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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00

    <200 – 구간통제>

     

    이미 용사와 척을 졌으니 본색을 드러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건가?

    용사 이슈타르는 눈앞을 가로막은 마목을 베어 넘기며 손을 타고 전해지는 반발력에 이를 악물었다.

     

    <성검개방 – 성스러운 참격>

     

    부정한 자를 멸하는 힘에 막대한 힘을 더해 마목을 일도양단한다.

    반으로 갈라진 마목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존재를 구성하는 암흑마나와 함께 빛의 입자가 되어 흩어져도, 이슈타르의 얼굴 위에 드리운 어둠은 걷히지 않았다.

     

    “유피. 이번 시험에서 오크노디에게 손을 썼죠?”

    “걱정 마. 스콜라가 직접 나서는 건 1구간이 아닌 3구간, 기승대결이 시작할 때야.”

    “말려야 해요.”

     

    커다란 단두대를 휘둘러 마목 하나를 박살을 내던 유피의 얼굴에 마목의 검은 피가 튀었다.

    한낱 마수의 피에 담긴 암흑마나 따위가 성녀클래스의 신체를 침범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이 상식.

    마땅한 법도.

    세상이 유지되기 위해 지켜져야 할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 기본이 불길한 검은 연기를 피우며 피부를 보호하는 신성보호막에 도전하고 있다.

    유피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것은 오랜 경험으로 대자연의 분노가 닥치는 것을 예견하는 현명한 노인의 두려움과 같았다.

    무언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아주 끔찍한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려고 한다.

    이 마목들은 보통의 마목과 너무 달랐다.

    하급마물 따위에게 비롯될 현상이 아니다.

    신체를 녹이고 체내에 스며들려던 기운을 성력을 끌어내어 막아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피를 얼굴 너머로 쓸어냈다.

     

    치이익

     

    땅에 튄 한 방울의 피에 풀이 시들고 죽는다.

    이 정도의 암흑마나 신체농도는 상급마물의 피에서나 검출되는 반응이다.

    교수들이 한 짓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교수들이 막장이라도 정도가 있다.

    언뜻 처음 겪기엔 불합리해보이더라도 교수들은 감당 불가능한 시련을 주지는 않는다.

    상급마물은 달랐다.

    이건 평범한 학생들이 감당할 수준을 넘었다.

    비전투계열 학생들이 마물들의 집중공세에 당한다면 당장 이 숲에서 몇 구의 시체가 생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스콜라는 신궁의 후예인데도요?”

     

    아무리 그래도 스콜라가 그런 평범한 비전투계열 학생은 아닌데.

     

    “걱정해야 할 건 스콜라가 아니라 다른 학생들이 아닐까요?”

    “아니. 다른 학생들은 괜찮아. 위험한 건 스콜라야. 오늘의 오크노디는 평상시랑 달라. 평범한 학생의 흉내를 내며 스스로의 행동을 구속하던 사슬이 하나 풀려버렸어.”

     

    적당히 봐주면서 느긋하게 아카데미 생활을 즐기던 오크노디를 상대로라면 그녀에게 도전하며 탑승물을 기습하는 짓도 충분히 용인된다.

    그 아이라면 그런 도전을 받고도 ‘재미있다’라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어떨까.

    이번에도 도전을 받고 ‘재미있으니까 됐어’라고 용인해줄까?

    아니면… ‘거슬리니까 짓밟아야겠어’라고 생각할까.

    명호스님에 의해 저지당했던 교전.

    1 대 1의 진검승부.

    이슈타르는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오크노디의 잠재력은… 그 아이가 감춘 진정한 실력은 꺼낸다면 상급반 최상위 전투전문가들의 실력으로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어.”

    “그럼 스콜라가 오크노디의 심기를 자칫 잘못 건드리기라도 했다가는…”

    “목숨을 잃거나 그에 준하는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될지도 몰라.”

     

    마목을 돌파하는 손이 더욱 급해졌다.

     

     

    * *

     

     

    “용사 굉장해.”

     

    말을 한 것은 롯토지만 헤스티아와 지고쿠도 동의하는 솔직한 감상이었다.

     

    “마목들이 박살이 난 흔적이 이렇게나 많이 있어.”

    “용사니까.”

    “더러운 속성쟁이 같으니. 나도 속성탄만 잔뜩 쟁여두면 저런 짓 할 수 있다고.”

     

    2학년들을 저지하며 계단에서 시간을 벌던 오크노디.

    그녀의 횡포는 용사 이슈타르의 진격에 마목들이 쓸려나가며 끝났다.

    물론 절반의 승리이기는 했다.

    이슈타르와 그녀의 용사파티동료 유피가 마목들을 분쇄하며 전진하는 사이, 다른 마목들은 오크노디의 지휘를 따라 같이 계단을 지나갔으니까.

     

    “캬아아”

    “으악! 마목이 아직 숨어 있잖아!”

     

    용사가 날뛰느라 퇴각하는 과정에서 오크노디가 제어권을 잃은 마목인가?

    지옥의 악귀마냥 흉악하게 일그러졌던 입모양이나 뾰족뾰족하게 변했던 나뭇가지들도 한결 순해져서는 만만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재주를 부린 걸까? 평범한 마목을 지옥에서 갓 뛰쳐나온 헬크리쳐마냥 바꿔버리고.”

     

    헤스티아는 찝찝했다.

    오크노디의 힘은 너무 이상했다.

    상식적으로 마물강화에 드는 암흑마나의 양은 보통이 아니다.

    제어는 말할 것도 없다.

    하물며 이렇게나 많은 마물들을 다뤘다.

    하루 이틀이 걸려 끝날 짓이 아니다.

    인간을 초월하는 마나량을 지녔거나 마왕을 방불토록 하는 극도의 암흑, 죽음, 사령계열 내성을 통해 순수한 암흑마나를 지닌 것이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된다.

     

    “우아앗, 헤스티아다! 살았다 살았어!”

    “도로시? 너는 분명… 오크노디의 친구였었지.”

    “응응! 우리도 같이 가자. 2학년들 따돌리고 여기까지 오느라 죽는 줄 알았어!”

    “…미안하다. 신세 좀 질 수 있겠나.”

     

    오크노디를 닮아 밝고 명량한 견습숲지기 도로시.

    항상 그녀의 곁을 맴도는 음습하고 꺼림칙한 속검의 달인, 록펠.

    1학년과 2학년의 대결구도가 잡힌 지금, 같은 1학년 실력자들의 합류는 꺼릴 이유가 없었다.

     

    “같이 가지.”

     

    계단 위에는 오크노디가 하던 짓을 되풀이하려는 심산인지, 제국진영 학생들이 진을 치고 계단을 지나가려는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다.

    헤스티아와 지고쿠, 롯토 3인방이 선뜻 계단을 넘지 못하고 밑을 멤돌던 이유였다.

     

    “다섯 명이면 도전할 수 있을까?”

    “해봐야 알겠지.”

     

    심기일전해서 뚫어야 하는 격전지에 가쁜 숨과 지친 몸을 이끌고 덤벼들 수는 없다.

    급히 합류한 도로시와 록펠이 교전에 앞서 숨을 돌리며 정비할 시간을 가졌다.

     

    “마목? 저거 그거 보고 배웠을걸?”

     

    한참 전부터 마목을 찝찝하게 여겼던 헤스티아에게 뜻밖에도 갓 합류한 도로시가 무언가 짐작 가는 구석이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거라니?”

    “사다코 교수님의 저주받은 애완나무 포피. 굉장히 크레이지한 나무가 아카데미 깊은 숲 어딘가를 떠돌아다니고 있거든.”

    “…너흰 그런 걸 마주쳤다는 건가?”

    “응. 지금 생각해보면 오크노디는 처음부터 그 나무를 찾으려고 숲에 갔어. 혈석을 팔아서 마차정기권을 사고, 재료를 수집한다고 숲을 찾아간 것도 다 중간고사에서 마목들을 포피처럼 바꿔서 써먹으려고 설계했던 건 아닌가 싶어!”

     

    포피와 사다코 교수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보량이 너무 많다.

    일개 학생이 지닐 수준이 아니다.

    재단의 도움은 이제 기정사실로 봐야했다.

    마목을 강화시켜 부려먹는 이런 찝찝한 짓을 저지르는 것도 분명 재단에서 내린 지령 비슷한 거겠지.

    애초에 재료 좀 수집한다고 간단하게 강화해서 부려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마물학은 입문이 쉬운 학문이 아니다.

    일치하는 속성도 잘못 부여하면 신체벨런스가 무너져서 강화하지 않으니만 못하게 된다.

    혈관이 막혀서 숨이 끊어지기도 하고,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해 술사를 습격하기도 한다.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마물강화에 성공하며 심지어 다수를 동시에 지배하려면 말도 안 되는 시행착오와 전문적인 가르침이 필요했다.

     

    조기교육이다. 이번에도 재단이 한 건 했다.

    오크노디의 암울한 과거사 한 페이지에 또 다른 일정이 추가된 셈이다.

     

    “오크노디 말이야. 탈락시키고 싶은 학생이라도 있는 걸까? 혼자 기록을 세우려는 거면 저렇게 많은 마목을 계속 데리고 다닐 이유가 없잖아.”

     

    도로시의 의문은 합당했다.

    마물, 강하긴 하지.

    하지만 실력자들은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다.

    A그룹의 북부대공녀는 마목을 통째로 얼렸다.

    B그룹의 용사는 성스러운 힘으로 분쇄했다.

    C그룹의 번개술사는 번개를 지면에 흘려보내든 말든 죽을 때까지 번개를 꽂아 마목을 통째로 터뜨렸다.

     

    “저주가 아닐까?”

    “저주?”

    “오크노디가 마목강화의 소재로 삼은 포피는 저주폐기물이 잔뜩 매달린 불길한 나무였어.”

     

    어째 불길한 기분은 갈수록 더해진다.

     

    “여긴 지나갈 수 없다!”

    “제국에 충성을 바치지 않는 것들은 이 계단에서 모조리 탈락시켜주마!”

     

    붕붕 창대를 휘두르며 위협을 가하는 제국 3대 공신가문의 일원, 호너 후라이드치킨.

    심보 나쁜 녀석답게 하는 짓도 얍삽하기 그지없지만 헤스티아는 어쩐지 싸울 마음도 들지 않았다.

     

    “너희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오크노디가 마목들을 데리고 강으로 간 걸 봤잖아.”

    “알빠냐? 우린 안 쫄려!”

    “마목에 저주의 힘이 추가되었을지도 몰라.”

    “…저주? 1학기에 그런 강의는 없었는데?”

    “재단에서 배운 뭔가를 써먹으려나봐.”

    “그걸 왜 우리한테 알려주는 거지?”

    “오크노디가… 뭔가 굉장히 나쁜 짓을 저지를 것 같아서. 막을 수 있다면 같이 막고 싶어.”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

    재단의 수석장학생.

    그 위험한 아이가 작정하고 뭔가를 하고 있다.

     

    “…흥. 다음 구간까지만이다.”

     

    내면의 쫄림을 참지 못한 호너 후라이드치킨은 헤스티아의 평화협정을 받아들였다.

    계단을 지나 철인삼종경기 제 2구간, 소용돌이가 멤도는 강에 도달했을 때.

    호너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여기서 뭐해?”

    “강을 건널 수가 없어.”

     

    그들보다 먼저 강에 도달했던 학생들 중 대다수가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몸으로 강 앞에 쪼그려 앉아 망연자실한 얼굴로 건너편만 쳐다보고 있었다.

     

    “왜?”

    “위에는 전에처럼 소용돌이가 쳐서 아래로 가야해.”

    “그럼 아래로 가면 되잖아.”

    “강 아래에 마목들이 들어갔어.”

    “뭐!?”

    “마목들이 나뭇가지를 뻗어서 지나가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어.”

    “그럼 사람이 죽잖아!”

    “그게 문제야.”

    “살인이라니, 그건 실격사유잖아!”

     

    강을 지키던 교관은 호너의 시선을 받고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달했다.

     

    “실격이 아니다.”

    “왜요!”

    “그건 마목이 저지른 짓이니까.”

    “하아? 마목은 오크노디가 조종하고 있잖아요!”

    “뭘 모르는군. 오크노디는 조종을 중지했다.”

    “네?”

    “강바닥에서 제어를 풀고 마목들을 자유롭게 풀어줬다는 말이다.”

    “그건… 그건 반칙이잖아요!”

    “규칙위반에 마목을 조종하여 강변바닥에 풀어놓지 말라는 사항은 없었다. 게다가 오크노디는 학생들이 강을 지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쪽이다.”

    “개트롤링을 해놨는데 도움이라니, 말이 됩니까?”

    “오크노디는 지금 마목을 제어해서 지나가는 사람을 습격하지 않도록 제어를 해주고 있다.”

     

    뒤늦게 강에 도달한 1학년들은 다른 학생들이 반 포기상태인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오크노디가 길을 막았다.

    그리고 난이도를 올렸다.

    본인은 규정에 걸리지 않는 교묘한 방법으로.

     

    “호너. 힘 빼지 말고 너도 와서 앉아라.”

    “물이 참 맑군…”

     

    호너는 먼저 와있던 제국3대공신가문의 다른 두 자제, 체다 포테이토피자와 레프 철판숯불갈비를 보고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너희도 여기에 발이 묶인 거냐?”

    “너희도가 아니다. 우리만 묶인 거다.”

    “우리?”

    “정확히는 제국진영이라고 해야겠지.”

     

    그제야 남은 이들의 면면을 돌아본 학생들.

    그들은 깨달았다.

     

    “얘네들… 오크노디랑 안 친한 애들이잖아.”

     

    3구간으로 진출할 학생과 2구간에 묶어둘 학생들을 오크노디가 강 건너편에서 자신의 의지로 골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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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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