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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뜬금없이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러지?

        의아해하던 나는 다음 메시지를 보고 그녀가 작은 오해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

        프리나나 : 내가 마법제 마지막 경기에서 제대로 못해서…… 같이 나간 페어가 많이 다친 것 같은데

        프리나나 : 이대로는 얼굴 볼 면목이 없어서

        프리나나 : 주딱이라면 알고 지내는 고 위계 신성술사나 상위 등급 포션 같은 거 있을까 해서

        프리나나 : 내 남은 포인트 다 줄게

        프리나나 : 그래도 부족하면…… 파딱도, 하라면 할게.

        ====

       

        어쩐지 병실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면회를 안 오더라니.

        자신이 시엔과 싸울 때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 모양이었다.

        저주명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으니 오히려 끼어든다고 옆에서 알짱거렸다면 더 위험했을 것이다.

       

        넝쿨째 굴러들어온 새로운 파딱 후보를 두고 잠시 고민했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부관리자를 더 늘릴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글댓을 합쳐 17만개가 넘는 그녀가 주딱을 상대로 과연 안일한 수를 둘까?

        이미 뽑기로 ‘파딱 해제권’을 구비해놓은 상태였기에 허초를 한 번 던져보는 것일 터.

       

        숨막히는 고수들의 비무에서 내가 그녀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고 있다는 사실을 주의시키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다.

        내 입장에선 ‘프리나나’의 포인트만 회수하면 이번 마법제 배팅 이벤트는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이기도 했고.

       

        ====

        관리자 : 같이 참가한 동료의 부상이 낫기를 원한다는 겁니까?

        프리나나 : 응, 나같은 사람한테도 잘 맞춰줬고, 솔직히 관심도 조금…….

        관리자 : 그리 되었습니다

        프리나나 : 뭐……?

        ====

       

        짧은 한 마디를 끝으로 대화는 종료되었다.

        위치노트 너머로도 프리나가 느낄 혼란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이걸로 모든 유저의 포인트 털이를 성공적으로 마친 내가 홀로 승리를 자축하며 케이크를 집어들었을 때.

        복도에서 투다다닥! 하는 커다란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 선배님.”

        “너, 너 방금 누구랑 만났어?”

        “아뇨? 전 계속 혼자 있었는데요.”

        “모, 몸은 괜찮고!?”

        “네, 갑자기 나아졌네요.”

       

        면회 사절 팻말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문을 열어재낀 사람은 조금 전까지 나와 대화하던 프리나였다.

        삐죽빼죽한 머리칼이 선 정도가 이곳으로 달려 온 속도를 그대로 나타내 주었다.

        창백한 안색을 한 채 방안 곳곳을 마력으로 훑는 그녀에게 나는 손을 내밀었다.

       

        “뭐, 뭔데! 친구비? 그, 그런 거 안 줄 거거든. 돈도 없고 애초에 너랑 나는 친구도 뭣도…….”

        “아뇨, 제 손 잡으면 좀 진정되실까 해서.”

       

        착!

       

        잡았다는 표현보단 붙잡혔다는 쪽이 더 어울리는 민첩함이었다.

        아싸 기질은 여전하지만 마법제 이후 긴장을 푸는 법을 익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법사에게 평정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니까.

        말랑말랑한 살결의 감촉과 함께 손바닥에 묻어나기 시작하는 약간의 축축함을 즐기려던 내 손끝에 무언가 잡혔다.

       

        짚으로 만든 익숙한 실루엣의 저주인형이었다.

       

        “이게 뭐죠?”

        “서, 선물. 안에 영석 넣어서 만들었어.”

        “저희는 우승 못했잖아요?”

        “3등 했으니까 하급이야. 나, 나는 필요 없으니까 네가 다 가져.”

       

        단순한 인형이 아닌 마도구의 일종으로, 소유자에게 세 개의 저주를 씌울 수 있다고 프리나는 설명했다.

        언뜻 보면 역으로 손해보는 물건처럼 여겨지겠지만 독과 약은 모두 쓰기 나름이었다.

       

        “넌 저주를 쓸 줄 모르니 내가 넣어놨어. 불감(不感)과 광(光) 과민성. 대미궁을 통과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나머지 하나는요?”

        “…….”

        “선배?”

        “어, 어쨌거나 다 나았으면 이런데서 노닥거리지 말고 빨리 올라 와! 난 위에서 기다릴 테니까.”

       

        고통을 줄이고 빛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라.

        나머지 하나의 저주에 대해선 결국 못 들었지만 그녀가 내게 해를 끼치진 않았을테니 감사하며 받기로 했다.

       

        “생활부에서 10층 적격심사는 받았어?”

        “아뇨, 지금 하고 내려가려고요.”

       

        더 이상 꾀병도 소용없고 갤 관리도 다 해놨으니 이젠 복귀할 때였다.

        위치노트와 창을 챙겨 병실을 나온 나는 프리나와 함께 마력승강기에 올라탔다.

       

        위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누른 나를 보며 그녀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흐, 흐응~ 좋겠네. 벌써부터 다른 애들이랑 파티짤 생각에 설레는구나?”

        “해주학파는 인기없는 거 아니었어요? 그래서 미션도 건너뛴 건데.”

        “너 바보야? 그건 네가 마법제에서 입상 못했을 때지.”

       

        입탑 5년차, 1위계, 해주학파 출신인 내가 함께 미궁에 들어갈 팀원을 구한다는 건 일반적으로 불가능했다.

        허나 역으로 따져보면 해주학파 출신의 1위계 마법사가 학파 창립 이래 최초로 3위라는 성적을 이룩한 것이었다.

        그것도 40층 이하의 모든 마법사들이 참가한 마법제에서.

       

        “만약에, 진짜 만약에 친구 만들고 싶어도 애인은 안 된다? 우, 우리같은 해주술사들한테 마법 이외에 다른 곳에 한 눈 파는 건 말도 안 되는 사치니까.”

        “선배는 저주술사잖아요.”

        “지, 지금 그게 중요해? 이건 절대로 지켜야 하는 학파 규칙이야 학파 규칙. 알아듣겠어?”

        “네, 뭐…….”

       

        9층에 내리자 심사를 위해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나는 손을 놓는 순간까지 내게 절대 인싸들하고 파티를 짜지 말라며 당부했다.

       

       

       

        *

       

        마탑에는 10층마다 ‘시련’이라 불리는 일종의 시험이 깃든 층이 존재한다.

        학파의 연구실이나 휴식공간으로도 사용하는 다른 층들과는 별개로 오직 등반을 위해서만 출입이 허가되는 곳이다.

       

        마탑의 행정부에서도 해당 층을 폐쇄하거나 임의로 개방할 수 없으며 내부의 생태마저도 베일에 쌓여있다.

        그렇기에 생활부에서는 매번 시련에 입장하려는 이들이 정말로 자격이 되는지를 꼼꼼히 체크하곤 했다.

       

        “흠, ‘차원유리의 원리와 이해’ 과목을 낙제하셨네요?”

        “그게 교수님께서 자꾸 강의실을 바꾸셔서…….”

        “시작의 층에 있던 의뢰도 전체적으로 평점이 낮네요. 이래서는 미궁에 출입하시기 어렵겠어요.”

        “어떻게 안 될까요? 제가 빠지면 다른 팀원들에게 민폐라서…….”

       

        마법의 숙련도와 수습생 시절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강의의 학점.

        3층부터 9층까지 수행해야 하는 7개의 의뢰 등을 종합하여 미궁을 통과할 수 있을 지 여부에 대해 심사한다.

        ‘시련’ 중에는 진짜 목숨을 잃는 종류도 있었기에 자격 없는 마법사를 들여보낸다면 봉변을 당할 여지가 다분했다.

       

        대미궁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많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마리엘이네?’

       

        보아하니 9층까지 미션을 다 끝내고 심사를 받으러 온 모양이었다.

        그렇게나 일감을 몰아줬는데 기어코 여기까지 기어올라 오다니.

        생각보다 유능한 건 둘째치고 파딱의 업무보다 탑 등반을 우선시하는 것처럼 보여 약간 괘씸했다.

       

        ‘두 명이 같이 미궁 들어가면 그동안 갤 관리는 누가 해?’

       

        한 5년 정도 그녀를 1층에 머무르게 할 좋은 계획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도중 내 차례가 왔다.

        피곤한 표정을 짓던 접수원은 서류 대신 마법제의 동패(銅牌)를 내밀자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입상 증표? 아니, 3위? 잠시만요. 진짜로 대미궁을 아직 통과 못하신 거라고요?”

        “네. 다른 것도 필요한가요? 좀 오래되긴 했지만 학적부도 있습니다.”

         

        수습생 시절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은 이미 0, 1년차 때 다 끝내놨다.

        성적도 중간 정도는 되니 그때와 기준이 바뀌었다면 모를까 출입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아뇨아뇨! 그런 건 불필요합니다. 어, 어디 보자…… 클락 님께서는요.”

       

        A부터 D까지 구분되는 랭크에 따라 미궁 출입을 출입할 수 있는 조건이 세분화된다.

        그러나 나는 시엔 이후로 5년만에 나타난 사례라 메뉴얼까지 꺼내들어 조항을 읊어주었다.

       

        “팀을 구하셔도 되고 혼자 입장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대미궁이 열리는 7일 중 7일을 모두 미궁 안에서 보내실 수 있고요. 팀원이 있다면 그분들에게도 모두 동일한 규칙이 적용되는데, 이건 A랭크이신 분들도 받지 못하는 특혜입니다.”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접수원의 설명을 짧게 요약하면, 어차피 미궁에서 위험에 처할 실력은 아니니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거였다.

       

        “게다가 미궁 내에서 마수의 토벌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시 그 과정에서 나온 전리품의 경우 모두 클락 님께 귀속이 됩니다.”

        “잠깐만요 접수원. 그런 조건이 말이 되나요?”

        “이해할 수가 없군. 고작 해주학파 출신에게?”

       

        양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좌우를 돌아보았다.

        옆줄에 서있던 남녀가 접수원의 설명에 딴지를 건 것이었다.

        로브에 달린 뱃지를 보면 글레시아와 미티어, 원소학의 양대산맥인 얼음과 불 마법 전공자였다.

        마탑에서는 원소학파가 가장 선호되는 만큼 두 사람은 현재 9층에 있는 마법사들의 대표자 격으로 보였다.

       

        “세라 님, 아르투르 님. 이건 생활부에서 만든 메뉴얼입니다.”

        “아뇨, 메뉴얼에 A랭크 이상은 적혀있지 않아요. 그 이상은 단순한 특례 아닌가요?”

        “애초에 미궁 내에서의 분쟁에 생활부가 끼어드는 것도 이상하군. 내가 그냥 힘으로 뺏겠다면 어쩔 거지?”

        “근데 미티어 학파는 마법제에서 이미 졌잖아요?”

        “그, 그건 해주학파 놈들이 정체를 숨기고 사특한 술수를 부려서였지! 지금은 다르다!”

       

        적의를 보이는 아르투르라는 남자와, 한 발 물러서 상황을 주시하는 세라라는 여자.

        나는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어째서 내게 관심을 가지는지 금세 알아챘다.

       

        학파들은 대미궁에서 자신들의 구성원을 최대한 많이 위로 올려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걸 위해서라면 다른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협력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마법제에서 내가 펼친 경기를 봤다면 영입을 원하지 굳이 싸움을 걸 이유는 없다.

       

        다만 그들을 옭아매는 것은 대형 학파라는 자존심이었다.

        결코 해주학파 따위에게 굽힐 수 없는 자존심.

       

        “어이, 나와 다시 한 번 겨뤄보지 않겠나? 만약 지면 네가 우리와 함께 미궁을 오르는 걸로.”

        “아! 반갑습니다, ‘강아지사랑꾼’ 님 맞으시죠?”

        “뭐?”

       

        그래서 나는 그의 자존심을 손수 굽혀주기로 했다.

        나서서 협박을 할 게 아니라, 겸손한 협상의 자세로 나올 수 있도록.

       

        “저번에 말씀하셨던 ‘수인털박이유토피아’ 게시판 개설은 잘 되어 가시나요? 갤러리에 모금활동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무, 무슨 소리냐? 나는 그런 적……!”

        “털박이가 뭐야?”

        “갤러리에? 아르투르 님께서 무슨 글 올리셨나?”

       

        순식간에 주위에 있던 마법사들이 웅성거리며 저마다 갤러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추문에 휩싸인 그는 다급히 위치노트를 꺼내어 자신이 아니라고 항변했으나, 이미 아이디는 ‘강아지사랑꾼’으로 바뀌어 있었다.

       

        게시판에는 그의 이름이 대표로 올라가 있었고, 프로필도 조금 전 찍은 듯한 사진이었다.

        물론 전부 내가 관리자 계정으로 바꿔놓은 것이었다.

       

        “정말인데?”

        “이거 봐, 저격글도 올라왔어.”

        “아르투르 님이 그런 취향이셨다니…… 설마…….”

        “털? 가, 강아지 인간? 아, 아니다 나는……!”

        “아이디도 맞는데요? 세상에…….”

       “우욱 이런 끔찍한 사진까지……!”

       

        간단한 여론조작을 통해 그가 무너지기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세라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저, 저흰 조용한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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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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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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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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