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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

       “역시 이스메라 교수님! 고결한 외모만큼이나 어쩜 생각하시는 바도 그리 빛이 나시는 겁니까. 엘프란 과연!”

       “아니… 제,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결국 이스메라 교수가 말을 더듬으며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모르는 척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럼 다른 더 깊은 뜻이 있으신 겁니까?”

       “에…? 아, 그게… 아뇨…. 그러니까….”

       

       쩔쩔매는 이스메라를 보며 키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속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엘프들은 자기들을 고귀한 종족이라 여기기에 남에게 절대 함부로 무례한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선민의식 또한 굉장히 강해서 다른 종족을 하등하게 보지.

       때문에 엘프와 대화할 때는 항상 주의를 요한다. 겉으로는 좋게 들리지만 그 말 속에는 저열한 것에 대한 음습한 경멸이 숨어 있다.

       

       저런 사람을 대할 때는 눈치없는 척하는 게 최고다.

       비틀고 꼬아서 말하는 것에 눈 동그랗게 뜨고 듣는 그대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 

       

       웃긴 건 나야 의도적으로 못 알아먹는 척을 했지만 키르린 교장은 진짜로 몰라서 그런 것 같다는 것.

       본래 다크엘프들도 음습함에 있어서는 엘프 못지 않은데 키르린은 정말 다크엘프답지가 않다. 귀여워.

       

       여튼 이스메라는 교장실에 들어온 내내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을 테지.

       그래도 엘프는 엘프. 끝까지 본색을 드러내지는 않는군.

       

       그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까?

       저렇게 제딴에는 웃으며 돌려까기를 시전해 봐야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음부터는 개수작부리지 않겠지.

       

       “여튼, 저 인간 디안은 엘프라는 종족에 대해 다시 한번 경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외모와 내면 모두 아름다운 존재가 여기 아카데미에 계시다니 크나큰 영광입니다.”

       “그… 어… 네, 감사합니다….”

       

       뭐라고 말을 하려던 이스메라는 입만 뻥긋거리다가 내 시선을 회피하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런 이스메라를 보는 키르린의 눈은 놀라움으로 커져 있었다.

       당황하는 엘프는 처음이겠지. 내게는 허당 다크엘프가 처음인 것처럼.

       

       “그럼 계속 보고서를 작성할까요?”

       “아, 맞다.”

       

       멍하니 있던 키르린이 허둥지둥 펜을 쥐었고 나는 전투학과 관련 보고를 계속했다.

       

       “그리고 신성사제를 교단에서 파견해 줘서 의무소의 역량을 강화했고 이 덕분에 보다 과감한 실전훈련이 가능해졌습니다.”

       “으응…. 또…?”

       “장기간 미사용한 야외훈련장들은 정비계획은 모두 수립했고 1개월 내로 모두 원상복구시킬 겁니다.”

       “으응…. 그리고…?”

       “커리큘럼에 심화과정을 넣었어요. 여기에 필요한 특화 전문가들이 있는데, 이건 현역들 중에 몇 명을 섭외할 생각입니다.”

       “으응…. 전문가 섭외….”

       

       시선을 보고서에 고정한 채 펜을 놀리면서 키르린은 계속 ‘으응…’이라고 웅얼거리면서 대답해 준다. 상당히 귀엽네, 저거….

       

       힐끔 보니 역시나 이스메라는 키르린이 ‘으응…’이라고 할 때마다 역겹다는 듯 미간에 주름을 만들다가 나를 보고는 황급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예산을 좀 더 편성해 달라고 해주세요. 실습에 필요한 무장하고 마구나 기타 등등 살 게 많습니다.”

       “그건 황성에 얘기하지 않아도 돼. 우리도 예산 많아.”

       

       키르린이 제법 자신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키르린이 시즌 n번째 읍소를 하면서 내게 예산을 많이 쌓아뒀으니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했었지.

       대체 얼마나 아끼고 모았길래 계속 저러는 거야?

       

       “얼마나 됩니까?”

       “부족하지 않은 만큼은 있어.”

       

       흐음, 그렇다 이거지….

       

       “그렇게 돈이 썩어 넘치면, 교장님. 우리 사업 하나 하죠.”

       “사업이라니?”

       “아카데미에 상점가를 만드는 겁니다.”

       “상점가?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일전에 생각한 것이 있다.

       우리 아카데미는 어지간한 마을 하나는 통째로 들어가는 규모에 온갖 시설이 들어찼고 수많은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다.

       아카데미생에 교직원에 시설관리인력에 경비병력에 거기 딸린 가족들까지.

       

       보통 이 정도 크기의 현생 대학이라면 프랜차이즈들이 여럿 입점하기 마련인데 여기는 그런 게 전혀 없단 말이지.

       기껏해야 아카데미에서 직영하는 매점 등이 있기는 한데 그건 아카데미생들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그래서 교직원들은 장이라도 보려면 마차를 타고 아카데미 정문을 지나 도심지로 나가야 하는 굉장히 번거로운 상황이다.

       나도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올리시아에게 일일이 부탁하는 것도 좀 부담스럽고.

       

       “그러니 안 쓰는 건물을 빼서 거기에 민간업장을 넣는 거죠. 식당, 빵집, 미용실, 가게, 목욕탕 등등. 거기서 아카데미에서는 임대료와 일정 수수료를 받는 겁니다. 매년 평가를 해서 품질이 안 좋은 사람들은 쫓아내고 새로 받고요.”

       “어머나, 그거 정말 참신한 발상이군요.”

       

       여전히 키르린이 어리둥절하는 가운데 이스메라가 입을 열었다.

       

       “우리 전투수석교수님께서는 경영 쪽으로도 굉장히 해박하시네요. 사업을 하신다면 대성하시겠… 어요….”

       

       웃으며 쳐다보니 이스메라가 흠칫하며 시선을 피한다.

       

       어줍잖은 돈놀음하지 말고 교수면 교수답게 처신하라 이거지. 

       역시 사람은 제 버릇은 절대 남 못 준다고. 아까 당해놓고도 또 저러네, 쯧쯧.

       

       “여튼 어떻습니까, 교장님. 제 생각이? 누구 하나 손해보는 거 없잖아요. 그렇죠?”

       “나쁘지는 않은 생각인데…. 이게 사실 교육훈련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라서 황성에서 혹시나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왜 관계가 없어요? 학생들 복리후생 차원인데?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아야 성적도 오르는 겁니다.”

       “스읍, 그래….”

       “정 쫄리면 거기 옆에다 써주세요. 발의자 디안. 이렇게요.”

       “네 이름을 쓰라고? 그건 안 돼!”

       

       키르린이 소리쳤다.

       

       “그러다 안보실장님 눈밖에 나면 어쩌려고!”

       “그럼 교장님께서 눈밖에 나실래요?”

       “히익!”

       “어서 쓰세요. 여기 불편해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만약에 상점가 못 만들면 저 그만둘 겁니다.”

       

       그러자 키르린이 서둘러 내 이름을 써넣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대놓고 웃었고 이스메라는 몰래 오만상을 찡그리고.

       

       이후 이스메라가 이론학과 관련내용들을 보고했고 키르린은 모든 것을 받아 적어 보고서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으응, 이건 됐고… 이것도 이상없고…. 다 이상없네.”

       

       펜으로 하나하나 항목을 짚으며 오탈자와 누락된 것들을 확인한 키르린이 비로소 빙긋 웃었다.

       

       “이제 다 됐어. 두 사람 수고했어.”

       

       이제서야 알았는데, 키르린의 미소가 은근히 귀엽다. 다크엘프에게 귀엽다는 표현이 어울리다니, 정말 웃길 노릇이네.

       

       

       # # # # #

       

       

       회의가 끝나고 교장실을 나온 이스메라는 디안 교수에게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디안 교수님. 아카데미의 발전을 위해 희생하시는 모습 매우 감명 깊었습니다.(뭐? 발의자 이름을 너로 쓰라고? 혼자 북치고 나팔불고 깝치네)”

       “별말씀을요.(응 어쩌라고) 그나저나 웨이버 교수한테는 꼭 교수님한테 드릴 육포를 해주라 부탁을 해두겠습니다. 정말 맛있어요. 제가 아까 드린 육포, 안 버리셨죠?(돌아서자마자 버릴 거 다 안다, 깐프년아)”

       

       교수실에 가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릴 생각이었던 이스메라는 뜨끔하며 로브 주머니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 잘 보관하고 있답니다.(XX야) 그런데 디안 교수님.”

       

       이스메라가 양손에 들고 있는 봉지를 들어 보였다. 이것은 아까 키르린이 행정실장에게 말했던, 이스메라 주라고 챙겨둔 찻잎봉지다.

       

       “혹시 차를 즐기는 취미는 없으신지요?(이딴 거지 같은 거 절대 먹을 생각 없으니 너나 처먹어)”

       “하하, 저 같은 놈이 무슨. 그건 교장님께서 이스메라 교수님께 특별히 주신 것이니 혼자 여유롭게 드십시오.(개수작 ㄴㄴ)”

       

       디안 교수가 정중하게 봉지를 밀어내자 이스메라는 어쩔 수 없이 봉지를 안아 들며 기품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제 교수실에서 차라도 한잔 하시지요.(이거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라는 뜻인 거 알지?)”

       “예? 정말입니까?(어쭈, 이것 봐라) 저야 좋죠. 꼭 한번 들르도록 하겠습니다.(예의상 하는 말 아니고 진짜다. 각오해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설마 오겠냐)”

       

       디안 교수와 헤어진 이스메라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멀어지는 디안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원래 이스메라의 주요표적은 키르린이었고 디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정기보고서 작성회의를 통해 디안은 이스메라의 새로운 주요표적으로 급부상했다.

       

       우연히 얻은 인맥으로 아카데미에 들어온 주제에 뭐라고 되는 것마냥 이것저것 간섭하고 손을 대는 게 참을 수 없을 만큼 아니꼽다.

       게다가 자신의 말을 하나도 알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른 소리를 하는 게 답답해 미칠 지경.

       정말로… 정말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

       

       본청을 나온 이스메라는 무표정하게 걸으며 주머니의 육포를 꺼내 화단에 던져 버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그래, 안녕. 오늘 날씨가 참 좋구나.”

       

       막 찻잎 봉지도 찢던 이스메라는 자신에게 인사하는 학생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이건 아무래도 흩날리는 게 많아서 함부로 버리지는 못하겠고, 일단은 교수실로 가져가자.

       

       반쯤 찢은 봉지를 꽈악 움켜쥔 채 이스메라는 분노에 가득한 발걸음을 옮겼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항상 고생이 많으십니다. 호호.”

       

       뭐? 아카데미 내부에 상점가를 만든다고? 애초에 교수가 될 그릇이 못되는 인간이 교수가 되더니 말세야.

       학생들 가르치는 데에 온신경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장사치들 상대로 자릿세를 받아먹겠다 이거야? 미친 거지.

       

       아마 황성에서 불같이 화를 내면서 그 미친 제안을 발의한 자를 문책하라고 호령할 것이다. 더불어 책임자인 교장까지도.

       

       제딴에는 대단한 거라 생각해 혼자 모든 치하를 독차지하려고 발의자 이름까지 쓰라고 했겠지만 그게 화근이 되어 돌아올 거라 내다볼 머리까지는 없는 모양이다.

       멍청한 검둥이년은 좋다고 헤죽헤죽하며 동반으로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줄도 모르고 있고.

       이 기회에 둘 다 사라져 버렸으면.

       

       그리고 며칠 뒤, 이스메라는 기절초풍할 소식을 듣게 된다.

       황성에서 해당 제안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사업추진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

       

       뭐지…? 진짜 뭐지, 이거…?

       

       저번 공작 방문 사건 때도 그렇고 왜 자꾸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대체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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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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