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00

     

    발타사르 폰 뷔르템펠트.

     

    제국의 12대 황제가 될 소년은 5세의 나이에 인생의 전환점이 될 사건을 마주했다.

     

    “맙소사, 황자 전하!”

    “마물이 전하를 납치했소!”

     

    커다란 그리폰이 그를 커다란 발톱으로 낚아채 갔다. 서부 원정에 견학을 나갔던 때였다.

     

    고공비행으로 한때 정신을 잃었던 소년이었으나 눈을 뜬 후 한 행동은 간단했다.

     

    스릉!

     

    허리춤의 검을 뽑아 그리폰을 베는 일이었다.

     

    상공 6000미터에서 벌어진 사투는 며칠에 걸쳐 이뤄졌다.

     

    “감히 짐을 먹이로 보았느냐.”

     

    번뜩 눈을 부라리며 소년은 재능을 개화했다. 만물을 제압하는 패기였다.

     

    마침내 그리폰을 쓰러트리고 높디 높은 설산 정상에 추락한 소년은 주변을 둘러보았고,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어찌 넓은 세상인가.”

     

    그가 떨어진 곳은 대륙의 한가운데, 인간도 마족도 출입을 꺼리는 미개척의 땅 중간계였다.

     

    사방 어디에도 끝없이 햇빛이 들이차는 지평선을 보며 소년은 땅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온갖 마물을 제압하며 인간계로, 제국의 황실로 돌아온 소년은 궁으로 돌아오자마자 환대를 받았다.

     

    반대로 그는 황궁이 달갑지 않았다.

     

    “벽이로군.”

     

    여기는 어디를 가도 몇 걸음 못 가 벽에 막히고 만다.

     

    소년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열셋이 되던 해, 황자는 첫 원정을 나갔다.

    제국을 위협하던 소규모 영지의 영주가 기어이 봉화를 피웠다.

     

    제국이 위치한 인간계 북동부와 중앙지대. 그 인근에는 자잘한 소국과 독립된 영지, 무법지대, 마물의 소굴이 가득했다.

     

    그들은 항상 제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기사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단숨에 영지를 제압한 황자는 힘차게 깃발을 꽂고 먼 경치를 바라보았다.

     

    제국으로 돌아가는 서쪽이 아닌, 평야가 펼쳐진 동쪽이었다.

     

    “원정을 이어가겠다.”

     

    달리기 시작했다면 지평선의 끝까지.

     

    황자가 밟은 땅은 곧 제국령이 되었다. 불안에 떨던 영민은 제국민이 되어 안전을 보장받았다.

     

    그 모든 것은 과정에 불과했다.

     

    인간계 동쪽의 끝.

     

    결코 인간이 오를 수 없는 마법의 산맥에 가로막히고서야 그의 원정은 끝났다.

     

    이 너머에 동방이라는 미지의 지역이 있다는 전설은 있었지만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황자는 환상과 보물을 쫓는 모험가는 아니었다. 벽에 막혔으니 정복은 끝났다.

     

    “여기가 동쪽의 끝이로군. 다음은 북쪽으로 가겠다.”

     

     

    제국으로 돌아간 그에게는 승전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승계권자인 형제들의 시샘도.

     

    그 모든 것은 정복 앞에서는 사소한 걸림돌일 뿐, 가벼이 치워버린 후 그는 원정을 이어나갔다.

     

     

    어느새 그를 따르는 기사단은 이백에서 백만이 되었다.

     

    그의 곁에는 소드마스터를 비롯한 최고의 전사들이 함께했으며.

     

    원정은 정복 전쟁이라 불렸고.

     

    황자는 황제가 되었다.

     

     

     

    전쟁을 끝냈을 때, 황제는 이미 쉰이라는 나이를 먹은 후였다.

     

    아내들을 맞으면서도 단 하루도 몸을 쉬인 날이 없었다.

     

    심장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진작 느끼고 있었다.

     

    그 긴 기간을 필사적으로 달렸건만.

     

    “어릴 적 보았던 그 땅은커녕, 인간계의 끝에도 도달하지 못했도다.”

     

    공국령의 장성에서 왕국과의 휴전 협정에 서명하며, 황제는 평생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이미 손에 넣은, 앞으로 지켜야 할 땅이 보였다.

    이미 그것도 한 명의 인간이 품기에는 더없이 넓은 게 아닌가.

     

    차라리 더 나아가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정말 인간계를 전부 손에 넣었다 한들, 자신이 죽은 후에 산산이 찢어질 게 분명했다.

     

    지금부터는 제국을 지켜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후계자를 길러야 한다.

     

    그리 생각하며 황제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 되돌아갔다.

     

     

     

    ***

     

     

     

    “친위대, 진입하라.”

     

    황제는 최전선에서 직접 황명을 내리며 언데드의 벽을 돌파했다.

     

    공작의 성은 코앞이다. 그들도 일주일간 잘 버텨냈다. 곧 본대와 합류하면 포진을 재구성하여 적을 섬멸할 수 있을 것이었다.

     

    텔레포트 게이트 사용이 문제라면 이쪽엔 3황녀가 있으니 가동을 도와줄 수도 있다.

     

    “지그문트, 적장은 보이지 않는가.”

     

    “예, 폐하. 병졸만 밀려오고 있습니다.”

     

    “감염에 주의하라. 마스크를 벗지 말도록.”

     

    사방에 시체 썩는 냄새가 가득했다. 언데드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마물이었다. 인간의 시체를 상대해야 하니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진다.

     

    “폐하!”

     

    정화 주문을 걸던 앰브로시아가 다급하게 외쳤다. 황제의 뒤에서 덩치 큰 스켈레톤이 뼈칼을 휘두르며 그를 덮치고 있었다.

     

    ―퍼석!

    위기도 잠깐. 황제는 그 노쇠한 몸으로도 중갑을 두른 채 신속하게 검을 휘둘러 뼈의 병사를 동강냈다.

     

    “마물을 상대할 땐 방심하지 마라. 앞을 보고 싸워라.”

     

    “예, 예…!”

     

    마저 신성력을 휘감는 앰브로시아.

     

     

    황제가 전황을 파악했다.

     

    승계권자들의 4개 궁은 각기 그가 명령한 포진에서 충실하게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기사단을 훌륭하게 육성해왔다. 갑작스런 위기에서도 부족함이 하나 없다.

     

    황제가 만족한 순간.

     

    ―콰앙!!

     

    공작의 성 외벽이 무너지며 커다란 벽돌이 무너져 내렸다.

     

    흉흉한 마기가 용오름 치듯 솟아오른다.

     

    “저것은…!”

     

    물러서던 언데드의 군대가 하나로 합쳐지며 거대한 하나의 개체가 되어간다.

     

    성벽을 단숨에 뛰어넘을 크기의 거인 시체가 되어 그 손으로 성벽을 붙잡는다.

     

    “아아악!”

    “도망쳐!”

     

    망루 위에서 수비진을 펼치던 공작군이 당황하며 도망친다.

     

    “마법이로군.”

     

    황제는 즉시 깨달았다. 군대의 숫자가 줄어들면 발동하도록 장치된 마법이 있었다.

     

    ―쾅!

     

    거인이 주먹을 휘두르면 점점 성벽이 붕괴해간다.

     

    공작령은 제국령 최서부의 출입구. 정복 전쟁에서도 왕국과 몇 년이나 대치했던 땅이다. 붕괴하면 제국은 튼튼한 울타리 하나를 잃게 되는 셈이었다.

     

    그 꼴은 볼 수 없다.

     

    황제가 명령했다.

     

    “친위대, 거인을 토벌하겠다.”

     

    제국 최고의 기사들만이 엄선되어 모인 천황궁 친위대. 소드마스터 지그문트를 포함한 열두 명의 기사는 신호가 없어도 완벽한 포진을 이루며 황제의 뒤를 따라 뛰었다.

     

    번쩍.

    황제는 눈을 부라리며 언데드에게 명령했다.

     

    “무릎을 꿇어라!”

     

     

     

    ***

     

     

     

    “어이쿠.”

     

    가구로 얼기설기 만든 바리케이트가 망가진 민가로 들어서니 언데드가 나를 향해 썩은 손톱을 휘둘러왔다.

     

    성수를 뿌려주니 활활 불타오른다. 발로 뻥 차버리고 기사들과 함께 안쪽에 있는 민간인을 구출하러 들어간다.

     

    “여기, 좀 도와주세요!”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막 공격당한 모양이었다.

     

    “봅시다. 부인은 골절상. 아이 쪽이 급해. 시체병에 감염됐어. 약물치료 할 테니 거기 잡아주시고.”

     

    간호사가 구급통을 열어 내게 필요한 도구를 건네준다.

     

    아이의 환부부터 약제를 뿌리고 소독해 병마는 막는다. 언데드에게 상처를 입었을 때 운이 나쁘다면 이렇게 질병에 걸린다.

     

    “부인은 옆구리 보여주쇼. 지혈하고. 소염제 따끔한데 조금만 참아.”

     

    “아얏.”

     

    주사로 마무리한다. 아이를 본 엄마의 표정이 금방 편안해졌다.

     

    “애가 이렇게 금방 괜찮아지다니… 정말 감사해요. 죽는 줄만 알았어요.”

     

    “다른 집은? 사람 남아 있는 곳 있어?”

     

    “네, 저기 건너편 집이요!”

     

    “가자고.”

     

    기사에게 맡겨 민간인을 후방으로 보낸다. 다시 길거리로 나가니 정신없이 사방에서 뼈다구와 싸우고 있었다.

     

    ―쾅!

     

    별안간 커다란 소리에 귀가 멍멍해졌다.

    우리 기사단의 목적지인 성채 쪽이었다.

     

    “허, 저게 나오네.”

     

    성벽보다도 커다란 초대형 언데드.

     

     

    [No. 091 : 뼈의 심연 13% → 21%]

     

     

    리치가 마법으로 시체와 스켈레톤을 모아 거대 스켈레톤을 만들었다.

     

    어지간한 마족 간부 급은 되는 전투력을 지닌 대형 전설급 마물이다.

     

    저놈에게 패배하는 배드엔딩도 확률이 치솟았다. 용사 파티도 덩치 때문에 꽤 애를 먹었었다.

     

    ‘다른 엔딩 확률이 올라가진 않았어. 리치가 여기 있는 건 아니야. 저것만 쓰러트리면 이 전투는 끝나.’

     

    강행군을 오느라 준비된 성수는 많지 않다.

     

    토벌할 수 있을까.

     

    “선생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 리셰였다.

     

    “저거, 어떻게 해야 해요?”

     

    “성수가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기동대로 성벽을 돌파해 텔레포트 게이트를 다시 가동해 제도와 연결하죠.”

     

    “시간을 벌어볼게요.”

     

    성검을 붙잡은 리셰의 눈매는 다부졌다. 고개를 끄덕이고 아셀라와 합류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콰앙!!

     

    별안간 마기로 뒤덮인 스켈레톤의 몸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뭐죠…?”

     

    나와 리셰는 그 광경에 눈을 빼앗겼다.

    퍼엉, 퍼엉. 거대한 몸체가 내부에서 꿰뚫리며 터져나간다.

     

    마법도 신성주문도 아니었다. 오직 순수한 물리적인 힘.

     

    안에서부터 파고들어 등반해 공격하는 전사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소드마스터인가?”

     

    저만한 마기의 몸체를 돌파하며 검을 휘두를 정도면 어마어마한 실력자일 터.

     

    타냐는 여기 있으니 천황궁의 지그문트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콰아앙!!

     

    마침내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뚫리며 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튼튼하고 휘황찬란한 중갑은 마기 폭풍을 맞아 다 녹아내렸고, 검은 이빨이 빠졌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노쇠한 몸.

     

    하지만 그 몸짓에는 패기가 흘러넘쳐, 오러가 휘감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제국의 황제가 검을 치켜들었다.

     

    ―스릉!

     

    최후의 일격을 가하니 거대 스켈레톤이 저항도 못한 채 절명한다.

     

    마법도, 신비도 두르지 않은 오롯한 인간의 몸으로 기적을 이뤄낸다.

     

    “제국이여!”

     

    전장,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그의 모습을 지켜본다.

     

    “황명을 내리겠다!”

     

    내가 진찰했을 때 만난 생명을 다 태워버린 노인은 어디에도 없고, 시대를 이끈 초월자가 외친다.

     

    “승리하라!!”

     

    마법이 해제되며 스켈레톤이 붕괴했다.

     

     

    [No. 091 : 뼈의 심연 21% → 0%]

    [엔딩이 삭제되었습니다.]

     

     

    기사단의 함성이 높아졌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유려한 기세로 잔당을 토벌한다.

     

    마치 혈관에 새겨진 것 같은 마지막 황명이 전장의 열기가 되어 퍼져나간다.

     

    그렇게 공작령 방어전은, 완벽한 제국의 승리로 끝났다.

     

     

     

    ***

     

     

     

    “이겼어요, 선생님.”

     

    잔당 토벌을 마친 후, 기사단이 성문으로 진입하는 걸 확인한 리셰가 내게 말했다.

     

    “그렇군요. 부상은 없으십니까.”

     

    “덕분에요. 대신 마을이… 많이 다쳤네요.”

     

    오랜 공성전의 여파로 성벽 밖의 도시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사방에 불똥이 튀고, 건물이 무너져 잔해가 된 벽돌이 나뒹굴고, 좀비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더러운 체액이 흥건했다.

     

    “앞으론 계속 이런 곳에서 싸우게 되는 걸까요.”

     

    “계속은 아닐 겁니다. 지금은 공격당했지만 저희도 돌려줘야죠. 선공필승 아니겠어요.”

     

    내 말에 리셰가 이마를 닦으며 실실 웃었다. 그 바람에 얼굴에 검댕이가 잔뜩 묻어버렸다.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지금처럼 못 싸웠을 거예요.”

     

    “무슨 말씀을요. 용사님은 혼자서도 잘 싸우실 분입니다.”

     

    “아뇨, 지금까진 언니가 도와줬으니까….”

     

    리셰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의 다리가 살짝 떨렸다.

     

    “선생님, 많이 생각해 봤는데요. 역시 저는 언니 같은 용사가 되고 싶어요.”

     

    “두 분은 같은 사람이니까요. 싫어도 되시리라 믿고 있어요.”

     

    “저, 언니에게 들었거든요.”

     

    리셰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러려면 선생님이 필요해요.”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고트베르크 선생님.”

     

    간절함과 불안함이 섞인 표정으로.

     

    “저와 함께 가요.”

     

     

     

    ―――――――――――

    ※주의

    · 당신은 기로에 섰습니다.

    · 이 선택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 굿엔딩 리스트

     

    [화타의 길]

    · ■■년 후, 다시 ■■에서 61%

     

    [영웅의 길]

    · 용사와 성자 76% → 85%

     

    · 엔딩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

     

     

     

    다음화 보기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