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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그녀가 전장으로 돌진하자, 그녀의 뒤를 따라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따라나섰다. 주변에서 적의 화살이 날아들지만, 방패와 갑옷은 가뿐히 막아낸다. 
    ​
    ​
    마법이 걸려있어 막아낼 수 없는 화살은 그녀의 검에 두 동강 났다.
    ​
    ​
    전장을 누비며 적을 쓸어버리기 시작하자 아군의 병사들은 고무되어 사기가 크게 올라 두려움을 모른 채 앞으로 돌진했다.
    ​
    ​
    노아는 과감하게 적군의 한가운데로 돌진하여 일격으로 흑마법사를 쓰러뜨렸다. 연속적으로 검을 휘둘러 적들을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에 적의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터는 혼돈으로 가득 찼다. 격렬한 전투로 인해 피비린내가 무겁게 깔렸고, 병사들의 비명과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
    두 진영 모두 더 이상 싸움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
    ​
    ​
    “퇴각하라!”
    “물러나!”
    ​
    ​
    좀비나 다름없는 마왕 진영 병사들이 물러나기 시작하자, 제국 쪽 지휘관은 빠르게 물러날 것을 명령했다.
    ​
    ​
    이런 싸움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
    ​
    ***
    ​
    ​
    “후우…”
    ​
    ​
    노아가 투구를 벗자 젖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고, 땀에 젖은 얼굴이 드러났다. 표정 속엔 지친 기색이 가득했지만, 눈빛은 폭풍우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등대처럼 굳건하게 빛나고 있었다.
    ​
    ​
    철컹, 철컥.
    ​
    ​
    노아가 느리게 주둔지를 가로지르기 시작하자, 갑옷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
    ​
    주둔지의 중심에는 천막으로 이루어진 막사가 세워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수많은 막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막사들 사이를 병사들이 끊임없이 오가며 부상병을 옮기고 물자를 정리했다.
    ​
    ​
    “아으윽..”
    “아아악!”
    ​
    ​
    고동에 찬 신음이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졌다. 노아는 주변의 비명을 익숙하게 넘기며 제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
    ​
    노아가 막사 안으로 사라지자, 그나마 멀쩡한 꼴을 한 병사들이 입을 열었다.
    ​
    ​
    “하… 나 목 제대로 붙어있지? 기사님이 조금만 늦게 나타났어도 여기에 멀쩡한 꼴로 앉아있진 못했을 거야.”
    “정말 굉장한 싸움이었어…”
    “어쩌면 우린 영웅의 시작을 함께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
    ​
    노아의 경이로운 실력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병사들은 입이 마르도록 감탄을 쏟아냈다.
    ​
    ​
    “영웅은 무슨…”
    “평민 주제에 운이 좋았을 뿐이지.”
    “지휘관에게 대준 거 아니야?”
    “그거네, 반반한 얼굴로 꼬셔서 쓸만한 무기라도 얻었나 보구만.”
    ​
    ​
    그런 노아를 시기 질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말을 쏟아내는 이들은 전장에 서지 않는 귀족 핏줄이 많았다. 공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전선까지 달려왔지만, 겁이 많고 경험이 한미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이었다.
    ​
    ​
    그들은 언제든지 상황이 위험해지면 쥐새끼보다 빠르게 도망칠 준비를 한 상태였다. 그런 주제에 노아에게 열등감을 불태우며 틈이 날 때마다 그녀를 씹어댔다.
    ​
    ​
    “마왕군 쪽에서 날뛰고 있는 그 하얀 가면 녀석이 우리 쪽에도 나타나 줬으면 좋겠군.”
    ​
    ​
    한 귀족이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다른 귀족이 냉소적으로 웃으며 맞장구쳤다.
    ​
    ​
    “하핫, 기고만장하던 그 녀석이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하군.”
    ​
    ​
    노아 덕분에 그나마 안전하게 주둔지에 머무를 수 있다는 걸 망각한 채, 적군이 노아를 한 방 먹이길 기도까지 했다.
    ​
    ​
    예민한 감각을 가진 노아는 귀족들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지만 익숙하게 무시해버렸다.
    ​
    ​
    “수고했어. 여기, 물.”
    “아, 고마워.”
    ​
    ​
    노아는 릴리가 건네는 수통을 받아 목을 축였다. 막 전장에서 돌아온 몸은 잔뜩 흥분한 상태라 목이 마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바짝 마른 땅에 물을 뿌린 것처럼 숨 쉴 틈도 없이 물이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졌다.
    ​
    ​
    슥.
    ​
    ​
    릴리는 물을 마시는 그녀의 앞에 종이 한장을 내려놓았다. 노아는 수통을 입가에서 떼어내며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녀의 시선이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향했다.
    ​
    ​
    “정말 이걸로 괜찮겠어?”
    ​
    ​
    릴리는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대상단에서 발행한 어음과 노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
    “이거면 돼.”
    “…지금까지 모은 돈이면 충분하지 않아?”
    “안돼, 아직 부족해.”
    ​
    ​
    노아는 용병으로 고용되어 전장에 한 번 나갈 때마다 수도 외곽에 위치한 2층 저택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받고 있었다.
    ​
    ​
    지금까지 받은 돈을 전부 합치면 수도 중심에 있는 마당 딸린 주택 정도는 구할 수 있을 터였다.
    ​
    ​
    돈을 모아 집을 사겠다던 노아의 말은 이미 지켜지고도 남을 돈이었다. 다른 곳에 돈이 더 필요한 거라면 모를까, 여전히 집을 사는 게 최종 목적인 상황에서 돈에 집착하는 노아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
    ​
    “도대체 어떤 집을 사려고 그러는 건데?”
    ​
    ​
    릴리가 치미는 불길함을 꾹 누르며 묻자, 노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
    ​
    “커다란 집을 살 거야. 집 안에 모든 게 있는 안락한 집.”
    “아 -.. 은퇴하는 용병들이 살고 싶어 하는 그런 집?”
    ​
    ​
    큰돈을 벌어 은퇴하는 용병들은 대다수 한량처럼 여생을 보내고 싶어 했다. 커다란 집에 시종들이 제 수발을 들고, 그저 뒹굴뒹굴하는 그런 노후를 원했다.
    ​
    ​
    릴리는 노아가 원하는 것이 그런 한량 같은 삶이라고 짐작하고 웃어 보였다. 노아는 그런 릴리에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집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
    ​
    꽤 자세한 계획에 릴리는 안도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
    ​
    “그런 좋은 집에서 살면 너무 편해서 잘 안 나가게 될 것 같아.”
    “그래…? 다행이다.”
    ​
    ​
    속삭이듯 흩어지는 “다행이다.”라는 말이 묘하게 불길한 느낌을 줘 릴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아는 누군가를 가둬두기 적합한 신혼집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떠올려보며 어음을 챙겼다.
    ​
    ​
    언제 제 곁을 떠날지 모를 존재를 사랑하게 된 그녀는 끈기 있게 앞으로의 일을 머릿속에 그려갔다.
    ​
    ​
    불행을 붙잡고 있어 봐야 발목만 붙잡히기에 노아는 최대한 희망적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눈앞에서 무력하게 흩어지는 리안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어떻게든 희망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
    ​
    그런 노아의 모습은 나락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늪지대에서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은 백조의 모습처럼 보였다.
    ​
    ​
    연약하기 짝이 없는 가냘픈 희망은 다음 날 전장에 선 순간 가볍게 무너져내렸다.
    ​
    ​
    ***
    ​
    ​
    ​
    전쟁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전장, 겨우 상처를 동여맨 병사들이 전열을 가다듬은 채 전장에 섰다. 긴장으로 무거워진 공기가 전장에 내려앉았다.
    ​
    ​
    노아는 투구의 면갑을 내린 채 눈을 번뜩이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
    ​
    스릉, 그녀의 손에서 검이 뽑혀 나와 서늘하게 빛났다. 적군의 진영에서도 좀비나 다름없는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에 긴장감이 더욱 팽배해졌다.
    ​
    ​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던 그때, 노아의 시선 끝에 한 인물이 들어왔다. 적군의 중심에서 느릿하게 걸어 나온 존재는 용병처럼 가벼운 가족 갑옷을 입은 채 검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
    ​
    ‘하얀 가면?’
    ​
    ​
    하얀 가면은 주변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면은 무표정하게 빛났고, 그 뒤에 감춰진 얼굴은 상상할 수 없어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
    ​
    ‘뭐지?’
    ​
    ​
    노아는 하얀 가면에서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그의 움직임, 그의 눈빛, 그리고 그가 발하는 기운까지. 하얀 가면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기시감은 진해졌다.
    ​
    ​
    하얀 가면 밖으로 흔들리는 새하얀 머리카락이 반사적으로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노아는 입술을 사리물어 떠오른 생각을 털어냈다.
    ​
    ​
    ‘리안은… 리안은 마왕성에 갇혀있다고 했잖아. 전장에 있을 리 없어.’
    ​
    ​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하는 순간, 머릿속에 댕하고 종이 울리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저건, 리안이라고. 그가 맞다고. 동시에 다른 감각이 그녀의 이성을 콱 붙잡았다.
    ​
    ​
    ‘아니, 아니야.’
    ​
    ​
    눈앞에 있는 존재는 리안이되 리안이 아니다. 말이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
    ​
    그녀의 머릿속이 혼돈으로 진탕이 되는 사이, 하얀 가면은 전장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병사들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
    ​
    스스슷.
    ​
    ​
    바람이 불어와 그들의 볼을 스치고 지나간 순간, 하얀 가면이 잔상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
    ​
    챙!
    ​
    ​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나간 노아는 병사들의 목을 베려는 하얀가면의 검을 막아섰다.
    ​
    ​
    “헙..!”
    ​
    ​
    목이 베일 뻔했던 병사는 헛숨을 삼키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
    ​
    “그아아악!”
    “죽어엇! 죽어!”
    ​
    ​
    마치 하얀 가면의 공격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마왕군이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병사들도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콰앙! 쾅!
    ​
    ​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전쟁의 막이 올랐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다음화 보기

그녀가 전장으로 돌진하자, 그녀의 뒤를 따라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따라나섰다. 주변에서 적의 화살이 날아들지만, 방패와 갑옷은 가뿐히 막아낸다.

마법이 걸려있어 막아낼 수 없는 화살은 그녀의 검에 두 동강 났다.

전장을 누비며 적을 쓸어버리기 시작하자 아군의 병사들은 고무되어 사기가 크게 올라 두려움을 모른 채 앞으로 돌진했다.

노아는 과감하게 적군의 한가운데로 돌진하여 일격으로 흑마법사를 쓰러뜨렸다. 연속적으로 검을 휘둘러 적들을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번개처럼 빠른 움직임에 적의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터는 혼돈으로 가득 찼다. 격렬한 전투로 인해 피비린내가 무겁게 깔렸고, 병사들의 비명과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두 진영 모두 더 이상 싸움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었다.

“퇴각하라!”

“물러나!”

좀비나 다름없는 마왕 진영 병사들이 물러나기 시작하자, 제국 쪽 지휘관은 빠르게 물러날 것을 명령했다.

이런 싸움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

“후우…”

노아가 투구를 벗자 젖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고, 땀에 젖은 얼굴이 드러났다. 표정 속엔 지친 기색이 가득했지만, 눈빛은 폭풍우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등대처럼 굳건하게 빛나고 있었다.

철컹, 철컥.

노아가 느리게 주둔지를 가로지르기 시작하자, 갑옷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주둔지의 중심에는 천막으로 이루어진 막사가 세워져 있었고, 그 주변에는 수많은 막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막사들 사이를 병사들이 끊임없이 오가며 부상병을 옮기고 물자를 정리했다.

“아으윽..”

“아아악!”

고동에 찬 신음이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졌다. 노아는 주변의 비명을 익숙하게 넘기며 제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천막으로 향했다.

노아가 막사 안으로 사라지자, 그나마 멀쩡한 꼴을 한 병사들이 입을 열었다.

“하… 나 목 제대로 붙어있지? 기사님이 조금만 늦게 나타났어도 여기에 멀쩡한 꼴로 앉아있진 못했을 거야.”

“정말 굉장한 싸움이었어…”

“어쩌면 우린 영웅의 시작을 함께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노아의 경이로운 실력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병사들은 입이 마르도록 감탄을 쏟아냈다.

“영웅은 무슨…”

“평민 주제에 운이 좋았을 뿐이지.”

“지휘관에게 대준 거 아니야?”

“그거네, 반반한 얼굴로 꼬셔서 쓸만한 무기라도 얻었나 보구만.”

그런 노아를 시기 질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말을 쏟아내는 이들은 전장에 서지 않는 귀족 핏줄이 많았다. 공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전선까지 달려왔지만, 겁이 많고 경험이 한미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상황이 위험해지면 쥐새끼보다 빠르게 도망칠 준비를 한 상태였다. 그런 주제에 노아에게 열등감을 불태우며 틈이 날 때마다 그녀를 씹어댔다.

“마왕군 쪽에서 날뛰고 있는 그 하얀 가면 녀석이 우리 쪽에도 나타나 줬으면 좋겠군.”

한 귀족이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다른 귀족이 냉소적으로 웃으며 맞장구쳤다.

“하핫, 기고만장하던 그 녀석이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하군.”

노아 덕분에 그나마 안전하게 주둔지에 머무를 수 있다는 걸 망각한 채, 적군이 노아를 한 방 먹이길 기도까지 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노아는 귀족들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지만 익숙하게 무시해버렸다.

“수고했어. 여기, 물.”

“아, 고마워.”

노아는 릴리가 건네는 수통을 받아 목을 축였다. 막 전장에서 돌아온 몸은 잔뜩 흥분한 상태라 목이 마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바짝 마른 땅에 물을 뿌린 것처럼 숨 쉴 틈도 없이 물이 목구멍 안쪽으로 삼켜졌다.

슥.

릴리는 물을 마시는 그녀의 앞에 종이 한장을 내려놓았다. 노아는 수통을 입가에서 떼어내며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녀의 시선이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향했다.

“정말 이걸로 괜찮겠어?”

릴리는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대상단에서 발행한 어음과 노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거면 돼.”

“…지금까지 모은 돈이면 충분하지 않아?”

“안돼, 아직 부족해.”

노아는 용병으로 고용되어 전장에 한 번 나갈 때마다 수도 외곽에 위치한 2층 저택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받고 있었다.

지금까지 받은 돈을 전부 합치면 수도 중심에 있는 마당 딸린 주택 정도는 구할 수 있을 터였다.

돈을 모아 집을 사겠다던 노아의 말은 이미 지켜지고도 남을 돈이었다. 다른 곳에 돈이 더 필요한 거라면 모를까, 여전히 집을 사는 게 최종 목적인 상황에서 돈에 집착하는 노아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도대체 어떤 집을 사려고 그러는 건데?”

릴리가 치미는 불길함을 꾹 누르며 묻자, 노아가 씩 웃으며 말했다.

“커다란 집을 살 거야. 집 안에 모든 게 있는 안락한 집.”

“아 -.. 은퇴하는 용병들이 살고 싶어 하는 그런 집?”

큰돈을 벌어 은퇴하는 용병들은 대다수 한량처럼 여생을 보내고 싶어 했다. 커다란 집에 시종들이 제 수발을 들고, 그저 뒹굴뒹굴하는 그런 노후를 원했다.

릴리는 노아가 원하는 것이 그런 한량 같은 삶이라고 짐작하고 웃어 보였다. 노아는 그런 릴리에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집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꽤 자세한 계획에 릴리는 안도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런 좋은 집에서 살면 너무 편해서 잘 안 나가게 될 것 같아.”

“그래…? 다행이다.”

속삭이듯 흩어지는 “다행이다.”라는 말이 묘하게 불길한 느낌을 줘 릴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아는 누군가를 가둬두기 적합한 신혼집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떠올려보며 어음을 챙겼다.

언제 제 곁을 떠날지 모를 존재를 사랑하게 된 그녀는 끈기 있게 앞으로의 일을 머릿속에 그려갔다.

불행을 붙잡고 있어 봐야 발목만 붙잡히기에 노아는 최대한 희망적인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눈앞에서 무력하게 흩어지는 리안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어떻게든 희망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아의 모습은 나락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늪지대에서 허우적거리는 어리석은 백조의 모습처럼 보였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가냘픈 희망은 다음 날 전장에 선 순간 가볍게 무너져내렸다.

***

전쟁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전장, 겨우 상처를 동여맨 병사들이 전열을 가다듬은 채 전장에 섰다. 긴장으로 무거워진 공기가 전장에 내려앉았다.

노아는 투구의 면갑을 내린 채 눈을 번뜩이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스릉, 그녀의 손에서 검이 뽑혀 나와 서늘하게 빛났다. 적군의 진영에서도 좀비나 다름없는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에 긴장감이 더욱 팽배해졌다.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리던 그때, 노아의 시선 끝에 한 인물이 들어왔다. 적군의 중심에서 느릿하게 걸어 나온 존재는 용병처럼 가벼운 가족 갑옷을 입은 채 검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하얀 가면?’

하얀 가면은 주변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면은 무표정하게 빛났고, 그 뒤에 감춰진 얼굴은 상상할 수 없어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뭐지?’

노아는 하얀 가면에서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그의 움직임, 그의 눈빛, 그리고 그가 발하는 기운까지. 하얀 가면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기시감은 진해졌다.

하얀 가면 밖으로 흔들리는 새하얀 머리카락이 반사적으로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노아는 입술을 사리물어 떠오른 생각을 털어냈다.

‘리안은… 리안은 마왕성에 갇혀있다고 했잖아. 전장에 있을 리 없어.’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하는 순간, 머릿속에 댕하고 종이 울리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저건, 리안이라고. 그가 맞다고. 동시에 다른 감각이 그녀의 이성을 콱 붙잡았다.

‘아니, 아니야.’

눈앞에 있는 존재는 리안이되 리안이 아니다. 말이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이 혼돈으로 진탕이 되는 사이, 하얀 가면은 전장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병사들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스스슷.

바람이 불어와 그들의 볼을 스치고 지나간 순간, 하얀 가면이 잔상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챙!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져 나간 노아는 병사들의 목을 베려는 하얀가면의 검을 막아섰다.

“헙..!”

목이 베일 뻔했던 병사는 헛숨을 삼키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아아악!”

“죽어엇! 죽어!”

마치 하얀 가면의 공격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마왕군이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병사들도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콰앙! 쾅!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전쟁의 막이 올랐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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