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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본래 지구는 인간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었다.

        뭐, 지구 표면의 71%가 바다고, 바다는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았으니 지구가 인간에게 정복되었다고 보기에는 좀 어렵지만…… 어쨌든 육지만 따지자면 그렇다는 소리다.

        육지 중에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게이트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그 안에서 이계의 생물이 출현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인간이 점령하고 있던 곳을 이계의 생물에게 빼앗겼고, 본래 인간의 손길이 닿기 어려웠던 곳은 아예 엄두도 못 내는 인외마경이 된 것이다.

       

        그런 현대의 인외마경 중 하나.

        아마존 우림에선 거대한 생물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 음. 따뜻한 햇빛.

       

        멸천룡 그랑 라그나의 셋째이자, 그녀의 장녀.

        초목룡 아르나 헤니시아. 그녀가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쿵! 쿵!

       

        끼룩! 끼룩!

       

        끼끼끼!!

       

        우어엉!

       

        아마존 우림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배자의 움직임에, 아마존에 서식하던 수많은 생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에 나무가…… 작은 숲이 자라나 있는 그녀는, 이미 걸어 다니는 작은 ‘섬’ 혹은 ‘산’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녀의 움직임은, 단순히 거인이 움직이는 것과 다르다.

        그야말로 하나의 생태계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걸어 다니는 하나의 생태계.

        초월자라는 이름이 이상하지 않은 거대한 존재.

       

        초목룡 아르나 헤니시아는 오늘도 지배자로서의 위엄을…….

       

        뾰옹!

       

        = 언니!

       

        = ……에휴.

       

        헤니시아는 오늘의 일정을 빠르게 포기했다.

        그러곤 헤니시아의 뿔 끝을 쯉쯉 빨기 시작하는 슈르네에게 물었다.

       

        = 우리 슈르네. 무슨 일로 언니를 찾아왔을까?

       

        = 심심해! 놀자!

       

        = …….

       

        헤니시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첫째…… 아니, 블레이즈 오빠가 한 달간 놀아준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헤니시아가 아마존 우림에 처박혀 있다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세상 물정을 모르지는 않았다.

        벨제투스라면 모를까, 헤니시아는 적어도 인간 세상에 대한 소식 정도는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그렇기에 요즘 떠들썩한 블레이즈의 부상 소식과, 그런 블레이즈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슈르네의 사진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어떻게든 슈르네를 큰오빠에게 토스해 버리려는 헤니시아의 공격!

        그런 헤니시아의 공격에 막둥이가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 질렸어!

       

        = 쳇!

       

        큰오빠나 되어서 말이야! 좀 더 슈르네랑 열성적으로 놀아주지도 못하냐?!

        블레이즈는 억울하게 원한을 받아버렸다.

        물론 형제자매 사이에서는 합법 원한이었다.

       

        어쨌든 큰오빠에게 토스는 실패.

        그렇다면…….

       

        = 벨제투스 오빠는 어때? 둘째 오빠라면 바닷속 구경도 막 시켜줄 거야.

       

        장녀는 막둥이를 다른 오빠에게 떠넘기려는 사악한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그런 헤니시아의 음모도 통하지 않았다.

       

        = 그건 안 돼!

       

        = ……왜?

       

        = 벨제투스 오빠는 지금 중요한 모험을 하는 중이야!

       

        = ???

       

        이 아이가 지금 뭐라는 거야?

        벨제투스 그놈이 지금 영국에 있다는 정보는 확보했지만, 그게 모험이랑 뭔 상관이지?

        헤니시아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같이 놀~자!

       

        = 그으으으…….

       

        헤니시아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슈르네는 드래곤 가족의 귀염둥이다. 그들 중 슈르네를 싫어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일단 막내라서 귀엽고, 아버지의 끔찍한 최후를 경험하지 않은 아이이며, 동시에 그들 중 가장 ‘드래곤다운 아이’이기 때문이다.

        헤니시아도 결코 슈르네를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싫어하지 않는 거랑, 피곤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분명히 슈르네는 귀엽지만, 그 귀여움의 대가로 곁에 있는 이들을 어마어마한 피곤함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어머니! 이 아이를 어떻게 혼자 키우셨나요?’

       

        이렇게 가끔 슈르네와 같이 놀아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슈르네를 혼자의 몸으로 키워 낸 어머니가 존경스러워지고는 한다.

        동시에 헤니시아가 짝짓기를 알게 모르게 기피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슈르네를 볼 때마다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팍팍 깎여나갔기 때문이다.

       

        = 언니!

       

        = …….

       

        귀여운 피곤함의 폭풍이 다가온다.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재앙이 미소를 짓는 광경에, 헤니시아의 온몸에서 식은땀이 뻘뻘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진짜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는 소리는 아니다. 헤니시아는 ‘땀샘’이 없었으니까.

        그냥 그런 기분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하지?

        사정이 있다고 할까?

        시간이 없다고 할까?

        슈르네가 분명히 달라붙을 텐데?

       

        헤니시아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며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중 최적의 선택지를 고르는 순간이었다.

       

        = 언니? 혹시 나랑 놀기 싫어?

       

        = …….

       

        울먹울먹!

       

        막내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마주친 순간, 헤니시아는 직감했다.

        안녕. 내 체력아.

       

        = 놀자.

       

        = 그랭!

       

        헤니시아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슈르네에게 끌려갔다.

        여름이었다.

       

        ……아마존은 일 년 내내 여름이긴 했지만.

       

       

        *            *            *

       

       

        한편 슈르네가 사라진 한국의 한 단독주택.

        추리닝 차림의 잘생긴 남자가 소파에 축 늘어졌다.

       

        “드디어 갔네…….”

       

        “어어…….”

       

        블레이즈와 마찬가지로, 슈르네의 장난에 함께 휘말렸던 이현도 바닥에 드러누운 채 신음을 흘렸다.

        그런 그들의 주변은, 온통 어질러진 물건들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크레파스.

        먹다 남겨진 피자 박스.

        박살 난 플라스틱 지뢰…… 아니, 블록 조각.

        액정에 금이 간 태블릿.

       

        전부 한 마리의 드래곤이 머물다 간 흔적들이었다.

       

        “야. 블레이즈.”

       

        “뭐냐?”

       

        “도대체 너희는…… 무슨 삶을 살아온 거냐?”

       

        “…….”

       

        이현은 진심으로 블레이즈를 동정했다.

        그리고 한낱 인간에게 동정을 받게 된 블레이즈는 어이가 없었지만, 동시에 그 동정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자기 모습이 서글퍼졌다.

        아버지! 왜 하필 슈르네를 두고 가셨습니까!!

       

        그렇게 축 늘어진 둘은, 간신히 기력이 돌아오자마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섬주섬 엉망진창이 된 집 안을 정리하고, 둘은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몰골로 앉아 있던 둘 중, 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블레이즈.”

       

        “왜, 파트너?”

       

        “오늘 치맥 고?”

       

        “……콜.”

       

        그렇게 그들은 그날 축배를 들었다.

        드디어 휴식이다!!!

       

       

        *            *            *

       

       

        이곳은 영국 런던.

        영국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요리 중 하나인 ‘정어리 파이’를 우물거리던 벨제투스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맛있군!”

       

        “…….”

       

        진짜로?

        벨제투스의 안내역이자 시종 역할을 맡고 있던 미스 제이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영국인인 자신조차도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영국 음식인데, 진짜로 저 정어리 파이가 맛있단 말인가?!

       

        미스 제이가 자기 두 눈을 의심하는 사이에도 벨제투스의 입은 쉬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 나온 모든 음식들을 전부 먹어 치울 기세로, 전부 한입씩 입안에 집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퉷! 이건 별로군.”

       

        “…….”

       

        물론 아닌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싸가지는 기본적으로 없었고.

       

       

        인간들의 눈초리를 받는 드래곤의 아바타.

        벨제투스의 아바타는 모든 음식들을 먹어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어머니께 가져가야겠군.’

       

        그가 왜 갑자기 영국에서 음식 탐방을 시작했는가?

        그 이유는 생각보다 아주 간단했다.

        그는 그냥 ‘먹이’를 물고 어머니를 찾아뵈려는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어머니가 인간들 앞에서 구애의 춤을 추고 있다는 말에(그는 아직 슈르네의 유언비어를 믿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어머니를 만나 뵈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어머니를 찾아뵐 때가 된 순간 벨제투스는 깨달았다.

        현재의 자신은 ‘빈손’이라는 것을!!

       

        ‘뭔가…… 먹이라도 챙겨 가야 하지 않을까?!’

       

        봐라.

        그가 그렇게 싫어하는 인간조차도 부모를 찾아가는 자식들은 먹이를(아니다) 챙겨 간다.

        그런데 드래곤인 자신은 아무것도 챙겨 가지 않는다?!

       

        ‘그럴 수는 없지!’

       

        ……그 결과가 지금, 이 꼬라지였다.

       

        “좋아. 이거랑 이 먹이를 더 내와라.”

       

        “……테이크아웃?”

       

        “테이크아웃으로.”

       

        맛이 괜찮았던 ‘정어리 파이’와 ‘장어 젤리’를 포장해 호텔로 귀가하기 시작한 벨제투스.

        그 뒤를 따라가며 미스 제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먹지도 않을 음식들을 저렇게 바리바리 싸가는 거지?’

       

        오늘도 호텔 한편에 쌓인 채 상해가는 음식들을 떠올리며, 미스 제이는 의문을 표할 뿐이었다.

        그것이 한 드래곤의 어이없는 착각 때문임을 꿈에도 모른 채.

       

       

        *            *            *

       

       

        새로운 날이 밝았다.

        오늘의 방송 시간이 오기 전, 나는 아바타의 모습으로 천천히 내 방을 나섰다.

       

        “자예.”

       

        “네.”

       

        “그 아이는 왔느냐?”

       

        “그렇습니다.”

       

        자예의 대답이 들려옴과 동시에, 큰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호호호호!! 절 찾아주셔서 감사드리옵니다! 주인님!”

       

        따각! 따각!

       

        크나큰 웃음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여인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

       

        허리 위쪽은 일반적인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녹색의 머리카락은 틀어 올려 ‘비녀’로 고정했고, 한쪽 눈에는 인간들이 ‘모노클’이라고 부르는 외눈 안경과 비슷한 것을 끼고 있다.

        다만 그녀의 두 눈 옆에는, 각각 ‘작은 눈’이 두 개씩 더 존재하고 있었다.

        즉, 총 6개의 눈을 가진 여인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허리 아래쪽은 아예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거미의 몸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 아이는 인간들이 ‘아라크네’라 부르는 종족의 계보를 잇는 아이다.

        그리고 이 게이트에 세워진 임시 도시에서 ‘인연의 실잣기’라는 의류점을 운영하는 아이기도 하다.

        그 이름은…….

       

        “반갑구나 청류야.”

       

        “호호호.”

       

        내 말에 ‘청류’가 다소곳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청류는 ‘도시 구경’에서 잠깐 나왔습니다.

    착한 어린아이에게 옷들을 바리바리 선물해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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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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