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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아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건 진심이었다. 나는 소희나 다른 아이들의 성적 지향이 어떻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나만 해도 남자가 아닌 여자를 좋아하니까. 몸은 사라의 몸인데, 안에 있는 나의 성적 지향이 여전히 남성의 것이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나도 동성애자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보다, 이 세계에서 그런 것을 따지며 차별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기도 했고. 무려 한국에서까지 동성결혼이 합법인 세계관이다. 여자애가 다른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이유 자체가 없다.

       

       지금 당장 나한테 중요한 건…… 소희가 여자를 좋아하는지 아닌지가 아니다.

       

       지금 분위기가, 딱 나한테 뭔가 고백할 것이 있다는 분위기였으니까.

       

       그저 자기 성적 지향만 말하려는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인제 와서 굳이 밝힐 이유가 단 하나밖에 더 있냐, 이거다.

       

       나의 대답에 용기를 받은 것일까. 소희는 얼굴을 들었다.

       

       여전히 완전히 새빨간 얼굴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의 주눅 든 것 같은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보다는, 기대감이 서린 얼굴이었다.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대한 안도.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할 말에 대한 기대감.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소희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한동안……아니, 내가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계속,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기해왔어. 여자에게는 관심 없는 척, 그냥 친한 친구인 척.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신체접촉에 조금 흥분한 적도 있어.”

       

       아마 그랬을 거다. 나라도 여자애들이 ‘친구’라면서 달라붙는다면,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니 사실, 이쪽 세상으로 와서도 그랬다.

       

       그래서, 그 이야기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뭐, 그래도 남자를 좋아하는 척은 할 수 없었지만 말야. 그래도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연기는 그럭저럭해냈다고 생각해.”

       

       나는 처음부터 소희의 성적 지향을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그 사실을 몰랐다면, 소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까?

       

       ……아마도 달라졌겠지.

       

       처음 소희를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았다.

       

       사실, 우호적인 만남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내가 소희 머리 위에 치마를 그대로 덮어버리고, 소희는 내 멱살을 잡는 것이 첫 만남이었으니까. 소희가 게임의 히로인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소희 얼굴에서 나오는 빛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과연 소희를 지금과 똑같이 대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이내 그런 가정은 해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 만날 때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 같은 것은, 인제 와서 생각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소희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으니까.

       

       소희뿐만이 아니다. 하늘이도, 수아도, 게임상으로 알 수 있었던 단편적인 이미지들과는 다른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시련을 척척 해결해나가는 완벽 초인이 아닌, 그저 정보만 물어다 주는 인간 카피바라가 아닌, 그저 남들 하라는 대로 하기 싫어할 뿐인 양아치일 뿐만인 게 아닌, 다양한 모습들.

       

       그러니까, 우리가 쌓아온 관계는 그 모든 정보와는 별개다. 첫 만남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지언정 나와 소희 사이에 쌓인 관계는 우리들의 노력과 추억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소희를 올려다보았다.

       

       소희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서도, 힘 있는 표정으로, 확실한 목소리로 선언하듯 말했다.

       

       “나, 이제 너의 앞에서는 연기하고 싶지 않아.”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희는 미소를 짓고—

       

       그대로 내 양어깨에 손을 얹었다.

       

       “으헤……?”

       

       내가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소희의 양손에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소희는 우리 넷 중에서도 덩치도, 힘도 가장 좋은 편에 속했다.

       

       넷 중에 제일 약골인 내가 어떻게 버텨볼 힘이 아니었다.

       

       푹, 하고 침대로 그대로 쓰러진 나에게, 소희가 얼굴을 바싹 붙였다.

       

       “나, 평소에 야한 생각 많이 해.”

       

       “어……?”

       

       소희의 다소 뜬금없는 고백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되물을 뿐이었다.

       

       “예전부터 그랬어. 주변 여자애들이나, TV에 나오는 아이돌이나 연예인들 보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아, 저런 여자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이 끌어안고, 키스하고,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야기가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이런 고백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다른 아이들은 곧바로 좋아한다고 말했었으니까.

       

       아니, 뭐, 나도 어릴 때 망상 같은걸 하긴 했는데.

       

       “그렇게 혼자 상상만 하면서 살다가, 너를 본 거야.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무지막지하게 자극적인 만남이었으니 기억난다. 그거 잊어버리는 건 아마 평생 시간이 흘러도 불가능하겠지.

       

       “나, 아직도 그때 기억하거든?”

       

       “어, 아, 엩.”

       

       뭐라고 대답하려고 해봤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내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어쩌면 이 몸은 쿨링 효율이 지독하게 떨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뭐만 하면 머리 위로 열이 뻗쳐서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되니까.

       

       공기와 만나는 표면적이 작아서 그런가? 하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허튼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아니.

       

       이건 도피였다.

       

       지금 당장 내 시야를 가득 채운 소희의 생각으로부터 어떻게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에 의한 도피.

       

       나에게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는 소희에게 예의는 아니었지만—

       

       —아니, 솔직히 지금 상황이 너무 자극적이잖아.

       

       소희의 드레스는, 소희의 몸매의 장점을 아주 정확하게 드러내 주는 드레스였다. 사실 처음 봤을 때 예쁘다는 생각은 해도 야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는데,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매일같이 소희의 앞가슴을 보며 살고 있었다.

       

       교복을 입을 대는 단추를 몇 개나 풀었고, 집에서 업무가 끝났을 때도 단추를 몇 개나 푼 셔츠에 아주 짧은 돌핀 팬츠만 입었으니까.

       

       아마도, 그래서 이상하게 적응이 되어버린 탓이리라. 내가 소희의 드레스 차림을 보고 그저 ‘아가씨 같다’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소희의 드레스는, 가슴 부분이 꽤 깊게 파여 있었다.

       

       서 있을 때는 그럭저럭 정숙함과 야함의 사이에 걸친 수준이었지만, 이렇게 ‘엎드린 소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세라면…….

       

       무게감 있는 흉부가, 중력에 의해 그 모양과 무게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조금은 헐렁한 드레스 또한 마찬가지다. 중력에 의해 그 가운데 부분이 한껏 아래로 내려가, 엄청나게 야했다.

       

       그런 나의 시선을 느낀 걸까.

       

       “너는 어때?”

       

       소희는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어, 으에?”

       

       “방금, 내 가슴 봤잖아? 어때?”

       

       소희의 얼굴이 몇 센티미터 정도 가까이 다가왔다.

       

       평소였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리라도, 이렇게 가까운 상태에서 더 다가오니 몇 센티미터라도 그 파괴력이 어마어마했다.

       

       “너도, 야한 생각 해?”

       

       “…….”

       

       한다.

       

       당연히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하고 있어.”

       

       소희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찰 정도로, 아니, 시야에 넘칠 정도로 가까워졌다.

       

       “매일같이, 같은 생각을 해. 그날 이후로—”

       

       소희가 말할 때마다, 그 숨결이 나에게 와서 닿는다.

       

       “—너를 본 이후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은 나지 않아. 그날 봤던 그 광경, 그 후에 보아온 너의 모습. 오로지 너의 모습만 생각나. 그 이후로, 내가 하는 야한 생각에는 오로지 너밖에 없어.”

       

       “…….”

       

       뭐…… 뭐라고 받아줘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내가, 소희의, 그, 그렇고 그런 일을 하는데 소재거리가 되고 있다는 말인가?

       

       내가 들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그 발언에,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래서, 생각했어. 오늘부터, 그 상상이 현실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 하고.”

       

       그래도 내 위에 엎드려 있어서 몸끼리는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소희가 그 몸을 서서히 붙여오고 있었다.

       

       소희가 입은 드레스는 결코 두꺼운 드레스가 아니다. 당연히, 소희의 그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내 입술에, 소희의 입술이 겹쳤다.

       

       하늘이와 수아가 그저 입술을 겹쳤다면, 소희는 입술을 살짝 열었다 닫기까지 했다.

       

       그 옛날 그렇고 그런 영상에서 보던 것처럼 적나라한 모습까지는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충격적이었다. 꿈속에서의 사라도 그렇게까지 행동하지는 않았으니까.

       

       “자, 잠깐만, 소희야!”

       

       입이 살짝 떨어지는 틈에, 나는 그렇게 외쳤다.

       

       소희의 눈이 살짝 커진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안 그래도 붉던 얼굴이 더더욱 새빨갛게 변한 소희는, 얼른 몸을 떼었다.

       

       조금 전까지 딱 달라붙어 있던 몸이 떨어지면서, 오히려 그 ‘붙어있었다’라는 사실을 더 상기시켰다.

       

       “소, 소희야, 우리는, 그, 아직…….”

       

       “……아직……?”

       

       어느새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소희가 되물었다.

       

       다만 손가락 사이로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잘 가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우, 우리는, 미성년자잖아!”

       

       내 말에, 소희의 입이 벌어졌다.

       

       물론 가려서 안보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다.

       

       “……그렇구나.”

       

       정말 의외로, 소희는 이해한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직 내 몸 위에서 내려오지는 않았지만.

       

       “그럼,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다는 거네?”

       

       “……어?”

       

       “약속했다?”

       

       “……어으에?”

       

       소희의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소희는 얼른 몸을 내려서, 나에게 가볍게 입맞춤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사라’한테도 미리 전해놔! 나는 그 날만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알았지?”

       

       그리고 상쾌한 표정으로— 

       

       정작 몸은 신나게 도망가고 있었다.

       

       “아, 어, 잠깐만, 소희야……!”

       

       황급히 몸을 일으켜 쫓아가려고 했지만, 소희는 이미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 뒤였다.

       

       …….

       

       큰일 났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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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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