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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검붉은색의 검은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갈라버렸다.

         

       만마전을 가르고, 뒤이어 닿은 드넓은 산봉우리마저 머리가 잘려 나갔다.

         

       꽈과광!

         

       그러나 단 하나.

         

       백우진의 목만큼은 베어내지 못했다.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뜬 그는 제 목을 슬쩍 더듬었다.

         

       그리고 웃었다.

         

       “살았네.”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눌 때의 그녀는 단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진심으로 살기를 벼려냈기에.

         

       다만 한 가지 믿는 구석은 있었다.

         

       백우진은 불안정한 모습으로 숨을 몰아쉬는 천마를 보았다.

         

       “…그랬구나.”

         

       조금 전의 검은 일반적인 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심상.

         

       지금까지의 삶을 축적하여 만든 심상을 바깥의 현실에 구현한 것.

         

       그리하여 만들어진 검의 예리함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의지만 수반되면 무엇이든 벨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종이 한 장조차 가르지 못한다.

         

       거대한 산봉우리마저 가른 검이 백우진의 목을 베어내지 못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너는….”

         

       만약 그녀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증오하고 원망했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있다.

         

       말인즉, 그녀가 자신에게 품은 감정이 증오만은 아니라는 것.

         

       천마는 힘없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또 흔들렸구나.”

         

       사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를 죽이지 못 하리라는 것쯤.

         

       진정 그를 죽일 듯이 미워했다면, 도리어 이 세상까지 쫓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너도 알았겠지.”

         

       그녀의 입가에 아픈 조소가 맺혔다.

         

       “네가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응.”

         

       백우진은 고개를 떨궜다.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더 이상 자신을 보며 사랑을 속삭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은 그녀가 사랑했던 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짜 그는 아니었기에.

         

       이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녀의 가슴에 낸 상처를 더 곪게 만드는 거라 생각했기에.

         

       놓아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그녀에게 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유일한 사죄라 여겼다.

         

       그랬는데.

         

       “너는 나를 미워한 만큼, 사랑했구나.”

         

       몰랐다.

         

       그녀의 가슴에 자리 잡은 거대한 증오의 뒤편에, 그만큼 거대한 사랑이 숨어 있을 줄은.

         

       ‘그걸 알았더라면….’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의 자신은 절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직접 그것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

         

       백우진이 무어라 말하려 하자, 천마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오늘 대담은 여기서 끝이다. 너는 어리석은 대답으로 나갈 기회를 잃었으니, 이곳에서 더 머물도록 해라.”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떠나갔다.

         

       백우진은 입을 꾹 닫은 채,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 * *

         

         

       대담 이후 며칠이 흘렀다.

         

       백우진은 그 시간 동안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 생각을 정리했다.

         

       대부분 그녀와의 대담을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첫 번째로 그녀는 모종의 이유를 품고 천마가 되었다는 것.

         

       천마가 그녀의 세계를 위협했던 마왕과 다름없는 존재임을 그녀가 모를 리 없다.

         

       그가 아는 그녀는 절대 악을 숭배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용사보다 정의로운 여기사였던 그녀가 그걸 알면서도 꿋꿋이 천마 행세를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게 무엇이냐는 건데….”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이유가 될지언정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다.

         

       그녀가 본격적인 행보를 취하거나, 속내를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지금으로선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듯했다.

         

       “두 번째는….”

         

       지금 당장은 그녀에게 자신을 죽일 의지가 없다는 것.

         

       그것은 비단 그녀의 심상으로부터 전개된 검붉은색 검이 그를 베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천마와 백우진의 실력 차이는 그야말로 절망적.

         

       구태여 그러한 것을 사용하지 않고 손만 내리그어도 죽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훗날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지금 당장은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뜻.

         

       그것을 알게 된 것은 꽤나 큰 수확이었다.

         

       왜냐하면.

         

       “으라차차!”

         

       콰쾅!

         

       지금처럼 건물 하나를 통째로 무너뜨려도 그녀는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을 테니까.

         

       콰르르….

         

       온 힘을 다해 날린 검기 다발이 건물 전체를 폭삭 내려앉히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조각조각 내어 비처럼 흩뿌렸다.

         

       이것으로 벌써 다섯 개째다.

         

       “어휴, 속 시원-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전해진다.

         

       그가 지금 부순 건물은 산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연구실이었다.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진미연, 그녀의 연구실이었다.

         

       “이 정도면 당분간 연구는 꿈도 못 꾸겠지.”

         

       백우진은 천마와의 절망적이다 싶을 정도의 수준 차이를 실감했다.

         

       그녀는 예전보다 더 강해졌고, 자신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그것이 어마어마한 간극을 만들어냈다.

         

       도무지 평범한 방법으로는 그 차이를 좁히기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천마가 전 연인이니 싸울 일이 없지 않겠느냐고? 아니다.

         

       백우진은 오히려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언제고 그녀와 검을 맞대게 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말했듯,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그녀의 불분명한 목적 때문에.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바와 정반대에 놓여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위험을 무릅쓰는 수밖에.’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지금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주어져야 그녀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지.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고민을 거듭하던 백우진은 이곳에 자신에게 아주 딱 맞는 실전 겸 수련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니 진미연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지 뭔가.

         

       그래서 그녀의 연구실을 산산이 부숴놓았다.

         

       사실 진미연을 죽이면 전부 해결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아무리 천마의 비호를 받는 백우진이라고 해도 위험한 방법이다.

         

       천마는 진미연에게 무관심할지언정, 그 밑의 간부들은 그녀를 총애하고 있다.

         

       아무리 그녀가 유일신 수준의 추앙을 받으며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고 한들, 지도자라는 자리에 앉은 이는 원치 않는 일이라도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생기는 법.

         

       천마신교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그녀가 어떤 결단을 내릴지 모를 일이기에.

         

       그러니 별 수 있나.

         

       차선책을 택하는 수밖에.

         

       “이제 시간은 좀 벌었고….”

         

       지난 며칠간 그녀와의 술래잡기를 통해 찾아놓은 연구실은 전부 박살냈다.

         

       하나하나가 거금을 들여 지은 곳이니 이를 복구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돈이 필요할 터.

         

       적당히 수련하고 돌아올 정도의 시간은 충분히 벌었으리라.

         

       “흐흐흐, 아쉽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 연구실이 박살 난 것을 보고 진미연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지 못한다는 것 정도일까.

         

       연구실을 부수면 그녀가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 뻔했다.

         

       그래서 잠시 재워두었다.

         

       조금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반쯤 마인이 된 그녀의 몸뚱어리라면 적어도 닷새 이내로는 정신을 차릴 테지.

         

       절규할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가 당도한 곳은 남쪽에 자리한 출입문이었다.

         

       천마신교 내 위치한 출입문은 동, 서, 남, 북으로 총 네 곳.

         

       그중에서도 남문은 천마신교 내에서도 가장 삼엄하고 살벌한 경계 태세가 유지되는 곳이었다.

         

       무사들이 그리도 날 선 태도로 남문을 경계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이곳을 빠져나가면 닿게 되는 곳이 다름 아닌 마경이기에.

         

       “멈추시오.”

         

       출입문을 가로막고 있는 무사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곳은 누구도 지나갈 수 없소.”

         

       마경이란 말 그대로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마기로 물들어버린 땅.

         

       수십 년 전, 무림맹의 거침없는 전진을 막아서기 위해 당시의 교인들은 고육지책을 펼쳤다.

         

       다름 아닌 그들이 반드시 지나야 할 길을 마기로 물들이는 것.

         

       이를 위해 그들은 체내의 마기를 온통 뿜어내며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다.

         

       원한이 진득하게 묻어 밖으로 풀려난 마기는 주변을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보랏빛 마기가 안개처럼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러자 그곳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는 험지가 되었다.

         

       여기까지 만이라면 그들은 적어도 천마신교 내에서 영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법했으나,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원한 섞인 마기는 끊임없이 주변 대지를 물들이고, 스스로 더욱 짙어져 갔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선 마기를 다루는 교인조차도 쉬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사지로 변모해버리고 만 것.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출입문을 굳게 수호하게 만든 이유였다.

         

       그들은 수십 년간 단 한 차례의 실수도 없이 남문을 수호해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천마신교의 교인들은 천마가 죽으라면 죽기까지 할 광신도들.

         

       그러한 천마가 이곳을 금지로 정한 순간부터 이를 어길 존재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기에.

         

       그런데 최초로 나타났다.

         

       “난 지나가야겠는데.”

         

       수십 년째 무사고를 이어온 그들의 경력을 산산이 부수고 문을 열어젖힐 이가.

         

       앞선 무사가 적대적인 시선과 함께 날카로운 말로 그를 쏘아붙였다.

         

       “이 문을 지나가려거든, 우리 모두를 죽여야 할 것이오.”

         

       초소에 머물고 있던 무사의 수는 총 스물.

         

       그들은 한 몸처럼 움직여 백우진을 둥글게 에워싼 뒤, 기세를 끌어 올렸다.

         

       백우진은 히죽 웃으며 가장 앞에 선 이에게 대답했다.

         

       “그럼 그러지, 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십니까, 독자님들.

    당분간은 연재 시간이 조금 불안정할 것 같습니다…

    한 번 바꿔도 계속 생활 패턴이 새벽으로 맞춰지네요.

    독자님들의 너그러운 양해 바랍니다. (_ _)

    마침내 이 소설이 200화에 다다랐습니다.

    100화 자축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0화가 되었네요.

    길게 끌지 않고, 빠르고, 임팩트 있게 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조만간 나올 것에 입이 근질근질한데,,, 억지로 참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이 잘 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기도 전에 완결을 냈을 겁니다.

    그러니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독자님들의 덕입니다.

    앞으로 더 정신 집중해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모습 보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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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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