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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행복으로 젖은 즐거운 시간은 찰나와 같아, 많은 세월이 지났다.

       

       우리는 수많은 계절을 보냈다. 엘과 에나는 불쑥 자라나 아카데미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고, 쌍둥이의 동생 또한 탄생했다.

       

       무려 셋이나.

       

       나는 프란체가 몸에 부담이 가지 않을까, 걱정되어 조금 미뤘는데…….

       

       그녀가 강압적으로 나와 어쩔 수 없이 부부의 밤을 함께해야 했다.

       

       “아빠! 저 오늘 선생님께 칭찬받았어요! 천부적인 재능? 이 있다고 해요!”

       “그래? 아빠는 처음부터 알아봤어. 에나는 불세출의 천재가 될 거란 걸.”

       

       가장 처음으로 태어난 에나는 나를 닮아 검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기본적으로 감각이 남들과 다르고 본능 또한 인간을 초월했다고 들었다.

       

       달리아에게 자세한 얘기를 들었는데, 내 짙은 초월자의 피를 아이들도 받은 듯했다.

       

       오러 또한 왜곡이라는 특수형 성질을 띠고 있었다. 대륙 역사적으로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성질이었다.

       

       에나가 물었다.

       

       “불세출의 천재가 뭐예요?”

       “어…….”

       

       이걸 모를 줄은 몰랐는데.

       

       에나는 매우 활동적인지라 가만히 수업을 듣는 걸 싫어했다. 따라서 교양이 다소 부족했다.

       

       뭐, 그러면 어떠하리. 내가 알려주면 되는 걸.

       

       “에나가 가진 잠재력이 엄청 뛰어나다는 뜻이야. 그것도 아무나 갖지 못할 정도로.”

       

       싱긋 웃으며 에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길게 늘어져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긴 머릿결이 찰랑거렸다.

       

       “히히, 그러면 엄마한테 또 칭찬받을 수 있겠다.”

       

       눈가에 호선을 그리며 배시시 웃는 에나. 프란체에게 칭찬받을 생각에 벌써부터 신났다.

       

       “아빠 칭찬은 별로야?”

       “아빠 칭찬도 좋아요!”

       

       약간의 서운함을 담아 묻자 에나는 바로 내게 안겨들었다. 요새 느끼는 건데 아이들이 순진할 뿐이지, 눈치가 굉장히 빠르다.

       

       갓난아기 때부터 그랬으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본능인 듯했다.

       

       “그럼 같이 엄마 만나러 갈까?”

       “그래요!”

       

       공작저의 연무장에서 에나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흐뭇하게 웃으며 내 아이를 바라봤다.

       

       에나는 분명 미인이 될 거다. 프란체를 닮아 사교계를 휘어잡을 만한 미모를 가지고 있는데, 흑발도 평범한 흑발이 아니어서 더욱 희귀한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눈도 나를 닮아서 반짝이고.’

       

       바렌베르크 왕족의 상징, 황금안.

       

       대륙 전체에 찾아보면 나와 같은 노란색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많지만, 이처럼 황홀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없다.

       

       “도착했네. 엄마는 엘이랑 같이 있나 본데?”

       

       프란체가 휴식을 위해 자주 머무는 방으로 오니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문 앞까지 새어 나왔다.

       

       “빨리, 빨리 들어가요!”

       

       에나가 재촉하기에 세 번의 노크 이후, 문을 열고 들어섰다. 프란체는 엘을 무릎에 앉히고 같이 마법서를 읽고 있었다.

       

       “어, 왔니?”

       

       우리를 보자마자 싱긋 웃으며 책을 덮는 프란체. 엘도 이쪽을 보곤 슬쩍 웃었다.

       

       ‘엘은 참 어른스럽단 말이지.’

       

       호기심이 폭발할 때는 아이와 같은 모습이지만, 평소에는 어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성숙하다.

       

       생각이 많은 아이라서 그런지, 에나와 비교해서 말수도 별로 없고.

       

       아, 그렇다고 해서 아예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에나와 비교했을 때다.

       

       “프란체. 에나가 오늘 검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칭찬받았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에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에나는 방긋 웃더니 프란체에게 도도도 달려가 품에 안겼다.

       

       “엄마! 나는 불세출의 천재래요!”

       

       근심과 걱정 따위는 볼 수 없는 에나의 얼굴. 엘은 엄마와의 시간을 빼앗겨 다소 심기가 거슬린 듯했다.

       

       “누나,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래?”

       “뭐가?”

       “좀 절조 있게 행동하라구. 매번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애교만 부리지 말고.”

       “뭐래, 너나 좀 애늙은이처럼 굴지 마.”

         

       엘이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하여간, 누나 때문에 내가 저택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엄마랑 아빠와 달리 네 얼굴이 못생겨서 그런 게 아니고?”

       

       티격태격하는 걸 보니 틀림없는 친남매다. 프란체의 눈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엘, 에나? 싸우면 안 되지.”

       

       그러고 손길로 아이들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데, 이러면 엘과 에나는 바로 조용해진다.

       

       “진, 카인이랑 프렌은? 세엔은 수업받고 있을 테고.”

       

       10살의 남자아이. 세엔의 이름은 고대어로 무결한 빛이라는 뜻이다. 올곧게 성장하여 자신을 빛내라는 의미였다.

       

       8살의 여자아이. 프렌의 이름은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뜻이다. 그녀가 가는 곳은 모두 꽃으로 무성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6살의 남자아이. 카인은 고대어로 행운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인생에 행운이 가득하길 기원하며 지은 의미였다.

       

       “지금 유모들이랑 놀이방에 있어.”

       “다행이네.”

       

       현재 우리 아이들은 각각 시간을 분배하여 함께하고 있다.

       

       이전에도 걱정했던 건데 아이는 늘어나지만, 우리의 시간은 한정적인지라 이러한 방침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는 편애하고 누구는 박해하고 그러진 않는다. 최대한 모두에게 공평한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엘은 카자르 교수님 만나러 갈까? 오늘도 마법 알려달라 하면 좋아하실 거야.”

       

       프란체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엘은 흔쾌히 수락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래. 그러면 다녀오렴.”

       “네.”

       

       엘이 자리를 비웠다. 에나는 프란체의 무릎에 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우리 에나, 아카데미 입학하면 여럿 영식들 울리겠네.”

       

       에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프란체가 문득 키득거렸다. 그에 나는 서둘러 에나에게 말했다.

       

       “에나, 기억해. 어떤 영식이 너한테 작업 걸면 무조건 아빠한테 말하는 거야. 알겠지?”

       

       지금껏 보여준 눈빛 중 가장 진지해서 그런 걸까. 프란체가 잔뜩 질색했다.

       

       “에나 혼사길 막을 생각이야?”

       “아니, 그럴 생각은 없고.”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에나 데려갈 정도면 나보다 강해야지.”

       

       이 정도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에나는 공작가의 후계자인데 어중간한 놈이 오면 쓰나.

       

       “맞아요. 저랑 결혼하려면 우리 아빠처럼 강해야죠.”

       

       에나가 배시시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기특한 소리를 하는군. 프란체는 미간을 짚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문득 에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저 할 일 생각 났어요!”

       “뭔데?”

       “라데아 언니랑 놀기로 했는데,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라데아는 동생을 돌봐온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어린아이 상대를 무척이나 잘했다. 에나가 그녀를 잘 따르는 이유도 그런 까닭이었다.

       

       “그럼 다녀오렴.”

       “네!”

       

       그렇게 에나마저 자리를 비우고, 나와 프란체는 오랜만에 단둘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진, 할 얘기가 있는데.”

       “뭔데?”

       

       프란체와 시선을 마주했다. 눈빛에 근심이 가득했다.

       

       “엘이 마법에 대한 재능이 엄청난데, 속성이 너무 특수해서 고민이야.”

       

       목소리에서 그녀의 깊은 고민이 우러나왔다. 꽤 심각한 건가 본데.

       

       “무슨 속성인데?”

       “너와 같은 소멸.”

       “…….”

       

       순간 가슴이 턱하고 막혔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소멸은 그 크기에 맞는 책임이 뒤따른다. 나만 해도 ‘대륙제일검’이라며 바렌베르크의 괴물, 전쟁 병기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모두가 엘을 두려움의 존재로 사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스승인 카자르가 있잖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럼. 우리도 있으니까.”

       

       나는 픽 웃곤 프란체의 어깨를 당겼다. 그녀는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곤 호흡을 들이켰다.

       

       “다들 잘 자라났으면 좋겠네…….”

       

       이전부터 떨쳐놓을 수 없던 프란체의 걱정.

       

       사소한 것으로도 혹여나 아이가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잘못 자라진 않을까 하는 근심으로 가득했다.

       

       “잘 키우고 있잖아. 아이들도 행복해 보이고.”

       

       엘과 에나. 그리고 세엔, 프렌, 카인.

       

       다섯의 아이들은 무사히, 무탈하게 잘 자라날 것이다. 우리가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니까.

       

       품에 안긴 프란체가 꾸물거리며 더욱 파고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좋았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

       

       나는 옅게 웃으며 프란체의 뒷머리를 쓸어넘겼다. 붉은 머릿결에서 흘러나온 장미의 향기가 머릿속에 자욱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야. 아까 엘이랑 에나 못 봤어? 재밌게 보내고 있는 거 같은데.”

       

       다섯 명의 아이들 모두 잘 지내고 있다. 이는 내가 장담할 수 있었다. 나와 프란체 둘 다 사람의 심리를 읽는 눈치는 빠르니 말이다.

       

       “그럼 다행이고.”

       

       그제야 프란체는 밝게 웃었다. 이어서 뺨에 입술을 맞추기까지.

       

       “오늘 동생 하나 만들까?”

       “안 돼.”

       “…왜?”

       

       프란체가 축 늘어져 나를 올려다봤다. 내가 이런 거에 약한 걸 알고 노리는 것이다.

       

       “…이제 그거 안 통해.”

       “칫.”

       

       역시 노리고 있던 거였군. 내가 저거에 넘어가서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그래서 프렌과 카인까지 태어난 것이지만.

       

       ‘원래는 셋이 적당했다고.’

       

       육아에 걱정이 많아 원래 셋까지만 생각했는데, 프란체의 욕심으로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후회 같은 비관적인 마음을 가지진 않는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도, 프란체에게도 몹쓸 짓이니까.

       

       “여러 문제가 있어. 프란체도 알잖아? 지금도 아이들 전부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는 거.”

       

       그리 말하자 프란체는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주억였다. 다행히 납득한 듯했다.

       

       나는 싱긋 웃곤 프란체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이들이 다 자라서 자립하고 우리가 은퇴하게 되면 단둘이 여행을 떠나자. 대륙 전체를 다녀도 좋고, 배를 타고 신대륙으로 가도 좋지.”

       

       순간 프란체가 눈을 번뜩였다.

       

       “신대륙…?”

       “응. 신대륙.”

       “…그런 곳이 있어?”

       

       아, 이거 말 안해줬구나.

       

       “크흠, 아무튼. 여행을 가자는 거야.”

       “…흐응.”

       

       도끼눈을 뜬 채 나를 노려보는 프란체. 딱히 숨길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도 아니다만…….

       

       “뭐, 됐어. 그런 대단한 정보는 나중을 위해 아이들에게 넘겨줘야겠지.”

       

       다행히 넘어갔군.

       

       누군가 먼저 발견할 가능성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신대륙으로 가는 조건은 단순히 배를 탄다고 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여행은?”

       “당연히 가야지.”

       

       프란체가 배시시 웃었다. 무결한 미소에 입꼬리가 씰룩였다.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그때.

       

       덜컥! 별안간 방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엄마!”

       

       당연하게도 아이들이 먼저 찾는 건 프란체. 그 누구도 아빠 언급을 하지 않아 시무룩해졌다.

       

       “다들 무슨 일이야?”

       “그냥 다 같이 엄마 보려고!”

       

       엘과 에나부터 시작해 세엔, 프렌, 카인까지. 표정을 보니 모여서 계획을 짠 게 틀림없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들과 아가씨들께서 꼭 보셔야겠다고…….”

       

       헬레나가 기죽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괜찮아. 아이들 보는 건데 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프란체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면, 모처럼 다 같이 모였으니 바깥으로 나들이 갈까?”

       

       프란체가 웃으며 말하자 아이들은 네, 하고 소리쳤다. 우리 아이들 아니랄까 봐 대답도 동시에 한다.

       

       “아빠도 빨리!”

       “엄마 기다려요!”

       

       아이들이 단체로 내 팔을 잡아당겼다. 프란체는 살갑게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나가자. 날씨도 좋으니까.”

       

       나는 그저 웃으며, 우리 가족과 함께 저택 바깥으로 나갔다.

       

       꽃가루가 휘날리는 봄. 시각은 점심.

       

       햇볕이 따스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다 같이 나들이를 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외전이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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