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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알 수 없는 무언가에게 소원을 빌고 난 뒤의 료스케는 뭔가 들러붙은 것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후련해 보이기도 하였으며, 그동안 겪은 마음고생 때문에 총기를 잃어버린 눈에서는 활력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몸짓 하나하나에는 거침없는 움직임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이 묻어 있었으며, 혹여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지 않을까 싶었던 생각은 모두 사라지고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

         

       그는 두려움이 없어졌다.

         

       『 너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 너는 오직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어. 』

         

       평소에 자기 발목을 붙잡는 망설임은 모두 어딘가에 갖다버리고, 그의 인생에서 그를 괴롭게 만들었던 우유부단함은 한 길로만 쭉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으로 탈바꿈하였다.

         

       『 너는 선택한 것을 위해 모든 힘을 쏟을 수 있어. 』

         

       세상이 달라 보인다.

         

       『 너는 모든 것에 감사를 느낄 수 있어. 』

         

       평소에는 모래를 씹는 것 같았던 밥도 입 안에 들어가면 찰기가 느껴지고 단맛이 가득 풍겼고, 평소에는 짠맛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장아찌에 담겨있는 풍미를 가득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양념도 하지 않은 풀에서 느껴지는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었고, 시원한 물 한잔을 마셔도 몸에 차가운 기운이 돌며 정신을 일깨워주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 너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어. 』

         

       하늘거리는 빛은 반짝이는 반딧불이처럼 보였고, 형광등을 켜서 밝아진 방 안의 모습은 태양 빛을 내려받은 것처럼 찬란하게 느껴졌다. 전구에서는 낮의 햇살에서 느껴지는 따스함마저 느낄 수 있었고, 수면등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불빛은 달빛이 주는 것과 같은 안락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안락함에 감싸여 눈을 감고 있자면 마치 어릴 적 어머니가 얇은 이불을 덮어주고 꼭 안아주는 듯한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온몸에서 너는 평온하다고, 너는 안락한 상태라고 소리치듯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 너는 행복해. 』

         

       몸과 마음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다.

         

       『 너는 더 행복해질 수 있어. 』

         

       세상이 반짝반짝 빛나고, 요정이 주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다.

         

       『 너는 더더욱 행복해질 수 있어. 』

         

       한 걸음을 걸으면 구름을 밟는 것 같았고, 슬쩍 뛰면 깃털이 허공에서 하늘거리며 내려오는 것처럼 긴 체공시간이 느껴진다. 거울을 바라보면 곱상하게 생긴 내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걸쳤을 옷이 너무나 보드랍고 따스해서 눈물이 다 날 것만 같다.

         

       눈물.

       눈물이 난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너무나 행복해서 눈물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 너는 행복해? 』

         

       행복하다.

       소원을 비니까 세상이 달라 보였고, 온 세상이 긍정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소원.

       소원을 이루어주었다.

       입이 소원을….

         

       소원을….

         

       소원?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무슨 소원을 빌었던 것일까?

         

       『 행복을 위해서는 주문을 외워야 해. 』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한 건 ‘마법의 주문’을 외워야 한다는 사실인데.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는데.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 *

         

         

       가죽으로 만들어진 소파에서 포근함이 느껴진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천사가 몸을 안아주는 것 같고, 그 속에 몸을 기대고 있자면 이틀이고 사흘이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 위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리광을 부르듯 소파의 안쪽에 몸을 밀어 넣고 바닥에 떨어진 얇은 극세사 이불을 들어 올리면 천사의 깃털을 손끝으로 쓰다듬는 것 같은 간지러운 감촉이 느껴지고, 힘을 조금 주어 위로 들어 올리자면 하늘거리는 실크를 바람에 맡겨 이리저리 흐느적거리게 만드는 것 같은 황홀함마저 느껴진다.

         

       삐—-

         

       그렇게 이불과 소파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꼭 안아서 보호해주고 있자면 귀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바삭.

       바스락.

         

       귀를 거슬리게 하는 소리가 들린다.

         

       『 가죽 소파에서 나는 소리야. 』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졌어도 소파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단단하고 탄력이 있는 가죽이 이리저리 바뀌면서 나는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려 퍼지곤 한다.

         

       삐—-

         

       귓가에 울리는 자그마한 이명.

       음악을 잘못 재생했을 때 나는 것 같은 약간의 거슬림.

         

       『 가전제품의 수명이 다해가는 소리야. 』

         

       그 소리를 듣고 있자면 내심 서글픈 마음이 든다.

       그 누구보다도 비싸고 귀한 취급을 받았던 가전제품들 역시 주인을 따라서 수명이 다해가는 것일까. 혹은 주인이 힘을 잃자 같이 상심해서 힘을 잃어버린 강아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슬픈 일이었다.

         

       『 소리는 별로 신경 쓸 것이 못 돼. 』

         

       하지만 서글픈 마음이 든다고 해도 소리는 소리.

       크게 신경 쓸 것은 못 된다.

         

       『 하루가 끝나가고 있어. 마법의 주문을 외워야 해. 』

         

       중요한 것은 행복을 위해서 마법의 주문을 외우는 것.

       특히 잠들기 전에 이 주문을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 마법의 주문을 외워. 』

         

       주문을 외우기 전에는 반드시 하늘거리는 빛을 만들고, 요정이 춤을 추듯 허공에 빛을 띄워야만 한다. 그리고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따끈따끈하게 열을 발하는 핸드폰에 차갑게 되어버린 손가락을 녹였을 때의 편안함도 느껴야만 한다.

         

       『 주문을 외워. 』

         

       그 편안함에 눈이 스르르 감길 때쯤이면 허공에 빛이 이리저리 춤을 추는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거세지기도 하고 갑자기 줄어들기도 하며, 이리저리 춤을 추기도 한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곡선으로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기도 하고, 원이나 소용돌이를 그리며 움직이기도 한다. 뿜어지는 빛에서 요정들이 태어나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아서.

       온몸을 엄습하는 나른함이 더 심해지는 것만 같아서.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그래서 얼른 주문을 외우고 잠을 청하곤 한다.

         

         

         

        * * *

         

         

         

       『 주문을 외워. 』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

         

       『 이건 마법의 주문이야. 이 주문을 외우면 너는 행복한 기분이 들 거야. 』

       『 몸 안에 남아있는 약이 이로운 물질로 변해 혈관을 타고 흐를 거야. 』

       『 느껴져? 기분이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이 느껴져? 』

       『 가슴에 남은 용기와 더불어 몸이 민감해지고. 』

       『 하늘을 나는 듯한 황홀감과 전능감이 느껴지고. 』

       『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기분이 가득 들어와. 』

       『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어. 』

       『 주문을 외워. 』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

         

       『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

       『 아브라케다브라(אברא כדברא) 』

       『 마법의 주문을 외워. 』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 *

         

         

       료스케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 마법의 주문을 외워. 』

         

       마음이 시키는 대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심장이 시키고, 뇌에서 명령하는 대로.

         

       다른 무언가의 개입이 하나도 없는, 오직 자신만의 의지로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빛이 깜깜한 방 안에서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외우기도 하였고, 빛무리가 이리저리 뭉치고 흩어지며 캠프파이어의 불길처럼 그의 눈에 틀어박히는 것을 보면서도 말했다.

       잠을 자기 전에도 말을 했으며, 밥을 먹기 전에도 말을 했으며, 무언가가 아름답다고 느낄 때도 계속해서 말했다.

         

       행복과 마법의 주문은 같은 것이었으니까.

       평온함은, 안락함은, 그의 마음에 가득한 평안은 마법의 주문을 외워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의 등을 떠밀어주듯 심장에서 솟아나 혈관을 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용기가 마법의 주문을 외우라고 하고 있었으니까.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천국에 올라가 따스한 태양의 빛을 받으며 구름 속을 유영하는 듯한 이 기분에 몸을 맡기기 위해서는 마법의 주문을 외워야만 했으니까.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이런 빌어먹을! 진짜 미쳐버린 거야 당신?! 그 말밖에 못 해?! ]

         

       그렇게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스마트폰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들리곤 한다.

         

       별로 신경 쓸 소리는 아니기는 했지만, 그 소리를 듣고 있자면 무언가 조각난 단어들이 머릿속에 틀어박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이어져야 하는 선로가 뚝 끊겨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잘 빨아들이고 있던 국수가 갑자기 힘을 잃고 툭 끊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에는 그 기분을 빨리 떨쳐내기 위해서 주문을 다시 외운다.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뇌졸중이라도 걸렸어? 뇌 질환이라도 생긴 거야? 맨날 밤마다 전화해서 왜 나한테 그딴 말을 하는데! 어?! ]

         

       위화감.

       마땅히 이어져야 할 것이 이어지지 않고, 본래 있어야 할 위치에서 마땅히 형태를 이뤄야 하는 것들이 토막이 나서 사방에 흩뿌려지는 듯한 이상한 감각.

         

       료스케는 그런 감각이 느껴질 때만 괜스레 옛날의 추억이 떠올랐다.

         

       아주 어릴 적, 레고를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의 기억.

         

       레고라는 것의 가격은 절대 싸지 않았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료스케는 그것을 얼마든지 가지고 놀곤 했었다. 하지만 레고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어떤 것이 어떤 작품의 부품인지 점차 헷갈리게 되고, 그것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종국에는 패키지에 그려진 형태로 레고를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레고를 가지고 놀며 괴작을 만들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아름답지 않다.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하, 빌어먹을….]

         

       지금에 와서는 그때 아무렇게나 만들었던 ‘완성품’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마치 그가 마법의 주문을 외울 때마다 느끼는 기묘한 느낌처럼.

       한때의 즐거움을 위해 소비되었지만, 결코 기억에 남지 않는 헛된 시간이 떠나간 빈자리처럼.

       무의식에서조차 제대로 기억될 가치가 없다는 듯 말끔히 지워졌을 때의 허전함처럼 말이다.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이봐. 제발 이러지 좀 말자고. 우리 친한 사이 아니잖아. 밥 몇 번 같이 먹은 게 다잖아. 이러지 말고 좀 친한 사람한테 부탁해봐. ]

         

       『 마법의 주문을 외워. 행복을 위해서 주문을 외우는 거야. 』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이런 제기랄! 말이 통하지를 않으니…!]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번호를 바꿔도 걸고, 바꿔도 걸고! 뭐 체계적으로 미쳤어? 어떻게 돌아도 이렇게 돌아버린 거야! ]

       “기자회견을 잡아주십시오.”

       [ 씨발, 알았으니까 그만해! 기자회견 잡아줄 테니까 그만하라고! ]

         

       료스케는 귀를 간질이는 듯한 모기만 한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허공에서는 요정들이 춤을 추며 그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기 위해 춤을 추고 있었다.

         

       [ 이 병신 같은 놈, 뒈져버려라! 내일로 잡아줄 테니까 나오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그리고 기자회견 잡아줬으니까 다시는 나한테 전화하지 마! 알았어?! ]

         

       요정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료스케의 눈을 서서히 감게 만들었다.

         

       [ 한번만 더 전화 걸면 죽여버린다! 알겠어? 알겠냐고! ]

         

       그렇게 료스케는 추라도 단 것처럼 아래로 내려오는 눈꺼풀을 거부하지 않았고, 그대로 실이 끊긴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 주문이 이루어졌어. 』

       『 이제 소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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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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