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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200화. 쉽지 않은 일 ( 3 )

       

       

       

       

       

       “이걸 어쩌지?”

       “끄응.”

       

       그림자에 붉은 눈동자만 둥둥 떠다니는 바토리를 보며 전사들은 골머리를 썩였다.

       저주를 풀어준다고 하면 단박에 따라올 줄 알았는데, 설마 이 정도로 밖에 나오기 싫어할 줄은 몰랐다.

       

       전사들이 은밀하게 손짓과 눈빛을 교환하며 소리 없이 대화를 나눴다.

       

       – “닭으로 몰아낼까?”

       – “하지 마. 억지로 꺼내면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 “다른 방법이 없잖아.”

       – “여섯 번째 신이 시켰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탁!

       

       애꾸눈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바로 그거다!

       신이 시켰다고 하면 제까짓 것이 안 나오고 버티겠는가?

       심지어 거짓말도 아니었으니 꿀릴 것도 없다.

       

       “이보쇼, 바토리 아씨. 내 말 좀 들어 보쇼.”

       “… 으응, 아니. 네…”

       

       그림자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바토리가 애꾸눈을 바라봤다.

       

       모양새가 마치 연못에서 얼굴만 꺼낸 여인의 자태였는데, 어찌나 고혹적인지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바라볼 뻔했다.

       

       “아, 어! 크흠! 그래. 아가씨 그게 말이요? 아가씨네 일족한테 걸린 저주를 해결하라고, 여섯 번째 신께서 직접 계시를 내렸지 뭐요.”

       “계, 계시를… 요?”

       “그렇지! 당신네들 종족은 다섯 신의 시대에도 있었을 테니, 그분들의 말씀이 얼마나 지엄한지는 제일 잘 알 테지. 내가 하려는 말이 뭔지 대충 감이 오시나?”

       “아, 아아… 시시시신의 계시…! 그그그것은… 어, 엄숙하고 숭고한 것…”

       

       바토리가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신학에 조예가 있는 자가 들었다면 고어(古語)라는 것을 단박에 알았겠지만, 북부 전사들은 그냥 사투리로 말하나 보다ㅡ 하고 넘겼다. 

       

       “자자! 그럼 바토리 아씨, 어서 갑시다!”

       “… 아아아아… 아, 알겠… 어요…”

       

       전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제 바토리가 몬테그라스로 이동하기만 하면 임무 완수다.

       

       “대, 대신…”

       “음?”

       “조조조조금만… 아주, 조금만 마음의 주, 준비를… 후- 후우- 바바밖에 나간다고 하니까, 떠떠떨려서…!”

       “아아. 그 정도야 기다려 줄 수 있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애꾸눈과 전사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여기저기 엉덩이를 깔고 앉아 쉬기 시작했다.

       

       바토리는 구석진 곳의 그림자에 얼굴을 처박고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녀 나름의 긴장을 푸는 과정인 듯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났다.

       

       바토리는 구석에 박은 얼굴을 꺼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루함에 지쳐갈 무렵, 전사 중 누군가 중얼거렸다.

       

       “… 애꾸눈, 내가 갑자기 생각난 건데.”

       “뭔데?”

       “밤의 일족 말이야. 잠깐 자고 온다고 한 다음에 한 말이 석 달 뒤에 온다는 거 아니었나?”

       “… 그럴걸.”

       

       아.

       

       애꾸눈과 북부 전사들은 그제야 떠올렸다.

       밤의 일족과 인간이 공유하는 ‘잠깐’이라는 단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바토리가 말했던 ‘잠깐’은 한 달, 두 달 어쩌면 석 달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사태를 깨달은 애꾸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특약 처방이 필요했다.

       

       

       

       *****

       

       

       

       결국 전사들은 5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결론지었다.

       애초에 밤의 일족을 제일 먼저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한 것이 5호였으니, 이번에도 그녀가 할 수 있으리라 여긴 것.

       

       그건 썩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전사들에 의해 외진 저택에 도착한 5호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 손에는 커다란 양산을 들고, 온몸을 칭칭 싸맨 복장을 한 5호는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저택에 들어섰다.

       

       곧장 향한 곳은, 구석진 곳을 애벌레처럼 파고드는 모양새의 바토리.

       

       “… 언니, 이제 그만 가요.”

       “저저저전능하신 다, 다섯 신… 아? 막내야…?”

       “네. 이제 추태는 그만 부리고 얼른 나오세요.”

       “자자자잠깐, 만! 나는아직마음의준비가되지않아서조금의시간이더필요해막내야아직나에게바깥은너무이른것같ㅡ!”

       “이 정도면 충분했잖아요. 저 좀 그만 창피하게 만들어요 제발.”

       

       속사포처럼 뱉어지는 말을 무시한 5호가 바토리의 목덜미를 잡아채더니 질질 끌고 나왔다. 

       분명 5호가 일족 중에서 제일 어린 막내라고 하였는데, 아무리 봐도 바토리가 못난 동생 같았다.

       

       스슥ㅡ!

       

       어느 순간 가라앉듯 그림자로 사라진 5호와 바토리.

       

       5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그녀 혼자였다. 몬테그라스에 바토리를 던지고 돌아온 모양.

       

       순식간에 현장이 정리됐다.

       전사들이 닭의 울음소리로 잠을 깨우고, 온갖 말로 구슬렸던 노력을 생각하면 허무할 정도였다.

       

       “어휴. 감사합니다, 5호 나리. 덕분에 일이 금방 끝났네요.”

       “… 아닙니다. 못난 언니가 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합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는 5호의 모습에서는, 뭐라고 해야 할까.

       소녀 가장의 모습이 언뜻 보인 것 같았다.

       

       바토리의 ‘잠깐’을 기다리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어느새 태양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갈 준비를 하며, 주홍빛 물감을 한가득 흩뿌리고 있었다.

       

       “… 후우.”

       

       노을을 바라보며 또다시 한숨.

       

       5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았다.

       

       수탉을 이용해 잠을 깨우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도통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덕분에 5호가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족들을 하나하나 밖으로 끄집어내야 할 판이었다.

       

       ‘다음은…’

       

       숲으로 가야 한다. 그다음에는 지하의 동굴로, 폐가로, 강가로, 산으로…

       다른 이들이 바토리처럼 순순히 끌려 나온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

       

       오늘 안에 끝날지 장담할 수 없다.

       

       “… 하아.”

       

       5호가 다시 한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가야지.”

       

       뺨을 툭툭 두들기며 정신을 가다듬은 5호가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졌고, 이윽고 잔잔한 그림자만이 자리를 지켰다.

       

       5호가 부끄러운 일족들을 데리러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던 시각.

       의자에 앉아 각종 서류와 씨름하는 이도 있었다.

       

       사악! 사아악! 스슥!

       

       셀리나였다.

       

       그녀의 자랑이었던 녹빛 눈동자는 잔뜩 충혈되서 밤의 일족에 가까운 수준이었고,

       밤을 꼬박 새웠더니 푸석하게 일어난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곤두선 모습이었다.

       

       셀리나의 만년필이 번개처럼 서류 위를 질주한다.

       

       조사 보고서, 현황 요청, 검수 보고서, 대책 제안서 또다시 서류…

       

       그녀가 준비해야 할 것은 넘쳐났고, 작성하고 검토해야 할 서류도 가득했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밤의 일족이 머물 장소도 마련해야 하지, 그들에게 먹일 피를 제공할 주민들도 모아야 하지, 만신전에 보내는 정기 보고서도 만들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의 확인을 바라는 서류는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고, 수정되어 돌아온 서류도 산처럼 가득했다.

       

       아마 프리우스 후작이 없었다면 셀리나는 코피를 흘리며 기절했을 것이다.

       

       똑똑.

       

       “셀리나 님, 따뜻한 차를 한 잔 가져왔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반쯤 죽어가는 이의 목소리.

       

       프리우스 후작이 안타깝게 바라봤지만, 그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전부 해줬다.

       나머지는 셀리나의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큼직한 문제들.

       

       ‘내가 전부 해줘도 상관은 없지만…’

       

       그렇게 한다면 성장이라는 것이 없다.

       진정으로 셀리나를 원한다면,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깨닫게 해야 한다.

       

       프리우스 후작은 셀리나가 왜 다섯 종족의 통솔자에 아득바득 매달리는지 잘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 중 하나.

       셀리나의 목표를 위해서는, 그녀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호록ㅡ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차를 한 모금 마신 셀리나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며 조금이나마 활력이 돋아난다.

       

       “하아. 조금 낫네요.”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휴… 여기까지 했으면 조금만 쉬었다가 할까요? 꽤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시죠. 가끔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셀리나가 기지개를 쭈욱 켜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 스트레칭이라는 것은 참 극단적인 종류의 것이었는데, 인간의 관절로는 불가능한 각도로 휘어지는 것이 마치 고양이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았다.

       차라리 서커스에 가까울 지경이다.

       

       ‘허어ㅡ 정말 굉장하군.’

       

       작게 감탄한 프리우스 후작.

       물론 셀리나의 이리저리 흔들리는 꼬리와 귀를 보며 감탄한 것이다. 그는 셀리나의 몸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귀와 꼬리.

       

       “정말이지. 무슨 서류가 해도 해도 끝이 없네요. 정말.”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몸을 파묻은 셀리나가 투덜거렸다. 프리우스 후작이 쓰게 웃었다.

       아직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셀리나 휘하의 조직이 정식으로 개설되기도 전에 북부로 온 것이었으니.

       그만큼 사람이 부족하고 일손이 부족할 수밖에.

       

       “당분간은 별 방법이 없습니다. 급하게 북부로 가야 한다고 재촉한 어떤 분이 계셔서, 사람이 많이 부족하니까요.”

       “풉! 흐, 크흡!”

       

       후작의 은근한 말에 셀리나가 차를 뿜으며 콜록거렸다.

       이것에 대해서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북부로 당장 올라가야 한다고 재촉한 것은 그녀였으니.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린 격 아니겠는가.

       

       “크, 크흠! 흠! 추, 충분히 쉬었으니까 다시 시작할게요.”

       

       셀리나의 선택은 회피.

       

       프리우스 후작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며 다시 서류에 얼굴을 파묻었다. 프리우스 후작도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슥- 사사삭. 사아악.

       

       이윽고 집무실에는 만년필의 소리만이 작게 들려왔다.

       문득 셀리나가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요.”

       

       고작해야 서른 조금 넘는 이들이 세상에 나타났을 뿐인데, 뭔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은지.

       프리우스 후작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세상일이 모두 그런 법이지요. 살아보니까 허투루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살아보니 모든 일이 그렇더라.

       

       “세상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으니,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값진 것 아니겠습니까? 쉽게 얻은 것보다는 노력하며 이룬 것이 더욱 값지고 소중한 법이니까요.”

       

       모진 풍파와 긴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노인의 말은 어쩐지 젊은이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 있었다.

       

       “… 그렇겠네요.”

       

       참으로 그러했다.

       

       

       

       

       

       *****

       

       

       

       

       

       띠링ㅡ!

       

       《밤의 일족, ‘바토리 바르나도트’를 발견했습니다!》

       

       띠링ㅡ!

       

       《밤의 일족, ‘아카드 바르나도트’를 발견했습니다!》

       

       간간이 밤의 일족을 발견했다면서 알람이 울린다.

       나는 사뭇 진지하게 그 모습을 바라봤다.

       

       곰곰히 떠올려 봐도, 분명히 ‘복잡하고 번거롭지만 짧은 기간’의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그런데 지금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두 손은 핸드폰을 놓은 지 오래다. 어떠한 조작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 왜?”

       

       띠링ㅡ! 띠링ㅡ!

       

       약간의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알람이 올라온다. 밤의 일족을 발견했다는 메시지가 천천히 쌓인다.

       

       ‘도대체 왜…?’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았다.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자꾸 밤의 일족을 자동으로 찾아내고 있다.

       

       손이 벌벌 떨리고, 눈이 꽉 조여온다.

       내가 즐겨야 할 컨텐츠가 실시간으로 삭제당하고 있다.

       

       사무실이어서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했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괴성을 지르며 물구나무서고 있다. 

       

       ‘내, 내 컨텐츠가…! 미니 이벤트가!!’

       

       사라져 간다.

       내가 즐겼어야 할 복잡하고 까다로운 내용의 이벤트가.

       

       띠링ㅡ!

       

       나의 플레이 타임이 되어줄지도 몰랐던 이벤트가 실시간으로 사라진다.

       

       띠링ㅡ!

       

       ‘왜,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이게 자동으로 진행되고 있는 건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 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 : 누가 방에서 나오라고 칼 들고 협박함??

    결국 막내가 열일하는 몹쓸 히키 종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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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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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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