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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정말로 괜찮은 거 맞나?”

       

       “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싱긋 웃으며 선생님을 진정시켰다.

       

       정말 걱정도 많으셔.

       

       동료를 잃었던 트라우마가 있다는 설정 때문일까?

       

       귀찮아질 정도로 엉겨 붙는 게 이해가 가는 한편, 조금 짜증이 일었다.

       

       

       “제가 조금 충격을 받아서요. 조금,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아, 아아! 물론이지!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라이라에게 동료가 있던 것 같으니까.”

       

       “···동료, 말씀이신가요?”

       

       “그래. 너희의 말대로라면 죽었어야 할 텐데, 시신이 보이지 않아.”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습격의 전조, 같은 느낌으로 만든 스파이였는데.

       

       까먹고 있었네.

       

       적당히 말해둘까.

       

       

       “···위버멘쉬. 그녀가, 자신을 위버멘쉬라고 했던 것 같아요.”

       

       “초인···? 그래, 고맙다. 조사해보도록 하지.”

       

       “네에. 부탁드릴게요.”

       

       “그래. ···푹 쉬어라.”

       

       

       드르륵.

       

       클레어 선생님이 대화를 끝마치고 방에서 나왔다.

       

       자그마치 한 시간이나 걸린 대화의 끝이었다.

       

       

       [으아···. 너무 잔소리가 심해요···.]

       

       “그러게요. 하지만 저런 것도 개성이니까요. 지워버리기는 아까우니, 참는 수밖에 없겠어요.”

       

       

       저런 것도 우리가 당하면 짜증 나지만, 시우가 당하면 소재가 되는 법이다.

       

       어쩔 수 없지.

       

       그냥 몰개성한 소설 속 장치로 전락시키는 것보다야, 귀찮음을 조금 참는 게 낫다.

       

       

       “자, 그럼 선생님도 사라졌으니···다시 가 볼까요!”

       

       

       숨겨놨던 우리 동물 귀 친구를 찾으러.

       

       

       

       ***

       

       

       

       “하아, 하아···.”

       

       “아. 찾았다.”

       

       

       등이 불타는 것 같다.

       

       ···아파, 아파, 아파.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걸까.

       

       고통에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나를 묶어두고 있는 실들은 도무지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기요, 저 좀 봐주실래요?”

       

       

       억울해.

       

       나는 그저 내 재능을 펼치고 싶었을 뿐인데.

       

       내게도 재능이 있다는 걸, 조직에서는 알려줬으니까.

       

       조직에 보답하고 싶었을 뿐이야.

       

       나는, 인정받고 싶었을···!

       

       짜악.

       

       

       “?!”

       

       “아, 이제야 보네. ···안녕하세요?”

       

       

       눈앞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그 여자다.

       

       능글맞게 웃고 있는 모습이 가증스러운 여자. 아르테 이시스.

       

       

       “너, 너···!”

       

       “네에, 저랍니다. 아르테 이시스에요?”

       

       “죽어, 죽어, 죽어어엇!”

       

       

       분노에 몸을 맡겨 아르테에게 달려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희망 사항일 뿐.

       

       내 몸은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나무에 꽁꽁 묶여있을 뿐이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조직의 지령을···!”

       

       “아, 위버멘쉬의 지령이라면 충분히 수행하셨어요. 잘됐네요.”

       

       “···뭐?”

       

       

       잠깐.

       

       ···이 여자가, 조직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나는 조직의 이름을 말한 적이 없는데.

       

       

       “뭐였더라. 아카데미에 경고를 건넬 겸 위버멘쉬의 위상을 전 세계로 알린다, 였나? 나쁘지 않네요.”

       

       “너, 너. 네가 그걸 어떻게···?!”

       

       “우후후. 비밀이에요?”

       

       

       소름이 끼쳐왔다.

       

       나는 어느샌가 아르테에게 달려들기 위해 발악하던 것을 멈추고 홀린 듯이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전부 알고 있었어.

       

       내 지령. 조직의 목표.

       

       ···아마도, 나의 열등감까지.

       

       모두.

       

       

       “걱정 마세요. 제가 선생님께 위버멘쉬라는 조직의 소행이다, 라고 확실하게 전해뒀으니까요. 지령은 완수하셨네요!”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누굴 건드렸는지.

       

       어째서 대련을 할 때, 그렇게 여유로웠는지.

       

       

       “어라. 왜 이렇게 떨고 계신 걸까?”

       

       

       라이라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행동이 아르테 이시스의 손바닥 안에 있었음을.

       

       조직의 환약을 먹은 이후에 급격하게 강해진 것도.

       

       조직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이곳에서 일을 벌이고자 했던 사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 하하···. 죽여.”

       

       “네?”

       

       “나는 네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거지? 빨리 죽여.”

       

       “···잠시만요.”

       

       

       순간의 정적.

       

       풀벌레가 우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백색소음만이 울려 퍼지는 숲 속에서, 사람 간의 대화가 없어지자 분위기가 얼마나 싸늘한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섬뜩함에 라이라의 새로 돋아난 귀가 움찔거렸다.

       

       

       “아이, 작가님. 죽이기에는 조금 아쉽다니까요. 네에, 잘 쓸 방법이 있답니다.”

       

       

       작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호칭인 것 같은데.

       

       그나저나, 나는 어떻게 저렇게까지 떨어진 위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걸까.

       

       ···머리 위에 돋아난 귀의 영향일까?

       

       귀가 네 개가 되어버렸으니, 청력이 민감해졌을 수도.

       

       확실한 건,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뿐.

       

       누군가와 함께 행동하고 있는 걸까.

       

       그 ‘작가님’이라는 사람과 한참을 이야기한 후, 아르테는 내게로 다가와 살며시 쪼그려 앉았다.

       

       

       “다행이네요, 라이라 양. 작가님이 이해해 주셨어요.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네요!”

       

       “아, 안 죽어···? 내가?”

       

       “네에. 살 수 있답니다. 저의 조수가 되어주시면 고맙겠네요!”

       

       

       조수?

       

       무슨 소린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가 안타깝게도 일손이 부족한지라. 항상 도와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거든요. 라이라 양은 육체 능력도 뛰어나니,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거부권은?”

       

       

       그 질문을 듣고, 아주 잠깐이었다.

       

       실눈을 뜨고 있던 아르테가 두 눈을 크게 뜬 찰나의 순간.

       

       라이라의 늑대를 닮은 꼬리와 귀가 쫑긋 솟았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자 라이라의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아, 아냐. 될게. 아니, 되겠습니다.”

       

       “후후. 좋아요, 라이라 양. 현명한 선택이에요.”

       

       

       라이라는 과거의 행동을 후회했다.

       

       고작해야 열등감 하나 때문에.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이런 여자와 함께하게 된다니.

       

       

       “···다만, 한 가지. 예방책을 들어둬야겠네요. 만약 배신이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아르테의 이야기를 들은 라이라는 다시 한번 후회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자신을 때려죽여서라도 말렸으리라.

       

       이제, 그녀는 악마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되었다.

       

       

       

       ***

       

       

       

       [히전죽, 하고 싶었는데···.]

       

       “하아, 말씀드렸잖아요. 저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고.”

       

       [그렇지만, 그렇지만!]

       

       

       작가님의 고집에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작가님은 내가 무슨 초인인 줄 아네.

       

       나도 한계라는 게 있다고.

       

       

       “저에게도 한계라는 게 있어요. 지금이야 혼자서 유시우를 감시하지만, 손발은 필요하다니까요?”

       

       [···으음.]

       

       “게다가, 작가님에게도 사소한 일은 다른 엑스트라가 처리하고 저는 유시우 곁에서 감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그런가?]

       

       “이번 일 같은 경우도, 부하가 한 명 있었으면 제가 USB를 가져가기 위해 사전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구요. 그냥 부하한테 시키면 그만이니까.”

       

       

       내 몸은 하나다.

       

       작가님은 대부분의 경우 나와 함께 이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이고.

       

       그렇기에 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유시우의 주변에 있는 게 좋다.

       

       그런데 나 대신 잡일을 해줄 사람이 없으면, 사소한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움직여야 한다고.

       

       만약 그러다가 유시우랑 히로인이랑 데이트 약속을 잡는 장면이라도 놓친다?

       

       그날부로 작가님의 히끅거리는 소리를 한참 들어야 할걸.

       

       그런 건 사양이었다.

       

       

       “작가님의 걱정이었던 배신도 틀어막았으니까, 이제 납득해 주세요.”

       

       

       손에 쥔 버튼을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네모난 플라스틱 사이에 있는 붉은 버튼 하나.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물건.

       

       기폭장치다.

       

       

       “목숨을 담보로 잡혔는데 허튼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요?”

       

       [그, 그런가. ···알겠어요! 헤, 그러면 USB! 빨리 영상 틀어주세요! 유시우 군의 활약이 보고 싶으니까!]

       

       “좋아요.”

       

       

       뭐, 사실 진짜 폭탄은 아니지만.

       

       설령 반항한다고 해도 죽지는 않을 거다. 죽지는.

       

       라이라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는, 폭탄 대신 내 실이 들어있으니까.

       

       이 기폭장치처럼 보이는 것도 그저 눈속임.

       

       목걸이를 벗거나 배신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서걱. 하고.

       

       실이 날뛰며 주변의 물건들을 베어내겠지.

       

       팔 한 짝 정도는 날아가지 않을까?

       

       

       “···쯧.”

       

       

       라이라의 팔 한 짝을 날려보내는 상상을 했더니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왜 이렇게 신경 쓰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죽이면 그만인데.

       

       물론 손발이 되어줄 부하가 필요한 건 맞았다.

       

       하지만 작가님이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살려서 부하로 쓸 필요까지는 없었어.

       

       고작해야 히로인 후보였을 뿐인 빌런 소녀를 살릴 이유는 더욱 없었고.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건 아니야.

       

       이미 이곳에 들어온 첫날,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으니까.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 일어났던 사고.

       

       내 몸을 보고 꼬시려 들던 양아치들에게 울컥했던 사이에 벌어진 참사.

       

       그 때는 시체를 보고도 이상할 정도로 무덤덤했다.

       

       아니, 어쩌면 현실감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작가님이 태연하게 널브러진 시체를 순식간에 처리해서 더욱 현실감이 없었지.

       

       

       [···? 독자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디 보자···. 아, 여깄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왔던 학생을 빌런으로 만들었기에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변덕이었을까?

       

       ···알 게 뭐야. 생각하니까 머리만 아파지네.

       

       쉽게쉽게 생각하자고.

       

       그냥 살리고 싶어서 살렸다. 그거면 되는 거 아닐까.

       

       

       “자, 그럼 영상을···.”

       

       [···어?]

       

       

       뭐야.

       

       ···동영상 어디 갔어?

       

       

       “도, 동영상이···. 어디 갔지?”

       

       

       USB의 폴더들을 하나하나 뒤져보기 시작했다.

       

       동영상이, 보이지 않았다.

       

       서, 설마···.

       

       

       “차, 찾았···?!”

       

       

       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동영상이 있긴 있었다.

       

       정전 설정으로 사라진 분량을 제외한 나머지 동영상이.

       

       

       “서, 설정을 잘못 짰네요···?”

       

       

       정전이 아니라 다른 이유를 붙였어야 했는데.

       

       이미 세계에 사유가 정전으로 기록되어버려서, 가지고 있던 영상들도 모두 정전 탓에 찍히지 않은 걸로 처리되어버린 걸까.

       

       내 실수였다.

       

       

       [미, 믿었는데.]

       

       “작가님, 지, 진정···.”

       

       [독자님 믿었는데에에에에에!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앙!]

       

       

       미치겠네.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이걸.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머리가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그때의 행동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역시 부하를 더 일찍 구했어야 했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퍼리가 되기 전에 멈춰서 그냥 동물귀 미소녀가 된건데

    퍼리라고 받아들이신 분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다들 그런 취향들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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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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