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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

        “산세가 험하구나.”

        ​

        “그래도 화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오.”

        ​

        “무당산에 비해서도…”

        ​

        생각해보면 구파일방은 산 타는 거에 익숙하겠네.

        ​

        문파들이 어지간하면 산 위에 있으니. 

        ​

        나는 노인네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를 한 귀로 흘리며 열심히 거친 산맥을 등반했다. 다행스럽게도 날씨 자체는 화창했기에 우리는 별문제 없이 산을 오를 수 있었다.

        ​

        그렇게 꼭대기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풍경을 감상하다 곧장 산 아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

        “산이 반이구나.”

        ​

        “딱히 뭐 보이는 건 없어 보이는 구려.”

        ​

        역시 좀 더 들어가야 야영지를 찾을 수 있는 건가. 어차피 파르스의 주력은 마인들과 맘루크니 야영지 거리가 다소 멀어도 상관없겠지. 

        ​

        말을 타면 성채까지 도달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테니. 

        ​

        “은공,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

        “산맥을 따라 안 쪽까지 들어가야지. 가능하면 오늘 안에 흔적을 찾는 게 목표야.”

        ​

        정찰은 빠르고 신속해야 한다. 

        ​

        정찰이 오래 늘어질수록 들킬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

        여기 있는 사람들이 죄다 무림인이라 흔적을 지우는 거에 나름 익숙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예 흔적이 남지 않을 수는 없으니. 

        ​

        “오늘 안이라…아무리 그래도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

        ​

        “희망사항에 가깝기는 합니다.”

        ​

        무림인이 인간을 반쯤 초월해 있다고는 하지만 온종일 산을 타고 이동하며 주변을 수색하는 건 어려운 일. 나도 정말로 오늘 안에 야영지를 찾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단지 목표를 높게 잡아야 좀 더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뿐.

        ​

        우리는 산맥을 타고 점점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여기서 야영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적당히 안쪽이 파여 있는 봉우리.

        ​

        이 정도면 불을 피워도 멀리서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터.

        ​

        나는 재빠르게 모아온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 작은 모닥불을 만들어냈다. 내가 모닥불을 만들자 노고수들은 옹기종기 모여 벽곡단을 꺼냈다.

        ​

        “벽곡단을 보니 한창 수련할 때가 떠오르는구려.”

        ​

        “질리도록 먹었지.”

        ​

        “다시 생각해도 못 할 짓이야.”

        ​

        노고수들은 벽곡단에 대한 감상을 내뱉으며 천천히 지긋지긋한 구슬을 먹어 치웠다. 나도 그들을 따라 벽곡단에 입을 대니 살짝 달콤하지만 끔찍하게 퍽퍽한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

        아까도 먹었지만 도저히 적응이 안 되네.

        ​

        이걸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먹어 치우는 건 어떻게 해야 가능한 거지?

        ​

        나는 익숙한 모습으로 벽곡단을 먹어 치우는 노고수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벽곡단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

        먹기 힘들다고 주린 배를 채우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

        무림 고수라도 허기 앞에서는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았으니.

        ​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나는 불을 조절해 아래에서 불이 잘 보이지 않게 만들고 쉬고 있던 노고수들을 불러 모았다.

        ​

        “혹시 오늘 낮에 뭔가 위화감 같은 게 느껴지신 게 없었습니까?”

        ​

        “이 노부가 본 바로는 그런 건 없었다네.”

        ​

        가장 먼저 대답해준 것은 이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많은 당운규 장로였다. 그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품에서 야구공만 한 구슬을 꺼내고는 이리저리 만지는 중이었다.

        ​

        “그건…”

        ​

        “당가에서 만든 도구일세. 폭침뢰라고 이름 붙였지. 구슬이 충격을 받으면 사방으로 독이 발라진 침이 발사된다네.”

        ​

        참 살벌한 무기일세.

        ​

        하지만 우리한테는 정말 중요한 물건이기도 하고.

        ​

        우린 10명밖에 안 되니, 대량 살상이 가능한 도구가 큰 도움이 되는 상황이니까.

        ​

        “살벌한 물건이군요.”

        ​

        “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이지.”

        ​

        당운규장로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처럼 오러아머를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독이 발린 침을 대량 발사하는 폭침뢰는 강력한 도구가 되리라.

        ​

        물론 고수에게는 통하지 않겠지만.

        ​

        “혹시 몇 개 나 가지고 계십니까?”

        ​

        “세 개밖에 없다네.”

        ​

        “적재적소에 쓸 만큼은 있군요.”

        ​

        그 정도면 충분하지. 뭐 우리가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정찰하러 온 거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검을 꺼내 손질하기 시작했다.

        ​

        “서역의 검은 참 길군.”

       

        “제가 커서 그렇습니다. 보통은 이것보다는 짧지요.”

        ​

        “하긴, 색목인들이 다 자네 같은 거인이었다면 난리가 났을걸세.”

        ​

        적당히 잡담을 나누며 모포를 폈다. 

        ​

        우리 같은 고수들이야 이런 모포 따위 없어도 감기에 걸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맨몸으로 자기엔 찝찝했으니 임시 야영지는 순식간에 모포 펼치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

        “이보게 위 소협. 내일은 어떡할겐가?”

        ​

        “적어도 내일까지는 계속 이 정도 속도로 산을 탈 생각입니다. 아래로 내려가서 수색해보는 것도 방법이지만, 역시 위에서 보는 게 더 잘 보이지 않겠습니까.”

        ​

        “알았네. 그럼 일찍 잠들어야겠군.”

        ​

        “못해도 해가 뜨기 전에는 일어나야 하니 말일세.”

        ​

        “예.”

        ​

        “불침번은 어떻게 하겠나?”

        ​

        “저부터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

        “한 시진으로 잡으면 얼추 다섯 정도면 되겠구먼.”

        ​

        “한 명만 세울 겐가?”

        ​

        “두 명씩 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

        “그렇게 합세. 혼자 시간을 죽이기엔 적적하니.”

        ​

        “그럼 저는 목경이와 같이 먼저 불침번을 서겠습니다. 어르신들, 잘 주무십시오.”

        ​

        “허허, 좋은 시간 보내거라.”

       

        짓궂은 소리 하시기는.

        ​

        노고수들은 다들 담요를 덮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나와 목경이는 불 앞에 앉아 조용히 불꽃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노고수들의 숨소리가 들려올 때쯤, 목경이가 입을 열었다.

        ​

        “은공…”

        ​

        “왜?”

        ​

        “은공은 떨리지 않으십니까?”

        ​

        “…떨리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

        전쟁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

        ​

        전쟁이 익숙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으로서 무언가 망가졌다는 뜻이니까.

        ​

        적어도 나는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

        전쟁터에서 망가진 인간의 말로가 어떤지 수를 세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보았기에.

        ​

        “…저는 무섭습니다. 기껏 얻은 약간의 행복조차 잃어버릴까 봐.”

        ​

        팔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

        곧이어 따스한 감촉이 내 팔을 감쌌다. 

        ​

        “빼앗는 것보다는 지키는 게 더 어려운 법이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예전처럼 아무런 의미 없이 모든 걸 뺏길 생각은 없으니.”

        ​

        전보다도 더 많은 병사와 물자, 그리고 고수들.

        ​

        수많은 요소들이 내게 미소를 지어주는 전쟁.

        ​

        맘루크라는 만만치 않은 위협이 존재하더라도, 이 정도라면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으리라.

        ​

        이번 정찰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훨씬 쉬워질 테고.

        ​

        “은공…”

        ​

        우리는 말 없이 불꽃을 바라보았다.

        ​

        ————————–

        ​

        “압둘. 선택하거라. 앞면이냐, 뒷면이냐?”

        ​

        “…뒷면으로 하겠습니다.”

        ​

        압둘의 말에, 파르스의 엄지 위에 올려저 있던 1디나르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청명한 소리를 내며 솟아오른 동전은 어지러울 정도로 회전하더니, 이내 그의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

        “앞면이로군.”

        ​

        중요한 일할 때마다 튕기던 낡은 동전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파르스는 동전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야영지 건설이 거의 끝났으니, 이제는 슬슬 움직일 시간이었다.

        ​

        “그럼 예정하신 대로 마인들을 산맥 위로 올려보내겠습니다.”

        ​

        “그렇게 하거라. 그리고 사대마인은 흩어놓지 말고 붙여놓도록.”

        ​

        “예.”

        ​

        압둘이 떠나가자, 그는 서장의 대략적인 지형이 그려진 조잡한 지도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

        ‘마교의 정보망이 끊어진 게 아쉽군.’

        ​

        그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마교를 무너트리고, 정복하는 동안 끊어져 버린 중원 내부의 끈이 아쉬웠다. 그 끈이 살아있었다면 뒷공작을 하든, 아니면 얻어낸 정보들로 더 수월하게 작전을 짤 수 있었을 테니까.

        ​

        ‘허나, 정보를 얻을 방법은 많다.’

        ​

        가장 쉽고 편한 수단이 사라진 것이지, 아예 방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

        그가 정찰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정찰대를 잡으려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

        ‘정찰대원을 사로잡기만 해도 써먹을 곳은 많으니.’

        ​

        그는 마교를 정복한 후 보았던 마교의 기술들을 이용해 충분한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상대에게서 있는 정보 없는 정보를 전부 빼둘 수 있는 극악한 마공들을.

        ​

        ‘이지를 제압해 꼭두각시로 만드는 마공이라.’

        ​

        마공은 그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무기였다. 물론 그는 마공을 배울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

        사막의 후예이자 알라의 대행자인 그가 알라의 가르침에 반하는 아츠를 익힐 필요는 없었으니까. 다른 맘루크들도 그와 마찬가지였으니, 마인들만이 그들의 목표를 위한 희생양이 되어주리라.

        ​

        “이제부터 시작이로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 내가 더 유리하네 ㅋㅋㅋㅋㅋ 이거 꽁승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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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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