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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악신쨩 실종 사건에 대해 알게 된 직후, 유나는 시험지 들킨 어린애처럼 어쩔 줄 모르고 바둥거리며 미안해했다.

       

       “미안, 미안해⋯⋯ 그때 너무 급해서 안 챙긴 줄 몰랐어⋯⋯!!”

       

       “아뇨, 관리 감독을 제가 하니까⋯⋯ 여태 눈치 못 챈 게 잘못이죠. 그래도 안 늦⋯⋯ 늦⋯⋯ 늦긴 했는데.”

       

       “으아앙!”

       

       2주나 유기했으면 한참 늦었지.

       

       우리 둘 다 경황이 없었다. 쓰러진 유리 생각하느라 일주일 날리고, 이후에는 유나의 싫어난사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잊혔다고 해야 하나.

       

       안전장치는 이것저것 걸어두었다지만, 썩어도 ‘그것’의 파편이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수단으로 마법같이 목줄을 벗어던질 수도 있다.

       

       그 순간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크툴루 시즌 2가 터지는 거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나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아카데미 지하의 마법진 위에 앉았다.

       

       알뜰하게 골수까지 뽑아먹고 있는 그 감정 증폭 마법진 맞다.

       

       『긴고아』의 위치부터 추적하자. 아카데미로부터 특수한 마력 파장을 증폭시켜 방출할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물은 자연스럽게 통과하지만.

       

       『긴고아』와 만나면 내부 트리거를 작동, 목줄로 하여금 현재 위치와 상태를 발신하도록 시킨다. 이터널 다크가 제국 내부에 있다면 이걸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벌써 제국 국경선을 넘어 망명했거나, 『긴고아』를 풀어서 어느 풀숲에 집어 던진 상태라고 하면⋯⋯ 장기 출장 각이 선다. 녀석을 잡기 위해서 세계 대장정을 떠나야 하겠지.

       

       녀석의 악성은 내가 받아들인 악성과 기원이 같다. 그러니까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잘 안다. ‘그것’의 악의에는 딜레이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악행을 저지르고 – 만족하고 – 휴식하는 사이클이 돌지 않는다. 희열을 느끼더라도 배가 부르는 법이 없다. 좀 더, 좀 더⋯⋯ 하고, 끊임없이 악의를 퍼트린다.

       

       모든 삶의 목적을 못된 짓에 꼴아박은 바이러스 같은 느낌이다.

       

       나로부터 기인한 존재라면 책임 또한 나에게 있다. 잡아야지.

       

       유나도 양심이 쿡쿡 찔렸는지, 죄책감으로 찌들찌들한 표정으로 내 탐색을 보조하고 있었다. 

       

       “신호 주면 증폭할게!”

       

       “셋 세고 시작할게요. 하나, 셋.”

       

       “으엣, 잇, 카운트 이상하게 세지 마⋯⋯!!”

       

       ────!!

       

       귀가 아니라 피부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수에서 파문이 퍼져나가듯이,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마력 파장이 쫘악 퍼진다. 마법은 성공적으로 발동했다.

       

       이제 『긴고아』로부터 답신이 돌아오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다.

       

       30분 정도 긴장 속에서 기다렸다. 이대로 대기 시간이 2시간을 넘어가면 ‘국경 밖’이라는 뜻이다. 나는 다리를 떨었고, 유나는 손톱을 앙앙 물어뜯으려는 걸 내가 말렸다.

       

       그리고, 반향이 왔다. 나와 유나는 벌떡 일어나서 마법진에 달려들었다.

       

       “분석! 분석!”

       

       “위치부터 할까, 상태부터 할까?!”

       

       “상태부터 봐줘요. 내가 위치 깔 테니까!”

       

       암호화된 정보를 유나는 분석기에 넣고 돌리고, 나는 암산으로 그냥 벗겼다. 그리고 그 결과.

       

       “⋯⋯? 뭐야, 이 새끼 왜 아카데미로 돌아오고 있어.”

       

       찍힌 이동경로가 이상하다.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서 인구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대신, 그냥 숲을 돌파해서 여기로 오고 있었다.

       

       중간에 신성도시 한 번 찍고 오긴 했는데, 그마저도 체류 시간이 지극히 짧다. 이 새끼 왜 안 도망갔냐. 뭐지?

       

       아냐, 순순히 돌아올 리가 없어. 뭔가 음모가 있다. 

       

       팔짱을 끼고 모니터 화면을 노려봤다. 내가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를 유심히 고민하는 사이, 유나가 뽈뽈거리며 다가와서 물었다.

       

       “저기, 이 칭찬스티커 패러미터는 무슨 뜻이야? 2라고 적혀 있는데⋯⋯.”

       

       “그게 올랐다고요? 그거 착한 일 하면 카운트하는 건데.”

       

       “걔가⋯⋯?!”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악신쨩의 심중에 양심의 삼각형을 박아둔 건 맞지만, 그까짓 걸로는 이빨도 안 먹힐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선역타락계획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고도의 기만전술인가? 아니면 군대라도 끌고 아카데미를 습격하러 오는 길인가?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뭐든 간에, 치명적인 공격이 올 것이다!

       

       “그렇게 위험한 겁니까? 『둥지』에서 떨어진 용린, 이터널 다크의 도움으로 보였습니다만. 개과천선까지는 아니라도 다소 바뀐 게.”

       

       안전불감증에 걸린 핑발레즈가 이렇게 말하자, 나와 마탑주님은 발작 버튼이 눌린 사람처럼 반박을 토해냈다.

       

       “유리야, 그건 네가 ‘그것’에 대해서 몰라서 그래⋯⋯!! 태생부터 엄청 못된 애라니까?! 걔가 막, 내가 TRPG 잘 해보려구 했는데 니오레랑 타라를 막⋯⋯.”

       

       “핑발레즈 이 기지배야, 걔가 얼마나 못된 앤데 마음을 놓고 그러니?! 그러다가 뒤통수 맞고 가는 거야! 조심해야지!”

       

       “감도 3000배로 괴롭히면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아냐아냐, 네 말은 틀렸어. 마탑주님! 우리 대비를 좀 합시다. 마력포 네 대 정도 설치해 두고, 군대를 끌고 왔어도 다 잡아먹을 수 있게 함정을⋯⋯.”

       

       나와 유나는 악신쨩 하극상 침공을 대비하여 연구실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온갖 바리케이드와 살상병기, 정보 폭탄을 잔뜩 쟁여두고, 튼튼한 갑옷도 사다가 입었다.

       

       정기적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악신쨩이 아카데미로 다이렉트로 오고 있음을 매번 체크했다.

       

       그렇게 거의 요새화를 시켜 둔 아침.

       

       『긴고아』의 접근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가깝다. 인기척은 총 세 명인가⋯⋯ 악신쨩이 조력자로 데려온 게 고작 둘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 그리고──

       

       벌컥.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준비한 함정을 발동시켰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날 버리고 잘 먹고 잘 살았── 아푸풉.”

       

       “어떠냐 에스포와르 드 이터널 다크! 널 붙잡기 위해서 만든 특제 점액질이다!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해라!”

       

       “포기해! 포기하고 항복햇!”

       

       “어풋, 미친놈들아 얌전히 돌아와도 지랄이야-!!”

       

       1차 제압은 성공. 대상은 일시적으로 무력화되었다. 여왕의 위액을 참고해서 만든 주문이라 대상의 정보를 흐물흐물하게 녹이는 효과가 있다.

       

       악신쨩이 입은 드레스가 녹아서 군데군데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 드레스도 실체가 아니라 정보를 가공한 것이니, 이는 특제 점액질이 먹히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여기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2차 제압을 이행하기 위해 정보-몽둥이를 꺼내 들고 멍석말이를 하려는 순간.

       

       연구실 문밖에서 나와 마탑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흉터 선배와 눈물점 가이였다.

       

       그들의 시선이⋯⋯ 나와, 내가 들고 있는 몽둥이를 보고.

       

       바닥에 엎어져 점액질에 둘러싸인 채로 웅크리고 있는 악신쨩을 보더니.

       

       나를 인간쓰레기를 보는 것처럼, 표정이.

       

       “⋯⋯⋯⋯.”

       

       “⋯⋯⋯⋯.”

       

       “아니야.”

       

       오해다.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해다. 내가 정의고, 악신쨩이 악이다.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거라는 말이다!

       

       “⋯⋯이래서 그녀가 후배님을 싫어했군요. 실망했습니다 후배님.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생아라고 해서 자기 아이를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대하는 건, 아무리 그래도.”

       

       “물러서십시오, 미친 마법사. 그녀는 아직 제 고객님이십니다. 아직 의뢰가 종료되지 않았으니, 더 이상 위해를 가한다면 고객 보호를 위해 움직이겠습니다.”

       

       사생아라니. 사생아라니?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아니야. 그게 아니다. 나는 사생아의 옷을 엉망으로 만들고 몽둥이찜질부터 날리려는 사람이 아니야! 오해다!

       

       나는 세계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는 사악한 존재를 봉인하려고 하고 있던 거다!

       

       “난, 나는 정의를 위해서⋯⋯!! 마탑주님, 뭐라고 설명을 좀.”

       

       뾰로롱.

       

       유나는 어느샌가 나비가 되어서 날아가고 없었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악신쨩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부글부글 타오르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악신쨩은 눈동자에서 모스부호로 빛을 깜빡이는 방식으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를 까먹었겠다. 여왕과 열심히 싸우고, 몽마한테 당한 사람들도 구하기까지 한 나를 까먹었겠다. 그리고, 얌전히 돌아온 나를 이렇게 대하기까지 해?

       

       “나, 나는⋯⋯.”

       

       -넌 뒤졌다.

       

       “솔직히 네가 해먹은 전적이 있는데⋯⋯!!”

       

       오해였다고? 정말로, 에스포와르 드 이터널 다크가 살짝 착한 아이가 되었다고?

       

       뭘 하려는 거냐. 아니, 쫄지 말자. 악신쨩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다. 『긴고아』의 통제권도 공고하고, 여기서 맞장 뜨면 내가 이긴다. 네가 뭘 할 수 있는⋯⋯

       

       “흑, 히끅⋯⋯ 흐윽.”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세상 서글픈 우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악신쨩의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뚝뚝 떨어진다. 나는 내 평판이 조각조각 나서 죽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흐윽, 난, 나는 아빠랑, 아빠한테 칭찬받고 싶었을 뿐인데, 윽, 끄윽⋯⋯.”

       

       “⋯⋯⋯⋯.”

       

       “미, 미안해, 아빠. 때리지 마⋯⋯ 끅, 울음, 참을 테니까, 그거 하지 맛⋯⋯! 부탁해요, 부탁합니다, 발이라도 핥을 테니까⋯⋯!”

       

       가불기다.

       

       시선이 아프다.

       

       얼굴흉터 선배의 저, 저 시선이. 진짜 역겨운 놈을 보는 것 같다는 싸늘한 표정이. 내 마음을 사시미로 연달아 찌르고 있다.

       

       “⋯⋯쓰레기.”

       

       아.

       

       오늘, 나는 사회적으로 죽었다.

       

       ===============================================================

       

       오늘 하루 동안 악신쨩의 의자가 되는 걸로 합의를 봤다. 악신쨩은 엎드려뻗친 내 등짝 위에 올라앉아서, 신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항상 맞고만 살다가 자기가 때리는 입장이 되니까, 도파민이 막 흘러넘치는 모양이었다.

       

       “장난이야 장난.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로레이도 로윌렌도. 원래 우리는 이러고 노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치, 아빠? 대답.”

       

       “예. 이터널 다크님.”

       

       “옳지.”

       

       악신쨩은 애완동물을 칭찬하는 마냥 내 엉덩이를 툭툭 두들겼다. 나는 그 굴욕에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내면으로 이 분노와 좌절을 삭여야만 했다.

       

       홧김에 감도 3000배 빔을 날리면, 얼굴흉터 선배의 오해가 완전히 못이 박혀버릴 것 아니냐! 지금은 설설 길 타이밍이다.

       

       좀⋯⋯ 미안한 것도 맞았다. 그렇게 열심히 했을 줄은 몰랐지 나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이터널 다크님. 혹시 그 사생아라는 오해는, 사역마 관계라는 걸로 제가 어떻게 좀 표현을 정정해도 될지⋯⋯.”

       

       “아빠 나 싫어? 지금 호적에서 파내고 싶을 정도로 내가 밉다 이거야?”

       

       “시발⋯⋯.”

       

       “어허, 씁. 이쁜말.”

       

       악신쨩은 내 엉덩이를 찰싹 하고 후려쳤다. 이 새끼가⋯⋯!

       

       하지만 내가 심하게 당하면 당할수록 오해는 더욱 빠르게 풀린다. 나는 감내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악!!

       

       고스란히 되돌아오는 업보에 내가 진땀을 빼고 있으려니, 얼굴흉터 선배도 눈물점 가이도 다소 이해해 준 것 같았다. 혐오스럽다는 눈빛은 약간의 미심쩍음만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믿고 있었습니다 후배님.”

       

       “안 믿고 있었잖아요 선배.”

       

       “그러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믿겠어요? 문 열리자마자 옷 찢어버리고 몽둥이로 패려고 드는 꼴을 봤는데.”

       

       “그건 그러니까 다 사정이⋯⋯ 이런 제기랄.”

       

       사실 얘가 제 머릿속에 있는 어떤 무시무시한 존재의 편린인데요, 물질보다는 정보에 가까운 정보생명체거든요. 얘가 왕년에 전 세계를 누비면서 사람들 조져놨다는 정황이 있는데요.

       

       이게 유나 말 들어보면 인식하고 믿음을 가질수록 위험하다는 모양이라 남들한테 말을 못 해요. 이해해 주실 거죠?

       

       이럴 수도 없잖아.

       

       가면, 손님들 가면 두고 보자.

       

       “고마웠어. 로윌렌, 추가금 필요해? 지금은 아빠한테서 돈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그⋯⋯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혹시 농담이 아니라 위협받고 있는 거라면.”

       

       “괜찮다니까. 로레이도 고마웠어. 덕분에 아카데미까지 빨리 왔네.”

       

       “받은 만큼 한 거죠. 별말씀을요. 주점에서의 일은 재밌었어요.”

       

       세 사람은 간단하게 인사를 끝냈다. 악신쨩은 미련 없이 손을 흔들었고, 두 사람은 의뢰 종료를 선언하고 아카데미를 떠났다.

       

       다 떠나고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서, 나는 아직도 내 위에 올라탄 7%에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먄.”

       

       “똑바로 해.”

       

       “미안.”

       

       “⋯⋯하란다고 진짜 하네?”

       

       악신쨩은 의외라는 듯 말했지만⋯⋯.

       

       노력했으면 보답받아야 한다. 선의를 베풀었으면 보상이 있어야 한다. 그녀가 열심히 한 만큼은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지켜져야 하는 룰이다.

       

       그러니까 사과는 해야지. 악신쨩을 지금까지 쥐어팬 건 해야만 했던 일이고, 후회도 하지 않고, 앞으로도 못된 짓을 하지 않도록 팰 거지만.

       

       칭찬스티커는 정산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

       

       악신쨩은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좌우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가느다란 목이 보인다. 목에는 『긴고아』가 걸려 있다.

       

       나는 『긴고아』에 접속해서 자세한 정보를 읽어 들였다. 여기에는 그녀가 어떤 행동을 했고,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까지 전부 담겨 있다.

       

       쭉 훑는다.

       

       버려져서 배신감을 느끼는 장면.

       

       소년에게 엿을 먹이는 장면.

       

       내 음해를 퍼트리는 장면.

       

       여관에서 종업원을 구하는 장면.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그녀의 자아가 어리다는 걸 깨달았다.

       

       연원을 짐작하기 힘든 ‘그것’은, 적어도 100년은 넘게 살아왔으리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니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악신쨩 역시 고대의 존재에 가깝다고 보았는데.

       

       데이터상의 악신에게 덧입혀지면서 어떤 화학작용이 있었던 건지, 내가 왕창 부어놓은 악성 정보가 뭔가 일으킨 건지, 아니면⋯⋯ ‘그것’중에서도 말랑거리는 것들만 떨어져 나온 건지.

       

       이유는 몰라도, 그렇게 단단한 정신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해졌다.

       

       어린 시절이라면 쉽게 바뀔 수 있다. 교육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한다. 사이코패스라고 할지라도 체계적인 교육이 동반된다면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그녀의 악성이 불변할 것으로 보았고, 그래서 숨 쉴 구멍도 주지 않고 이 잡듯이 팼다만. 그녀가 사실은 바뀔 수 있었던 거라면.

       

       그렇다면.

       

       그녀에게도 기회를 줘 보는 게 어떨까 싶다.

       

       “있잖아, 미친 마법사.”

       

       살짝 보랏빛이 도는 새까만 머리카락 너머에서 악신쨩의 목소리가 들린다. 

       

       “왜.”

       

       나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내 심경변화를 들키면, 반드시 기어오를 테니까. 

       

       악신쨩은 잠깐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거 알아? 지금, 내 농간에 휘말려서 죽어가고 있는 소년이 있다고.”

       

       “⋯⋯음?”

       

       “이 『긴고아』, 허점투성이야. 바보 같으니. 보안 취약점을 이용해서, 엘메스트 영지의 어떤 얼간이를 속여넘겼어. 생활비를 왕창 뜯어버렸지!”

       

       “아하, 그러셔.”

       

       악신쨩은 소년과의 약속에 대해 이야기했다. 돈을 받고 내게 청탁을 넣어주기로 했다는 내용을, 자신이 얼마나 사악한지에 대한 자기주장과 함께.

       

       자신이 선한 일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 같았다. 이렇게 말을 빙빙 돌려대며, 무안함을 감추려고 하는 걸 보면.

       

       착한 사마리아인이라.

       

       그건 확실히 회색지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신쨩의 행동은 확실한 선의다.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119에 신고를 해 주었지 않은가. 지나쳐도 좋았을 텐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선행은 분명 숭고하지만, 슬프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선행이란, 내 마음의 여유가 허락하는 한에서 내비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쨌건, 좋은 징조라는 이야기다.

       

       “아이구 우리 이쁜 개새끼, 드디어 사람이 되려고 그러는구나!”

       

       “흐얏──?!”

       

       나는 악신쨩을 꽉 끌어안고 정수리를 마구마구 문질러버렸다. 악신쨩은 하지 말라고 발버둥을 쳤지만, 『긴고아』에 따르면 아닌 척해도 기분은 좀 좋은 모양이다.

       

       칭찬은 악신쨩도 춤추게 하는구나!

       

       “그만하라고!”

       

       “악!”

       

       그러다가 부끄러움과 분노가 한계치까지 올라간 악신쨩에 의해, 한입 크게, 야무지게 손을 물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러면 내일 또. 굿바이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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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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