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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확실히, 아무리 영지가 바로 옆에 붙어있다고 하더라도 과거를 생각하면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겠죠.”

        

       “네…….”

        

       내 분석에 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축 늘어졌다.

        

       벨부르 자체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벨부르 음식을 잔뜩 먹고 싶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 후자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굳이 그걸 말로 하지 않을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너무 걱정하실 것은 없어요.”

        

       학생회실로 들어오며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샤를로트가 비어있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국경지대에서는 크로우필드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겠지만, 우리가 갈 곳은 왕도 루테티아니까요. 그곳에 드나드는 귀족들은 크로우필드라는 이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요.”

        

       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척’하는 것이거나.

        

       당연한 일이다. 크로우필드 백작 부인이라면 모를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거나 다름없는 딸을 비난해봐야 얻을 것도 없다.

        

       아니 그보다, 신사답지 못하다고 까이기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귀족들이 보통 여자를 상대해야 할 일이 있으면 부인이나 딸을 통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나나 앨리스가 정말 엄청나게 특이한 경우지.

        

       “그럴까요?”

        

       샤를로트의 말에 미아가 조금은 기운이 나는 표정을 했다.

        

       민족주의가 싹을 틔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꽃봉오리를 피운 것은 아니다. 아직은 지식인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을 뿐이고, 사실 그 귀족들 사이에서도 왕족이나 황족을 제외하면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고 할 수는 없는 사상이었다.

        

       중세 봉건주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나라들은 많으니까. ‘같은 벨부르인’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불과 수십 년 전에 영지끼리 군대를 동원해 실력행사를 하던 사람들끼리 갑자기 같은 민족이랍시고 손을 잡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미아는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요. 접대의 관습은 어느 나라에서나 지켜지는 법이니까요. 미아 당신이 우리나라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할게요. 당신뿐만이 아니라 방문하는 제국 학생들 모두.”

        

       샤를로트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뭐, 본인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물론 나도 나대로 준비는 해가겠지만.

        

       그동안 준비해둔 병기들은 모두 우리가 탈 기차에 실려서 갈 예정이었다.

        

       내가 벨부르를 털 일은 없지만, 그 벨부르에 있는 성당 기사들을 털어서 알아볼 정보들은 산더미만큼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샤를로트 얼굴을 보면 죄책감이 들 것 같으니, 샤를로트 얼굴 보기 전에 시간을 얼른 돌리도록 할까.

        

       미아와 마주 보며 웃는 샤를로트를 보면서 나는 그런 불온한 생각을 했다.

        

       *

        

       지난번 방문 때도 느꼈지만 아제르나 제국과 벨부르 왕국은 정말 가까운 곳에 있었다. 중간에 바다나 호수가 가로막고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기차를 타고 가면 될 정도니까.

        

       생각해보면 이렇게 사이가 나쁜 두 나라 사이에 서로 완벽하게 호환되는 기찻길이 연결되어있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긴 하다.

        

       제국을 극도로 경계하는 벨부르조차 제국의 무기나 철강 기술이 아니라면 딱히 대안이 없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광경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아무리 벨부르에 제국의 기술력이 깊게 침투하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샤를로트가 말했던 것처럼 문화를 완전히 깔아뭉개버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를 들어서, 벨부르의 음악 수준이라던가.

        

       “우와…….”

        

       그런 중얼거림은 누가 내뱉은 것일까.

        

       우리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들은 것이 바로 벨부르의 환영 인사였다.

        

       오케스트라 수준은 아니더라도, 벨부르가 자랑하는 온갖 악기들과 그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가들이 줄지어 서서는 우리를 위한 환영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이 음악은 지난번에 도착했을 때도 들어서 알고 있다. 벨부르 국가였다.

        

       벨부르에서 아주 잘 나가는 음악가가 지어준 국가라고 했던가. 다소 고루한 부분이 있던 내 세계의 ‘국가’들에 비해서 세련된 내용의 음악이었다. 프랑스를 모티브로 한 국가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 이후의 프랑스가 배경은 아니었기에 노래 내용이 그렇게 살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은 작게 잘린 색종이였다. 린드버러에서 보았던 것처럼 대단히 높은 건물은 아니었지만, 4층 정도 되는 건물 위에서 시민들이 우리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며 색색의 색종이를 뿌리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축제 분위기가 우리가 도착했기에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게 샤를로트의 아이디어라고 알고 있는 나조차도 마음이 조금 들뜰 정도였다.

        

       제도와는 다른 푸른 하늘. 매캐하지 않은 상쾌한 공기.

        

       솔직히 샤를로트가 왜 자기 나라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잘 알 것 같긴 했다.

        

       “어서 오십시오.”

        

       기차에서 줄지어 내리는 우리 앞에 서있는 사람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노신사였다.

        

       “아제르나 황립 론다리움 아카데미의 학생분들의 루테티아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정확한 신분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며 정중하게 인사해 보이는 노인의 몸에서는 기품이 묻어나오다 못해 뚝뚝 흘러내릴 정도였다.

        

       당연히, 그 사람의 안내를 받는 학생들의 표정은 더욱 밝아졌다.

        

       *

        

       “후우…….”

        

       방 안으로 들어온 앨리스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초대받아서 온 것은 나름대로 좋은 일이었지만, 그 학생들의 대표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앨리스였다.

        

       신분도 신분이었고,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쭉 수석을 유지하고 있는 성적 덕분에 앨리스는 이럴 때마다 언제나 학생 대표로 서곤 했다.

        

       다른 학년까지 함께 했다면 당연히 학생회장이 대표였겠지만.

        

       “힘드십니까?”

        

       앨리스가 신발을 벗는 동시에 침대 위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 그렇게 물어보자,

        

       “왜? 내가 힘들다고 하면 대신 나서주기라도 하게?”

        

       앨리스는 침대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웅얼 그렇게 대답했다.

        

       “아뇨, 그저 다음 일정으로 벨부르 국왕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진짜로 네가 대신 해주면 안 돼? 너는 국왕 폐하랑 면식도 있잖아.”

        

       음…….

        

       글쎄, 마지막 만남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끝나지는 않았는데.

        

       친한 친구인 샤를로트의 아버지였기 때문인지 앨리스는 국왕 ‘폐하’라는 호칭을 썼지만, 나는 이전에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국왕 ‘전하’라는 호칭을 썼다.

        

       제국 내에서 나의 호칭은 황녀 ‘전하’였다. 그러니 나는 지난번 만남에서 이 나라의 왕을 나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며 말했다는 것이다.

        

       아마 진짜로 만나게 되면 어마어마하게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솔직히 샤를로트가 첫 만남 때 나한테 대놓고 적개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 대단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그 순간으로 시간을 돌릴 수도 없잖아. 중간에 가면녀도 끼어있으니 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엄청나게 개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기껏 돌리고 나서 한 몇 개월씩 기절해있을 수도 있고.

        

       “…….”

        

       잠깐 딴생각을 하며 대답하지 않고 있으려니, 앨리스가 고개만 들어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눈을 치켜뜨고 턱을 침대에 댄 채 나를 보다가 자세가 조금 불편했는지 팔로 상체를 조금 들고는 앨리스가 말했다.

        

       “뭔가 엄청나게 켕기는 게 있는 것 같은 표정이네.”

        

       음…….

        

       이걸 대답을 해야 하나?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미리 말하기로 했다. 그래, 앨리스도 곧 있으면 벨부르 국왕을 만나야 하니 미리 알고 있는 쪽이 낫겠지.

        

       *

        

       그리고 그 결과, 앨리스를 일어나게 하는 것에 성공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쪽을 보면서 앨리스는 입을 살짝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 할 말을 찾지 못하고는 방 안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내 쪽을 다시 봤다가, 이마를 짚었다가 머리를 쓸어내리며 한숨을 푹 쉬고, 또 입을 열었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던 거야!?”

        

       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

        

       어…….

        

       솔직히 말해야 하나?

        

       그런 자리에 대책 없이 나를 보낸 황제에 대한 반항심과, 그냥 싫어하는 법국을 엿먹이고 싶은 마음이 섞인 결과라고?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는 말 못하지.

        

       아무리 내가 앨리스한테 터놓고 지내는 게 많아도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최선—”

        

       뭔가 말을 하려다가, 앨리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 표정을 짧게 표현하자면 ‘말을 말자’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사과드리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겠지?”

        

       “만약 이제 와서 사과드린다면 그건 그거대로 도발이겠죠.”

        

       “…….”

        

       앨리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가, 이내 다시 침대에 뛰어들었다. 이제 보니 신발 다시 신는 것도 잊어버리고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네.

        

       “아~ 난 몰라. 그냥 네가 가. 네가 한 일이니까 네가 수습해야지.”

        

       “죄송합니다만, 제국의 정당한 후계자는 황녀님 한 분뿐입니다.”

        

       “…….”

        

       내가 딱 잘라 대답하자, 앨리스는 다시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

        

       도망갈까?

        

       앨리스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내 쪽을 보지도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침대에 늘어진 그 등에서 불온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살기라는 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그리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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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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