       교수들이 테이블을 감싸고 둘러앉았다.

         

       테이블 중앙에는 학생회가 노력 끝에 간신히 하나 제출한 마석 각성제가 있었다.

         

       각성제를 분석한 교수가 입을 열었다.

         

       “교단의 손길이 맞는 거 같습니다.”

       “허어.”

       “정말 교단이오? 전대 크래프트 각하께서 토벌하신 지 20년이 채 안 됐잖소.”

       “잔당이겠지만 교단이 맞습니다. 이 정도의 제조 기술력은 신생이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교단의 기술력입니다.”

         

       이곳저곳에서 탄식이 나왔다.

         

       “그래도 잔당이니 큰 문제는 없겠죠? 설마 매일 당직을 서고 그래야 하는 건 아니겠죠?”

       “그사이에 회복될 리가 없잖습니까. 각성제 유포는 인재 수혈을 위한 고육지책이 아닐지.”

       “아무리 잔당일지라도 대응을 고민하긴 해야 하지 않겠소?”

         

       수군거림 속에서 교수 하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후작 각하의 비공정 추락이 일어난 전투 실기 때 담당 교수기도 했던 자였다.

         

       “뭔 교단입니까, 교단은. 다들 사안을 잘못 보고 있어요!”

         

       주먹이 테이블을 쳤다.

         

       “마족입니다! 마족! 다 망한 교단이 무슨 자금이 있다고 하늘고래 지느러미를 각성제에 씁니까!”

         

       뭐 어디 대단한 가문을 가구 하나 안 남기고 탈탈 털어먹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역겨운 마족들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지요! 교단의 잔당을 흡수해서 더러운 수작을 부리는 겁니다! 이럴 줄 알았어요! 이럴 줄!”

         

       교수 일부의 안색이 변했다.

         

       “확실히…….”

       “교단보단 마족이 현실성 있긴 해요.”

       “마리우스 교수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

         

       마리우스가 눈을 빛냈다.

         

       “당장 하늘섬의 마족들을 수색해야 합니다! 아카데미 재학생도요! 애초에 하늘섬에 마족을 들여놓으면 안 됐어요! 근본부터가 잘못됐습니다!”

       “거 너무 원색적인 거 아닙니까.”

         

       교수 하나가 턱을 괸 채 시큰둥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마리우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요? 지금 마족 편을 드시는 겁니까?”

       “그까짓 거 마족 편 들죠, 들어. 그러면 뭐 어쩌실 겁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시선이 강렬히 마주쳤다.

         

       조용한 신경전이 흘렀다.

         

       잠시 뒤 각성제의 분석 보고서를 읽던 카를로 교수가 보고서를 내려놨다.

         

       “회의가 격해지는군요. 모두 진정하시죠. 이걸 학생들이 보고 뭐라 하겠습니까.”

         

       마리우스가 숨을 내쉬다가 고개를 돌렸다.

         

       “걱정이 돼서 그런 겁니다. ……감정이 격해지긴 했군요. 사과드리죠.”

       “예, 마리우스 교수. 이해합니다.”

         

       카를로가 모두를 돌아봤다.

         

       “의견이 갈리는군요. 어차피 잔당이니 이 안건은 차분히 지켜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시선이 쏠렸다.

         

       “주변 상가의 각성제 단속을 학생회에 전담시키고 차후 보고를 기다려 봅시다.”

         

       회의가 이어지다 끝났다.

         

       일거리 하나가 학생회로 전달됐다.

         

         

         

       #

         

         

         

       잉.

         

       밀무역을 마친 다음 마계에서 건축 회사도 구하고 학생회로 돌아왔다.

         

       파스텔은 대강 완성된 기숙사 신축 일정을 울상으로 바라봤다.

         

       기숙사 신축 – 여름방학 때 공사 시작.

         

       이잉.

         

       멀쩡히 잘 지내는 학생들을 내쫓고 공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 여름방학 때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면 신축 공사를 시작한다는 구상이다.

         

       너무 맞는 말이지만.

         

       너무너무 맞는 말이지마안.

         

       으아아.

         

       파스텔은 머리를 헤집었다.

         

       내 마왕의 유산이……!

         

       기숙사 지하의 유적 탐사가……!

         

       마석 복제의 권능(희망사항) 냠냠쩝쩝이……!

         

       허윽.

         

       인생 너무 어려워 파스텔.

         

       비정한 현실은 굶주린 아이에게 이리도 차갑단 말인가.

         

       『1학기는 원래 짧다. 여름방학은 금방 올 거다.』

         

       그건 맞지마안.

         

       『정 빨리 얻고 싶다면 도서관 자료를 살펴보는 건 어떻지? 요행이 있다면 기숙사 지하의 기밀 입구를 추론할 수 있을 거다.』

         

       에엣?

         

       떠들지도 못하는 도서관에서 시간 보내기?

         

       필기 수석 파스텔은 그런 거 못 해~.

         

       파스텔은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최선을 다해 못 들은 척했다.

         

       우아우아, 학생회 일해야지.

         

       난 부학생회장 겸 총무부장 겸 기획부장 겸 홍보부장 겸 봉사부장 겸 선도부장이니까, 할 일이 너무 많아.

         

       학생회 소파에서 버둥거렸다.

         

       버둥버둥.

         

       빈둥빈둥.

         

       허억.

         

       일하기 너무 어려워.

         

       인생 너무 어려워 파스텔……!

         

       으아아.

         

       냉정한 사회생활이 굶주린 아이를 덮친다!

         

       엘리가 다크서클 낀 얼굴로 다가왔다.

         

       “파스텔, 교수회의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파스텔은 멈칫했다.

         

       “아 그거 이미 확인했어. 상가 단속 건 맞지?”

         

       엘리가 잠시 묘한 눈빛을 보냈다.

         

       “응.”

       “주변 상가의 목록 뽑고 케이스별로 리스트화해서 따로 정리해둬. 그리고 현장에서 쓰기 좋게 지도 위에 도식화해 놓고.”

       “응.”

         

       엘리가 떠났다. 더스틴과 상의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파스텔은 다시 버둥버둥거렸다.

         

       인생 너무 어려워 파스텔……!

         

       으아아.

         

       밀무역 꿈나무를 가차 없이 굴리는 교수회의의 냉정한 결정.

         

       불쌍한 밀무역 꿈나무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상가 단속에 무슨 꿈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있었다.

         

       얼마 뒤 학생회에 상인이 찾아왔다. 단속될 상가 중 하나를 보유한 사람이기도 했다.

         

       맹한 표정의 파스텔은 단둘이 마주 앉았다.

         

       상인은 뭔가 굉장히 찔리는 게 많아 보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러더니 파스텔을 향해 스윽.

         

       “흠흠. 저희 가게에서 학생회에 드리는 성의의 표시입니다.”

         

       상자가 달칵.

         

       금괴가 차곡차곡.

         

       허억.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으에에.

         

       금괴가 나한테 인사하고 있어!

         

       안녕안녕.

         

       으에에.

         

       안녀엉, 금괴 친구.

         

       파스텔은 친구의 찬란한 빛에 몸을 뒤틀었다.

         

       흐어억.

         

       너무 강력해.

         

       그러다 양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하지만 미안해, 금괴 친구.

         

       다음에 보자.

         

       파스텔은 냉정한 표정으로 상자를 밀어냈다.

         

       “저희 학생회는 금품을 받지 않습니다. 각성제의 단속과 조사는 절차와 규정에 따라 원칙하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약물은 심각한 문제라서 사감을 섞을 수 없다.

         

       개인적으론 각성제 수색과 냠냠도 하고 싶고.

         

       상인이 끄덕였다.

         

       “암요! 각성제 단속엔 성실히 임할 겁니다! 학생 여러분의 안전이 달린 일 아니겠습니까! 한데 그것이 아니옵고.”

         

       잉?

         

       상인이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상대가 제발 눈치채주길 간절히 바라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그 상대가 순진한 소녀라는 걸 자각했는지 결국 실토했다.

         

       “아주 사소한 탈세가, 하하하!”

         

       탈세?

         

       호탕한 웃음이 울렸다.

         

       “아주아주 사소한 문제지요! 하하하!”

         

       탈세라니.

         

       허억.

         

       기억이 번쩍였다.

         

       굶주린 아이를 구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

         

       해적을 만나고 무뢰배를 만나고 그리고, 하여튼 험난했던 여정들.

         

       혹시 이 상인분도 굶주린 아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

         

       허억.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금괴 친구를 내려봤다.

         

       이 친구도 사실은 굶주린 아이(나)를 위한 것?

         

       허억.

         

       미안해, 친구.

         

       너의 선량한 마음을 믿지 못했어.

         

       파스텔의 나쁜 손이 금괴 상자를 슥 챙겼다.

         

       정의로운 입이 빠르게 중얼거렸다.

         

       “학생회는 각성제 단속에 집중할 것을 약속드려요. 그 외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거나 할 일은 없겠죠.”

         

       “암요! 저희 가게도 성실히 임할 겁니다! 하하하!”

         

       상인이 방긋 웃었다.

         

       파스텔도 입꼬리가 헤실헤실.

         

       헤헤.

         

       『너…….』

         

       이잉, 어디서 환청이?

         

       잘못 들었나 봐.

         

       학생회에 각종 상인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부동산 비싸기로 소문난 하늘섬에서 가게 장사하는 상인들의 힘은 대단했다.

         

       상자가 척척 쌓였다.

         

       금괴와 금화가 번쩍번쩍.

         

       으에에.

         

       파스텔은 숨을 들이켰다.

         

       “우와앙!”

         

       금괴다, 금괴.

         

       금화다, 금화.

         

       이 사람들 탈세를 얼마나 한 걸까?

         

       탈세와는 한 톨도 연이 없는 순진한 파스텔은 모르겠어.

         

       히히.

         

       전부 밀무역품으로 바꿔야지.

         

       오예.

         

         

         

       #

         

         

         

       어느 음침한 상가 건물.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이대로 돈을 갖다 바칠 수는 없소! 이건 아카데미의 무자비한 상가 탄압이요!”

         

       상인이 연단에서 외쳤다.

         

       “옳소! 옳소! 상가권 침해다!”

         

       선량한 탈세자들이 찬동했다.

         

       열광적인 분위기와는 반대로 한쪽 테이블에선 상인들이 진지한 논의를 했다.

         

       노련한 인상의 상인이 인상을 구겼다.

         

       “크윽, 소문대로의 크래프트야. 유연한 금품수수로 절반이나 이탈시키다니. 분열된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군.”

       “후작 각하는 분명 순진한 소녀 아니었소? 야광 드래곤을 축제에 선보이는 걸 내가 똑똑히 봤거늘.”

         

       어느 상인이 허탈해했다.

         

       노련한 상인이 픽 웃었다.

         

       “자네 그걸 속나. 야광 드래곤은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어. 망해도 상관없었지.”

         

       크래프트의 수작이야 대대손손 일관적이다.

         

       평소엔 이미지 관리를 철저하게 하다가 중요할 때 검은 속내를 드러내는 이중 전략.

         

       어떤 이미지를 만들지는 가주마다 달랐다.

         

       “이번엔 순진한 소녀야. 그 외견 때문에 매번 다 속아서 그렇지 이젠 다들 알지 않나? 크래프트는 겉과 속이 달라.”

       “허어.”

         

       다른 상인이 테이블을 쳤다.

         

       “속았군, 속았어!”

       “그렇지. 중요하지 않은 곳에서 이미지 관리를 한 거야. 어떤 후작 각하가 창피하게 야광 드래곤을 진심으로 선보이겠나. 분명 검은 속내지!”

         

       노련한 상인이 자신했다.

         

       “허어! 자네 말이 맞아! 그 창피한 걸 진심으로 할 리가 없지!”

         

       마른 상인이 허벅지를 탁 쳤다.

         

       “그렇다면 큰일 난 거 아니요? 우리가 모략엔 제국 제일인 크래프트를 어떻게 상대한단 말이오.”

         

       노련한 상인이 미소 지었다.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지. 결투재판일세! 상가권 침해 여부를 걸고 후작 각하께 결투를 신청해서 이기면 돼.”

         

       상인들이 놀라며 수군거렸다.

         

       결투재판.

         

       결투의 승패는 현재 법률적으론 딱히 효과가 없다.

         

       하지만 명예적으론 또 다른 문제였다. 패자가 승복하지 않는 건 굉장히 불명예스럽다. 패자의 작위가 높을수록 더욱.

         

       “은밀한 조사로 알아본 바로는.”

         

       상인이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각하께선 필기 수석에 전투 0점이시라더군!”

       “정말인가?!”

         

       상인들이 매우 놀랐다.

         

       노련한 상인이 웃었다.

         

       “우리가 결투에서 질 리가 없지!”

         

       상인들이 수군거렸다.

         

       이건 된다.

         

       무조건 이긴다!

         

       상인 한 명이 불안해했다.

         

       “한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칼을 겨누는 건 불경죄에 가까워.”

         

       상인들이 멈칫했다. 불안이 점점 퍼졌다.

         

       노련한 상인이 미소 지었다.

         

       “후, 그것도 고려했지.”

       “오오, 역시 자네군! 어서 방법을 말해보게!”

       “각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내용을 들었어. 자세한 내용은 못 들었지만 중요한 단어는 확실히!”

       “그게 뭔가?”

         

       노련한 상인이 주먹을 쥐었다.

         

       “팔씨름 결투일세! 이거면 칼을 겨누지 않아도 돼!”

       “오오! 자네는 천재야!”

       “상가 연합의 낭중지추!”

       “크래프트를 뛰어넘는 모략의 신!”

         

       상인들이 열광에 빠졌다.

         

       얼마 뒤.

         

       주변 상가 연합의 초대를 받고 후작 각하가 방문했다.

         

       상가 대표가 나섰다.

         

       “후작 각하, 결투재판으로 팔씨름 대결을 신청합니다.”

       “허억!”

         

       분홍 소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제가 머리만 좋은 아이인 건 어찌 아시고!”

         

       으아아.

         

       노련한 상인이 의기양양하게 용병을 불렀다.

         

       우락부락한 용병이 거대한 근육을 과시했다. 구리빛 근육이 부풀려졌다.

         

       불끈불끈.

         

       으아아.

         

       머리만 좋은 아이의 약점을 노리는 가혹한 데스게임……!

         

       용병과 소녀가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으아아.

         

       “상가 연합은 결과에 승복할 것임을 맹세…….”

         

       어쩌고저쩌고 절차.

         

       그리고 결투 시작!

         

       소녀가 눈을 질끈 감고.

         

       “으랴아!”

         

       이것이 머리만 좋은 아이의 최선이다!

         

       테이블이 우지끈.

         

       “아아악!”

         

       용병이 테이블 잔해와 함께 굴렀다.

         

       정적이 감돌았다.

         

       상인 한 명이 유독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잠시 뒤 상가 뒤편엔 상인들이 약속한 듯이 모였다. 노련한 상인이 지면을 구르며 발길질당했다.

         

       “야이, 노망난 자식아!”

       “악! 악! 이러지 말게! 난 크래프트의 정보공작에 당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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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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