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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마신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키엘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날아드는 날개의 갯수가 현저히 줄었다. 회귀자들의 수가 그만큼 늘어난 탓이다.

         

       쩌저적!

       

       날개를 베어낼 때마다, 키엘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분명 마기로 둘러싸여 있고, 얼굴에는 표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눈 앞에 있는 존재는 분명 올리비아였다.

         

       키엘은 손잡이를 꾸욱, 눌러쥐었다.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남은 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것을 키엘은 알았다.

         

       베어 넘길 때마다 붉은 피가 터져나오듯 솟구친다. 친우의 피다.

         

       “…….”

         

       검의 끝에 닿았기에 비로소 알 수 있다.

         

       마신은.

         

       올리비아는 지고 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키엘은 입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비명을 지른다.

         

       이곳에서 올리비아와 동귀어진 하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

         

       이대로 죽는다면, 도망치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키엘은, 황제와 대마녀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저 놈도 참 빌어먹을 새끼야. 안 그래?”]

         

       초월적인 감각 탓에 뇌리에 새겨져버린 대화.

         

       [“내가 올리비아였으면 과거의 인연이고 뭐고 싸그리 죽여버렸을텐데. 은혜도 모르는 짐승만도 못한 년놈들을 뭣하러 살려줘?”]

         

       물론 그 대화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키엘은, 자신도 그들과 별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불현듯 든 생각이었다.

         

       무뚝뚝하고, 독선적이고, 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 이 오만한 검사가.

         

       과연 올리비아를 몇 번이나 상처 입혔을까.

         

       한 두번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훨씬 많겠지.

         

       [속죄하고 싶다고 말했지?]

         

       이런 것으로 속죄할 수 있을리가 없다. 마신을 죽인다고 한들, 아무리 그것이 올리비아가 영겁의 세월 동안 바라왔던 소원이라고 한들.

         

       키엘은, 고작 그런 이유로 스스로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서걱.

         

       깃털이 우수수 잘려나가 사방에 휘날리고, 날갯죽지까지 찢어지듯 잘려나간다.

         

       키엘의 검 끝에서, 검붉은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이 잠시 밝아진다고 착각할 정도로, 불빛은 순식간에 그 크기를 키워갔다.

         

       키엘은 불꽃에 스스로의 생명력을 밀어넣었다. 남은 수명, 앞으로의 여생, 육체의 한계……그딴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 때문에 영겁 동안 고통받아 왔다면.

         

       자신 또한, 영원히 속죄해야 마땅했으니까.

         

       화아아악……!

         

       불꽃이 점점 거대하게 부풀었다. 키엘은, 호흡을 삼키면서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발을 내딛었다.

         

         

       *****

         

         

       올리비아는.

         

       마신의 내면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곱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불리했던 전장은, 아홉이 된 순간 팽팽해졌다.

         

       [“아아아아아……!”]

         

       어느 순간 아홉은 열 하나가 되었고, 열 하나는 열 셋이, 열 셋은 이내 열 다섯이 되었다.

         

       누군가는 분노를 토해냈고, 누군가는 증오를 토해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마신이 아닌 올리비아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었다.

         

       [회귀자, ‘연쇄 살인마’가 ‘필살’을 사용합니다.]

         

       제 혈액을 뽑아내 거대한 낫을 만들어낸 연쇄살인마가 외쳤다.

         

       “올리비아, 눈 감아……!”

         

       카인은, 울상을 지으면서도 억지로 웃음을 만들어냈다.

         

       [다행이야. 너와 내가, 그렇게 친하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하는 회차에서 했었던 말을, 그는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회귀자, ‘아우렐리아’가…….]

         

       [회귀자, ‘멜리나’가…….]

         

       동시에 무수히 떠오르는 메시지들.

         

       문득 머릿속에 예전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세계를 그저 게임으로만 알았을 때, 항상 듣곤 했던 말.

         

       [회귀자 열 다섯이 모이면 플레이어 없이도 마신을 소멸시킬 수 있다.]

         

       지금 저들의 숫자 또한, 정확히 열 다섯 명이었다.

         

       ‘아리아가 두 명이니까.’

         

       그 말이 맞았다는 것을, 저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높이 든 검이 떨어졌다. 공간을 통째로 양단하는 무거운 참격이 마신을 덮쳤다.

         

       마신이 다급히 날개를 움직인다. 하지만 덮쳐오는 참격을 막기에는, 그 숫자가 현저히 부족했다.

         

       검술, 마법, 신성력, 초능력, 인력(人力).

         

       방패, 화살, 카마, 낫, 용언, 정령력.

         

       주력(呪力), 그리고 지력(智力).

         

       온갖 종류의 능력들이, 마신의 날개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다. 분명 마신의 재생 능력에는 한계가 없었다. 하지만 회귀자들이 날개의 움직임을 묶는 것에 주력한 순간부터, 승부의 향방은 정해져 있었다.

         

       스스로 날개를 뜯어내지 않는 이상, 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라.

         

       꽈드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마신의 몸이 꺾였다. 힘을 버텨내지 못한 무릎이 주저앉혔다. 아슬아슬하게 머리가 양단되는 것은 피했지만, 키엘의 검은 어깨를 찢어버리다 못해 복부 언저리까지 갈라버렸다.

         

       그 뒤를 따라 멜리나의 마법이 쏘아졌다.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 황금빛 사슬이 마신의 몸을 붙들었다.

         

       ……드드드.

         

       마신의 몸에 상처가 늘어날수록, 올리비아가 있는 공간 또한 조금씩 붕괴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시멘트가 떨어져 나가듯, 외곽에서부터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후우…….”

         

       ‘올리비아’가 긴 숨을 내뱉었다. 울컥거리며 쏟아지는 피가 입술을 타고 온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애써 올라오는 피를 삼키고는 있지만, 아무리 삼켜도 계속해서 올라오는 듯 보였다.

         

       머리색은 완전히 검게 변했다.

         

       눈동자는 검어지다 못해 핏줄이 도드라져 붉은 빛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올리비아’의 얼굴에는 고통스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쪽을 응시했다.

         

       “결국 이렇게 되었네요.”

         

       ‘올리비아’는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마신의 불멸성을 제 안에 봉인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그녀의 상반신은 어느덧 너덜거리게 변해 있었다.

         

       “……더 버티고 싶었는데 말이죠.”

         

       ‘올리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띄웠다. 화면 너머의 전투는 점점 격렬해졌고, 그럴수록 ‘올리비아’ 또한 초췌하게 변해갔다.

         

       드드드.

         

       다시금 어둠 너머에서 떨리는 듯한 진동이 들려왔다. 올리비아의 눈은 조금씩 무너지는 이 공간에 집중되어 있었다.

         

       만약 이 공간이 전부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 죽을까?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는 있는걸까? 질문을 하려면 지금뿐이었다.

         

       “……나는 돌아갈 수 있는거야?”

         

       당연히 물어볼 수 밖에 없는 질문에 ‘올리비아’는 잠시 침묵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거든.”

         

       진동이 거세질수록, 올리비아도 자연스레 동요할 수 밖에 없었다. 심리를 자극해 답을 재촉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짓은 아니다. 비록 ‘올리비아’와 동화된 탓에 이 세계에 소속감과 정을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그동안 수많은 거짓을 진실인 양 포장해왔다. 비록 지금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언제까지고 진실을 숨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드러나겠지.’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내릴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올리비아’는 점점 빛이 꺼져가는 화면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상위 차원의 존재니까요.”

       “상위 차원?”

       “제가 임의로 붙인 이름입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다른 차원의 역사를 관측할 수 있다면 상위, 관측당한다면 하위. 보통은 이런 책의 형태로 구현되고는 하지요.”

         

       그렇게 말하는 ‘올리비아’의 손에는 책이 한 권 들려 있었다.

         

       [레오드란트 일대기]

         

       알고 있는 책이었다. 아리아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소설이었으니까.

         

       “그렇다면……그 책에 적혀있는 내용이 어딘가에서 진짜 일어났던 일이라는 거야?”

       “하위 차원의 모든 사건은 이미 일어났고, 또 일어나고 있는 중이지요.”

       “…….”

       

       어려운 말이다. 적어도 올리비아가 느끼기로는 그랬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왜 자신을 상위 차원의 존재라고 말했는지.

         

       ‘락테아.’

         

       자신은 게임의 형태로 이 세계를 관측했었으니까.

         

       “……후우.”

         

       ‘올리비아’는 감겨 있던 눈꺼풀을 애써 들어올렸다. 이제는 그조차도 힘겨운 듯 보였다.

         

       “너무……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어떻게든 돌아갈 수 있을테니까요.”

         

       드드드.

         

       또 다시, 거센 진동이 울렸다. 올리비아의 눈은 ‘올리비아’의 뒤쪽 그림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쉴새없이 꿈틀거리는 그림자에.

         

       꽈드드득!

         

       ‘올리비아’는 그런 그림자를 손으로 더듬어 억세게 붙잡았다. 이제는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올리비아는, 입을 다물었다.

         

       최근까지 그녀와 동화되어 있었기에, 그녀가 얼마나 큰 고통을 느끼고 있을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지지직……!!

         

       전장을 비추던 화면은 이제 깜빡이다 못해 버벅거리는 노이즈로 가득했다.

         

       그토록 바랬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당연히 기쁠 줄 알았는데, 왜인지 가슴은 답답하기만 했다.

         

       가장자리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내면세계는,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이.”

       

         

       ‘올리비아’.

       

       

       아니.

       

       

       올리비아가 내 손을 잡았다.

       

         

       “……이걸로…….”

       

       어느새, 내 손에는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들려 있었다.

         

       내 숨이 잠시 멈추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옅어질수록, 내 눈동자는 커져만 갔다.

         

       “…….”

       

       올리비아는 조금 더 강하게 내 손을 잡았다.

         

       ‘죄책감 가지지 말아주세요.’

         

       그녀는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했다.

         

       ‘저는 행복했어요.’

         

       억지로 자아낸 미소가 아니었다. 그녀는 매 순간 진심이었다.

       

       올리비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는 대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Ilham Senjaya님!!!!!!!!!!!!

    아마 다음 화가 마지막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처 풀지 못한 이야기들은 외전의 형태로 연재될테니 걱정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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